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7.2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30)
   본문 : 엡 2:16
   제목 : 십자가의 능력 

  제가 요즘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서 율법은 십자가와 원수가 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폐하신 것임을 강조하니까 혹자들이 걱정스럽게 말을 합니다.
  성도들이 목사님 설교를 듣고 율법도 무시하고 선행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살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설교를 하십니까라고 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도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아주 강하게 설교하신 분이십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 당시에 수천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그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말하기를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교리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을 가지고 설교를 했다면 틀림없이 수년 전에 청중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도 사람들이 그렇게 설교를 하면 사람들이 윤리적이지 못하고 선하게 살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살지 않겠느냐고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십자가의 보혈의 교리가 심령에 들어가 죄를 쫓아내고 진리의 보좌를 놓는다"고 굳게 확신을 했다고 합니다.

  십자가의 진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 용서 받았다고 율법을 지킬 의무를 면제해 주었다고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지 정말로 주님의 십자가를 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 십자가를 붙들고 사는 사람이라면, 더 윤리적이고, 더 도덕적이고, 더 선한 삶을 살려고 몸부림을 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오시면 가장 높은 곳에 십자가를 세워 놓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걸고 있는 목걸이에 반지에 뺏지에 그리고 여기 저기에 십자가를 새겨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왜 성도들은 십자가를 그렇게 소중하게 여깁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자신 있게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 십자가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얼마나 귀하고 자랑스러운 것인지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설교를 잘 들으시고 그 위대하신 십자가의 능력의 위대함을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둘을 한 몸으로
  십자가의 능력은 둘을 한 몸으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라고 하셨습니다.
  14절 말씀에도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은 직접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중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개나 돼지 같은 짐승으로 취급하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 앞에서 동일한 은혜를 받아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면 모든 사람이 동일한 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 내에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교회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문화가 가지각색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그 다양한 사람들 모두가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좋고 많이 배워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 우리와 다릅니다.
  우리는 그냥 세월 따라 살지만 그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며 창조적인 삶을 삽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도 풍부하여서 열두 제자나 이스라엘의 왕들의 이름이나 여러 사건들을 정확하게 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지식이 논리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십자가를 가볍게 여기게 해서 구원의 길에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유명한 목사님들 유학도 하고 박사학위도 가지고 많은 지식을 가진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우리의 설교와 차원이 다릅니다.
  별별 지식들 호감이 가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고 과학적이고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멋진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그 많은 지식들을 가지고 자기 지식 자랑하기 바빠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하지는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돈이 많아서 교회에 충성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하고 구제도 많이 합니다.
  그 사람들의 열심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부흥회 같은 데 가서 간증을 들어보면 참 부러운 것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집을 팔아 교회당을 지었는데 지금은 더 부자가 되어서 잘 산다더라.
  어떤 성도는 재산을 정리하여 신학교를 세웠는데 오히려 사업이 더 번창했다더라.   
  어떤 사람은 이래서 복을 받았고 어떤 저래서 복을 받았고... 

  그런데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십자가가 아니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언을 하고 방언을 하고 신유의 은사를 받아서 병자를 일으키고 생각지도 못하는 일들을 경험합니다.
  이런 분들은 보통 쉽게 40일 금식기도는 거뜬히 해 냅니다.
  하루에 기도를 다섯 시간 하는 사람, 열 시간을 하는 사람, 아예 교회에서 매일 철야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평생을 새벽기도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고 일 년이면 성격을 수십 독씩 하는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열심을 평가절하하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다만 이런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 그 열심 때문에 십자가의 능력을 소홀히 여긴다면 오히려 그 열심히 구원을 받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하면 사랑장으로 많이 알고 계십니다.
  거기에 나오는 사랑은 헬라어로 아가페(αγαπη)입니다.
  아가페는 인간관계의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랑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말씀을 대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고 우리가 주님을 닮아 가는 제자일진대 그런 사랑을 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중에서 가장 귀한 사람의 표현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그 사랑을 이상하게 흉내내려는데 대해서 좀 못 마땅한 생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 말씀에-'아가페(사랑)'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그 말속에 십자가의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없는 위로 십자가의 사랑이 없는 설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2절 말씀에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십자가의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언이나(설교) 비밀이나(진리) 지식들은 모두가 십자가로 향하고 있을 때 바른 예언이여 바른 비밀이여 바른 지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3절 말씀에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십자가의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열심만 가지고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내에는 이렇게 지식도 풍부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종교적 열심도 많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의 능력에 의지하지 않고는 구원을 받지도 못하고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많은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좀 유식하지 못합니다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열심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런 부족한 우리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 앞에 서면 우리의 부족한 것은 없어지고 오히려 풍족한 사람들 보다 더 큰 은혜를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이 십자가가 없었다면 세상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살다가 천국에도 남들 가는데 끼어 들어서 부끄럽게 가야할 판인데 이렇게 확실하게 이렇게 떳떳하게 오히려 더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 십자가를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이 십자가 앞에서 모든 사람이 다 동일한 은혜를 받게 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는 이 십자가만을 자랑하노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과 화목
  본문 말씀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양한 생각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한 몸이 되게 했으며 그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화목(아포카탈랏소,αποχαταλλασσω)이라는 말은 화평이나 형안으로 번역된 말과는 좀 다른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이 말은 "완전히 화해시키다, 은총을 회복하게 하다" 라는 말로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완전히 화해시켜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은총을 받을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수 있으며
  십자가의 능력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이 화목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1)적대감정에서 우정있는 관계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 우리는 하님과 적대관계였지만 이제는 우정을 나누는 관계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2)다시 재 연합하고 다시 관계를 맺는 것이다.
  단순히 쳐다보지도 않았던 관계가 서로 말을 하는 관계정도로 변한 것이 아니라 다신 연합하고 다시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3)친밀함이 뒤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적대감이 철저히 없어졌기 때문에 아주 친밀한 관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4)그것을 행한 분은 하나님이심을 의미한다.
  여기 화목은 쌍방의 합의에 의하여 쌍방의 노력에 의하여 된 것이 아니라 더 위에 계시는 한 분이 이 일을 행했다는 말이 이 단어 속에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5)전에 있었던 어떤 것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화목이라는 말속에는 우리들이 타락하기 전에 가졌던 그 지위를 다시 회복을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나라의 상속자로서의 지위가 회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원수관계가 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분을 우리의 지위를 회복시켜서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는 이 십자가를 자랑한다, 이 능력을 자랑한다고 자신 있게 외치시기를 바랍니다. 

3.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
  본문 말씀에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했습니다.
  그 죄로 인해 원수가 된 것을 십자가의 능력으로 소멸 즉 제거시켰다는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를 붙잡고 있는 우리에게는 죄의 책임이 죄의 형벌이 완전히 제거되었습니다.

  컴퓨터를 할 줄 아시는 분이라면 프로그램 삭제를 잘 알아야 합니다.
  쓸데없는 파일이나 프로그램은 키보드 하나만 잘 누르면 완전히 없어져 버립니다.
  처음에 컴퓨터를 잘 모를 때는 어쩌다가 보턴 하나 잘 못 눌러서 애써 만든 파일이 날라 가 버리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컴퓨터를 좀 능숙하게 다루시는 분들은 어쩌다가 실수로 삭제 된 프로그램도 잘 복구시킵니다.   
  휴지통에서 다시 찾아오기도 하고 고쳐서 복구를 시키기도 하고 아예 없어 버린  것도 그 흔적만을 가지고도 그대로 재생시키는 기술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보다 더 유능한 솜씨를 가지고 계시지만 우리가 지은 죄의 파일은 완전히 복구시키지 못하도록 제거시켜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소멸의 어원적인 뜻은 "죽이다'에서 온 말입니다.
  완전히 죽여 없애 버렸다는 것입니다.
  
  부부 싸움 할 때 보면 작은 다툼이 큰 싸움이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자꾸 자꾸 옛날 옛적의 일을 다시 끄집어내서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 싸울 때 보니까 결론을 내리기를 지금까지 일은 없었던 일로 하고 지금부터 잘 하자 옛날 이야기는 다시는 하기 없기 다 용서하기라고 해 놓고 다시 싸움이 시작이 되면 다시 또 옛날 이야기를 꺼내서 친정부모 시댁부모 이야기까지 거슬러올라가서 조상이 어떻니 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우리의 죄악들을 완전히 제거시키시고 다시는 기억하시지도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그렇게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비단 과거의 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짓고 사는 죄 앞으로 우리가 지을 수 밖에 없는 모든 죄들은 이미 그 파일조차 없애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죄
  알면서도 잘 섬기지 못한 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그 은혜에 감사하지 못한 죄
  오히려 늘 원망하고 불평한 죄
  내가 잘못을 해 놓고는 늘 하나님만 원망했던 죄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심지어 부부간에도 부모 자식간에도 사랑을 나누지 못했던 죄
  아버지로서 자식으로서 사회인으로서 교회의 직분자로서 그 사명을 다 감당하지 못했던 죄
  오히려 미워하고 시기하고 손해를 끼쳤던 모든 죄들을 하나님께서는 기억도 하지 않으시고 완전히 소멸시켜 버리셨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할렐루야!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절대 삭제하지 않는 파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행 파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준 것까지 일일이 다 기억을 하고 계셨다가 상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의 능력 아래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의 차이는 간단합니다.
  십자가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악한 파일을 지우지 않으시고 그 행한 대로 보응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의지하고 그 능력 안에 있는 자들은 악한 파일은 제거시키시고 선한 일을 행한 것만 가지고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래도 십자가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 의를 내세우려고 하십니까
  이래도 십자가의 능력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십자가만 의지하고 십자가만 십자가만 자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 앞에서는 모두가 하나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지식인이나 무식한 자나
  잘난 자나 못난 자나 
  모두가 한가지로 은혜를 받습니다.

  십자가는 원수되었던 우리가 하나님과 완전히 관계를 회복하고 화목을 이루게 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의 모든 죄의 파일들을 삭제 시키고 소멸시켜서 완전히 없애 버리게 해 주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 십자가만 붙들고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며 감격하며 남은 생애 더 멋있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