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15. 추수감사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20년 추수감사)

  본문 : 100:1-5

  제목 : 즐거운 찬송과 감사의 예배를 드리자.

 

 

  “1.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신앙생활 하면서 요즘처럼 교회에 다니는 것이 비참하게 여겨질 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가 무슨 악을 행하는 집단처럼 손가락질하고 교회가 자기들의 것을 빼앗아가는 악한 집단처럼 비난합니다.

 

 이런 비난을 받는 이유는 우리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서 멸망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어야 하는데 그런 소중한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세상 종교들처럼 세상에서 복 받아서 자신이나 잘사는 법을 가르쳐서 이기주의자들이나 다니는 곳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교회의 지도자 중에는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삼아서 돈이나 챙기려는 목적으로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 때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자랑스러울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앞장서서 좋은 일 보람된 일 많이 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공부도 많이 해서 무지에서 벗어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서 훌륭한 인물도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대통령을 위시해서 정치인 중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과학자나 사업가나 복지를 하는 사회사업가들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교회가 기독교인들이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고아원 같은 복지시설도 세워서 배우지 못해서 가난으로 인해서 삶의 희망을 잃고 사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물론 그런 사랑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더 큰 소망을 주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지게 해주었습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되니까 우리가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까지 비난을 받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막기 위한다는 명목이긴 하지만 우리가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그냥 하거나 말거나 한 시시한 일로 평가를 받고 말았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까지 예배드리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로 인해서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비대면 예배라는 이상한 예배를 드리는 데도 별로 마음 아파하지 않습니다. 이참에 아예 믿음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까지 생겼습니다.

 

 

  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우리 교회가 예배 회복 주일로 정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예배에 소홀해진 우리의 마음을 다잡고 다시 예배가 무엇인지를 점검하고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감사는 예배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 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이렇게 교회당에 나와서 하나님께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시편 100편은 감사의 시라는 제목이 붙은 시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귀국하여서 성전을 다시 세우고 감사 절기에 예배를 드리면서 부른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도 그동안 코로나 19로 인해서 하나님께 마음껏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마음껏 찬송을 부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즐거운 찬송과 감사의 예배를 드리자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1년 동안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특별한 감사를 드리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에 대하여 감사드리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란 무엇인가?

  예배란 즐거운 찬송, 기쁨으로 섬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본문 1~2절 말씀에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4절에는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에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배드려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찬송을”, “기쁨으로”, “노래하면서”, “감사함으로”, “찬송함으로”,“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즐겁게 기쁘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 땅이여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즐거운 찬송을 부르라는 말은 원래 기쁨으로 소리쳐 외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은 너무나 기쁜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서면 큰 소리로 기쁨으로 소리를 지르며 그 하나님의 사랑을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 이런 기쁨이 없는 것일까요? 왜 예배가 이렇게 힘이 없고 기쁨이 없는 것일까요? 왜 이렇게 마지못해서 억지로 나오는 것처럼 힘들까요? 왜 예배시간이 되면 졸리고 딴생각이 나고 집중하지 못할까요?

 

 

  물론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감격이 없어지고 또 사는 것이 피곤해서 그렇다고 이해는 합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예배를 대하는 마음 자세를 바르게 다잡아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며 너무나 소중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온 마음을 다하여 목소리를 높여서 하나님께 기쁨으로 외쳐야 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서 그 고마우신 은혜를 목소리 높여 찬송해야 합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라고 했습니다.

  섬긴다는 말은 봉사하다, 시중들다, 경배하다.라는 뜻이 같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이 예배드리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이라면 여기 섬긴다는 말은 하나님을 경배한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즐거운 찬송을 부르면서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와서 봉사의 일을 할 때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충분한 가치를 지닌 일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의 문이나 그의 궁정은 하나님의 성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갈 때 감사한 마음으로 찬송하면서 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당에 나아올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송하는 마음으로 나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마음으로 불평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나아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높여서 칭송하기 위해서 나아와야 하는 것이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쉽게 교회당에 들어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아주 특별한 사람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 예배드릴 자로 선택을 받은 사람만 교회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죄가 하나도 없이 깨끗한 사람만 여기에 와서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만 여기에 와서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만 여기에 와서 예배드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 자격을 다 갖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드리는 이 자리에 나아오면서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소리를 지르며 찬송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복을 받은 우리가 그 복을 값없이 은혜로 주신 그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예배드리는 것을 비웃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 수 없기 때문에 배가 아파서 예배를 비웃습니다. 와서 예배드리면 되지 왜 불평하느냐고 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들이 올 수 없는 자리입니다. 우리만 올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자리입니다.

 

 

  이런 자격을 갖춘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예배를 소홀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아주 나쁜 일이며 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것은 세상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나아와서 하나님이 특별히 보고 계시는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쁨으로 감격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왜 즐거운 찬송과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3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쁨으로 나아가고 감사찬송을 드려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고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기르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런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남의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편이고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편에서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 세상을 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전능하시고 아무리 많은 일을 하시는 분이라고 해도 나와 관계가 없거나 나와 적대관계가 된다고 하면 우리는 망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신약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배로 섬기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말씀으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우리 인간을 특별히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소유하신 분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고 우리도 특별하게 창조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면 그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할 때 부모님을 우리가 선택하지 않습니다. 부모님께서 우리를 낳아주셨다는 것 하나로 무조건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다른 부모님보다 좀 부족하고 나에게 잘해주지 못하는 부모님이라고 해도 그런 이유로 부모님을 거부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거부하고 효도하지 않은 사람도 많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섬기지 않고 따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기르시는 분이십니다. 왕이 백성을 다스리는 것처럼 목자가 양을 기르시는 것처럼 우리를 다스리고 기르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백성이 왕을 섬기는 것이 당연하듯이 양이 목자의 말을 듣고 따르는 것이 당연하듯이 우리 인간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데 그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사니까 당연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하나님을 따르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너무나 다행한 것은 우리는 그 사실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며 우리의 목자가 되심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왜 즐거운 찬송과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여호와는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성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에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 시편에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말씀이 여러 번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이유가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선하시다는 말은 은혜로우시다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신 분이십니다. 악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시고 선한 마음으로 우리를 대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우리를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대우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죄악 된 모습을 보시기보다는 좋은 면을 봐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웬만큼 잘못해서는 벌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더 잘못되면 안 되기 때문에 때로는 매를 들기도 하시지만 그런 징계도 우리를 바른길로 가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선악을 구별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기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에게는 조금도 나누어주지 않거나 아주 작은 것만 주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 남의 것을 착취하고 빼앗는 사람은 아주 악한 사람입니다.

  자기는 작은 것을 가지고 남에게 큰 것을 주는 사람은 선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것을 희생하여 남에게 많은 것을 베푸는 사람은 아주 선한 사람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해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희생시키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선하신 분이십니다. 이런 선함은 이 세상에서나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선한 일입니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라고 했습니다.

  인자는 공의와 반대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원칙을 정하고 법을 만드시고 그 법에 따라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 법을 어기는 사람은 반드시 엄하게 벌을 내리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공의의 하나님께 인자하심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인자하심이란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 인자하심 즉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의 죄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주심으로 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지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성실하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어주신 약속이 거짓이 없으며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 성실하심을 진리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진리입니다. 영원토록 변하지 않고 영원토록 그 효력이 지속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만든 철학이나 종교는 아무리 좋아 보여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연약한 인간이 수시로 변하는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속여서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거짓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천지가 없어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새 언약인 십자가의 복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이신칭의의 진리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약속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성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고 영원히 변함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일 년에 한 번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특별한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드리는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노래하면서 감사하면서 찬송하면서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성실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