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26.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04)

  본문 : 딤전 1:3-4

  제목 :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

 

 

  “3.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18세기 초에 두 사람의 영국 청년이 풍운의 꿈을 안고 신대륙인 미국으로 왔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은 똑같이 신대륙에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여 멋있게 살아보려는 마음으로 미국으로 왔습니다.

  그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인 마르크 슐츠라는 사람은 “내가 이곳에서 큰돈을 벌어 부자가 되어서 내 자손에게는 가난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도록 돈을 벌어야 하겠다.”라는 생각으로 뉴욕에서 술집을 차려서 그 소원대로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반면에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사람은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왔으니 바른 신앙생활을 통하여 신앙의 자유가 있는 이곳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150년이 지나 5대 자손들이 태어난 후에 뉴욕시 교육위원회에서 컴퓨터로 이 두 사람의 자손들을 추적해서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조사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참으로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돈을 벌어서 많은 재산을 벌어 자손들이 잘살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한 '마르크 슐츠'의 자손은 5대를 내려가면서 1,062명의 자손을 두었답니다. 그런데 그 자손들이 돈이 많아서 행복하게 잘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도소에서 5년 이상의 형을 산 자손이 96명, 창녀가 된 자손이 65명, 정신이상, 알코올 중독자만 58명, 자신의 이름도 쓸 줄 모르는 문맹자가 460명, 정부의 보조를 받아서 살아가는 극빈자가 286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신앙을 소중히 여기고 신앙을 찾아 미국에 왔던 '에드워드 조나단'은 유명한 프린스턴 대학을 당대에 설립하고, 5대를 내려가면서 1,394명의 자손을 퍼뜨렸습니다.

  자손들 중에 선교사 목사만도 116명이 나왔고, 예일대학교 총장을 비롯한 교수, 교사만도 86명, 군인이 76명, 나라의 고급관리가 80명, 문학가가 75명, 사업가가 73명, 발명가가 21명, 부통령이 한 사람, 상·하의원 주지사가 나왔고, 장로 집사가 286명이 나왔습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기를 돈을 많이 벌어서 자손에게 유산을 많이 물려주면 자손들이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재산이 자녀들을 타락하게 만들고 무책임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만들어서 결과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자손들을 부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신앙을 소홀하게 여긴 사람들은 자녀들이 결국 불행한 삶을 살게 만들지만 돈보다 신앙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준 사람은 물질적으로는 비록 좀 가난한 삶을 산다고 해도 보람되고 바른 삶을 살게 됩니다.

 

  특별히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줄 때 바른 신앙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신앙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바른 믿음을 가지고 그 바른 믿음을 진실되게 고백하는 그런 신앙을 가지게 될 때 이 세상의 삶뿐만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도 행복한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희 가문도 순교자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진리를 바르게 알고 바른 신앙생활을 한 사람과 그렇지 못하고 교회만 다닌 사람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세상 사람들처럼 돈을 많이 벌어보려고 노력해서 유산을 많이 남겨준 자녀들은 오히려 불행한 삶을 삽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그 후손도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교회만 다닙니다.

 

  디모데전서의 핵심적인 주제도 바른 교훈을 따라 바른 신앙을 가지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가 표어로 삼은 11절 말씀에 보면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따라야 할 바른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따르는 교훈이 바른 교훈이고 복음을 따르지 않는 것이 잘못된 교훈이며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다른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따라 오늘 설교 제목은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입니다.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고 바른 교훈 즉 복음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우리 후손에게 이 바른 복음을 따르는 바른 신앙을 물려주는 것이 최고의 유산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귀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본문 3절에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함께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를 떠나 마게도냐 지방으로 가려고 할 때 디모데를 함께 데리고 가지 않고 에베소교회에 머물러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지금 서신을 통해서 말합니다. 내가 너를 데리고 가지 않고 에베소교회에 머물라고 한 이유는 에베소교회에 다른 교훈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라고 했습니다. 여기 어떤 사람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잘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어떤 사람들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다른 교훈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한두 명이 아니었을 것이고 그들이 가르치는 다른 교훈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두 명이 한두 가지 거짓말을 하면 쉽게 가려낼 수 있겠지만 여러 명이 여러 가지 거짓 교훈을 하면 사람들이 쉽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사항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미 수많은 이단들, 수많은 거짓 선생들이 교회에 침투해 있습니다. 바른 교훈보다도 더 많은 잘못된 교훈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바른 교훈을 따르기가 어려운 세상에 되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른다고 해서 그것이 바른 교훈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대형교회에서 가르친다고 해서 그것이 바른 교훈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른 복음을 따르는 것이 바른 교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여기 다른 교훈이란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르지 않은 교훈을 말합니다. 모든 교훈들이 이 복음을 따르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이 교훈이 바른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내에 이 복음과 다른 교훈들을 많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 복음과 반대되는 교훈들을 많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복음이라는 말은 쓰지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음과는 다른 복음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복음주의”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복음은 복음주의자들이 말하는 복음과는 다릅니다.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음에다가 많은 것을 덧붙여서 변질된 다른 복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다가 약간 다른 것을 덧붙인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섞어버려서 아예 다른 복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말만 복음이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주의자들은 복음에다가 세상에서 바르게 살기, 세상에서 잘 살기, 교회가 부흥하고 그래서 사람이 영광을 받으려고 하는 여러 방법들을 붙였습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복음을 따르지 않는 많은 교훈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교회 안에는 그런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들의 가르치는 거짓들이 점점 더 커져서 아주 엉뚱한 거짓선생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거짓선생들의 가운데는 하나님만 유일한 참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성경보다 인간의 사상이나 철학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거짓선생들 가운데는 구원을 오직 믿음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고 믿음보다는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차이들은 그들이 기독교라고 하기보다는 아예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경의 가장 핵심인 복음을 그 복음의 정신과 반대 방향으로 해석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기독교가 아니라 다른 종교입니다.

  그러면서도 교회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고 교회당에 십자가는 커다랗게 붙여놓습니다. 기독교로 가장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독교로 가장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유혹해서 자기들 편으로 만들려고 하는 무서운 집단입니다.

 

  이러한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교회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이런 복음과 거꾸로 가는 교훈을 가르치는 이단이나 거짓 선생들을 발붙이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이런 잘못된 교훈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바른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바른 교훈이 무엇인지를 알고 바른 교훈을 따라 바른 믿음을 가지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바른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부모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본문 4절 상반절에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교회에 머물러 있게 한 것은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신화에 몰두하지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신화나 전설 같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모든 만물에다가 신을 붙이고 모든 만물에다가 이야기를 붙이기를 좋아합니다.

 

  그냥 재미로 만들어낸 이야기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진짜로 믿고 그것을 종교화 하는 이야기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신화 같은 것은 사람이 만든 거짓말인데 거기 등장하는 많은 신들을 사실로 믿고 섬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냥 하나님만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따르면 되는데 비슷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고 비슷한 신들을 많이 만들어서 섬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만 섬기고 살면 되는데 거기 원주민들이 만들어놓은 이상한 신들의 이야기에 넘어가서 그 만들어놓은 신들을 우상으로 섬깁니다. 농사가 잘 되게 해주는 신, 비를 내려주는 신, 부자가 되게해주는 신들을 섬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온갖 신들을 섬기면서 살던 사람들이라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도 하나님을 그런 신들처럼 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자가 되어보려고 병을 고쳐보려고 하나님을 잡신처럼 섬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족보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도 아담이후의 많은 족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어지는 족보들도 매우 소중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족보 이야기들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그 족보에 속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지만 그 족보가 주는 의미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족보를 통해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내주시려고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려주는 것인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우상숭배하듯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이용합니다. 족보를 통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발견해야 하는데 족보를 통해서 자기의 신분만 자랑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하는 것 외에 어떤 교훈도 가르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외에 다른 것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딴 길로 가게 하는 아주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본문 4절 하반절에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를 통헤서 하나님의 경륜이 무엇인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경륜이라는 말은 어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때 이 세상의 역사를 진행하실 때 모든 것을 미리 계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대로 진행해나가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경륜을 특별히 인간을 구원하는 일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게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대로 진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하나님의 경륜 즉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일을 어떻게 이 세상에서 진행해나가고 계시는가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구속사 즉 구원의 역사책으로 이해합니다.

 

  성경을 이렇게 구속사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해하면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그렇게 믿고 따르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리스도로 믿으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복음을 따르지 않고 다른 교훈을 따르려고 하면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복음과 다른 교훈을 가르치려고 하고 신화처럼 성경을 해석하고 족보에 매달리다가 보면 이런저런 신학이 필요하고 변론이 필요하고 논쟁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구원의 역사로 보지 않고 다른 것으로 생각하다가 보니까 이런저런 논쟁에 빠지고 이러저런 다른 교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이 무엇인지 알고 따를 것인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따를 것인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이 우리가 가르쳐야 할 바른 복음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가르쳐야 할 바른 복음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아시기 바랍니다.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거짓 선생들을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다른 복음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도 바른 신앙을 가지고 우리 후손들에게 바른 믿음을 유산으로 남겨주는 것이 무엇보다 귀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