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5.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14)

  본문 : 딤전 2:4-7  

  제목 :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진리를 위하여.

   

 

  “4.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7.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목표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삶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면서 뜻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냥 세월 가는 대로 물결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까운 세월만 보낼 뿐입니다.

 

  그 목표가 이왕이면 보람이 있는 목표이고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목표라면 더 좋을 것입니다. 나 혼자만의 기쁨을 위한 목표라고 한다면 나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주변의 사람에게 시기 거리가 되고 미움 거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더더욱 목표가 뚜렷해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바르게 알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왜 예배를 드리는지 왜 기도를 하는지 왜 설교를 듣는지를 알아야 하고 그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왜 예배를 드리는지 모르고 예배를 드리면 예배가 지겨워집니다. 왜 기도하는지 모르면 기도하는 것이 힘듭니다. 왜 설교를 듣는지 모르면 설교가 지루하고 지겹습니다.

 

  왜 예배를 드립니까?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한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고 그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드려야 합니다. 은혜로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예배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고 예배드리는 자들에게 더 많은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왜 기도하십니까? 기도는 우리가 세상을 삶에 있어서 특별히 신앙생활 함에 있어서 너무나 유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말씀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 때문입니다.

 

  왜 설교를 듣습니까? 설교는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 복음의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통하여 내가 신앙생활 하면서 알아야 할 진리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통하여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보람된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목적의식이 뚜렷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받은 사명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 사명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행하여야 할 너무나 귀한 것임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를 위하여” 자신이 전파자와 사도와 스승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 “이를 위하여”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진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진리의 가장 중요한 핵심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한 하나님, 한 중보자, 한 대속주가 진리의 핵심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이 진리를 알고 구원을 얻기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이 진리를 위하여” 사도가 되고 전파자가 되고 스승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이 진리를 위하여”가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이 진리를 통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이 진리를 전하고 가르치기 위하여 우리가 사명을 받았습니다. 

 

 

전파자와 사도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7절 상반절에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전파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전파하는 전파자가 되었으며 왜 사도가 되었는지를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이를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알이야 할 이 진리를 전파하기 위하여 전파자와 사도로 세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진리를 전파하는 자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전파하는 자란 원래 임금이나 군대 장관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통신문이나 공공문서를 전달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선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의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선포하는 설교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설교는 사람의 말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강단의 설교자가 바울이 받은 그 전파하는 자와 같은 사명을 받았다고 한다면 사도바울과 같이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진리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하나님께 전파하는 자로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 진리를 그대로 선포해야 합니다.

 

  이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교회의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포자는 이 복음의 진리를 중심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한 분 하나님이 진리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설교자는 이 진리의 말씀을 중심으로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의 강단에서 인간의 경험이나 사상이나 철학 같은 것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만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어떤 다른 신이나 인간이 영광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인간을 높이거나 인간의 행적을 높여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만이 중보자가 되시고 예수님만이 대속주가 되심을 선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구원의 중요성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는데 그 중요한 하나님의 뜻의 핵심을 제쳐두고 다른 것을 전하거나 구원과 반대되는 것을 선포하는 사람은 사명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 사명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복음을 선포합니다. 타락해서 구원을 받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해야 하는데 인간이 똑바로 살고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소망이 없고 나그네와 같이 지나가는 길이라고 하는데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사람처럼 더 많은 복을 받고 살라고 선포합니다. 더 성공하고 더 건강하고 더 잘살기 위해서 믿음 생활 잘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이 세상이 나그넷길과 같다고 해도 꽤 긴 세월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이라도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 잘하기 위해서 돈도 필요하고 건강도 필요하고 바르게 사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잘 살고 성공하고 바르게 사는 것은 이 세상의 교육기관에서도 잘 가르칩니다. 이 세상에 잘 사는 것 배우기 위해서 학교에 가서 이것저것 많이 배웁니다. 자기의 특기에 따라서 취미에 따라서 전공을 정하고 배웁니다.

 

  교회는 그런 세상의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그런 세상의 것을 가르치니까 세상이 교회를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과학이나 인문학이나 철학을 가지고 교회를 무식하다고 비웃습니다. 

 

  교회는 그런 세상의 과학이나 인문학이나 철학이나 그 어떤 지식을 가지고도 감히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곳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선포하는 곳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세움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세움을 입었다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사도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고 임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사도로 임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어떤 임무를 주어서 그 임무를 수행하도록 파송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고 복음을 알게 하시고 그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으로 보낸 사람을 사도라고 합니다.

 

  좁은 의미에서 사도란 예수님의 열두제자와 특별히 바울을 사도라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직접 부르심을 받았고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아서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이런 조건을 갖춘 사람은 예수님의 열두제자와 사도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의 열두제자는 아니었지만 자신도 예수님께 직접 복음을 들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1:11~12)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받은 사도라는 직분이 예수님께서 직접 임명하시고 직접 파송하시고 직접 선포해야 할 말씀을 받았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자부심이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뚜렷한 목적을 가지게 했으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 복음의 진리를 전파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했을 것입니다.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전파자와 사도로 세움을 받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 당시의 사람들 중에는 바울이 예수님의 열두제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울의 사도성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사도성을 의심하고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의 신분을 자주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께 받은 사명을 더 자주 확인했을 것이며 자신이 전해야 할 복음을 더 자주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시려는 가장 중요한 진리임을 확신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는 거짓을 말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의 말뿐만 아니라 그의 삶도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사도라는 호칭은 디모데나 아볼로나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 등에게도 썼습니다. 그들이 부분적으로 사도의 직분을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직접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했고 예수님께 직접 복음을 배우지 못했지만 사도들에게 그 복음을 배웠고 그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복음을 전파하는 목회자들이나 복음전파의 사명을 받은 모든 성도들도 사도들이 받았던 그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진리의 말씀인 복음을 전파하는 임무를 우리가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이 십자가의 복음을 자신 있게 전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섞어서 잡다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런 자신감이나 목표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영원한 천국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복음의 진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안다고는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복음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7절 하반절에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라고 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받았다고 한 바울은 또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 스승이라는 말은 바른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를 시작하면서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고 했습니다(딤전1:3). 그리고 그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딤전1:11)라고 했습니다.

 

  남을 가르치는 스승인데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않고 복음을 따르는 참된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야 할 가장 소중한 교훈을 가르치는 임무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스승이라는 것은 사도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임무를 받은 사람임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자신의 혈육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 것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그 뜻을 따라서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기 때문에 세계만방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방인의 스승이 된 것을 “믿음과 진리 안에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지식을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믿음을 가르치고 진리를 가르치는 일에 스승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은 정말로 위대한 믿음입니다. 오직 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에 믿음이 최고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믿는 것인지 믿고 나면 어떻게 되는지 믿음을 가진 사람의 신분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중점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서 믿음과 함께 가르쳐야 할 것은 진리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소중한 이유를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를 알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선포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는 진리를 처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진리의 핵심인 한 하나님, 한 중보자, 한 대속주에 대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그 진리와 함께 복음을 가르쳐야 하고 복음을 믿는 믿음에 대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바울은 믿음의 소중함을 제일로 가르치고 선포하였습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 즉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우리가 가져야 할 최고의 것이며 사명을 받은 자들이 최고의 것으로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왜 최고인지를 알 수 있는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이 진리를 알아야만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알아야만 복음을 믿는 믿음이 불변의 것이며 유일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은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진리를 위하여 전파자와 사도로 세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을 위하여 믿음과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우고 특별히 이방인을 위하셔 믿음과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도 복음을 듣고 진리를 알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도 그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는 일에 이 진리를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