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7.1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29)
   본문 : 엡 2:15
   제목 : 우리의 화평이 되신 주님 2.       

  제가 목사가 되기 위해서 신학 공부를 하면서 그리고 목사가 되어서 목회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단어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복음'이라는 단어입니다.

  그 '복음'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부터 중점적으로 전파하신 "천국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신 중심 사역을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악한 병을 고치시니"(마4:23)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치심 즉 윤리 도덕적인 가르치심을 즁요하게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 대며...원수를 사랑하며...대접을 받고자 하는 자는 먼저 대접을 하고...주옥같은 많은 가르치심 들이 있는데 우리의 삶에 참 중요한 말씀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복음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병을 고치시는 기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예수님을 본받아 그런 이적들을 행하는 것이 중요한일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병 고치는 은사를 가장 주요 핵심으로 다루면서 자기들을 복음주의자 그것도 순 복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쁜 소식이기는 하지만 복음의 핵심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천국 복음은 대부분 소홀하게 취급을 합니다.

  제가 말하는 복음이란 이 예수님께서 핵심적으로 전파하고자 했던 그 천국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더 은 세상 더 못있는 세상 완전하고 영원한 세상인 하늘나라가 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또 복음이란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자신 있게 외쳤던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말합니다.

  이 이신칭의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그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우리를 그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는데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천국에 가게 되는 것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는 길은 고행이나 선행이나 율법을 행함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성경의 핵심이요 우리 성도들이 받은 가장 큰 축복이요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엉뚱한 것을 전하며 심지어 목사라고 하는 사람조차도 오히려 이 복음과 반대가 되는 말들을 설교라는 이름으로 자행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나 기복주의 신앙이나 이상한 기적들을 추구하는 신앙들은 자칫 잘못하면 이 십자가의 복음과 천국의 복음과 대치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축복에 마음을 두고 살게 한다면 복음과 반대의 길을 가게 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 천국에 가는 길이 믿음이 아니라 행함에 의한다고 가르친다면 복음과 원수가 되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에베소서 2장의 말씀은 그 복음을 한층 더 심도있게 다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성도에게 주신 이 복음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했던 막힌 담을 제거하고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며 우리 성도간에도 평화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자세히 살펴보면 복음의 핵심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 받아 천국백성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리고 우리 성도들과 성도들 사이에 평화를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과 사람과 원수가 되는 길로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복음과 원수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원수가 되게하는 율법을 폐하심으로 우리가 한 새사람으로 다시 지음을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이 귀한 복음의 말씀을 한마디 한마디 잘 음미하시면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1.계명의 율법이 원수가 되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원수가 되게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기록하게 하신 십계명과 수많은 규정들로 구성된 율법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요구를 가지고 온 계명의 율법" 혹은 "규정을 가지고  오는 계명의 율법"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여기 요구나 규정이란 주로 모세 율법의 의식적 부분 즉,절기, 할례, 특정의 음식물 등에 대한 제도 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어쨌든 계명이나 율법이나 규정이나 율법의 의식적인 부분이나 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원수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직접적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들과 규정들 그에 따르는 여러 절기나 제도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율법들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믿고 열심히 그 규정들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가진 그 특권 때문에 그것을 가지지 못한 이방인들과 원수관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원수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말로도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바르게 살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는데 그 율법을 바르게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율법을 어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고 진노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율법이라는 말은 은혜라는 말과 상반되는 말로 사용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이라는 잣대로 우리를 보신다면 우리는 진노의 대상이요 하나님과 원수관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율법의 눈으로 공의의 눈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신다면 우리는 죄인정도가 아니라 배은망덕을 한 아주 아주 나쁜 죄인 중에 괴수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율법의 잣대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보려고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목사님들이 이 율법을 가지고 성도들을 하나님께로 인도를 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제를 해야 합니다, 선행을 해야 합니다,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기도도 많이 해야 하고 금식이나 고행도 많이 해야 하고 충성도 봉사도 많이 해야 합니다...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그런데 그렇게 가르치면서 은연중에 그것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혹이라도 그런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처럼 가르친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처럼 가르친다면 아주 아주 큰 실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면 우리의 행함이 상을 받기는커녕 벌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두 가지 선은 행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우리의 모습은 엉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볼 때 이 공의의 눈으로 사람을 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원수관계가 되고 말 것입니다.
  한 두 가지 좋은 점은 있겠지만 우리의 모습의 대부분은 치사한 저질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멀리서 보고 속속들이 알지 못해서 좋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알고 보면 우리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속물근성을 가진 인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가지고 보면 우리가 죄인이고 그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표정들을 보니까 잘 이해가 안되시는 것 같아서 쉬운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한번 해 보겠습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미국 사람 지갑을 하나 주웠습니다.
  옛날에 우리 나라 사람은 돈이 없어서 우리 나라 사람 지갑은 주워보았자 별 볼일이 없고 주우려면 미국사람 지갑을 주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차에 치여도 미군집차에 치어여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시대이야기입니다.
  지갑을 주어 보니까 그 안에 정말 듣던 대로 돈이 잔뜩 들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잘 쓰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있다가 경찰이 찾아와서 당신을 점유이탈물 횡령죄로 체포합니다 하고 잡아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냥 생각할 때 그것이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법을 펼쳐 놓고 보니까 임자가 없는 것이라고 함부로 줍거나 사용을 했기 때문에 '점유이탈물 횡령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저는 한번도 남의 햇빛을 훔쳐서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아침이 되면 태양이 떠오르니까 쓰게 된 것 뿐입니다.
  제가 공기를 마시면서 한번도 남의 것을 훔쳐서 마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천지 널려 있는 것이 공기니까 그냥 마시고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율법을 펼쳐 놓고 보니까 그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맨날 돈 한푼도 안내고 사용했으니 횡령죄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할까요
  돈으로 값자니 수십 년간 사용을 했으니 그것을 돈으로 환산해서 얼마나 될까요 돈 주고 살 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 액수로 따지면 천문학적인 액수가 될 것입니다.

  지난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앞으로는 또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옛날에는 몰라서 그랬다고 하지만 이제 법을 알았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죄가 된다는 법을 없애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율법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기 이전에는 이런 법이 없었습니다.
  그냥 하나님 것이 내 것이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 이외에는 모든 것이 자유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리자 그 자유가 그 권한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율법을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 율법을 예수님께서 폐하신 것입니다.
  어떻게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회복시키고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함으로서 율법이 효력을 잃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2.그것을 예수님께서 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지만 율법은 나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것입니다.
  그 율법이 사람의 평가기준이 되는 것은 전혀 하자가 없습니다.
  다만 타락한 인간의 본성으로는 그 율법의 기준에 의해서는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율법을 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이 율법이요
  그 율법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고 해도 전혀 하자가 없는 것을 예수님께서 폐기처분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완전히 율법을 없애 버리셨다는 뜻은 아니라고 이해를 합니다.
  율법은 여전히 의로운 기준으로서 존재를 하지만 단 우리 성도들이 그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를 없애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율법을 완성하심으로 더 차원 높은 방법으로 해결하심으로 다시 율법의 잣대로 우리 스스로를 재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 되시지만 그래도 성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율법을 예수님 마음대로 폐하신다는 것은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의 요구를 예수님께서 충족을 시키셨기 때문에 그 의무가 면제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 구절에 다시 자세히 언급이 되지만 예수님께서 육체로 즉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희생의 제물로 드리심으로 그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폐하신 율법을 다시 가지고 나와서 서로를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율법이란 때로는 은혜라는 말과 반대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율법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고 평화를 누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우리 스스로가 지킴으로 구원을 받기에 불가능하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이 율법을 붙잡고 계실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폐기하셨고 면제 해 주신 율법을 붙잡고 계시겠습니까
  그 율법을 잣대로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며 또 남들을 평가할 때도 그 율법을 붙잡고 하시겠습니까
  은혜를 믿음을 복음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3.예수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으셨습니다.
  본문 말씀에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속의 죽으심으로 율법을 폐하신 목적을 말씀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님 안에서 새 사람으로 지음을 받아 화평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우리 서로에게도 평화가 있게 하시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서도 깊이 생각해 볼 것은  자기 안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 10절의 말씀을 공부할 때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라고 하신 그 의미를 살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재창조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새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성도간에 화평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우리가 새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에 비추어 보아서 판단을 받고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신분을 가지고는 도저히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 사람으로 새로운 신분을 가지고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새로운 것 즉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그런 신분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 사람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 성령님의 능력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또 오늘 본문 말씀에 '이 둘로 ...한 새 사람을 지어'라고 하신 말씀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둘로'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말씀 즉 율법을 중심으로 자기들의 종교관이나 가치관을 형성하고 구원의 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도 이방인 나름대로 종교가 있었고 가치관이 있었고 구원의 길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교회 안에 들어 와서도 유대인들은 유대인대로 이방인들은 이방인대로 자기들의 주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은연중에 교회의 일도 자기들이 아는 그 길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나름대로 종교관을 가지고 가치관을 형성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과거의 유교나 불교의 영향이 교회 안에 많이 들어와서 마치 성경의 가르침인양 생각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기복주의나 도덕 윤리 주의 들의 사상들이 다 거기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유대교도 아닌 다른 종교도 아닌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된 전혀 새로운 공동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하고 우리 서로가 한 몸을 이루고 사는 공동체
  서로가 서로를 평가하고 경쟁하고 질투하지 않는 공동체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아픔과 기쁨을 같이하는 공동체가 새로 창조된 공동체인 교회의 참된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은 은혜와 원수가 되는 것이며
  율법은 복음과도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원수가 되게하고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원수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율법 아래서 그 율법의 평가를 받는 죄인이 아닙니다.
  새 사람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은혜아래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만들어 주신 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용사하고 사랑하고 함께 나누는 평화의 역군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