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3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종합 14)
   본문 : 롬 14:10
   제목 : 비판하지 말라

  교회와 저희 집에는 신문이 오지 않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모든 일간지들이 다 있기 때문에 좀 답답하기는 하지만 컴퓨터를 통하여 신문을 봅니다.

  컴퓨터 신문에는 이런 종이로 배달되는 신문에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기사가 있으면 그 기사 밑에 독자들이 자기의 생각들을 올려 놓는 난이 있습니다.

  그 독자들의 글을 읽어보면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혹 잘했다고 칭찬을 하는 글이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그 글에 대하여 비판을 하는 글들입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익명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온갖 욕설을 동원해서 비판을 하는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글을 읽으면서 아 사람은 남을 비판하고 욕하기를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로 얼굴을 대할 때는 체면이 있으니까 말을 하지 않지만 보지 않는 곳에서 남들이 알아보지 못할 때는 마음껏 흉을 보고 욕을 하고 비판을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업신여기고 흉을 보고 욕을 하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나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14장의 말씀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 것을 거듭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 말씀에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교회에는 믿음이 다소 연약한 아직 어린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들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절 말씀에도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시장에 나오는 고기들은 다 이방 신에게 바쳐졌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제사음식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만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고 더러는 고기를 먹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고기를 먹든지 먹지 않든지 그런 일 가지고 서로 비판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4절 말씀에도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라고 하시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의 부당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 10절 말씀에도 "네가 어찌하여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을 하시기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남을 비판하거나 남을 판단하거나 남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1.형제를 판단하지 말고 업신여기지 말라
1)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오늘 본문 말씀에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라고 했습니다.
  여기 "판단하다"라는 말은 단순히 무엇을 결정한다는 뜻 보다 더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판단하다 의 헬라어 "크리노"(κρινω)라는 말은 "정죄하다" "심판하다" "재판 하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을 판단하여 비판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재판장이 되어서 남을 정죄하고 심판하고 재판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재판을 하고 정죄를 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일들도 법을 잘 아는 판사나 하는 일이고
  최종적인 재판은 하나님이나 하시는 일이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네가"라고 했습니다.
  여기 "네가"라는 말은 남을 판단하는 사람인 너 자신이 누구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잘남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구원을 받았음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사실 남을 판단할만한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2)"네 형제를"이라고 했습니다.
  네가 판단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라는 말입니다
  네가 판단을 하는 그 사람도 네 형제 즉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을 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었는데 네가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3)'판단하느뇨'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리와 근거로 그들을 일방적으로 판단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재판하는 권한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인데 어찌 너희가 자격이 없는 너희가 내가 사랑하여 내 자녀로 삼은 사람을 판단하려 드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보는 눈이 있고 나름대로 남을 판단할만한 지식도 있습니다.
  그래서 잘 못 하는 사람들을 보면 비판을 하기 쉽고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다만 판단을 할 때 우리 자신도 그와 같은 형편이 되면 똑같은 죄를 지을 수 있는 연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또 내가 판단하려는 그 사람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은 사람이요 하나님께서 부족하지만 그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을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우리의 형제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판단력은 그렇게 양호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남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내 자신의 경험과 내 자신의 지식 그리고 내 자신의 기준에 의해서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른 생각과 다른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과 똑같은 위치에 서 보지 못하고 상상으로만 판단을 합니다
  그 사람과 똑 같은 위치에 서 보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보모님 품안에서 자란 사람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는 사람들의 그 사랑에 대한 목마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끼니를 굶는 사람의 그 서글픈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가족과 사별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가슴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남에게 배반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배반의 아픔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도가 나고 사업이 망하고 사고가 나서 불구가 되고 억울한 일을 당하여 고통을 당하고 연약하여 범죄를 한 다양한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우리는 다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얇은 지식과 적은 경험으로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형편을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본문 말씀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라고 했습니다. 
  "업신여기느뇨"라는 말은 강자가 약자를 멸시하는 태도를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연약한 자를 업신여기는 교만한 태도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네가 업신여기는 그 사람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나의 백성 나의 자녀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인 나도 당연히 그를 정죄하고 심판할 자격이 있는 나도 그를 정죄하지 않고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데 그런 자격도 없는 네가 왜 그를 업신여기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고 먹지 않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고 못지키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고 행하지 못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잘나고 못나고 똑똑하고 똑똑하지 못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을 하시고 하나님께서 소중한 존재로 삼아 주셨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디 가다가 못생긴 아이를 만났다고 아 그 녀석 되게 못났네 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말을 그의 부모님이 듣게 된다면 큰 일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못났어도 내 자식은 사랑스럽기 때문에 말을 잘못했다가는 큰 일이 날 것입니다.

  우리는 내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남도 소중하다는 것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귀하고 소중한 존재가 된 것 같이 교회 안에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도 그와 같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때로는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한 행동을 한다고 할지라도 때로는 나의 판단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도 나처럼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르심을 받고 그에게 맡겨진 사명이 있어 이 땅에 온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형제 앞에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을 두지 말라
  14:13절 말씀에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라고 했습니다.

  길을 가고 있는데 그 길에다가 발에 부딪힐 돌이나 장애물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그 길에다가 함정이나 덫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마련해주신 구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구원의 길에다가 부딪쳐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나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덫이나 함정을 파서 빠지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구원의 길에다가 선행이라는 덫을 놓습니다
  선행이라는 것을 강조한다고 누가 시비를 하겠습니까
  그러나 선을 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 덫에 걸려 넘어져서 이 구원의 길을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구원의 길에다가 율법들을 늘어놓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구원의 조건인 것처럼 늘어놓을 때 그것이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함정이 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구원의 길에다가 종교적 열심들을 늘어놓습니다
  금식기도를 하고, 방언을 하고, 신유의 은사를 받고, 예언을 하고, 어떤 기적적인 체험을 하고, 신비한 음성을 듣고, 귀신을 쫓아내고 하는 이런 것들을 늘어놓습니다.

  이런 것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들도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이 길에 날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만 우뚝 솟아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가는 길이 이 구원의 길입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리는 그 어떤 것도 용납을 해서는 안됩니다
  아무 것도 그것을 대치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라
  14:19절 말씀에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나니"라고 했습니다.

1)화평의 일을 힘쓰라
  우리가 교회에서 힘써 행해야 할 일은 먼저 화평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들과도 화평을 이루어야 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는 것은 영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것이지만 우리의 육신의 삶에 있어서도 화평을 이루면서 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원동연 박사의 "다이아몬드 칼라를 꿈꾸며"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소개되어 잇습니다.
  70이 넘은 어느 노인이 건강진단을 받으러 왔답니다
  그런데 진찰을 해 보니까 30대 청년처럼 건강하더라는 것입니다
  의사가 어떻게 이렇게 건강을 유지했는지 그 건강의 비결을 물어 보았답니다

  그 노인이 말하기를 자신은 결혼을 한지 50년이 되었는데 처음 결혼했을 때 아내와 한가지 약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내가 잘 못해서 성질이 날 때가 있을 텐데 그 때는 아내가 부엌으로 들어가 버리고 아내가 잘못해서 남편이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오늘날까지 지켜져서 산책은 수없이 나갔지만 한번도 서로 언성을 높이고 싸우거나 나쁜 감정을 오래 두고 화를 내는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70이 넘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청년과 같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앞서 말씀을 드린 대로 사소한 일에 싸우기 시작하면 온통 언성을 높이고 싸울 일 밖에 없습니다.

  이 싸울 일 밖에 없는 세상에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비결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귀한 진리를 바르게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2)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라
  덕을 세운다는 말은 단 순이 남에게 후하게 하고 덕을 보이고 하는 정도의 말이 아닙니다.
  덕을 세운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 세움을 받는다는 뜻이요 더 나아가서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움을 입은 사람들이 한 건물을 세워 가듯이 서로 서로 협력하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부흥시키고 그 교회의 성도들이 서로 협력하여 잘 살게 하는 것이 덕을 세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머릿돌로 하고 우리 각 사람이 건축불의 한 부분들이 되어서 거대한 건물을 세워 나가는 것과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의 일원들이 다 되었습니다
  사실 아무나 이런 자리에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이 자리에 석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 교회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생각하고 이 교회가 더 튼튼히 세워지고 더 넓게 확장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충성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판단하거나 업신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형제 앞에 걸려 넘어질 만한 것들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화평이 일과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