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3.2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12)
   본문 : 엡 1:18
   제목 :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육체적인 불구를 가진 사람은 다 불행한 사람이지만 그 중에서도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제일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많은 것을 본다고 하지만 생전 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더 많은 볼거리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보는데 만족하지 않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는데 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미경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너무 작아서 볼 수 없는 아주 세밀한 것을 보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 결과로 오늘날은 물체를 20만 배로 확대해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망원경이라는 것을 발견해서 너무 멀리 있어서 볼 수 없었던 저 은하계의 별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공위성에서 우리가 사는 지구를 촬영해서 땅에 개미 한 마리의 움직임까지 관찰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몸 속을 촬영해서 볼 수 있는 X-ray라는 것을 발견하여서 우리 몸 속의 뼈나 또 질병을 촬영해내는 기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요즘은 CT나 MRI 같은 것이 등장해서 더 자세하게 우리의 몸 내부를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제는 거짓말 탐지기나 뇌파 촬영 등을 이용해서 사람의 마음 속까지 보려고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 최면술을 이용해서 잠재의식의 세계까지 관찰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이 마음의 눈이 밝아지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 나라는 우리와 차원이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이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우리들은 '총명이 어두웠고'(4:18), '어두움'에 거하는(5:8).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님의 조명하심으로 복음을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고 하나님께 대한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더 충만하게 역사하시어서 우리의 마음의 눈이 더울 밝아져서 진리를 더 잘 이해하고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영원한 천국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바울은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바르게 볼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을 크게 두 가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성령이 충만해서 영안이 열려서 엉뚱한 것을 보고 알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투시의 은사를 받아서 사람의 마음을 보려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 속을 보아서 좋을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것이 낫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언의 은사를 받아서 사람들의 미래를 보았으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일 일을 안다는 것은 사실 불행한 일입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이라도 이렇게 맘 편히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충만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그 소망이 얼마나 위대한 줄 알고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그의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 보게 되는 것들에 대하여 오늘 말씀에 보면 먼저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사 영광스러운 소망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전에는 어두워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였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들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심으로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이 영광스러운 소망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밝히 보고 깨닫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심에는 여러 가지로 부르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창세 전에 선택하심으로 부르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은 이미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창세 전에 이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하시고 선택하심으로 이미 불러 주신 부르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 에베소서 1장 4-5절 말씀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불러주신 부르심은 어느날 갑자기 기분이 내키는 대로 그냥 불러주신 그런 부르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창세 전부터 예정하시고 선택하셔서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공부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선택하셨다는 말씀의 의미를 말씀 드렸습니다.

(1)선택의 확실성을 말합니다.
  아예 우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 세상이 생기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선택을 하시고 이 세상을 시작하셨으니 우리의 선택은 너무나 확실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구원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 때에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선택을 하셨다는 것은 구원 받을 자로 선택을 받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3)우리의 삶과 무관하게 선택하셨음을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요 스스로 깨끗할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아시고 스스로 의인이 될 수 없는 사람들 중에서 그 죄와 관계없이 구원 받을 자를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4)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실 권한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일이나 마음대로 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 절대주권으로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이 세상에서 교회의 일원으로 부르신 부르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게 하심으로 이렇게 부르심을 받아 교회에 나오게 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알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3)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르신 부르심
  또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르신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일들을 해 나가시면서 특별한 사람들을 때를 따라 부르시어 일을 해 나가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로 어떤 사람은 장로로 어떤 사람은 집사나 권사로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임무를 주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가 맡은 일들이 다 있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도 그저 아무 할일 없이 그냥 부르시지는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바로 알고 열심히 일을 하거나 그것을 알지 못하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하는 차이지 모두에게는 다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4)영원한 천국 백성으로 들어가는 부르심
  요한계시록 3:5절에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혹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을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서는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셨나니라"고 하여 우리를 부르심이 영원한 영광에의 부르심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부르심인데도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 부르심을 소홀하게 대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의 소망들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돈도 많이 벌어서 재벌이 되어보고 싶은 소망도 있습니다.
  출세도 하고 보람 있는 일도 많이 하고 잘 살고 싶은 소망도 있습니다.
  한평생 살면서 크고 작은 많은 소망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소망이 때로는 이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실망을 안겨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소망들은 결국에는 끝이 나고 마는 별 볼일이 없는 소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셨다는 것과 영원토록 우리의 이름을 잊지 않으시고 영원한 나라로 우리를 불러 주신다는 이 소망 보다 더 좋은 소망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도 우리를 이렇게 불러주셨습니다.
  또 여러 가지 일꾼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이 세상이 마치는 날 영원한 세계로 우리를 부르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부르심에 대한 소망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을 알게 하소서
  본문 말씀에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되기를 원하고 그리고 우리가 받게 될 그 영원한 나라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성도들은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어서 속히 그 나라에서 가서 살기를 바라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죽기살기로 발버둥치면서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렵게 사느니 빨리 천국에나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세상이 너무나 살기가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구경갈 곳도 많고 하고싶은 일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이 세상에서 더 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면서 살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건강이 제일이요 목숨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기 시작을 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천국이라는 개념들이 흐려지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천국보다는 이 세상이 좋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게 될 그 천국이 그렇게 시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살기가 편하고 재미난 일이 많은 세상이 되었다고 해도 그 천국의 영광과 비교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일들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는가 면 그 즐거움 이면에는 더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서 많은 시간들을 고생을 해야 합니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상에 느끼는 잠깐의 상쾌함을 위해서 많은 시간들을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일류대학에 합격하는 그 기쁨을 위해 수많은 세월들을 밤잠을 자지 못하고 고생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 고통이 다 보상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와 좌절을 맞볼 때 몇몇의 성공자들만 기뻐하는 것이 이 세상의 일입니다.

  세상이 살만해지니까 우리가 잠시 착각을 하고 살 뿐입니다.
  아무리 좋은 세상이라고 해도 떠나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사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신 천국은 영원한 나라요 완전한 행복이 보장된 나라요 이 세상의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너무나 영광스러운 나라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세상보다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면서 살자고 할 때 우리가 잘 못 생각하기 쉬운 것은 염세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 세상을 포기하고 천국만 가려고 애쓰자 라고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세상을 책임있게 살자는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질서를 유지하고 있고 사람마다 조금씩 선한 생각을 가지고 양심을 버리지 않고 사는 이유는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는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죽은 다음에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막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이럴진대 우리 성도들은 더욱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얼마나 풍성한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을 더욱 책임있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작년에 유난히 초상을 많이 당했습니다.
  부친께서도 돌아가셨고 집사람 작은 아버님도 돌아가셨고 저를 목사되도록 인도하셨던 선교사님도 돌아가셨고 교회에도 초상이 났습니다.
  그래서 상주가 되기도 하고 문상도 하고 장례식을 집례하기도 했습니다.

  장례식을 치르면서 부른 찬송 중에 "내 본향 가는 길 보이도다"하는 "내 본향 가는 길"이라는 찬송이 가슴에 늘 남아 있습니다.

  그 3절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평생에 행한 일 돌아보니 못다 한 일 많아 부끄럽네"
  내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이런 노래를 부를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정말 안타까운 생각이 늘 가슴에 와 닿습니다.

  참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들도 많았는데 그 일을 얼마나 책임있게 하고 가는가 라고 생각을 하니까 너무도 부끄러운 것입니다.
  이제 남은 생애만이라도 내가 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구나 하는 다짐을 해 보지만 후회없이 다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3절 마지막에 이렇게 노래합니다
  "아버지 사랑이 날 용납하시고 생명의 면류관 주시리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의 눈이 활짝 열리기를 저도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불러 주신 그 소망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또 여러분들이 받게 되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사실을 알고 이 세상에서 더 보람되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갚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충성을 다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