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2.1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33)
본문 : 롬 12:6-8
제목 : 다양한 은사들 2. 


은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리스마(καρισμ)라고 하는데 은혜의 선물이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은사란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게 하기 위하여 특별히 받은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 받은 은사대로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일곱 가지의 은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예언의 은사와 섬김의 은사 그리고 가르치는 은사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나머지 네 가지 은사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권위(勸慰)하는 자


권위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칼레오(παραχαλεω)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파라(παρα)라는 말과 칼레오(καλεω)라는 두 말이 합쳐진 말입니다. 파라(παρα)는 "...곁에" "...가까이에" 라는 뜻입니다. 칼레오(καλεω)라는 말은 "부르다" "초청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 두 말을 합친 파라칼레오는 "곁으로 부름을 받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면서 곁으로 부름을 받아 위로하고 권면한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 말에서 우리가 잘아는 성령님의 명칭인 보혜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를 위로하고 권면하고 변호해 주시는 성령님의 이름 보혜사가 이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권위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은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 곁에 찾아가서 그 사람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4장 36절에 구브로에서 난 레위 사람 요셉을 사도들이 바나바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 바나바라는 이름을 번역하면 권위자라고 했습니다. 바나바는 그 이름의 의미처럼 어느 곳에서든지 어려움 당하고, 소외당한 자들의 편에 서서 위로와 격려자가 되어 주었습니다(행 9:26,27;15:39).

사도행전 9장 26-27절에 말씀을 보면 바나바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원래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이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데 가장 앞장을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을 죽일 때도 제일 앞장서서 주동이 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행7:58).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거듭난 사울은 예루살렘교회를 찾아가 그들과 사귀고 교제하기를 원했습니다. 거듭난 사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과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은 사울을 받아들여 주지를 않았습니다. 그 동안 너무나도 악하게 했었기 때문에 그의 회심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나바가 그 사울을 데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울에 대하여 변호를 해 주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어떻게 주님을 본 것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말했던 것을 들어서 그를 변호해 주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교회를 다 없애 버리겠다고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으니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 교회에 나오려고 했을 때 인간적으로 얼마나 부끄럽고 염치가 없었겠습니까? 교인들 중에는 직접 핍박을 받았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스데반의 가족이나 친척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교회에 찾아가려니 사울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사울은 정말 어떤 사람이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고 붙잡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바나바가 찾아와서 만나 주었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정말로 귀한 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편이 되어서 그들을 이해해 주고 그들을 격려해 주고 그들을 위로해 주고 그들을 위해서 변호해 주는 일이 권위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도 쉽게 다른 이의 잘잘못을 판단하고 비판해 버립니다. 진정 남을 판단하기에 앞서 사랑의 눈으로 그들을 볼 줄 알고 그들을 다독거리며 권면하여 위로하며 그들을 변호해 주는 그런 역할을 해야 될 것입니다.

성경에 권사라는 직분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지만 성경에서 권사의 일을 한 인물을 찾으라면 이 바나바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별명의 뜻도 그렇고 그가 한 일도 그렇고, 바나바는 오늘날 권사가 하는 일들을 잘 감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권사님의 직무는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에 힘써는 것입니다. 권면하는 일, 위로하는 일, 그리고 격려하는 일,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분들은 권사님들 뿐만 아니고 모두가 이웃 사람들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존재들이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별 생각없이 그저 한 마디 격려한 것이 상대방에게는 큰 힘이 되는 일을 자주 체험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습관적으로 권면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교육법에 대한 책을 보면 유대인의 학교에서는 100까지 세어야 할 학년의 학생이 100까지 세지 못하면 성적표에 이렇게 적는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열까지 잘 셀 수 있음. 조금만 더 잘 지도하면 백 까지도 셀 수 있을 것임",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격려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장해서 노벨상을 많이 받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한 마디 던진 비난의 말이 상대방에게는 엄청난 상처가 되는 일이 있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장기 복역 중인 어떤 깡패 두목이 교도소 선교를 하는 목사님에게 마음 문을 열게 되자 이런 말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목사님, 제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저도 어렸을 때는 주일 학교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좀 못되게 굴었습니다. 그런데 주일 학교 선생님이 견디다 견디다 못해 하루는 저를 보고 '너 같은 것은 교회 안 나와도 좋으니 다음 주일부터는 나오지 말아!' 한마디 했습니다. 그 소리가 상처가 되어 그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았고 악의 수렁에 깊이 빠져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만 주일 학교 선생님의 '너 같은 것은 교회 안 나와도 좋으니 다음 주일부터는 나오지 말아!' 한 마디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 마디 상처되는 말의 영향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을 위로하는 공동체입니다. 서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그런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2. 구제하는 자


본문 8절 말씀 중에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라고 했습니다. 구제하는 것은 자기의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혹자는 교회의 재물을 공적으로 나누어주는 것으로 보고 이것을 집사의 직분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 본 것과 같이 봉사하는 직분이 집사 직에 가까운 것이라고 본다면 이 구제하는 일은 교회의 공식적인 구제보다는 자기 개인적으로 자기가 가진 것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라고 했는데 여기 성실함이란 단순히 순전히 섞이지 않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구제하는 자는 단순히 도와주는 마음을 가져야지 도와주고 난 후에 어떤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은사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 은사의 사용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제의 은사를 받았다고 한다면 불순한 생각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구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5:10-11절 말씀에도 이 구제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는 언제든지 이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골고루 은혜를 베푸시지만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서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부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난한 사람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구제사업은 언제나 늘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끼는 마음을 품지말고 반드시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우리의 손을 펴야 할 것입니다.

3. 다스리는 자


역시 8절 말씀에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라고 했습니다. 영어성경은 이 다스림을 리더십(leadership)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앞장을 서서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기관 어느 단체든지 리더가 있습니다. 이 리더가 얼마나 일을 잘 하는가에 따라서 그 기관 그 단체가 잘되기도 하고 침체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이 리더는 부지런함으로 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리더가 게으르고 리더가 일을 하지 않으면 그 단체가 다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목사님들 사이에 잘 하는 말이 있는데 "실수가 많은 종은 하나님께서 사용을 하셔도 게으른 종은 하나님께서 사용을 하지 않으신다"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다가 보면 일을 잘 못할 수도 있고 일을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일을 하려다가 잘못을 한 것은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해 보려고 하다가 실수를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실수가 두려워서 아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용서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을 하다가 보면 잘 못 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실수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일 해 봐도 욕만 먹기 십상이고 아예 가만이 있자 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특별히 리더는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리더가 가만이 있으면 그 단체 전체가 가만이 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리더가 되었을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리더 한 사람의 열심히 그가 속한 기관을 단체를 부흥시키고 그 단체가 해야 할 일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 긍휼을 베푸는 자


본문 8절 말씀에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긍휼이라는 말은 대체로 하나님께서 위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실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일하게 오늘 본문에서만 이 긍휼이라는 단어를 우리 인간이 인간을 불쌍히 여길 때 쓰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말과 긍휼히 여긴다는 말의 차이를 여러 번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말은 동정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베푸는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동정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길 때 쓰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동정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동정을 베풉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동정을 베풀 만한 가치가 없는 그런 사람을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긍휼을 베푼다는 것은 그런 하나님의 심정으로 우리 주변에 동정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사고로 불구가 된 사람 날 때부터 불구자로 태어난 사람 부모를 잘못 만나 고아가 되고 남편이 일찍 죽어 과부가 되고 병을 얻어서 고통 속에 살고 성실하게 노력을 했지만 세월을 잘 못 만나 가난하게 살고 어쩔 수 없는 한번의 실수로 죄수가 되고 기술이 없어서 머리가 똑똑하지 못해서 잘나지 못해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당연히 우리가 불쌍히 여겨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그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나쁜 짓을 그것도 여러 번 해서 죄수가 된 사람 성질이 못돼서 남에게 피해만 주고 다니는 사람 게을러서 아무 것도 안하고 평생 놀기만 해서 가난한 사람 동정해줄 가치가 조금도 없는 그런 사람 원수같이 구는 사람 아주 나쁜 짓을 하는 그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아주 불쾌합니다.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욕을 하고 저주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권위하는 은사 구제하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그리고 긍휼히 여기는 은사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 은사를 말씀하시면서 그 은사를 시행함에 있어서 특별히 당부를 하신 세 마디 말씀을 기억을 하시기 바랍니다.

"성실함으로"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함으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즐거움으로"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에 성실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일에 부지런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일에 즐거움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 가지의 마음만 있으면 무슨 일을 하든지 잘 될 줄로 확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