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5.1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20)
   본문 : 엡 2:3
   제목 : 본질상 진노의 자녀              

  로이드 존스 목사는 "원죄"라는 제목으로 오늘 본문말씀을 강해 설교하면서 인간들이 하나님께 반항하고 불순종하는 대표적인 것에 대해서 이렇게 세가지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이 자기 자신이 피조물임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에 의해서 지어졌으며 창조되었다고 하는 생각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위에 누가 군림해 있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런 인간의 마음에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은 것입니다.

  마치 불효자식이 아버지에게 효도하지 싫어서 부모님이 자신을 낳아 주신 그 은혜를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셨으면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인간은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 충분하다고 주장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졌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살아가고 있으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만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직접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도무지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생각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마치 부모님의 도움이 없이 자기 혼자 스스로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인간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교리에 가장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형편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자존심 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힘의 능력을 믿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선을 행하여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대항하여 범죄했을 때부터 인간의 마음에 근본적으로 자리잡은 원죄에 기인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말씀에 표현하기를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냄
  오늘 본문 말씀에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라고 했습니다.

  육체의 욕심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또 우리의 마음이 원하는 것이라고 하여 다 죄는 아닙니다.
  여기에서 육체의 욕심이나 마음의 원하는 것이란 성령충만과 반대되는 말로 인간의 죄악된 본질에서 오는 욕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살아야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사탄이 주는 악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대하여 반항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육체와 본래 인간의 마음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었지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범죄한 이후의 인간의 생각들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래도 하나님 말씀으로 훈련이 되었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으로 조금은 바른 생각을 하고 선하게 살려고 애를 쓰지만 하나님께로 버림을 받고 사는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은 늘 악할 뿐입니다.

  물론 교회에 다니지 않은 사람 중에도 교양교육을 많이 받고 다른 종교에서라도 선한 양심에 대하여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그래도 양심적으로 살려고 하지만 교육되어지지 않고 훈련되어지지 않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늘 악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밭에 잡초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마음이 그와 같다는 것을 늘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그 밭에서 잡초를 늘 제거해주지 않는다면 그 밭은 금방 온갖 잡초로 가득하여 필요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무익한 잡초는 심거나 가꾸는 사람이 없어도 어디서 나오는지 자동으로 나고 자동으로 자랍니다.
  그러나 유익한 채소나 과일은 정성을 다하여 심어야 하고 가꾸어야만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육신의 생각과 마음은 늘 나쁜 생각을 제거하는 작업을 해 주어야 하고 성령님이 충만하도록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윗왕을 잘 아실 것입니다.
  성군 다윗이라고 하고 왕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바른 정치를 할 때 다윗의 뒤를 따랐다고 표현을 할 정도로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서부터 받은 믿음의 훈련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울왕이 교만하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보내셔서 이새의 아들 중에서 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가니까 다윗의 형들이 일곱 명이 있었는데 다 용모나 신장이 왕의 재목으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밖에서 양을 치고 있는 소년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돨 사람으로 정하게 했습니다.

  왕이 될 사람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다윗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그 날 이후로 다윗에게 여호와의 신이 크게 감동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그 마음에 역사하셔서 그로 하여금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그 키가 3m나 되는 불레셋 장군 골리앗을 물매와 돌 하나로 때려 눕힌 것은 우연히 그냥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훈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목동으로 양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고 믿음을 주셔서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을 물어가면 가서 사자나 곰의 수염을 잡고 쳐 죽이고 양을 되찾아 오곤 했습니다.

  그런 경험으로 후일 다윗은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편)라고 했습니다.

  그런 경험과 훈련들이 그를 그 거대한 골리앗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 수 있게 하였으면 후일 훌륭한 왕이 되게 하였습니다.

  제가 오늘 다윗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의 훌륭한 면을 이야기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 다윗도 육체를 따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했을 때 큰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뭔가 일이 잘 되어가고 있을 때 마음을 놓고 훈련을 계속하지 않을 때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본성이 살아 나온다는 것입니다. 

  한가한 어느 날 저녁에 왕궁 지붕에 올라가서 거닐다가 이웃집 여인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그 마음에 있던 죄악된 본성이 되 살아나서 죄를 짓고 만 것입니다.

   그 예쁜 여인이 누구인가 알아보니 자신의 군대의 군인이었던 우리아라는 사람의 아내였는데 전쟁터에 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에 나가 있는 부하의 아내를 가로채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믿음의 훈련을 받고 정말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던 그가 잠시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동을 하게 되니까 그의 평생에 지울 수 없는 큰 수치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죄는 남의 아내를 빼앗는 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죄는 또 다른 죄를 짓게 하고 점점 악하게 하여 결국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는 큰 불행을 자초하고 마는 것입니다. 

  다윗이 동침한 그 여인이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마시키기 위해 전쟁에 나가 있는 우리아를 휴가를 오게 해서 집에 가게 했습니다.
  휴가를 왔으면 모처럼 집에 들어가서 아내와 잠을 잤으면 문제가 그것으로 무마가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우리아는 충성심이 강하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라서 부하들이 밖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데 나만 혼자서 편히 잘 수가 없다고 하여 집에 들어가지 않고 군사들과 밖에서 잠을 자고 귀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한번 악해진 다윗은 계속 죄를 짓는데 부하를 시켜서 우리아를 전쟁이 아주 맹렬한 최 전방에 혼자 나가서 싸우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살며시 뒤로 빠지라고 해서 전사를 하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내를 왕궁으로 데려와서 자기 아내로 삼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서 그 남편까지 죽게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삼하11:27)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훈련을 잘 받았던 믿음의 사람 다윗도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이렇게 큰 죄를 지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주는 것입니다.
  정말로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2.본질상 진노의 자녀
  오늘 본문 말씀에 이렇게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본질상'이라는 말은 태어나면서부터 있던 천성적인 것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천선적으로 죄 가운데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진노'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악에 대해 심판하시는 분이시며 범죄한 인간은 반드시 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영원히 멸망을 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 수치스러운 죄를 짓고 나서 그의 심정을 이렇게 시로 표현을 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위대한 줄 알았는데 잠시 한눈을 팔고 잠시 방심을 하니까 아주 나쁜 사람이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본성 속에 있는 죄악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출생을 한 것이 죄악 중에서 한 것이고 모친이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여서 본질적으로 진노의 자식이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의 마음 속에는 이렇게 본질적으로 죄의 씨앗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 죄악의 씨가 역사를 하여 범죄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매일같이 씨름하며 산지가 8년이 되었습니다.
  개 중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공부하기를 싫어합니다.
  매를 들고 억지로 시키니까 마지 못해서 하는 것이지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나서는 아이는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장 학교에 가는 것 그만 둘 것이고 오락이나 컴퓨터 앞에만 있을 것이고 먹는 것도 몸에 좋지 않은 것만 먹을 것이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집을 나가서 밖으로 떠돌기 시작을 하면 그 생활에 금방 젖어 들어 버립니다.
  누가 간섭하거나 시비하거니 하기 싫은 것을 시키는 사람도 없는 세상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아직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윽박지르고 억지로라도 시키고 교육시키고 훈련을 시키니까 이나마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가면 갈수록 그 교육이라는 것이 힘이 들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악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이 그 악에 너무 쉽게 노출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면 갈수록 부모들이 뭐라고 해도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학교도 이미 아이들의 도덕이나 인격적인 교육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의 말도 안 듣고 학교 선생님의 말도 안 듣고 누가 이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 가르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을 키워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교회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교회를 통하여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도록 해야 하고
  교회는 그런 교육을 바르게 시킬 수 있는 만반의 준비와 시설과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3.우리도 다 같이 
  오늘 본문에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을 말하면서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다른 이들과 같이"라고 했습니다.
  이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까지도 전에는 다 그 부류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한가지 더 예를 들겠습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솔로몬을 아시지요
  이 솔로몬이 누구에게서 난 아들입니까
  그렇습니다 아까 다윗이 남의 아내를 빼앗아 왔는데 그녀의 이름이 밧세바라는 여인입니다.  
  솔로몬은 그 불륜의 관계로 맺어진 밧세바를 생모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솔로몬왕도 다윗왕 못지않게 이스라엘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런 위대한 인물이 본 부인이 아닌 첩 그것도 남편을 죽이고 뺏어 온 죄악의 씨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설명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윗왕도 솔로몬 왕도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도 그 자신 속에 있는 죄성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롬7:19)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7:21)
  그래서 "오호라 !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절규했습니다.

  다윗왕이나 솔로몬왕이나 베드로사도나 바울사도 모두가 다 죄의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었음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들의 마음 속에도 다 이와 같은 죄악은 본질이 있고 우리 자녀들의 마음 속에도 이와 같은 죄의 본질들이 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죄 가운데서 행하며 세상 풍조를 따르며 사탄의 지시를 따르면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타락한 육체의 욕심과 타락한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하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위대한 신분을 주셨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 속에는 본질적으로 범죄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본성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성령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