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9.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15)

  본문 : 딤전 2:8-10  

  제목 :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

   

 

  “8.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9.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서 전 세계가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우리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문제가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들은 모여서 예배드리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고 소규모의 교회도 일부 교인들만 모여서 오전 예배만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가 예배만 드리는 곳이 아니라 모여서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회도 하고 또 서로 음식을 나누면서 교제도 하고 우리 서로가 천국을 향하여 가는 거룩한 무리라는 것을 서로 확인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겨우 오전 예배만 드리고 그것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을 마스크로 막고 서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서 그냥 설교나 듣고 예배를 구경만 하는 이상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신학교 교수라는 사람이 텔레비전 프로에 나와서 생명은 귀한 것이기 때문에 모여서 예배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정말로 화가 났습니다. 저런 사람을 누가 신학교 교수로 청했는가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연간 3~4천 명이라고 합니다. 하루에 10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죽습니다. 다쳐서 병원에 가고 불구로 살게 되는 사람은 엄청 많습니다. 그런데도 차를 없애라고 하지 않습니다. 죽는 사람도 있고 불구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그만큼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술이나 담배로 인해서 일찍 죽는 사람도 통계는 없지만 엄청 많을 것입니다. 술 담배는 우리 몸을 해치는 몹시 나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술 담배는 없애지 않고 나라에서 담배를 만들고 술이나 담배에다가 세금을 부쳐서 장사합니다.

 

  에이즈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고 있고 동성애나 잘못된 성관계로 인해서 생기는 질병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 치료를 위해서 많은 나라의 돈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동성애를 나쁜 것임을 교육하거나 금지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동성애를 허락하고 조장하려는 법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가면 생명을 잃기 때문에 교회에 가서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참 이상한 사상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술 담배 안 하고 동성에 빠지지 않고 악한 일 하지 않고 평안한 삶을 살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보다 평균수명이 10여 년쯤 높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곳이고 육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존재하는 곳인데 도대체 교회를 뭐로 알고 생명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에 가지 말라니요? 참 이상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이 교회에 모여서 예배드릴 때의 교훈이 들어 있기 때문에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이런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가 국가 정책에 협조하는 마음으로 방역 당국이 정한 규정을 지키며 이렇게 조심스럽게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는 교회의 핵심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배운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6)라고 했습니다. 주일 마다가 아니고 날마다 모였고 모일 때마다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에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날이 가까이 올수록 모임을 폐하려고 하는 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라고 했습니다.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 모이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신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이 되는 말씀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만 교회에서 기도해야 하고 여자는 교회에서 앞에 나와서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남자와 여자가 평등한 사회에서 이런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말씀은 당시에나 해당이 되는 말씀이고 오늘날은 무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일을 구별하기 위해서 기록한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배에 있어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릴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하고 또 예배 참석하는 사람들이 어떤 몸가짐을 가져야 하느냐에 대한 말씀입니다.

 

  당시의 상황에서 남자들이 주로 기도를 했기 때문에 기도할 때 주의점이고 당시에도 많은 여성들이 주로 예배에 참석했기 때문에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어떤 몸가짐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10절에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 참석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나서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즉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마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시고 예배드릴 때 어떤 자세로 예배드려야 하는 가를 생각해보시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본문 8절에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러므로”는 1절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1절에서는 누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지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2:1-2)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라고 했습니다.

 

  1절의 기도가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의 기도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그렇게 기도하는 이유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입니다. 기도가 예배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를 통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진리를 알고 구원을 받아서 저들의 생명이 이 세상의 생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1절의 기도하라는 말씀을 이어받아서 그 기도를 할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각처에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각처라고 하는 것은 세상 어디에서나 기도해도 된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예배를 드리는 처소마다 라고 해석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오늘날처럼 교회당 건물이 따로 지어진 것은 없었고 가정에서나 특별한 장소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예배 드리는 곳 어디에서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남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남자들이 기도하라는 것은 남자만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자들도 예배 시에 기도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남자들이 예배를 인도했고 대표기도를 남자들이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 꼭 손을 들고 기도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기도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기도할 때 손을 들고 기도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 장면을 그렇게 기록했습니다.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대목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기도하면서 혹은 기도하기 전에 화를 내거나 다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예배드리면서 싸우고 성질을 부리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는 기도하는 사람이 평소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특별히 대표로 공예배에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평소에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화를 내거나 말다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분노가 있는 사람은 불평불만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늘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은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차라리 기도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하나님께 책망을 많이 받은 일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그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원망하는 사람은 여지없이 책망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원리도 서로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참 피곤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주변에 원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이 쉽게 옮깁니다. 그 원망이 다른 사람에게도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주변에 감사하는 사람을 친구로 많이 두시기 바랍니다. 자녀들 앞에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말을 하지 마시고 감사하는 말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도 감사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드리면 더 많은 감사 거리를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툼이 없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양보하고 조금만 남을 배려하면 다툼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변에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은 사람 때문에 늘 시빗거리가 생기지만 조금만 참고 양보하면 다투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거룩한 손이란 손을 드는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든 그 손으로 평소에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깨끗한 삶을 산 사람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화를 내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다투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사는 것이 손해 보는 일 같지만 그러나 자신에게 참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도 장수하는 비결일 뿐만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이르게 하는 너무나 귀한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기도하라고 하면서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세상 사람들에게 악을 행한다면 진리를 아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본문 9-10절 말씀에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라고 한 것은 앞 절의 말씀과 같이라는 말입니다. 교회에서 기도할 때 특별히 대표기도를 하는 남자들의 예를 들어서 기도하기 전에 평소의 그의 삶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것처럼 예배에 참석하는 여자들도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만 이렇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단지 당시의 여자들에게 있어서 이런 문제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잘못들을 지적하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예나 지금이나 가장 큰 문제는 꾸미고 치장하는 문제입니다. 여자들은 더욱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시대는 달라도 다 꾸미고 치장하는 일에 제일 큰 관심을 가지고 삽니다.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라고 했습니다. 옷을 입을 때 단정한 옷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너무 화려하거나 너무 초라한 옷을 입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무 화려하게 옷을 입어서 시선을 끌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나 남루한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옷으로 단장을 하기보다는 소박함과 정절로서 단장하라고 했습니다. 옷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는 것입니다. 소박이라는 말은 ‘예절’이나 ‘고상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예의가 바르고 고상한 몸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옷은 화려하게 입었으나 교양이나 예절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옷은 입지 않았더라도 몸가짐이나 마음가짐이 예의가 바르고 고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옷뿐만 아니라 치장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세상 사람들처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땋은 머리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머리 손질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 땋은 머리란 머리를 높게 땋아 올리는 것을 말하는 데 부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자들이 머리를 높이 땋아 올려서 나는 부자라고 사람들에게 자랑했다고 합니다.

 

  금이나 진주로 치장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금이나 진주 장식으로 몸을 치장하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보석으로 몸을 치장하는 것도 역시 자기의 부를 자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값진 옷을 입지 말라고 했습니다. 비싼 옷은 비싼 만큼 좋은 점이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비싼 옷이란 요즘 말로 하면 유명 브랜드 옷을 말합니다. 실용성과는 상관없이 유명 메이커 옷을 사 입는 것 역시 자신의 부를 자랑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세상의 부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오직 선행으로 자신을 단장하라고 했습니다. 화려하고 비싼 옷을 입고 금이나 진주로 자신을 치장하고 자랑하려고 하지 말고 선한 일을 많이 함으로써 자신을 치장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그냥 아무렇게나 살다가 와서 예배드릴 때만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하고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 때도 그리스도인답게 살다가 그런 바른 몸과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우리 자신이 흉악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이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 죄인이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사람처럼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이 세상에서 부자로 화려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가난하게 살지라도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이 세상의 부를 자랑하려는 사람은 그 의미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악을 행하면서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예배에 참석하는 그리스도인이 어떤 자세로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분노와 다툼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고 행실이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세상 사람들처럼 아무렇게나 살다가 교회에 와서 기도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알고 겸손하게 단정한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화려한 모습으로 자신의 부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삶을 사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 육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참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을 진실되게 고백해야 합니다. 말로서만 아니라 삶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위대한 믿음과 진실한 고백이 우리의 육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까지 인도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