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7.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6)

  본문 : 딤후 1:12-14

  제목 :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2.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3.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디모데후서는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와 함께 목회 서신으로 불립니다. 디모데전후서는 사도바울이 에베소교회에서 목회하는 디모데에게 교회를 지도하는 목회자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의 핵심은 다른 교훈 즉 잘못된 교훈이나 거짓 교훈을 전하지 말고 올바른 교훈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올바른 교훈은 작년도 우리 교회 표어와 같이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르라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의 핵심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입니다. 올바른 교훈의 핵심이 복음이듯이 진리의 말씀 역시 복음을 말합니다. 복음을 바로 알고 복음을 옳게 분별하고 그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복음을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목회자의 가장 핵심적인 임무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올바른 목회자가 전하고 가르치는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죄에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에 들어와서도 계속해서 복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시면서 왜 복음이 고난을 받아도 죽임을 당해도 포기할 수 없는 귀한 것인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가 아니라 영원 전부터 예정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서 예수님이 우리 구주 그리스도로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내셨고 구원이 무엇인지 드러내서 보여주셨다고 했습니다. 거룩한 소명으로 부르심이라고 했고, 나타나심으로 나타내시고 드러내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복음을 하나님께서도 지키시고 우리도 지키고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지키라는 말씀에서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를 제목으로 복음을 왜 지켜야 하는지 어떻게 지키는 것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능히 지키실 줄 확신함이라

 

  본문 12절에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를 자신이 믿는 예수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의탁한 것을 변함없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능히 지키실 수 있는 분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세계 여러 나라로 다니면서 많은 고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굶고 헐벗고 이런저런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동족들이나 이방인들에게 매를 맞고 던지는 돌에 맞고 잡혀서 감옥에 가고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로마 감옥에 잡혀 와서 이제 순교 당할 날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이 당한 고난을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라고 했는데 앞서서 말씀한 복음의 위대함으로 말미암아 라는 말입니다. 복음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를 죄악에서 사망에서 구원해 주시는 것인데 그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예정한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행위와 관계없이 우리의 사람 됨에 관계없이 우리가 어떤 의무를 다함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불러주시고 구원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구원은 이 세상의 고통에서 한두 번 건져주시는 그런 구원이 아니라 사망을 폐하시고 육신의 생명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도록 부활하게 해 주시고 다시는 그런 죽음이나 이별이나 고통이 없는 완전한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구원을 주는 것이 복음인데 고난을 좀 당한다고 이렇게 귀한 복음을 떠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시동안 조금 평안하겠다고 영원한 생명 영원한 평안함을 버릴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이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요? 조금만 어려움이 있으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조금만 불이익을 당할 것 같으면 믿음도 버리고 세상의 작은 쾌락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이런 얄팍한 믿음을 보면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만큼 예수님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직접 배운 열두제자들도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예수님께 직접 배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때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었지만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복음에 대해서 직접 예수님께 배운 사람입니다. 그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라는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잘 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을 잘 알고 그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능력을 가졌는가를 잘 알고 그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엄청난 것을 얻게 되는지를 너무나 잘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더 잘 알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어떻게 충성하라 어떻게 살라고 하는 것보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는지 우리가 믿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고난이 와도 어떤 불이익을 당해도 믿음을 지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지킨다는 말은 남들이 빼앗아가지 않도록 없어지지 않도록 변질되지 않도록 잘 보관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의탁한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관해서 두 가지의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그분에게 맡긴 것”(현대인 성경)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맡긴 것은 영원한 생명으로의 구원입니다. 내 육신의 생명 영원한 생명을 다 예수님께 의탁하고 맡겼다는 것입니다.

 

  나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예수님께 믿고 맡겼는데 그 구원을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완성해 줄 그날까지 능히 변함없이 지켜주실 줄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의 견해는 내가 맡은 것”(공동번역 새번역)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께 맡긴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에게 맡긴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맡기셨는데 그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지켜주실 것을 확신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번역이나 해석도 그 사람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그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전자의 해석을 바른 해석으로 보고 인간의 행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후자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맡은 것으로 번역한 공동 번역은 행위를 중요시하는 천주교와 공동으로 한 번역본이기 때문이고 새번역 역시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번역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들은 당연히 전자 즉 우리가 예수님께 의탁한 것이라는 해석을 따릅니다. 우리가 받은 사명보다는 우리가 믿는 믿음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확실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나 행위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의탁한 사람들이 받는 구원은 확실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책임질 능력이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맡긴 우리의 구원은 변하지도 없어지지도 않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 확실합니다.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본문 13절에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구원은 예수님께서 확실하게 지켜주시고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도 지킬 것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지켜주시고 완성하실 것이지만 우리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라고 했습니다.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에서 바른 말진리의 말씀”, “건전한 말씀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사도바울이 1장에서부터 계속하고 있는 복음의 진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복음을 따르는 바른 교훈은 무엇인지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말씀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키라는 말은 앞 절에서 한 말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뜻을 가진 말입니다. 앞 절에서 예수님께서 지키시는 것은 복음을 믿는 믿음에 관한 약속이 변질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지킨다는 말은 가진다 소유한다는 말입니다. 그 믿음을 내가 확실히 소유하고 그 믿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따라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고 그 믿음을 잃지 않도록 지키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복음을 귀중하게 여기고 복음을 전파하기를 위해서 온갖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복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살라는 것입니다.

 

  본받아 지키고 사는 삶의 원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라고 했습니다. 여기 믿음과 사랑은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받을 형벌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음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죄에서 사망에서 구원하여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행위와 반대되는 믿음을 말합니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선행이나 고행들은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은 공의와 반대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죄를 범한 사람은 반드시 그 형벌을 받아서 죽임을 당하고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 공의에 따른 형벌을 막아주시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사랑 엄청난 것을 은혜로 베푸시는 사랑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키고 살아야 할 것은, 즉 받아서 간직하고 소유하고 살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과 사랑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시는 구원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본문 14절에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라고 했습니다.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은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하고 가르치라고 부탁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 받을 영원한 천국의 복음을 말합니다.

 

  여기 지킨다는 말은 12절에서 예수님께서 구원의 약속을 지키신다고 할 때의 지킨다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면서도 본 절에서 이 단어는 망보고 파수하고 지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는 말입니다.

 

  우리도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이 변질 되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이단들이나 거짓 선생들이 거짓 복음을 가지고 와서 우리가 믿는 이 복음을 다른 복음으로 변질시키지 못하도록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했는데 여기 아름다운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에게만 들어가십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에게 오셔서 하시는 일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고 믿게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잘 알게 하시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도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하시는 것이 성령님의 제일 큰 사역입니다.

 

  성령님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이런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과 반대되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성령님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의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일으킨다고 해서 다 성령님의 역사로 보면 안 됩니다.

 

  성령님은 오직 우리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알고 믿게 해 주시는 그 믿음이 변질 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지킬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좀 복잡한 것 같지만 간단하게 믿음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 약속의 말씀을 지켜서 우리가 구원을 받도록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믿음을 소유하고 빼앗기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탄의 지시를 받아서 복음을 변질시키는 세력들에게서 우리가 믿고 따른 복음이 변질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믿음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복음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