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25.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17)

  본문 : 딤후 2:22-23

  제목 : 피하고 따르고 버리라.
 

 

  “22.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3.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한 디모데 후서를 특별히 2장의 말씀을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진리의 말씀이요 그 말씀을 옳게 분별한 진리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사탄은 그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복음을 믿고 따르지 못하도록 많은 이단과 거짓 선생들을 교회에 침투시키고 있습니다. 망령되고 헛된말을 퍼뜨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버리도록 만듭니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고 없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유지하고 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잘 아시고 믿음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해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주신다고 해서 우리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아무런 노력 없이 살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런 이단이나 거짓 선생의 망령되고 헛된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방법들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십니다. 그 방법이 무엇인 줄 바르게 알고 따를 때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는 일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피하고 따르고 버리라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피하고 따르고 버릴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삶이 우리가 믿음을 지키는 데 있어서 필요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 성도 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더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우리를 힘들고 괴롭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라 더 보람되고 더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인간답게 살고 보람되게 살면서 그리고 믿음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

 

 

  본문 22절에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망령되고 헛된 말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복음을 믿는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말씀하는데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 또한 윤리적인 삶을 이야기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청년의 정욕 때문에 믿음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청년의 정욕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부도덕한 욕심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욕망이나 재물이나 명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열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욕심도 없이 산다는 것은 무기력하고 게으른 삶을 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 열정적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지나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불법적인 일을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성욕에 관한 것이든지 물질적인 것이든지 명예를 위한 것이든지 정상적이지 못하면 범죄자가 되기 쉽고 그런 죄로 인하여 신앙생활에서 멀어지는 것은 뻔한 일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청년의 정욕이란 왕성한 혈기 때문에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이단의 가르침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고 봅니다. 청년의 때는 아무래도 경험이 풍부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쉽게 따른다는 것입니다.

 

  바른 신앙도 나이가 들기 전에 젊었을 때에 가져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 남의 말을 잘 믿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준다고 해도 믿음을 가지지 못합니다. 가끔은 나이가 들어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교적 젊었을 때 복음을 들어야 믿음을 가지기 쉽습니다.

 

  반대로 청년은 이단에 빠지기도 쉽습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예상외로 대학생들이나 청년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뭘 좀 알만한 대학생들이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알만한 이단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갑니다.

 

  그 이유가 무분별한 열정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뜨거운 마음만 가지고 자세히 살펴보지 않기에 이단의 속임수에 쉽게 빠집니다. 거기에 빠지지 않도록 그런 사람들과 가까이하지 말고 피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피하라는 말은 완전히 치우고 아주 깨끗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아주 멀리 달아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런 것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말고 확실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단들이 젊은이들을 유혹할 때 보통으로 유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청년들이 유혹에 빠지기 쉽도록 함정을 파고 유혹을 할 것입니다. 청년들이 좋아하는 것을 주는 척하고 청년들이 싫어하는 것을 없애주는 것처럼 하고 접근을 할 것입니다.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아주 멀리 떠나고 확실하게 멀리해야 합니다. 괜히 관심이 있는 것처럼 기웃거리다가는 넘어가기 쉽습니다. 무모한 열정 때문에 이단에 빠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2절 하반절에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라고 했습니다.

 

  청년 때의 무분별한 정욕을 피하고 대신 적극적으로 따라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라고 했습니다.

  이단들이 유혹하기 쉬운 곳에 있지 말고 이단에게 이용을 당할만한 사람들과 함께 있지 말고 믿음이 확실한 사람들과 함께하라는 것입니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란 진실된 마음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가식적으로 믿음을 고백하거나 잘 모르고 잘못된 믿음을 고백하거나 눈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서 믿는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하게 고백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교회로 불러 모아서 함께 신앙생활 하게 하신 것은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할 때 서로에게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를 도와서 이단이나 거짓 선생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깨끗하고 확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아닙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고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숙한 믿음을 가진 사람과 가까이하면서 배워야 합니다. 미숙한 사람과 가까이하면 믿음이 자라지 못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친구도 사귀고 이웃도 사귑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 깨끗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것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믿음의 친구를 사귀고 믿음의 사람들과 거래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학생 때나 청년 때는 특별히 누구와 친하게 지내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과 친하면 그래도 신앙을 유지하기가 쉽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과 친하면 쉽게 친구 따라 믿음을 버립니다. 아무리 좋아도 믿음이 없는 사람과 멀리해야 합니다. 작은 즐거움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라고 했습니다.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은 다 믿음과 연관되는 단어들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다 있어야 할 덕목들입니다.

 

  우리는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의롭게 되든지 믿음으로 의롭게 되든지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의로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감에서도 의롭게 정직하게 사는 것이 참 행복한 삶입니다. 악하게 사는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하나님께 벌도 받지만 자신도 비참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 우리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믿음으로가 복음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구원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 사이의 삶도 서로에게 믿음이 필요합니다. 서로를 의심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있고 무슨 일을 해도 믿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우리 성도의 삶에 있어서 기본입니다.

  성경의 핵심은 복음이지만 삶의 원리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우리 성도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삶의 원리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가를 시험해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우리에게 사랑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즉 창세 전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성령님께서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사람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믿음을 가지도록 해주시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마음을 제일 기본적으로 먼저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아직도 냉정한 사람이라면 믿음이 없거나 아직 초보자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은 참 행복한 삶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내가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변에 나를 미워하는 사람만 있고 나도 미운 사람만 있다면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정말로 소중한 것입니다.

 

  화평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의로운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 사람은 화평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삶들이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사이를 청산하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기 전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다녀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헐어지고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십자가로 인해 원수 같은 사람에서 미움과 저주의 대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께 말씀드릴 수 있고 도움을 받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원수 사이가 아니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원리도 서로 간에 평화를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서로 경쟁 대상으로 살고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면서 사는 것은 지옥의 삶입니다.

 

  우리가 만날 때마다 악수를 합니다. 악수의 유래는 빈손을 내밀어서 내게 당신을 공격할 무기가 없음을 보여준 데서 왔다고 합니다. 나는 당신과 싸울 생각이 없고 당신과 평화를 누리고 살고 싶다는 의사표시라고 합니다.

 

  서로 경쟁하지 말고 서로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말고 서로를 인정해주고 서로서로 양보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나보다 상대방이 더 잘되도록 더 기쁘도록 배려하면서 사는 삶이 나도 행복해지는 귀하고 복된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평화롭게 화평을 이루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본문 23절에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공부할 때는 연구하고 서로 논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학설인지 더 나은 것은 없는지 꾸준히 연구할 때에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백신을 만들지 못한 이유를 어떤 학자가 말하기를 우리나라 학교의 공부방법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무조건 암기만 하는 교육은 그런 특별한 것을 연구해낼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 토론하고 스스로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사고를 키워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연구 대상이거나 토론 대상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 자체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연구하여 더 좋은 것을 발견하거나 더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배우고 그 말씀의 뜻을 더 자세하게 살필 뿐입니다.

 

  성경의 핵심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의 말씀입니다. 여기에다가 어느 것 하나도 더해서도 안 되고 어느 것 하나도 빼서는 안 됩니다.

 

  그 말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은 확고부동한 진리입니다. 성경의 중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를 기록한 구원의 역사 즉 구속사입니다. 그 구속사의 중심은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를 따르지 않고 자기들의 의견을 내세워서 논쟁을 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이단이고 그들이 교회 안에 침투한 거짓 선생들입니다.

 

  이단이나 거짓 선생들이 하는 이야기가 그럴듯해 보이고 더 좋아 보이지만 사실은 참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이고 무식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본도 모르고 진리의 핵심도 모르는 어리석고 무식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과 논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복음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단호하게 거절하고 관계를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다툼만 일어나게 하고 신앙을 잃게 하는 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아서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유혹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잘 알고 지켜주시기 때문에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잘 기억하시고 믿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참되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믿음도 지키고 세상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