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4.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11)

  본문 : 딤후 2:9-10

  제목 :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9.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10.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성경에서 제일 많이 기록된 단어는 말씀이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주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을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이 말씀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은 역사적인 기록들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전체가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한 말씀이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 중에 '말씀'이라는 단어를 특별히 사용한 주목할만한 기사가 두군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기사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1:3)라고 했는데 여기 이르시되혹은 가라사대말씀하시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빛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도 이 말씀으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라고 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그 말씀이 하나님이셨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어떤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이며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원리이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진리의 말씀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고치거나 거부하거나 막을 수 없는 영원불변의 말씀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라고 했는데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우리가 이 불변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고 믿음의 자부심을 갖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본문 9절에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지금 서신을 쓰고 있는 사도바울의 형편을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사도바울은 평생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선포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복음을 들은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교회를 세우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세상은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배반한 이단의 무리라고 생각했고 당시에 세상을 지배했던 로마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싫어했습니다. 로마 황제 가이사만 주님으로 불러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주님으로 부르는 기독교인을 싫어하고 박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기쁘고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도바울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 사형을 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조금 좋은 일이라고 하면 포기하고 목숨이나 구해서 살았을 텐데 그가 전하는 복음이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외쳤습니다.

 

  내가 비록 이 복음 때문에 이렇게 붙잡혀 와서 쇠사슬에 매인 채로 감옥에서 지내고 있지만 나 한 사람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해서 복음까지 묶어 둘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은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같은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 즉 이 복음은 매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유대인으로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통적으로 배운 사람입니다. 구약시대 때 선지자들을 통하여 인간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히브리서를 통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1:1-2)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말씀을 하셨는데 그 하나님께서 마지막에는 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부분적으로 간접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사람으로 이 세상에 보내셔서 그 구원에 관한 말씀을 직접 해주셨고 그 구원의 계획들을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런 과정들을 다 알고 있는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 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복음의 말씀, 구원의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 복음 진리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언어가 아닙니다.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보내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신 구원의 말씀입니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능력의 말씀이요 진리의 말씀입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종교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해 낸 말을 가지고 사람의 구미에 맞도록 만들어진 종교일 뿐입니다. 말도 못 하는 우상을 신으로 세우고 자기들 마음대로 자기들이 한 말을 가지고 신의 뜻이라고 따릅니다.

 

  그런 종교에 비하면 우리 기독교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특별히 우리를 멸망에서 구원해주시는 구원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너무나 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 내에도 이런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인간의 말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귀한 구원의 말씀을 뒤로하고 세상 사는 이야기나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도 이 복음을 싫어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착하게 살자고 하면 좋아하지만 우리만 구원받는다고 하면 그들이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우리만 구원받고 천국에 간다고 하고 자기들은 망한다고 하면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요즘은 교회가 이런저런 것들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욕을 많이 먹습니다. 일부 잘못된 교회 지도자들 때문에 욕을 먹고 이단들 때문에 욕을 먹습니다. 바른 복음을 전하는 교회도 착하게 살라고 하지 않고 구원을 받으려고 한다고 욕을 먹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욕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말씀이 효력을 잃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아무리 방해를 한다고 해도 복음전파가 멈춰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바울처럼 고난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이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전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믿고 따르는 우리도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합니다. 무엇이 마음대로 잘 안 되고 어려운 일만 당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이나 고통이나 실패나 어떤 일들도 복음의 능력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복음을 믿는 믿음이고 복음은 하나님 말씀의 핵심이며 우리를 영원한 구원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한다고 해도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질 것이며 우리가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본문 10절에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10절의 말씀은 사도바울이 그렇게 쇠사슬에 매이고 감옥에 갇히고 고난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버리지 않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은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사람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 그 복음을 믿고 구원받을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선택하신 사람들이고 그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다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되찾게 하는 아주 특별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회에 와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여러분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일원이 된 여러분이 바로 그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신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남들처럼 성공하거나 출세하지 못해서 비교적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좋은 일도 많이 하지 못하고 바르게 살지 못해서 칭찬을 받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고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 천국에서 살 사람들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처럼 복음을 전하는 모든 사람이 그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나가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은 사람들입니다. 이 귀한 일을 함에 있어서 세상의 안일이나 즐거움을 위해서 이 일을 소홀하게 여기거나 이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사악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는 구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또 그리스도 예수 안에만 이 구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뜻입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에 해당이 되는 말입니다. 가난에서 구원, 질병에서 구원, 여러 가지 어려움에서 건짐을 받을 때도 구원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구원이라는 말을 이런 세상의 어려움에서의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후의 세상은 먼 미래의 일이고 우선은 이 세상의 삶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이 고통스러운 질병에서 고침을 받는 구원이 시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어려운 시절에 이런 세상의 고통에서의 구원을 외치는 교회에 많은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해서 부자가 되기도 하고 병 고침을 받기도 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도 베푸시기 때문에 그런 구원들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런 구원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어야 하는데 그런 세상의 구원으로 만족하고 정작 교회에 와서 얻어야 할 진짜 구원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은 그런 세상의 어려움에서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서 구원이고 영원한 형벌에서의 구원이 우리가 진짜 받아야 할 아주 소중한 구원입니다.

 

  세상의 어려움에서 구원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부자가 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또 죽고 난 후에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은 부자가 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죄를 짓게 하고 더 큰 형벌을 받게 하는 것이고 구원의 기회를 잃게 하는 것입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는다고 해도 병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병을 고치면 또 다른 곳이 병들게 되고 결국은 죽어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병들고 죽어가는 원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그런 고통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야 그런 죄에서 죽음에서 해방이 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을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고 영광스러운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구원처럼 일시적으로 어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다시는 그런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 구원입니다. 모든 어려운 문제가 다 해결이 되는 구원입니다. 우리의 몸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다시는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 새로운 생명을 가진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구원이란 최고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고 또 말로서 그 구원의 영광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그냥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이렇게 영원한 것이며 최고의 영광스러운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큰 구원을 주는 복음이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고난을 참고 끝까지 복음전파에 노력을 했습니다. 우리도 이 구원을 주는 복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이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의 말씀 구원의 말씀은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능력의 말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가졌고 그 말씀의 가장 중요한 복음을 우리가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를 위해서 사도바울을 비롯한 많은 복음 사역자들이 고난을 당하면서 순교하면서까지 이 복음을 우리에게까지 전해 주었습니다.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이 영원한 구원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게 하는 너무나 귀한 것임을 잊지 마시고 이 믿음을 지키고 믿음으로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