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13.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22)

  본문 : 딤후 3:5

  제목 :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오늘날은 언어유희 즉 말장난이 판을 치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말을 얼마나 재미있게 그럴듯하게 하느냐에 따라서 인기가 올라가고 존경을 받습니다. 정치인이나 사업가나 종교인이나 말만 잘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 듣고 평가하기 때문에 말만 앞세웁니다. 그래서 말의 진실이나 결과나 실천 따위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꼭 좋은 일인지도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골라서 하면 됩니다.

 

  말을 재미있게 하고 재치있게 하고 사람의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일은 참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말이 말로만 끝난다는 것입니다. 말은 재미있게 그럴듯하게 하지만 말뿐이고 실지로 그런 일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도 말은 번드레하게 하는데 삶은 그렇게 따르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또는 그렇게 사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겉보기만 그럴듯하게 보일 뿐이고 실지로는 그런 삶을 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말세가 깊어지면 말세의 끝이 오면 사람들이 악해져서 신앙생활 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중에 마지막이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신앙고백이나 삶이 같아야 하는데 신앙으로 사는 삶이 겉보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진심이 담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라고 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가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위대한 믿음에는 그 믿음을 따라 사는 진실한 고백과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오늘 본문 말씀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라고 했습니다. 겉모양은 경건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경건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경건의 진실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1) 경건이란?

  경건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경건은 헬라어로 유세베이아입니다. 이 단어는 좋은”, “옳은이라는 말과 예배하다”, “경배하다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올바른 예배를 드리다.”, “좋은 예배를 드리다.”가 경건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좀 넓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임을 알고 받들어서 섬기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경건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이 복음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디모데전서 4장에서 배운 경건에 대한 말씀을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7-8)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경건을 육체의 연단과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고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라고 했습니다. 여기 육체의 연단은 운동을 하거나 걷기를 하거나 음식을 가려먹거나 해서 육신의 건강을 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그런 육체의 운동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육체의 연단을 말합니다. 새벽기도를 하고, 금식기도를 하고, 고행을 하고, 선행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는 약간의 유익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이런 신앙의 훈련들이 정말로 유익한 것들이라고 생각되는데 사도바울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고 했습니다.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건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말합니다. 진리의 말씀 즉 성경을 잘 살펴본 사람은 성경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인데 그것을 모르고 딴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경건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 믿음을 따라 사는 삶을 말합니다.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2)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과 그 믿음을 따라 사는 삶을 말한다고 하면 모양은 믿음을 나타내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다닌다든지 예배시간에 참석한다든지 기도하고 성경 읽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신앙생활을 위한 종교적인 여러 가지 행동들을 말합니다.

 

  이런 모양 즉 외형적인 형식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서 행할 수 없는 것들을 꼭 실천하도록 형식을 정해놓고 실천하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주일은 꼭 교회에 간다. 하루 한 번은 꼭 기도하고 성경은 적어도 한 장은 읽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일은 절대 하지 않고 하루 한 번이라도 선한 일을 실천한다.

 

  이런 선한 모습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보여주고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런 일들이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것에만 그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그 믿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삶 자체를 좋아하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외형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당시에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 애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했던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일, 안식일을 지키는 일, 모든 수입에 십일조를 바치는 일, 일주일에 하루씩 금식을 하고,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등 모든 일에 충실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이 경건의 모양만 있을 뿐임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23:25-26)

 

  여기 외식하는이라는 말이 위선자를 말하고 경건의 모양만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깨끗한 척 선한 척하지만 그 속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속을 더 중요하게 보시지만 그 속에는 탐욕이나 방탕함을 그대로 두고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도 이런 죄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타락한 습성이 그대로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런 연약한 우리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이런 외형적인 일에 열심을 내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성도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일수록 이런 열심들이 많습니다. 예배드리는 시간도 많고 특별 기도회도 많고 성경공부도 많이 하고 이런저런 전도프로그램도 많고 이런저런 헌금들도 참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많은 일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이 없이 겉으로만 그런 일을 했다면 역시 예수님께 책망받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경건의 모양을 가지고 있으면서 참된 경건 즉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의로움이나 선행 때문에 믿음에 이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매사에 정의를 부르짖습니다. 남이 잘못하는 것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내로남불이 많습니다.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자신이 하면 의로운 것이고 남이 하면 불의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은 남을 도와주고 착한 일에 열심을 냅니다. 남을 도와주지 않고 남을 대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비난합니다. 용돈 몇 푼 주고 밥 몇 번 사주고 대단한 일 한 것처럼 자랑합니다. 그런 자랑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신은 엄청나게 부자로 삽니다. 사실 그런 것 별거 아닙니다. 그런 것 가지고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적 열심을 가지고 자랑합니다. 주일 한번 안 어기고, 교회에서 중직을 맡아 충성하고, 평생 술 담배 안 한 일 가지고 자랑합니다. 그런 사람이 가정에서 세상에서도 바르게 살지는 않습니다. 교회에서만 그것도 눈에 보이는 일만 잘합니다.

 

  이런 일들이 선하고 좋은 일 같지만 사실은 바른 믿음을 가지는 일을 방해하는 좋지 않은 것들입니다. 믿음은 자신이 흉악한 죄인임을 깨닫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작은 선행 그것도 극히 일부의 옳은 일 때문에 자신이 의로운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소홀히 여기거나 바른 믿음을 갖지 못한다면 정말로 불행한 일입니다.

 

3)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경건의 능력을 부인한다는 것은 복음 안에 들어 있는 구원의 능력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16)라고 하신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받는다고 했는데 이것을 믿지 못하고 이런저런 공을 세워서 그 공로를 통해서 구원도 받고 복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충성이 믿음을 통한 구원의 능력을 부인하는 데서 온 것이라면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오히려 책망을 받을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믿음의 능력을 부인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믿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믿는 척은 하지만 사실은 믿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신앙고백은 하지만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살기는 하지만 그 결과는 믿지 못하고 혹시나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경건은 복음을 믿는 믿음은 믿음을 통한 구원의 확신은 이론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심만 믿음을 가지게 하고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성령님의 충만하심입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겉모습만 소중하게 여기는 세상입니다.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든지 겉으로만 좋은 척 바른척하면 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신앙도 겉모습만 가지고 평가하려고 합니다. 속에는 불신앙이 들어 있어도 겉으로만 믿는척하면 그것으로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판단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중심을 보실 수 있는 분이시고 그 중심을 중요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외형적으로 좀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진실한 믿음이 있으면 그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부족한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에 진실함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십니다. 경건의 모양도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의 중심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오늘 본문에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라고 했습니다. 말세가 이르면 악한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하면서 세상은 그렇게 악해질지라도 너는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하셨습니다.

 

  돌아서라는 것은 멀리하라, 가까이하지 말라, 피하라, 이런 사람들처럼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악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악들을 다 없애버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아직 사탄이 타락한 인간들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피하면서 우리는 그런 악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악한 일들이 우리의 믿음을 빼앗아가는 아주 위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서 돌아서야 합니다. 그들처럼 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믿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도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안다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중요한 최고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그 믿음대로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말은 믿는다고 하면서 믿음으로 사는 것을 소홀히 여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최고의 경건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최고로 여기시고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예배가 우선임을 알고 예배 참석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시간에 설교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믿는다면 설교를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 그냥 지나가는 말로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응답받을 줄 믿는다면 그런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냥 응답받으면 좋고 안 되면 말고 하는 그런 기도는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 욕심을 따라 기도하지는 마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으로 살기 위한 기도를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심을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사셔야 합니다. 사람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사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사람이 가르쳐주는 지식보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최고의 율법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최고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인 사랑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도 진심으로 이웃 사랑도 진심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만 위선자가 되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것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사는 것이 경건이라고 했습니다. 이 경건의 모양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 경건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도 믿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경건 즉 믿음이 겉모양만 있고 그 능력은 부인하는 가식적인 믿음은 아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위대한 믿음인지를 바로 알고 진실하게 고백하고 그 믿음을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