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4.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종합1)

  본문 : 딤후 1:7-8

  제목 :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7.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호주에 이민 간 어떤 교포가 고국에 왔다가 노란 개나리가 너무 예뻐서 가지를 꺾어다가 호주에 있는 집 앞마당에다가 심었다고 합니다. 호주에는 늘 따뜻한 날씨고 공기도 맑아서 꽃이 잘 피겠지 했는데 잎은 무성하고 나무는 잘 자라는데 꽃은 피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첫해라서 그렇겠거니 하고 두 해 새해를 기다렸는데도 꽃은 피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개나리는 한국처럼 혹한의 겨울을 지나지 않고는 꽃이 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지나야만 꽃이 피는 것을 전문용어로 춘화현상’(春化現象, Vernalization)이라 하는데, 튤립, 히아신스, 백합, 라일락, 철쭉, 진달래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합니다. 꽃뿐만 아니라 보리농사도 봄에 심어서 거두는 봄보리에 비해서 가을에 심어서 추운 겨울을 지낸 보리가 수확도 훨씬 많고 맛도 좋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뜻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평안하게 산 사람보다 어려운 가정에 태어나서 이런저런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 비교적 더 책임감이 있고 헌신적인 삶을 삽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문제가 많은 것은 부모님들이 자녀들만큼은 좀 더 평안하게 키우려고 하고 온실에서 자란 식물처럼 곱게 자라게 하다가 보니까 오히려 장성해서 더 어려움을 당합니다.

 

 참을성도 없고 힘든 일도 하기 싫어하고 조금도 남이 하는 충고를 듣기 싫어합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거나 헌신하는 일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난이 많을 때는 오히려 교회가 성장하고 성도들도 신앙생활을 더 잘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시비하는 사람 없이 평안하게 신앙생활 할 때 오히려 더 나태해지고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신앙생활 하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조상신을 섬기다가 예수님을 믿는 가정이 되는 것은 제사 문제 때문에 참 어려웠습니다. 특별히 저희처럼 종갓집에서는 제사를 안 드리고 교회에 다니는 것은 문중에서 쫓겨나야 하는 고통이 있어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 시골교회에서 전도하면 여 청년들이 비교적 전도가 잘되어서 교회를 나왔는데 가정에서 핍박이 참 심했습니다. 교회에 찾아와서 고함을 지르고 데리고 가는 부모도 있었고 심지어 교회에 가지 못하게 머리를 깎아버리는 부모도 있었습니다.

 

 그런 고난을 당하면 중도에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고난을 이긴 사람들은 더 신앙생활을 잘합니다. 쉽게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지만 그렇게 어렵게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 신앙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의 주제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입니다. 오늘은 1장을 중심으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의미를 살펴볼 것입니다. 복음에는 이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살펴보시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 복음을 믿는 믿음만은 끝까지 지키고 더 많은 믿음의 열매들을 맺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과 고난은 함께 오는 것입니다.

 

 본문 8절 말씀에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복음과 함께라는 말은 복음을 위하여라는 말입니다. 복음을 믿고 따르기 위해서는 고난이 따른다는 말씀이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도 고난이 따른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복음과 고난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고 좋은 소식이고 우리에게 엄청난 복을 주는 것인데 왜 거기에 고난을 함께 두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복음을 믿고 따르면 좋은 일만 있어야 하고 복음을 전하고 다니면 좋은 일만 있어야 하는데 그런 좋은 일에 왜 고난이 따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도 이 고난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내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방법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잘 이해가 되는지 한 사람도 저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하니까 그냥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고 살겠습니까. 잘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니까 따르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인간을 창조하신 후 첫 명령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범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2:16-17)라고 했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 첫 명령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는 것이고 그 명령을 어기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육신의 죽음은 영혼의 죽음과 연결되고 영혼의 죽음은 영원한 지옥형벌로 이어집니다.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은 죽음으로 가는 인간의 죄악상에 대해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고 구약의 제사 제도는 죄를 범한 인간이 제물의 짐승처럼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인간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깨닫게 하신 것이고 그 깨달음을 통하여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한 구원의 의미를 알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도 결국은 인간이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가식적이었는가를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 대신 우리가 죽음의 형벌을 받을 대신 죽으신 죽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해 승천하심을 통해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지만 죽음 이후의 부활과 천국에서의 영생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2) 우리가 복음을 믿고 따르는 것도 고난을 통해서입니다.

 복음을 믿고 따르는 것도 고난이 따른다는 의미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이 고난의 길임을 말씀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씀은 고난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수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을 가르치시면서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6:20)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지금 주린 자가 복이 있고” “지금 우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요”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부요하고 지금 배부르고 지금 웃는 자들은 고난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원한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리게 될 것이고 지금 웃는 자는 애통하며 울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고난을 당하여 가난하고 주리고 우는 자들은 그 고난을 통하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게 됩니다. 그 믿음으로 인해 영원한 하나님 나라 천국을 차지하게 되고 거기서 영원토록 배부르고 웃으면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고 여러 고난을 통과한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더 잘하게 됩니다. 비교적 부자로 잘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만 행복하게 살려고 하기 때문에 믿음을 천국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3) 복음을 전하는 일도 고난을 통해서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로 안내하는 사람은 엄청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로 인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은 자신에게 복음을 전해준 사람에게 평생 감사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렇게 좋은 복음을 전해준 사람을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별로 좋지도 않은 것 가르쳐줘서 고생만 하게 만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한 사람도 이 세상에서 복을 좀 받고 잘 되면 좋을 것인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핀잔을 받습니다. 거짓말로 사람들 유혹해서 끌고 가 고생만 시킨다고 비난합니다.

 

 목회자들도 복음을 설교하는 목회자는 별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그런 교회에는 사람들도 잘 오지 않습니다. 세상 축복이나 가르치고 세상의 윤리 도덕이나 가르치는 목회자를 좋아하고 사람도 많이 옵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면서도 전하는 복음이 진짜 복음입니다.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장삿속으로 직업으로 목회를 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가르칩니다.

 

  사도바울이 배운 것이 없어서 똑똑하지 못해서 바보처럼 평생 고난을 당하며 감옥에 가고 순교까지 각오하고 복음을 전한 것일까요? 그가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박해한다고 해도 전혀 상관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8절 상반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이 그 효력을 발생하려면 그렇게 좋은 복음을 전한 결과가 사람들 보기에 좀 좋아 보여야 할 것인데 붙잡혀 가서 감옥에나 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비웃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뒤를 이어서 복음을 전해야 할 디모데의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디모데에게 이런 자신의 모습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아직 복음의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하는 것임을 알라고 했습니다.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까지 끝까지 이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가짜가 아니고 목숨을 바쳐서 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 자신은 이 복음을 위하여 복음 선포자가 되고 사도가 되고 교사가 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이 무엇인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12절 말씀에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의탁한 자신의 생명 죄에서 구원이 너무나 확실하고 예수님께서 능히 그 약속하신 것들을 확실히 지킬 수 있으신 분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복음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유일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자기들만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이 있고 자기들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고 자기들만 인간이 바르게 살 수 있는 계명과 율법을 가지고 있고 자기들만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가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 시골 변두리 갈릴리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라는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의 이들이라고 하고 자기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라고 하고 다니니까 정말로 창피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신성 모독죄를 뒤집어씌워서 로마 총독에게 내주고 십자가에 처형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인데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승천하셨다고 외치고 다닙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하나님이시고 메시야로 오신 분이시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만 구원을 얻고 나머지는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지옥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외치고 다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그런 말 하고 다니지 못하게 하고 잡아다가 죽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나 승천을 믿고 따르지 못하도록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방해했습니다.

 

 중세시대 타락한 교회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끄러워했습니다.

 자신들이 선한 일도 하고 바르게 잘 사는데 회개니 십자가니 이런 것은 그런 자신들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닌 도덕적인 교훈을 더 좋아하고 심지어 예수님보다 예수님을 낳아주신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더 숭배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보다 자신들의 선행이나 고행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당을 성당이나 성전처럼 거창하게 짓고 목사의 훌륭함이나 성도들의 선행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교회의 중심에 마땅히 있어야 할 십자가의 복음은 없습니다.

 

 죄 회개 십자가 고난 구원 천국 영생 이런 단어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부끄러워합니다. 그와 반대로 선행 잘남 세상의 축복 성공 이런 단어들을 좋아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교회가 아닌 자기 자랑하는 종교단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9:26)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할 때 그 사람을 부끄러워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8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앞 7절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다가 고난을 당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할 때 생각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복음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고 복음과 함께 고난도 주신 것은 그 고난을 두려워할 정도로 약한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엄청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담대하게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신앙 생활하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날 것입니다. 내가 뭘 잘못 믿고 있는 것일까,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진짜 천국에 가는 길이고 영생을 얻는 길일까? 별별 생각이 다 드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능력을 주셔서 능히 이길 수 있게 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이 오히려 우리에게 믿음을 연단시키는 힘을 주셔서 믿음이 더 강하게 하시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복음에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엄청난 능력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말씀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16)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엄청나게 기쁜 소식이지만 이 복음은 늘 고난과 함께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스럽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복음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할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은 고난이 따르지만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가 받는 것은 이런 고난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영광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