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12.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02)

  본문 : 딤전 1:1-2

  제목 :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

 

 

  “1.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목회에 필요한 서신을 쓰면서 먼저 간단하게 인사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사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의 하나님” “우리의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 편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너무나 귀한 것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주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면에 있어서 우리의 편이 되시지만 특별히 우리를 죄에서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는 일에 우리의 편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서셔서 우리만 특별히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보내주셨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셔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서신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간단하지만 아주 중요한 사실로 수식을 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사도바울이 그런 하나님의 사도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하시는 분이고 바울 자신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런 일에 대해서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하는 일은 그런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그런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사명을 받은 사람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편지를 쓰는 사도바울에 대해서 그 편지를 받는 디모데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지만 그 편지를 받는 디모데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중점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

 

  본문 1절에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라는 말의 헬라어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라는 단어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사도라는 칭호는 원래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배운 열두제자에게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열두제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도라는 호칭을 썼습니다. 바나바, 디도, 아볼로, 실라, 디모데에게도 사도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이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특별히 부르심을 받아서 복음 전파자로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예수님의 사도라는 것에 대해서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비난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기도하고 죽이기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사도성에 대해서 시비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공부하면서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임명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기사를 세 번이나 기록함으로 자신이 예수님께 직접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만나서 제자가 되고 사도가 된 것이지만 바울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에 계시는 예수님을 보고 만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면서 고난 당하시는 모습이나 아니면 기적을 행하시는 그런 모습에 익숙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설교할 때도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설교를 합니다.

 

  바울은 승천하셔서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계시는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계시는 그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서 설교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나 바울이 전하는 것은 다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것을 서로 합의하고 동의하였습니다. 베드로의 복음이나 바울의 복음은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고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만이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사도행전을 공부하면서 부수적으로 얻은 지식은 베드로와 바울이 동등한 지위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주로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바울은 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두 사람의 지위는 다 같이 사도로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일으키면 바울도 그렇게 일으킵니다. 베드로가 죽은 사람을 살리면 바울도 죽은 사람을 살립니다. 두 사람이 전하는 복음도 동일하고 성령님께 받은 능력도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과 예수님 이름 앞에 ‘구주’와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붙여서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주나 그리스도나 다 같이 구원과 관계된 호칭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사망에서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을 받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일에 보냄을 받은 자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사도들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도 사도신경이라고 부릅니다.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잘 정리하여 고백을 하기 때문에 사도신경이라고 하고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전한 그 복음을 따르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행한 일을 기록한 책이 사도행전이고 그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우리가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사도들이 시작한 그 교회입니다. 사도들이 세계만방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웠고 오늘날 우리나라까지 그 복음을 따라 교회를 세우고 함께 교회에 모여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사명도 이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된 모든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하게 하는 사명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선교를 하는 이유는 교회의 사명이 그것이고 우리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명도 복음을 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개혁주의 선교회를 통하여 필리핀과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개혁주의 선교회는 우리 주변의 개혁주의 목사님들이 시무하는 14개 교회가 모여서 함께 선교하는 단체입니다.

 

  선교회 이름을 개혁주의 선교회라고 한 것은 선교사들이 선교한다고 하면서 그들이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는 선교사들이 많기 때문에 복음을 바르게 전하는 선교사들을 돕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개혁주의 선교회라고 했습니다.

 

  제가 2월 3일부터 일주일간 인도네시아에 단기선교를 나갑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현지 목사님 50명에게 개혁주의 설교가 무엇인지 복음을 설교하는 것이 무엇인지 특강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현지 목사들을 개혁주의 목회자로 계속 재교육하는 일을 우리 선교회에서 맡아서 하기 위해서 현지 상황을 둘러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는 지역아동센터나 청소년 공부방도 다 선교를 위한 기관입니다. 해외 선교는 복음을 외국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라면 국내 선교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라고도 합니다.

  아동센터가 옛날에는 많은 아이들이 교회로 오게 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도 교회 오기를 싫어하니까 그 역할을 잘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많은 노력을 해서 아동센터를 세우고 우리 성도들이 후원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그저 아이들 공부나 시키고 일하는 사람 월급이나 주는 곳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목적이 전도라는 것을 알고 전도를 위한 선교센터가 되도록 기도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6년 동안 베드로나 바울을 위시한 사도들이 세계선교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습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살펴보는 것으로 끝나고 나도 그런 각오로 선교해야 하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올해는 우리 전 성도들이 선교를 위해서 노력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선교를 나가기도 하고 선교를 후원하기 위해서 선교헌금을 꼭 작정하시고 매달 선교헌금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로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말로만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을 고백하는 진정한 성도로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

 

  본문 2절 상반 절에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의 편지를 일차적으로 받는 사람은 디모데이며 바울은 그를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라고 말합니다.

 

  디모데와 바울의 만남은 사도행전 16장을 설교할 때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디모데가 누구인지 잘 설명해 드렸습니다. 디모데는 로가오니아 사람입니다. 바울이 소아시아지방인 더베와 루스드라에 갔을 때 디모데를 만났는데 더베와 루스드라가 있는 지역을 로가오니아라고 합니다.

 

  사도행전에 바울이 루스드라 지방에 두 번 간 일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방문 때 디모데가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것으로 보이며 3년쯤 지난 후에 두 번째 방문했을 때 바울을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에게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헬라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어머니와 외할머니와 함께 자라면서 유대인으로의 성장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의 이름인 디모데의 뜻은 “하나님을 공경한다.”라는 뜻입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으로 자랐으며 바울을 만났을 때 그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인데 어디 가든지 먼저 그곳에 사는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 자신이 유대인으로서 유대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성경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쉬웠을 것이고 그들을 먼저 기독교인이 되게 하여서 그들과 함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쉬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부모님 때부터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있고 부모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이 두 신앙이 서로 장단점이 있습니다.

  부모님께 신앙을 물려받은 사람은 자신의 체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신앙이 미지근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뿌리가 든든해서 쉽게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체험적이고 스스로 깨달음이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 신앙이 뜨겁게 보입니다. 그러나 뿌리가 깊지 않아서 쉽게 흔들린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모태신앙의 장점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신앙을 보고 자라서 주일을 지키고 주일날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은 잘합니다. 교회 생활이나 헌금 생활이 무엇인 줄 알고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보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주일을 지키는 것이나 교회에 헌신하는 일을 잘하는 것이 비교적 어렵습니다. 주일날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이나 교회를 위해서 헌금하는 일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가 쉽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고 또 바울을 따라 목회자로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어려서부터의 신앙 경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미 율법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율법의 핵심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뜻이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임을 알았을 때 쉽게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디모데가 처음 바울을 만났을 때 모습을 늘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4장에 그때의 상황이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이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악감을 품게 하였고 그 악감을 품은 사람들이 바울을 모욕하고 돌로 치고 죽이려고 달려들었을 때 디모데가 살고 있는 루스드라로 도망하여서 거기서 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안 디모데가 보통 마음으로 바울을 따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안전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출세가 보장된 것도 더더욱 아니고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서 죽임을 당할 줄도 모르는 그런 일에 쉽게 따라나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모데가 바울을 따라서 그런 험한 일을 하기 위해 따라나선 것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하나님께 대한 공경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천국 복음을 전하면 바울 시대처럼 돌멩이로 공격을 받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천국보다는 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천국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른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디모데는 그런 불리한 환경을 잘 알았지만 바울을 따라나섰습니다. 바울과 함께 선교도 다니고 함께 옥에 갇히기도 하고 그러다가 에베소교회의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를 “나와 함께 수고하는 자”(롬 16:21)라 하였고 “내 귀하고 신실한 아들”(고전 4:17)이라고 했고 오늘 본문에서 “믿음의 참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요 신실한 후계자로서 바울을 이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로서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디모데전서의 발신자인 사도바울과 수신자인 디모데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산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이 교회 안에서 실천될 수 있도록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성경의 핵심으로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그들의 뒤를 따라서 복음을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복음을 따라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