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27.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38)
  본문 : 딤전 5:17-20
  제목 :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17.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18.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19.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20.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머리가 좋아서 성공하는 사람보다 인간관계가 좋아서 성공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20% 정도가 머리가 좋고 공부를 많이 해서 성공을 했다면 나머지 80%는 인간관계가 좋아서 성공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삶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 인간관계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생활이나 신앙생활도 성경을 많이 알고 신앙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많이 아는 것보다는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과의 관계가 좋아야 하고 특별히 교회의 지도자들인 장로님과 목사님과 서로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관계가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존경해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있는 좋은 점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좋은 관계가 됩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업신여기면 좋은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나쁜 점만 발견하고 미워하고 무가치한 사람으로 보는 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나쁜 점과 좋은 점이 같이 있습니다. 대부분 두세 가지가 좋은 점이라고 한다면 나머지는 다 나쁜 점들을 가진 것이 타락한 우리 인간입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나쁜 점만 보고 사는 사람은 평생 외톨이로 살아야 합니다. 한두 가지라도 좋은 점이 있으면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인정해줄 줄 알면 많은 사람과 사귈 수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의 직분자나 성도들을 대할 때 그 가치를 알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 생활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좌우하는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를 대할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을 다스리고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사람들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라고 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들을 배나 존경할자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존경이라는 말은 그 사람에 대한 가치를 알고 그 가치가 귀하다고 인정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서로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면 서로 존경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성도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여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는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면 존경할 수 있습니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본문 17절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는 다스리는 장로들이 있고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사람 즉 목사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 안에 있는 장로와 목사들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참 중요합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그 가치를 인정하고 존경하면 신앙생활도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모르고 무시하면 신앙생활 하는 자신에게도 손해가 옵니다.

 

 

  반대로 장로나 목사는 성도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앞장서가면서 본을 보이고 말씀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성도들의 신앙도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장로를 존경해야 하는데 존경해야 할 장로는 잘 다스리는 장로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장로란 원래 나이가 많은 사람을 장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회를 다스리는 직책으로도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당시에도 장로라는 말과 감독이라는 말을 같이 썼습니다.

 

 

  오늘날은 다스리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가 구별되어 있습니다. 다스리는 장로는 우리가 부르는 장로를 말하고 가르치는 장로는 목사를 말합니다.

 

 

  오늘날의 장로는 교회의 대표로서 교회에 일어나는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고 집행해나가는 일을 합니다. 우리가 속해있는 교단을 장로교라고 하는 것은 장로정치를 하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성도들이 장로를 대표로 뽑고 대표로 뽑힌 장로들이 교회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고 그 결정대로 다스려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일을 하는 장로님들을 존경하고 그들이 결정한 일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따라야 합니다. 그들의 직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그들의 결정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면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다스린다는 말은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뜻도 있지만 앞에 둔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명령만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앞장서서 자신도 함께 모범을 보이면서 성도들을 인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장로도 나이 든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먼저 된 사람, 인생을 먼저 살면서 바른 믿음의 길로 걸어옴으로 뒤에 이 길을 오는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입니다.

 

 

  힘든 인생길을 살아오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키면서 살았고 신앙인의 의무를 다하면서 산 사람이라는 증거가 있을 때 잘 다스리는 사람이며 장로의 직분을 맡아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이라고 했습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아야 하고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존경할 자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는 다스리는 장로이기도 하면서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사람들입니다. 목사는 말씀, 즉 설교하는 사람이고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다스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설교와 가르침이기 때문에 잘 다스리는 자보다 설교를 잘하고 성경을 잘 가르치는 사람은 더 존경할 자로 알아야 합니다.

 

 

  목사는 성도들을 잘 가르쳐서 바른길로 인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성경 말씀을 가지고 때로는 잘못된 일을 꾸짖기도 하고 잘하는 일엔 칭찬을 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기도 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는 자들에게 담대한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설교 말씀이 때로는 가슴에 상처가 되기도 하고 시험 거리가 되기도 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예수님 잘 믿고 천국 가라고 설교를 하는데 그 설교를 듣고 오히려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목회 사역에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설교사역입니다.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영혼을 위임받은 목사로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끝까지 그 믿음을 지키게 하려고 최선을 다해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제가 하는 설교의 가치를 알고 잘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점점 믿음이 자라고 기쁨으로 신앙생활도 하고 충성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별로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 가면 모든 목사가 설교하고 그 말이 그 말 같고 그래서 저의 설교를 그냥 보통으로 듣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저 그런대로 늘 그만그만하게 신앙생활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설교 준비하고 열심히 설교하는데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을 보면 좀 마음이 아픕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목사가 다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열심히 요리해서 상을 차렸는데 맛있게 먹지 않으면 기분 나쁜 것처럼 목사들도 그렇습니다.

 

 

  목사의 설교를 잘 듣지 않는 사람 중에는 목사와의 인간관계 신뢰 관계가 잘못되어서 그런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관계가 있으면 하루속히 해소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영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몹시 나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사람을 더 존경할 자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존경하기가 어렵습니다. 다 단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사가 하는 그 말씀 사역 때문에 존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사역을 귀하게 여기고 존경하는 마음이 있을 때 설교 말씀이 여러분에게 더 큰 은혜가 될 것입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본문 18절에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전담으로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목회자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60이 넘은 참과부가 교회에 등록하고 남자 목회자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때 그들이 생활을 책임지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일을 전담하고 말씀과 가르치는 사역을 하는 목사들은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그들보다 더 신경을 쓰라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생활비 때문에 먹고 사는 일 때문에 걱정하면 사역을 잘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돈 때문에 걱정하면 시험을 받게 되고 유혹에 넘어가서 바른 목회를 잘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라는 신명기 254절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타작 방법은 곡식을 타작마당에 펴놓고 소가 끄는 타작 기구가 그 위를 지나가게 해서 알곡을 분리했습니다. 소가 타작 기구를 끌면서 타작하는 곡식을 자꾸 먹으려고 하므로 그 소의 입에 망을 씌워서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신명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법칙을 말씀하면서 소에게 그런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소도 먹고 살아야 하고 먹고 힘이 있어야 일을 하니까 일할 때 먹을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10:7)라고 하신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예수님께서 70인 전도단을 만드셔서 각 동네와 지역으로 보내시면서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자기가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그 귀한 일을 하면서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잠잘 곳과 먹을 것을 대접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미안해하지 말고 받으라고 했습니다.

 

목회자들에게 가장 큰 고민이 이런 문제입니다. 목회자가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사람인가 거룩한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사람인가 사이에서 고민이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려고 목회자가 되었는데 먹고살 것 때문에 월급을 받는 일꾼처럼 되어야 하는 것에 마음이 괴롭습니다.

 

 

  일부 큰 교회가 목회자들에게 사례를 많이 주고 사례 외에 여러 가지 명목으로 돈을 많이 써서 물의를 일으키고 은퇴하면서도 이런저런 명목으로 많은 돈을 가져가는 목회자가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회의 80% 이상의 교회가 소규모교회이고 그들 대부분이 최저 월급도 못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례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 운영비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작은 교회의 목사들입니다.

 

 

  돈 이야기를 하면 성도들이 목사가 돈타령한다고 오해할까 봐 말씀을 드립니다. 목회자들이 교회 운영하는데 생활하는데 걱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교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이일이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존경하는 일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 일을 더 잘하게 하기 위해서 생활하는 일에 걱정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목사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입을 통해서 말씀해주시는 하나님을 존경하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본문 19-20절에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장로나 목사가 잘못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장로나 목사라고 할지라도 때로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기도 합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좋은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여기 장로는 목사나 교회의 지도자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을 고발하는 일은 먼저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하고 또 공평하게 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에게는 차별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도 하고 심지어 고발을 당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앞장서서 일하다가 오해를 받기 쉬운 지도자들의 잘못을 고발할 때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두 사람이나 세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을 때만 고발을 받아서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증인이 많다고 해서 고발을 당한 그 사람이 꼭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요즘 사람들은 나쁜 일에도 하나가 잘 됩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잘못된 생각을 가지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고발한다고 해도 아주 신중하게 잘 살펴서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심사숙고해서 고발을 받되 그 사람이 정말로 잘못한 일이 발각되면 반드시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못한 일이 있는데 그것을 눈감고 그냥 넘어가면 사람들이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고 다 같이 그런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사람 앞에서 엄하게 꾸짖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돈 문제로 이성 간의 문제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이런 일을 꾸짖어야 하는 이유는 그런 죄를 지은 양심으로 바른 목회를 하고 바른 지도자가 되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잘못은 복음을 바르게 전하지 않는 일입니다. 말씀과 가르치는 일을 바르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하고 교회를 부흥시키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서 모이게 한다고 해도 복음을 정확하게 전하지 않고 다른 것을 가르치거나 거짓된 것을 가르친다면 그 사람은 목회자가 아니라 목회자의 탈을 쓴 사기꾼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자들을 더욱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사역의 중요성을 알고 가치를 알고 존경할 때 그 말씀이 은혜가 되고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이 교회를 운영하고 생활을 하는 일에 걱정하지 않도록 그들의 생활비를 잘 공급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그런 것들로 걱정하지 않을 때 더 좋은 말씀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잘못을 했을 때 엄히 꾸짖어서 바른 목회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줄 알면서도 그대로 둔다면 교회 공동체에 엄청난 손해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