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9.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46)

  본문 : 딤전 6:13-14

  제목 :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3.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제가 30년 가까이 설교를 하고 있지만 때로는 설교에 대해서 회의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 정도 설교했으면 성도들의 삶이 바뀌고 세상이 바뀔 만한데 성도들도 세상도 꿈쩍하지 않고 조금도 변화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 생각해 봅니다. 과연 내가 올바른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일까? 내 설교에 잘못된 것은 없을까? 혹시 내가 뭘 잘 모르고 괜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신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설교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바른 설교를 하기 위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 교회에서 설교를 듣지 않아서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그저 형식적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말씀이고 주일이 되면 그냥 들어야 하는 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와 내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실천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이론적으로만 알고 돌아서서는 잊어버리는 것들이었습니다.

 

 

  내가 목사가 되면 그런 형식적인 설교가 아니라 들으나 마나 한 설교가 아니라 정말로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전하고 성도들도 제 설교를 듣고 영혼이 거듭나고 삶이 변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진짜 설교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구를 하고 지금도 바른 설교를 위해서 책들을 보고 연구하고 설교의 역사를 점검하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제가 꿈꿔왔던 수천수만 명을 변화시키는 설교는 하지 못했지만 성경의 핵심을 바르게 선포하는 설교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교회가 번영신학에 빠지면서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살고 바르게 사는 것이 성경의 핵심처럼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저처럼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인기를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성경을 살펴보고 연구를 해 보아도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천국 복음입니다. 인간은 구원을 받아야만 하는 죄인들이고 그 죄에서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성경을 통하여 설교를 통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소중한 진리입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온 청교도들의 신앙을 물려받았습니다. 그 신앙도 많이 변질 되었지만 원래 청교도 설교자가 전하는 설교의 주제 또는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또는 그리스도에게로 나가는 길을 열어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리처드 십스(Richard Sibbes, 1577~1635)라는 청교도 설교자는 그리스도가 반드시 설교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 또는 그리스도에게로 나가는 것 이외에 어떤 것도 설교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구약의 율법을 설교할 때도 율법 자체를 가르치는 것으로 멈추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 율법을 통하여 그리스도에게로 나가는 데까지 이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견해를 소중하게 여기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비록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최선의 설교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저를 나타내고 자랑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의 차례입니다.

 

 

  이렇게 바른 설교를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귀한 복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귀한 기회를 주셨는데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복음이나 구원을 등한히 여긴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라고 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인데 그때 예수님 앞에서 흠도 없이 책망받을 것도 없이 확실하게 이 명령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지금 나 자신에게 하신 말씀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명하노니

 

 

  본문 13절에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라고 했습니다.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라고 했는데 이 명령이 누구의 명령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말씀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이 명령이 곧 하나님의 명령이며 예수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씀은 디모데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자신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지금 나에게도 하신 말씀입니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생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생명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시고 하시는 분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우연히 이 세상에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서 스스로 노력해서 살다가 운이 다하면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명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것이 나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정말로 나쁜 사람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생명이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알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보람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여기 생명은 비단 육신의 생명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가를 결정하십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가졌지만 지옥에서의 삶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생명이 아니라 형벌이고 고통스러운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에서 복락을 누릴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의 짧은 삶에 대해서 이 세상의 연약한 육신의 생명에 대해서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영원한 생명을 미리 주셨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을 모든 생명의 기원이 되시고 모든 위험과 박해에서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디모데를 위시한 복음의 사역자들에게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죽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디모데에게 생명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 믿음을 부여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10:28)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에 의해서 육신의 생명을 잃기도 합니다. 또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심한 모욕도 받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의로운 일을 하다가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은 별것 아닙니다. 누구나가 다 세월이 지나면 없어지고 썩어지고 말 연약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연약한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이 명령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육신의 생명을 바치신 분이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육신의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하고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빌라도는 로마 총독으로서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수도 있고 방면할 수도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빌라도 앞에서 당당하게 증언하셨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8장에는 그 역사적인 심문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18:33)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 대답하시기를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18:37)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왕이라고 한다는 죄목으로 예수님을 고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당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지만 내가 왕인 것은 분명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나라의 영원한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 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이미 정해진 것이며 예수님께 스스로 이 길을 택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죽는 길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길이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도 육신의 생명은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생명입니다.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입니다. 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진리의 말씀인 십자가의 복음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이 명령을 지키라

 

 

  본문 1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타나신다는 말은 다시 돌아오신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여기 나타나신다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 약속하시기를 이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냥 예수님이라고 잘 부르지 않습니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혹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호칭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구주가 되시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어떤 칭호를 가지고 부르든지 별 상관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호칭 속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부르는 사람이라도 어떤 사람은 그 구원을 병에서 가난에서 세상의 고통에서 구원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예수님을 그런 예수님으로 믿는 사람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복음도 돈이 있어야 전할 수 있다는 말로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번영신학의 영향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기는 하되 그런 세상에서 물질의 복을 받게 해주시는 분으로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라고 믿는 것은 우리를 죄에서 죽음에서의 구원하실 분으로 믿는다는 말입니다. 죄로 인해서 영원한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거기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예수님이 구원자이시되 하나님께서 인간이 타락할 때부터 그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야를 보내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하신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 오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엉뚱하게 인간을 구원자로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단의 교주를 구원자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낸 메시야가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자칭 구원자라고 선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이시며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 즉 그리스도가 되셔야만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도 우리의 구주로 그리스도로 오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심판자로 오시지만 우리에게는 구원자로 오십니다. 심판자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지 않기를 바라고 아예 그런 약속이 없는 것으로 생각해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구주로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셔서 예수님을 구주로 그리스도로 믿고 살던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심판하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정죄하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주시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다시 오실 때까지 흠도 없이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여기 흠이 없다는 것은 결점이 없는 것을 말하며 허물이 없는 순수하고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책망받을 것이 없다는 말은 나무랄 데 없이 비난을 받는 일이 없이 모든 수치로부터 깨끗한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모든 일에 흠도 없고 책망받을 것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정말로 힘든 삶을 살아야 하고 최선을 다하여 산다고 해도 그런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인이라고 한다면 모든 일에 있어서 흠이 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책망받을 일이 없도록 노력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구원의 조건이거나 모든 일에 이런 삶을 살도록 명령을 받았다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모든 면에 흠이 없고 책망받을 일을 하지 말라는 명령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것은 바로 앞 11~12절에 기록된 명령을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라는 명령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서 영생을 취하라는 명령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해야 할 일은 이 세상 사람들처럼 부자가 되려는 열망 때문에 시험과 올무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져서 파멸과 멸망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것인데 그것을 알면서도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 믿음에서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취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이 세상의 것들이 아닙니다. 얼마 살지도 못할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가 아닙니다. 영원한 천국을 향해서 살아야 하고 그 영생을 취하는 일에 반드시 유일하게 필요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싸우는 일에 조금도 흠이 있거나 책망받을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일은 세상의 그 어느 것도 핑곗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책임을 전가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바꿀 수 없고 그 어떤 다른 길도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환경도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그 어떤 일이라고 할지라도 이 믿음을 위해서 싸우라는 명령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꼭 지켜야 할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명령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시면 우리를 죄에서 멸망에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셔서 영원한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명령을 꼭 지키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지키는 일에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일에 흠도 없이 책망받을 것도 없이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고통이 온다고 해도 우리의 육신의 생명을 잃는다고 해도 이 믿음을 지키고 믿음 생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싸워 승리하시는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