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7.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22)

  본문 : 딤전 3:8-10 

  제목 : 이와 같이 집사들도.

   

 

  “8.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제사 드리는 방법을 소상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교회나 성도들에게는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는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형식대로 잘 드렸지만 그 제사를 왜 드려야 하는지 의미는 잘 모르고 그저 형식적으로 가식적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시대의 예배는 우리 성도들이 순서를 정하고 시간을 정하고 드립니다. 외형적인 것보다는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바르게 알고 진심으로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예배의 형식이나 순서보다는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일에 수종 드는 사람들의 직책이나 그들이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와 같은 직책을 주시고 그들이 하는 일도 뚜렷하게 구별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일하는 직분이나 하는 일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구약시대의 직분자들이 직분을 이용해서 자기의 이익을 챙기고 권리를 행사함으로 돌보아야 할 백성들을 오히려 착취하고 억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새로운 교회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목사나 장로 집사나 권사를 비롯한 여러 직분을 정하고 선출하거나 임명합니다. 시대에 따라서 교회의 형편에 따라서 성도들을 잘 섬길 수 있는 직분자들을 세워서 일하게 합니다.

 

  구약시대 직분자들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권위를 내세워서 군림하지 않고 봉사자가 되어서 성도들을 잘 보호하고 바른길로 인도하는 직분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우리가 목회 서신인 디모데전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기록하여 서신으로 보내준 것입니다.

 

  그 디모데전서 3장에는 교회의 직분자의 자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독과 집사라는 직분을 가진 사람이 갖추어야 할 자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감독과 집사는 원래 직분의 명칭이 아닙니다. ‘감독’이라는 말은 목사나 장로 같은 어떤 직책을 말하기보다는 직책이 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교회의 지도자는 세상의 관리들처럼 권위를 내세우고 백성을 지배하는 사람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살펴주고 보호하고 인도하는 일을 했습니다.

 

  집사라는 말도 오늘날 교회의 집사 직분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집사로 번역된 헬라어는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라는 단어입니다. 디아코노스라는 헬라어에서 디콘(deacons)이라는 영어 단어가 나왔습니다.

 

  이 단어는 집사라는 단어 외에도 봉사자, 섬기는 자, 하인, 일꾼, 사역자 등으로 번역된 단어입니다. 집사라는 직분이 어떤 자세로 일을 하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집사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영광스러운 직분이기는 하지만 군림하고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인처럼 일꾼처럼 섬기고 봉사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 사도행전 6장에서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를 선출하여 임직하였습니다. 그 초대교회 일곱 집사라고 불리는 직분이 우리가 말하는 집사는 아닙니다. 그들을 우리나라 말로 집사라고 번역된 곳은 없습니다.

 

  사도들이 교회를 시작하자 많은 성도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들 중에는 교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말씀 전하고 기도하는 일이 너무나 바쁜데 이런 구제의 일까지 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행6:2)라고 하면서 성도 중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 명을 뽑아서 세웠습니다.

 

  “접대를 일삼는”일을 이 일곱 사람에게 맡겼는데 “접대를 일삼는”이라는 이 말씀이 식탁 봉사라는 뜻이고 구제라는 뜻인데 오늘 본문의 집사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때로는 이 일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너무나 귀한 일이기 때문에 사역자라고 번역되기도 했고 그 하는 일의 성격이 섬기는 일이기 때문에 종, 일꾼, 봉사자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집사는 한없이 영광스러운 직분이지만 봉사하고 섬기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집사의 자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단 집사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주님의 일을 하는 모든 봉사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성도들의 기본자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본문 8절 말씀에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집사들의 자격을 말하면서 가장 먼저 “정중하고”라고 했습니다. 정중하다는 말은 품위가 있고, 신중하고, 단정하고, 진지하고, 존경받을 만하다는 뜻입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집사직의 유래는 식탁 봉사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구제하는 일과 성도들의 헌금을 관리하여 적절하게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당의 관리나 이런저런 사소한 일까지 맡아서 하는 직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일이 허드렛일이나 하는 그런 일은 아닙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귀한 일이고 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소중한 일입니다.

  

  이런 소중한 일을 함에 있어서 예의를 갖추고 정중한 몸과 마음 자세로 일을 하야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례하게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소중한 일을 하는 사람답게 예의가 바른 정중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대접을 받거나 구제나 도움을 받을 때 그런 도움을 주는 사람의 자세가 참 중요합니다. 주는 사람이 어떤 자세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받는 사람의 마음의 느낌이 매우 다릅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그냥 주는데 감사하면서 받으라고 한다면 받는 사람의 마음이 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도움을 받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이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고 봉사를 한다면 받는 사람이 마음이 매우 기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도 예의를 갖추고 정중한 자세로 살아가면 주변의 사람들에게 매우 큰 기쁨을 주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만나는 사람도 기쁘고 우리 자신도 기쁘고 모두가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옛날에는 이런 예의를 중요하게 여기고 예의를 중심으로 교육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배운 사람은 예의가 바른 사람이고 예의가 바른 사람을 보면 좋은 가문의 자손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오늘날은 학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다 예의가 바른 것은 아닙니다. 예의는 학생들이 배우는 과목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고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의 바르게 정직하게 살면 가난해지고 출세도 하지 못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예의가 바르지 않는 사람이 더 출세하고 더 잘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런 예의를 갖추고 바르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귀한 신분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처럼 아무렇게나 살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예의를 다 배울 수는 없지만 중요한 세 가지만 있으면 훨씬 좋은 사람이 될 거라고 합니다. “삼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사와 감사와 봉사를 삼사라고 합니다. 성경 어느 한 곳에서 말씀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 여기저기에 많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인사를 잘하면 훨씬 더 예의 바른 사람이 됩니다. 마음속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사람을 만날 때 인사를 할 줄 모르면 사람들이 예의가 없는 사람으로 오해합니다. 더 자상하고 더 반갑게 인사를 잘하면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인사드리는 것입니다.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께 예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사를 잘하는 것 즉 예배에 성공하는 것이 신앙의 성공입니다. 사람에게 인사를 잘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성공입니다. 

 

  감사를 잘하면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칭찬을 받습니다. 감사를 잘하기 위해서 늘 마음속에 모든 일에 감사하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감사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잇는 통로와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하시고 더 좋은 것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를 서로 이어주는 것도 감사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때 더 가깝고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좋은 사람이 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앞장서서 하고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려는 마음을 가질 때 사람들이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 본문에서 말씀하는 정중한 사람이고 교회의 일꾼으로서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의 일은 이런 예의를 갖춘 사람이 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본문에 집사의 자격을 말하면서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한입으로 두 가지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중하게 품위 있게 사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언어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수준을 보아서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언어생활이 그가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았는가를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투리 쓰는 것을 보아서 그 사람의 고향을 알 수 있고, 그가 자주 쓰는 언어를 통해서 그의 직업이나 배움의 수준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언어가 고상한가 아니면 저속한가를 보고 그 사람의 인격을 판단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언어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어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입으로 두 가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어떤 사람에게도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언어의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신앙고백을 통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고백함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신앙고백이 상황에 따라 바뀌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나 밖에 나가서나 언제나 우리의 신앙고백은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에 나가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처럼 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 있어서도 일구이언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한번 한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말을 하는 사람은 별 의미 없이 한 말이라도 그 말을 듣는 사람은 확실하게 그렇게 믿기 때문에 말을 할 때 잘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말이 한결같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을 신뢰하게 되기 때문에 말은 참 중요합니다.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술에 대해서는 앞서 감독에 대해서 살펴볼 때 잘 살펴보았습니다. 감독은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술을 즐기지 않는 것이나 술에 취하지 않는 것이나 술에 인박히지 않는 것은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술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기쁨이나 몸의 건강을 위해서 주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술에 빠짐으로 인해서 오히려 건강도 해치고 이런저런 죄를 짓게 되는 악한 것으로 변하고 맙니다.

 

  본문에서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라는 말은 술 마시는 일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며 과음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술에 중독되지 말아야 한다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술을 즐기고 술 마시는 일에 빠져 중독이 된 사람은 술에 취해서 사는 날이 많아집니다. 술에 취해서 제일 잘못하기 쉬운 것이 언어입니다. 술 취한 사람은 횡설수설하고 말의 실수를 많이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술을 마시면 한두 잔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취할 때까지 먹어야 끝납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 대부분은 술에 어느 정도 중독이 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술을 마시려고 하기 때문에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집사는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더러운 이”는 부끄러운 이익이라는 뜻입니다. 부정한 돈, 부당하게 얻은 이익이라는 뜻이며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행위를 말합니다.

 

  감독의 자격을 말할 때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돈을 사랑하기는 하되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력을 해서 정당하게 돈을 벌어야지 수고하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는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기의 지혜라는 말이 있는데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투자하는 것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씨를 뿌리는 대로, 수고한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대로 살면 이 세상의 삶은 망하지 않습니다. 이 법칙을 무시하고 투기를 하고 일확천금을 노리다가 번번이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법칙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완전히 공짜입니다. 행한 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행함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합니다. 구원은 노력해서 행위를 통해서 얻으려 하고 세상 복은 기도해서 은혜로 받으려고 합니다. 구원은 은혜로 세상의 부와 재물은 노력해서 땀을 흘린 대로 얻는 것입니다.

 

  세상은 노력 없이 부당하게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부정부패로 돈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질서가 무너지고 부정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돈 때문에 많은 다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돈을 정당하게 사용하지 않고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집사는 특별히 구제와 재정을 취급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물질관이 바른 사람이어야 합니다. 돈을 효율적으로 잘 써서 일을 잘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돈을 욕심내서 부당한 방법으로 자기 이익을 삼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교회의 직분자가 특별히 봉사의 직분을 맡은 사람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집사 직분을 맡은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