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11.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15)

  본문 : 딤후 2:19

  제목 :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보홍수 시대라고 말합니다. 건강에 관한 정보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취미생활이나 별별 지식이 인터넷만 열면 다 찾아볼 수 있습니다. 뭘 물어보면 네이버에 물어보라고 할 만큼 보통 상식적인 정보들은 얼마든지 검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정보들 가운데 잘못된 정보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일반 상식은 자세하게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하고 정확해야 하는 정보들은 잘못된 정보가 많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잘 몰라서 남에게 들은 것을 옮기다 보니까 거짓 정보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거짓 정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작정하고 남을 속여서 재산을 빼앗기 위해서 사기를 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이스 피싱이나 다단계나 사기 종류도 너무 많아서 조금만 방심하면 낭패를 당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없으면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것을 속여서 빼앗아가려는 사기꾼만 없어도 세상은 참 평안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런 거짓말하는 사람이나 사기꾼들 때문에 서로를 의심해야 하고 서로 믿지 못하고 삽니다.

 

  작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잔꾀를 쓰면서 자기에게 유익한 말만 하거나 남을 속이려고 하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작은 이익은 챙길지 모르지만 큰 것을 잃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평가하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는 더 잘 아시기 때문에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이런 것이 문제입니다. 초대교회가 시작되면서부터 이런저런 이단이나 거짓 선생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잘못된 정보를 흘림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특별히 오늘날은 교회 안에도 신앙에 관한 수많은 정보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어떤 것이 정말로 따라야 할 진리인지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면서 제일 걱정되는 일이 거짓 선생이 교회에 침투하여 거짓 복음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구분할 수 없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성도들을 어지럽히고 결국은 복음에서 떠나게 하는 거짓 선생들 이단들이 많기 때문에 그것이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런 이단이나 거짓 선생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고 해도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는 일에는 차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가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망령되고 헛된 말 즉 복음을 부인하는 잘못된 가르침이 교회 안에 침투하여 악성 종양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교회를 오염시키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굳게 섰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세력이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별별 노력을 다하지만 거기에 미혹되어서 넘어지는 사람은 교회에 잘못 들어온 사람들 즉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절대로 넘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터는 견고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백성은 절대로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본문 말씀에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라는 말은 바로 앞 절의 말씀을 받아서 한 말입니다. 문장을 시작하는 그러나라는 단어에서 뒤에 따라 나오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 그러나는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후메내오와 빌레도 같은 거짓 선생들이 복음의 진리가 아닌 망령되고 헛된 말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멸망에 빠지게 해도 그러나 하나님의 터는 견고하게 섰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시작된 지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이단이나 수많은 거짓 선생이 교회에 침투하여서 교회가 가진 진리를 무너뜨리려고 했지만 그러나 교회는 지금까지 건재하고 교회가 전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지금도 전파되고 있습니다.

 

  물론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이단에 빠져서 진리에서 떠났고 지금도 교회 안에는 바른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않고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바른 복음을 따르고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거짓 선생이 있었음에도 아직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본문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견고한 터가 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견고한 터가 섰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아주 튼튼한 기초위에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에 누가 흔든다고 해도 무너지지 않는 아주 견고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그것이 아무리 튼튼하게 만든 것이라고 해도 세월이 가고 또 다른 것이 나타나면 못쓰게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것은 세월이 지나도 모든 것이 다 바뀐다고 해도 조금도 변하거나 효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견고한 터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는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다 같은 뜻이지만 구체적으로 조금씩 다르게 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견고한 터를 예수님으로 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믿음의 반석이 되시고 우리의 모든 믿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견고한 터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로 보기도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우신 곳이며 구원받은 백성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견고한 터를 사도들의 신앙고백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의 신앙고백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다 같은 말이고 같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것으로 해석을 해도 틀린 해석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고백해서 구원을 얻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해석 외에 좀 독특한 해석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칼빈의 견해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선택을 비유적으로 라고 한 것으로 보고 그 터 즉 하나님의 선택은 확고부동하다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칼빈은 앞뒤의 문장을 살펴보면서 견고한 터를 하나님의 선택은 확고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확실한 뜻이지만 본문에서는 그보다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의 확고함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앞에는 교회 안에 후메내오와 빌레도 같은 사람이 거짓 선생의 가르침을 따라 믿음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까지 믿음을 버리게 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음에서 떠나고 그들을 말을 들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유혹을 받아도 그들을 따르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누구인지는 잘 몰라도 그들이 보통 사람은 아니고 교회의 지도자급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 이름을 들으면 아 그 사람 교회에 잘 다니는 믿음이 좋은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엉뚱한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보잘것없는 사람이 뭐라고 하면 영향을 잘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말을 하면 그 말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다가갔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 안에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절에 다녀도 구원을 받는다고 헛소리하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공부도 많이 한 박사들이 아주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들이 너무나 인기가 좋아서 팬이 많은 무시할 수 없는 사람 중에 그런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영향력은 대단해서 많은 사람이 그들의 말을 의심 없이 듣고 따르면서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엉뚱한 말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같이 못난 사람들이 그들의 헛된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이렇게 복음의 진리를 따르며 구원의 길로 가고 있을까요? 어떻게 여러분은 저같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의 말을 듣고 복음을 믿고 따르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잘나서도 아니고 똑똑해서도 아닙니다. 우리는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특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회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선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선택은 견고합니다.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습니다. 누가 항의한다고 고쳐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좀 잘못한다고 다시 바뀌지 않습니다. 한번 선택은 영원한 선택이기 때문에 아무리 거짓 선생들이 판을 친다고 해도 우리는 이 믿음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시시한 일에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으로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본문에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인침이라는 말은 봉인하다”, “도장을 찍다라는 뜻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누가 고치지 못하도록 봉인이 되었다는 뜻이고 하나님께서 도장을 찍으셨기 때문에 확실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의 견고한 터를 하나님의 선택으로 본 칼빈의 해석을 따르면 도장을 찍어서 봉인한 이 말씀은 선택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명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5절에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라고 했는데 그와 같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로 예정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 문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봉한 말씀 위에 기록된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이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선택받은 사람들을 기록한 명단에 이런 말씀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라고 했습니다.

  왜 앞의 하나님의 견고한 터를 선택으로 해석했는지를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즉 하나님 자신이 택하신 백성이 누구인지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이름만 기억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성품 그 사람이 행할 일 그 사람이 갈 길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약점까지도 다 아시고 특별히 보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선택을 받은 사람이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 다 같이 사탄의 공격을 받습니다. 거짓 선생들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거짓 복음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그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진리를 옳게 분별하도록 도와주시고 성경의 핵심인 복음을 알게 해주십니다.

 

  성경공부를 많이 해서 신학박사가 된 사람이나 엄청난 능력을 갖추고 기적을 일으킨다고 하는 사람이나 세상을 바꿀만한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복음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망령되고 헛된말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이고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바른 진리를 선포하는 교회에 오지 않고 외형적으로 화려하거나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설교를 하면서 인기가 있는 목사가 있는 교회로 몰려가는 것은 그들이 택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역사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에 진리를 옳게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인도하심을 따라 매 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되는 교회에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해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란 복음의 진리를 바로 알고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렇게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불의에서 떠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떠나야 한다는 말은 떠나라는 명령어이기도 하면서 떠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이 아직 불의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속히 떠나라고 하시는 명령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은 불의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그런 불의에 머물러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여기 불의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세상의 악한 일들을 불의로 보고 그런 악한 죄악에서 떠나라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죄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이 다시 그 죄악 속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불의란 앞에서 말한 망령되고 헛된 말을 불의라고 합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은 악성 종양과 같아서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도 멸망에 빠지게 하는 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단이나 거짓 선생이 교회에 들어와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의 진리를 부인하고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활이나 영생을 부인하고 이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며 잘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하여 멸망에 빠지게 하는 가장 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의에 머물러서 그들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고 택함을 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교회 내에 수많은 이단과 거짓 선생들이 들어와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복음의 진리를 거부합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다른 복음 거짓 복음을 전하여서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많은 사람을 진리에서 구원에서 떠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견고하여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아시고 그들의 약점까지도 아시고 지키고 보호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불의에 비진리에 잘못된 복음에 머물러 있지 않고 떠나도록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도 그 택함을 받은 성도들이라는 것을 아시고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살펴보고 그 진리의 핵심이 복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