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4.1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15)
   본문 : 엡 1:20
   제목 :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 

  요즘 인터넷에 자살 사이트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자살할 사람들에게 방법을 가르쳐 주고 약을 구해 주기도 하면서 자살을 도와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자살을 할 방법을 배우고 실제로 자살을 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마르탱 모네스티에( Martin Monestier)라는 사람이 오랫동안 자살에 대하여 연구를 해서 자살에 관한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자살"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 의하면 각 나라마다 자살을 하는 동기나 방법들이 다르다고 합니다.
  자살하는 이유도 천차만별이고 자살하는 방법도 천여 개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많아서 전 세계에서 매년 45만 명이 자살을 하고 있다고 하니 웬만한 도시 하나가 1년마다 자살로 없어지는 것입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과연 어떤 생각으로 자살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절박한 심정이면 자기 자신을 죽여서 없어져 버리고 싶을까 하는 동정심도 있지만 문제는 자신의 삶을 책임있게 살지 못하고 회피한다는데 있어서 동정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과연 그 사람들이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모든 것이 끝이나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살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또는 지금 처한 이 형편보다는 나은 세상이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자살을 할 것입니다.

  자살한 이후에 오히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지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자살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내세를 모르고 부활을 모르고 영생복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으로 지난 시간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 즉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여 완전한 세상에서 영원토록 영생복락을 누린다는 엄청난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잘 믿지를 못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좋겠고 안되면 안 되는 대로 산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 부활절을 맞이해서 이 부활의 신앙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확신이 있다고 해서 부활을 하고 확신이 없다고 해서 부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은 다 부활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왕 신앙생활을 할 것이면 신앙생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 놀라운 사실을 알고 믿고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너무나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자연의 세계에 나타난 부활의 징조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방법으로 자연계시를 이용한다고 했습니다.
  이 자연세계에 나타난 모습들을 보면서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는 방법입니다.

  부활을 생각할 때도 하나님께서 자연 속에 부활의 징조들을 남겨 두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부활한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라 라고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원리를 자연세계를 통해 보여 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봄이 되니까 여기저기서 새 싹들이 돋아나고 마른 나무에 새 잎이 나고 벗꽃이나 목련같은 꽃은 잎도 나오기 전에 예쁜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꽃이 지고 잎이 진다고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니까 다시 꽃이 피고 다시 잎이 나고 다시 새싹이 돋아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을 보면서 아 인생도 한번 가면 끝이 아니라 다시 피어나는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곤충들의 한살이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런 모습으로 태어나서 살다가 죽지만 곤충은 그 일생을 통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면서 삽니다.
   매미나 나비같은 곤충은 처음에는 알로 태어나서 애벌레가 되어서 땅에서 살다가 번데기가 되었다가 성충으로 모습이 변해져서 하늘을 날면서 사는 것입니다.
  번데기가 될 때 이 곤충의 모습은 한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아니하고 고치 같은 것의 속에 가만히 들어 있어서 마치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죽은 것 같은 그 번데기가 나비로 매미로 변해서 하늘을 날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곤충이나 식물 보다도 우월한 우리 인생들은 더 나은 방법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원칙이 있는 것을 봅니다.
  죽은 것 같은 나무들이 다시 꽃을 피우고 잎을 내는 것은 그 속에 생명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뿌리가 말라 죽었거나 나무에서 잘려져 나가서 이미 마른 나무에는 새싹도 꽃도 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싹이 돋는 것은 생명이 있는 한 알의 씨가 썩어져서 죽을 때 그 양분을 먹고 씨앗이 새싹으로 움이 트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하는데 있어서도 이런 원리가 적용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있기 때문에 그 죽음을 근거로 하여 새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속에 생명의 씨가 있는 사람만 즉 영혼이 살아 있는 사람만 부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생각할 것은 자연의 이치에서 다시 나는 것들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나무들이 계절 따라 잎이 피고 꽃이 피는 것이 반복이 된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시들고 죽고 마는 것입니다.
  매미나 나비가 번데기에서 성충이 되어 하늘을 난다고 하지만 얼마 살지 못하고 다시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연의 현상들이 부활의 어떤 근거는 되지만 우리가 부활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부활은 이런 불완전에서 완전으로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완전한 곳 완전한 모습으로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입니다.


  제가 요즘 계속해서 동네 뒷산에 산보를 다닙니다.
  한 시간쯤 바삐 걸으면서 설교할 말씀들을 묵상하면서 다닙니다.
  가끔 묵상은 안하고 저도 모르게 공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주로 해 뜨는 집을 사는 공상입니다
  어디서 돈을 좀 많이 벌어와서 해 뜨는 집을 사서 전원교회로 꾸미고 우리 성도님들 기술이 있어도 돈이 없어서 사업을 못하는 분들 다 사업을 하게 해 주고 빚이 있어서 걱정하는 사람들 빚도 다 갚아 주고 집이 없는 사람들 교회 옆에 아파트를 지어서 한 채씩 나누어 주고...

  그렇게 하려고 하니까 돈이 한 두푼 드는 것이 아닙니다.
  수십억 수백억은 가져야 좀 넉넉하게 쓰면서 살겠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돈벼락을 좀 내려 주시지 않으실까
  돈을 좀 주시면 하나님의 자녀들을 오순도순 모여서 아주 행복하게 살게 해 줄텐데...

  그렇게 투정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이지...
  막상 그렇게 된다고 해도 이 세상에 있는 한 오히려 그 재산 때문에 서로 싸움이나 하지 행복한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아름다운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닌 저 하늘나라에 내가 마련해 두었다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려고 하지말고 영원한 나라 완전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다 들어오기만 하거라...


2.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성
  부활에 대해서 성경은 너무나 확실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오다가 가다가 던진 한마디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성경의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부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너무나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의 신앙은 고사하고 기독교 신앙전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 부활이 사실이냐에 대해 우리는 분명한 증거를 가져야 합니다.

  나아가 내가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 사실로 고백하고 믿고 있느냐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부활을 사실로 믿지 아니하면 그분과 나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바울, 요한, 마태, 누가, 야고보, 마가 등 많은 제자들이 한결같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2)예수님이 친히 살아나심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살아나셨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단 한 시간도 아닌 무려 40일 동안, 그리고 단 한 사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 앞에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음을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3)무덤이 비어 있었던 것이 증거합니다.
  마 27:57-66을 보면 주님의 시체를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 바위 속에 판 무덤에 장사했고, 또 큰돌을 굴려 무덤 문을 인봉하고 파수병들이 굳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권능으로 살아나사 거기로부터 나오셨기에 무덤은 비고 만 것입니다.

4)원수들의 거짓말이 증거합니다(마 28:11-15).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왔던 여자들이 가고 난 후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에게 고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서로 의논한 후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고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고 거짓보고를 하게 했습니다.

5)많은 성도들에게 일시에 보이신 사실이 증거합니다(고전 15:6).
  부활하신 예수님은 같은 시간에 500여명의 성도들 앞에 보이셨습니다.
  그 성도들 중 바울이 부활장이 있는 고린도전서를 기록하고 있는 지금도 절반이나 살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이 거짓말이라면 금방 탄로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 사실을 증거해 줄 성도가 지금도 절반이나 살아 있다고 증거하고 있으니 부활은 진정 사실인 것입니다.

6)천사들이 증거했습니다(마 28:5-6).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신 곳을 보라."라고 했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의 확실성에 대해 너무나 많은 말씀들을 하고 있습니다.


3.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산 사람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사람들의 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을 목격하고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삶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1)제자들의 담대한 삶에서 부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전에 제자들은 고난과 핍박 앞에 너무나도 나약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 이후의 제자들의 삶은 완전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죽기를 무서워 하지도 두려워 하지도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모두 한결같이 비참한 모습으로 순교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자신들도 부활한다는 신앙으로 기꺼이 죽음의 길로 갔다고 합니다.

2)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에서 부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5-36절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부모 앞에서 자식이 사자 밥이 되기도 하고 남편 앞에서 아내가 사자 밥이 되기도 하는 비참함 속에서도 그들에게는 부활의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도 비굴해지지 않고 떳떳하게 담대하게 사자 밥이 되기를 자청했다는 것입니다. 

3)수많은 순교자들의 삶에서 부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사를 공부하면 기독교 역사 가운데 수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위해 순교를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조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기꺼이 자신이 가진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들이 가진 복음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바울처럼 매를 맞고 굶주리고 자지 못하고 고난을 당하고 순교를 당한 수 많은 사람들의 삶에서 부활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희 막내 할아버지 양용근 목사님도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수교하신 부활의 증인이십니다.

  일제 말엽에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시다가 일경에 잡혀 가셨습니다.
  그들이 만든 죄목에 의하면 천국왕국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왕국은 일본이고 천황이 있는데 그것을 두고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전파하고 그 하나님 나라의 왕국을 선포하고 다닌다는 것이 죄목이었습니다.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으시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으시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목사님의 재판을 담담한 판사가 목사님의 인품이 너무나 아까워서 회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일본에 유학을 하셔서 일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셨고 지금도 제가 사진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인물이 훤칠하게 잘 생기셨습니다.

  담당 판사가 찾아와서 목사님 제가 재판을 하면서 뭐라고 묻든지 예나 아니오나 그저 아무 말도 하지말고 가만히만 계십시오 그러면 제가 제 질문에 대답하신 것으로 간주해서 석방을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예수 안 믿겠지요 하나님의 왕국이니 그런 것 없지요 부활이니 영생이니 그런 것 없지요 라고 물을 때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예로 답한 것으로 간주해서 내 부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 목사님이 간단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내 영혼이 죽는데도요..
  이 땅에서 조금 더 살겠다고 영원한 나라를 부인하고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었고 영생을 믿었고 그 나라를 사모했기 때문에
  목사님은 조금도 주저하거나 망설임이 없이 이 세상의 삶을 포기하고 찬국 영생의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예수님의 부활에 능력을 주셔서 우리 성도들도 그와 같이 부활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