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4.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23)

  본문 : 딤전 3:8-10 

  제목 : 이와 같이 집사들도 2.

   

 

  “8.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집사의 자격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현대교회의 집사를 사람들이 농담으로 ‘잡사’라고 합니다. 교회의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라서 그렇게 부르기도 하고요 교회에 조금 출석하면 누구나 다 ‘서리 집사’라는 단서가 붙지만 집사로 임명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집사는 그렇게 시시한 일을 하는 저급의 직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귀한 일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서 구원을 받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너무나 소중한 직분입니다.

 

  그래서 집사의 직분을 맡을 사람의 자격도 아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아무나 아무렇게나 하는 일이 아니라 자격을 갖춘 사람이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할 영광스러운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집사란 정중해야 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말아야 하고 술에 인박히지 않아야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의가 바를 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모범이 되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9절과 10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집사의 자격에 대해서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교회의 직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시고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의 일을 하는 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꾼답게 살려고 다짐하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깨끗한 양심을 가진 자  

 

 

  본문 9절에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깨끗한 양심”은 1장 5절의 “선한 양심”과 같은 말입니다.

 

  사람마다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를 판단하는 선악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 그 양심대로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하지만 문제는 그 양심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깨끗한 양심 혹은 선한 양심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습니다.

 

  “양심의 자유”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19조에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했습니다. 사상의 자유와 신념과 가치판단의 자유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백성은 양심의 자유 즉, 사상과 신념과 가치판단의 자유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양심의 자유는 주로 종교의 자유를 의미하는 말이었지만 넓은 의미에서 사상이나 신념이나 가치판단의 자유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양심은 자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종교나 사상을 자기 마음대로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직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양심이라는 말 앞에 깨끗한 양심 혹은 선한 양심이라는 제한을 둔 것입니다.

   

  본문에서 양심이라고 하는 헬라어 단어는 쉬네이데시스(συνείδησις)인데 ‘함께’라는 단어와 ‘아는 것’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함께 아는 것 공동의 지식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나 혼자의 생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같이 공동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도덕적 지식이라는 뜻입니다.

 

  깨끗한 양심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그 하나님의 뜻을 함께 아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사상으로 무장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심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 중심이고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삶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 삶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중심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믿는 것이고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뜻도 무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 중심의 인본주의 사상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의 이익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손해를 보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깨끗한 양심 혹 선한 양심이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바른 양심 깨끗한 양심 선한 양심을 가지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많이 읽으시고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가를 더 알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신지를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깨끗한 양심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 조금 손해를 보는 것 같더라도 내 욕심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9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집사는 깨끗한 양심과 함께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말은 우리가 너무 많이 들어서 잘 아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말도 각자가 가진 양심에 따라서 여러 종류의 믿음이 있습니다.

 

  바울서신에서 말하는 믿음은 대부분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믿음이라고 말할 때 그냥 믿음이라고 말하지만 그 믿음이라는 말 속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믿음이라는 말은 많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 흉악한 죄인임을 믿는 믿음에서부터 그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시고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는 믿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물론 이런 믿음에는 히브리서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로 나가는 자에게 반드시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라는 말 속에는 많은 의미들이 있습니다. 소소한 일들에까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 믿음의 중심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나의 구주로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이 없는 믿음은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얻는다고 해도 구원받는 믿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에 비밀이라는 말이 붙어있습니다.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이 비밀은 미스테리한 비밀 즉 신비한 비밀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공개된 비밀이지만 이상하게 특별한 사람만 그 뜻을 아는 비밀이 미스테리한 비밀 신비한 비밀입니다.

 

  바울은 그가 전하는 복음을 “복음의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6:19)라고 했습니다.

 

  사실 복음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복음 안에 감춰진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야 할 복음에 관한 모든 것을 다 말해줍니다. 그런데 이것을 신비한 비밀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지는 사람도 있고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복음을 들었는데 그 반응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듣고 자신이 흉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죽음이라는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삶이 백팔십도로 바뀌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비웃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것을 눈앞에 두고도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너무나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 이유는 복음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부류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도록 예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있습니다. 또 한 부류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사탄의 종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기쁜 소식을 들어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신비한 비밀은 복음을 믿는 자가 자기 나름대로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즉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된 신비한 체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멋모르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교회에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긴 계기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어쩐지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고 뭔가 바르게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뭔가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심을 느끼게 되는 나만의 비밀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역사를 진행하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친구를 만나게 하든지 결혼을 하게 하든지 직장을 구하게 되든지 학교를 들어가게 하든지 어떤 경우에 내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주십니다.

 

  복음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신비한 비밀입니다.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도 신비한 비밀입니다. 복음을 따라 살 수 있게 된 것도 신비한 비밀입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이 복음을 주일마다 들을 수 있는 것이 신비한 비밀입니다.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 

 

 

  본문 10절에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교회에 다니면서 많은 사험들을 치르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시험을 치는지 안 치는지 잘 모르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수시로 때마다 시험을 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야고보서 1장에 있는 말씀을 보고 시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 1:13)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시험이라고 번역된 말은 시험이 아니라 유혹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함정을 파서 우리를 죄에 빠지도록 유혹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유혹은 사탄이 하는 짓이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로 유혹하시는 분은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시험은 그런 유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 즉 테스트(test)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어떤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테스트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중간중간 이런 테스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이 시험이 시련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교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시련을 주시면서 그 시련을 이김으로 믿음도 인정을 받고 더 큰 믿음을 얻게 하시고 더 중요한 일도 맡기십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것인데 사람들이 세례를 받을 때 1차로 시험을 받습니다. 물론 당회에서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질문도 하고 또 그동안 교회 생활을 살펴보면서 시험을 치르고 합격하면 세례를 줍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그의 환경을 통하여 테스트하시기도 합니다. 주변의 환경이나 사람들을 통하여 세례를 받지 못하도록 시련을 주시면서 테스트를 하십니다.

 

  그 시험에 합격하고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시험이 서울대학교 합격하는 것보다 대기업 입사시험에 합격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시험입니다.

 

  그리고 나서 집사나 권사나 장로 같은 직분을 맡을 때에도 시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테스트도 하시고 또 당회나 노회에서 시험을 치릅니다. 그 직을 담당할 수 있는 믿음을 가졌는가를 시험하고 난 후에 합격자에게 그 직분을 맡깁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이 호기심을 가지고 교회에 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이 주로 들어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선교사들은 미국에서 대학교 이상을 졸업한 중류층 이상의 사람들이 선교사로 왔습니다.

 

  선교사들이 일부러 언덕 위에 좋은 집을 짓고 잘 살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교사 집에 가 보면 그들이 잠자는 침대나 먹는 음식이나 입는 옷이 우리와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선교사들이 잘사는 모습을 보고 잘살아 보려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교회에 다니면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돈이나 음식이나 입을 옷을 받기도 하고 또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고 유학을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오기는 오는데 정말로 믿음이 있어서 오는지 도움을 받으려고 오는지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 오면 무조건 등록을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한 1년 이상을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고 교회의 정식 교인으로 등록을 받았다고 합니다. 1년 동안 그냥 교회만 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일을 지키는가 술 담배를 끊는가 십일조 헌금을 하는가 등을 테스트해보고 합격자에게 교회에 등록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교회에 오자마자 등록을 하라고 하고 등록을 받아줍니다. 그래서 등록하고 교회에 오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등록 교인보다 예배 참석하는 교인이 적습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때 유일하게 등록 교인보다 예배 참석하는 교인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의 장립집사나 장로님도 그냥 안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회나 노회의 시험을 거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도 삶을 통해서 시험하시고 그 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직분자로 세우십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우리 교회에 20년 이상 출석하신 분입니다. 우리 교회 장립집사님들도 10년 이상 우리 교회에 다니신 분들입니다. 저는 그것만 해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다니다가 보면 많은 시험들이 있습니다. 그 시험을 시련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시험뿐만 아니라 사탄의 유혹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 년을 이십 년을 한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이런저런 시험과 시련과 유혹을 이겨낸 귀한 분들입니다.

 

  시험에 합격한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시험하시고 직분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험을 통과하고 받은 귀한 직분에 더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집사의 자격을 통해서 교회의 직분자들이 누구이며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교회의 직분자는 봉사하는 직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귀한 직분입니다. 그런 귀한 직분을 맡은 자는 거기에 걸맞은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하고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격들을 마음에 새기시고 정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잘 감당하는 귀한 직분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