2014. 7. 1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23)
본문 : 행 2:14-17
제목 :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14.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요즘 사람들은 건강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젊었을 때는 늘 건강하니까 아프면 또 치료가 되니까 건강에 별 상관이 없이 삽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 아픈 곳도 많아지고 한번 망가지면 다시 치료가 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더 건강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건강에 관한 민간요법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어떤 선교사님 사모님이 암으로 입원을 해서 문병을 갔는데 거기는 병원이 아니고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수맥기계를 들고 병을 진단을 하고 간단한 연고 같은 것으로 암을 치료한다고 하는데 그 치료를 받고 완치가 되었다는 사람도 있기는 한데 믿을 수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연구를 하여 특별한 치료법을 발명했다는 곳에도 가보았습니다.
땀을 나게 해서 몸 안에 있는 독소를 빼내어 치료를 하는 곳입니다.
자기들 말대로 하면 모든 병을 고친다고 합니다.
제법 시설도 잘 해놓고 또 그 방법으로 온갖 질병을 고쳤다는 증인도 있기는 한데 문제는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치료를 해서 암도 고치고 불치병도 고친다고 한다면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이 아깝겠습니까?
과연 그 사람들의 말대로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증인의 말도 들어보고 기계들도 살펴보고 교회도 들어가 보고 역사가 얼마나 됐는가도 살펴보고 믿을만한 구석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해도 결론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꼭 속임수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이 가진 지식이 옳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며 또 인간이 각각 다른 체질을 가졌는데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적용이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는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도 받고 영원한 생명도 받고 영원한 낙원인 천국 백성도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온갖 좋은 것을 받으면서 살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이까짓 신앙생활 좀 더 잘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문제는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증인도 있고 역사도 있고 증거의 책인 성경도 있고 이스라엘도 있고 교회도 있고 수많은 증거들이 있는데도 그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그들을 도와주시고 그렇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그렇게 많은 증거들을 보여주셨는데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늘 하나님을 배반하고 늘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만 골라서 하다가 결국 완전하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신약교회를 시작하시면서 아주 특별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약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오순절에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을 각 사람에게 보내주시는 아주 특별한 일을 단행하셨습니다.
성령님을 보내주심으로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에 실패한 전철을 밟지 않게 해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각 사람에게 오셔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오실 때 이 사실을 믿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특별한 일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120명의 성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성령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게 했습니다.
그들 각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님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그 말이 하나님의 큰일을 말한다는 것을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듣고 놀라고 당황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을 조롱하면서 새 술에 취하였다고 놀렸다고 했습니다.
그 놀리는 사람들에게 베드로 사도가 사실을 바르게 말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다.
본문 14-15절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방언으로 말을 할 때 마치 그 모습이 술에 취한 사람들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강림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을 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사도 베드로가 말합니다.
지금 때가 몇 시인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
지금 때가 제 삼시인데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여기 삼시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 시간으로는 아침 아홉시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이 아침 아홉시인데 언제 술을 먹었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술 취함과 성령 충만함의 유사점 때문에 성령 충만한 제자들을 술 취한 사람이라고 오해를 했습니다.
사실 술 취함과 성령 충만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현저하게 다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라고 했습니다.
술 취함과 성령 충만함을 비교해서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서로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술 취한 사람의 특징을 살펴보면 성령 충만한 사람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은 서로 유사점이 있습니다.
먼저 제정신이 아닌 것이 비슷해 보입니다.
술을 마시고 취하다 보면 정신이 몽롱해집니다.
성령의 충만함도 일단은 내 생각이 아닌 성령님의 영향을 받아서 내 뜻대로가 아닌 성령님의 뜻대로 행하게 되기 때문에 수준은 다르지만 자기의 정신 자기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용기가 생기는 것이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은 평소에는 매우 순한데 술만 마시면 아주 용감한 사람으로 바뀌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 충만하다 받기 전에는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이후 성령을 받고 충만한 상태가 되니까 어디서 그런 담대함과 용기가 나왔는지 아주 용감하게 잡혀 가고 감옥에 가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당당하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던 것을 봅니다.
기쁨을 누리는 것이 비슷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도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반대로 술 취함과 성령 충만함에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술 취함과 성령 충만함에는 유사점이 있어 보이지만 그러나 완전히 현저하게 다른 모습이 있기 때문에 술 취함을 버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방탕함과 절제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술 취함은 방탕하게 하고 성령 충만은 절제하게 됩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은 그 술 취함이 방탕한 것이기 때문이고 그러나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절제가 있게 됩니다.
마비와 각성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술 취함이나 성령 충만함은 각각 우리의 신경계통을 자극하는 것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술은 우리의 신경을 마비시키고 성령님은 우리의 신경을 각성시킵니다.
비겁과 용기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술은 얌전한 사람에게 용기를 주어서 제정신으로 할 수 없는 말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은 우리에게 참된 용기를 줍니다.
참된 힘과 능력을 주셔서 자신감 있게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참된 기쁨과 거짓 기쁨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술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참된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참된 기쁨입니다.
오늘날도 성령 충만한 삶을 오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사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정신없이 중얼거리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게 중얼거리고 이리저리 넘어지고 입신을 하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되고 신비한 기적이 일어나고 하는 것을 성령 충만하다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술 취함과 성령 충만함을 바르게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오는 현상입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신다고 한 선지자 요엘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본문 16-17절 말씀에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들의 행동이 술 취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함을 인함이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경 요엘서 2장 28절의 말씀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하신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요엘서는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 기록된 책입니다.
그러면서도 후일에 있을 구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만민에게 부어주실 것이며 그 때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말씀을 인용해서 성령님께서 오시면 전개될 새로운 세상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오시면 자녀들이 예언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예언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언은 어른들이나 하는 것이고 특별히 선지자들이나 하는 것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예언을 한다는 것은 뭔가 잘 못된 말로 들립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면 이런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까지도 먼 장래 일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래 일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살면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끝 날에는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고 그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시작되는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아무나 아는 일이 아닙니다.
듣는 사람은 많아도 알아듣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압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환상을 영어성경에서는 비전(vision)으로 번역했습니다.
젊은이들이 비전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비전을 보지 못하고 삽니다.
꿈도 없이 목적도 없이 그냥 재미삼아서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바람 따라서 물결 따라서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왜 내가 세상에 태어났는지 왜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는지 알지 못하고 허무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무엇을 하는 것이 나쁜 일인지 판단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오시면 그 비전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분명이 하고 삶의 이유를 분명히 하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이라는 것을 깨닫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습니다.
늙은 사람들에게는 꿈이 없습니다.
죽어서 없어지는 것 밖에 남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늙은이들에게 꿈을 꾸게 해 주시는 분이 우리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노인들이 서글픈 것은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프면 다시 치료된다는 꿈이 없으니까 서글픕니다.
공부를 해서 출세를 한다는 꿈도 없습니다.
열심히 사업을 해서 다시 성공을 한다는 꿈도 없으니 서글픕니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에 절망의 날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꿈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날이 가까이 온다는 꿈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멋진 꿈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어주신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라.
이론적으로 볼 때 교회 안에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은 성령님이 그 안에 와 계시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을 마음에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신약교회 성도들의 특징은 각자가 다 성령님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신약교회 성도는 그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강하게 역사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좋아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아직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확실하게 믿음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죽 성경말씀을 살펴본 바에 의하면 교회에 와서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혜택들을 받아 누리게 되기 때문에 정말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데 진정한 믿음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합니다.
믿을 수만 있으면 너무나 좋겠는데 의심이 생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십니까?
그냥 대강 믿는척하고 사십니까?
의심 없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사십니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증거들을 찾으려고 합니다.
예수님 믿고 복 받은 사람은 없는가, 살펴보기도 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았는가, 살펴보기도 합니다.
성경공부를 해 보기도 하고 교리공부를 해 보기도 하고 제자훈련을 받기도 하고 선교여행을 떠나보기도 합니다.
이런 노력들도 필요할 것입니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냥 의심이나 하면서 교회에 다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고 그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실 때 우리가 가진 믿음의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은 기도를 통해서 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기도를 내가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내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살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려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심으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이 기도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의 뜻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거나 기도를 해도 자기주장만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고 응답을 달라고 조르는 사람은 성령 충만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늘 자기주장 자기고집 자기생각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를 않습니다.
내 생각, 내 뜻, 내 고집, 내 지식, 내 철학, 이런 것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려고 할 때 성령님께서 역사를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알게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뜻을 알게 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 진리를 바르게 알게 하여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하심입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이 모든 일들을 다 알게 해 주시고 어린아이 같은 사람도 장래 일을 알게 되고 먼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성령 충만은 찬송을 통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또 하나의 이유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부를 때 성령님께서는 하늘의 은혜를 맛보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찬송하는 성도들에게 엄청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도 감격에 찬 찬송 한번 부르지 못하고 그냥 구경이나 하고 가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눈물이 나도록 목이 터지도록 가슴이 뜨겁도록 찬송을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셔서 여러분 마음에 참된 기쁨을 주실 것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선한 일로 충성을 다할 때 역사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한 일을 행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성경말씀을 읽을 때 설교를 들을 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설교를 듣지 않으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원저자는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성령님께서 특별히 기록하신 그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 성경말씀을 바르게 해석한 설교를 들을 때 역사하십니다.
바른 기도를 하지 못하고 바른 찬송을 하지 못하고 선한 일도 하지 못한다면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믿음이 자꾸 식어지고 의심이 몰려오고 신앙의 회의를 느끼고 불평하며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우리의 평생 목적은 이 진리를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 하셔야만 합니다.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하고 선한 일에 열심을 내면서 성령 충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임하셨습니다.
그 성령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도 임하여 계십니다.
그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시게 하는 것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는 지름길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찬송을 통하여 충성을 통하여 성령 충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든든히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