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3.1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11)
   본문 : 엡 1:17
   제목 :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옛날 TV 프로그램 중에 "진품 명품"이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오래된 골동품을 가지고 오면 전문가들이 모여서 그 골동품의 가치를 조사하여 현 시가로 얼마짜리나 되나 하는 것을 알아보는 프로그램입니다.

  어떤 물건은 우리 눈으로 보기에 별로 귀중하게 보이지 않는 것인데 전문가들의 감정을 받고 나면 의외로 엄청난 가격이 책정되는 것을 보고 놀라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전에는 시골로 이런 골동품을 수집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시골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골동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엿이나 바꿔 먹어 버렸습니다.

  엿 바꿔 먹은 다음에 그것이 진품이요 명품으로서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원통해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천국의 비유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13: 44)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13:45,46)

  이 세상은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소중한 것인 줄 알아보지 않고 엿이나 바꿔 먹어 버리는 경솔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사람은 아주 소중한 것을 발견하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그 소중한 것을 차지하고 마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너무나 소중한 신분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소중한 것을 미쳐 알아보지 못하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소중한 것을 소홀히 여기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신앙의 참된 의미를 알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애도 바울의 기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분명히 알면 알수록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알면 알수록 우리에게 큰 힘과 위로와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존 맥아더 목사의 교회론이라는 책에 교회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뼈대를 이루는 가장 소중한 것이 다섯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첫 번째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일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높은 차원의 견해를 가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 때 하나님에 대해서 차원 높은 견해를 가질 때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그의 소원 첫 번째가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더 잘 알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교회들의 주보를 보면 앞면에 목표라든지 교회상이라든지 기도제목이라든지 해서 그 교회가 추구하는 바를 적어놓고 있는 것을 봅니다.

  대부분 주일성수를 잘합니다
  십일조를 냅시다
  예배에 꼭 참석합시다
  개척교회를 세우고 선교사를 파송합시다...이런 내용들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교회 주보를 보십시오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고 경외하는 교회" 얼마나 귀한 목표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목회자나 평신도나 한 사람도 우리 주보를 보고 아 광성교회 5대교회상이 참 좋습니다 라고 칭찬하는 사람 한 사람도 못 봤습니다.

  우리 가족들이나 친척들이 가끔 어디 갔다가 오거나 우리 교회에 방문을 하면 은근히 자기가 다니는 교회나 다녀온 교회들의 주보를 저에게 줍니다.
  교회가 얼마나 부흥해서 얼마나 큰 교회당을 짓고 성도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 큰 교회 목사가 어떻게 설교를 하는지 저보고 배우라는 뜻입니다.
  그 뜻을 알기에 주보를 주면 상세히 잘 살펴 봅니다 모든 면에서 참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주보에 우리교회 같은 이런 귀한 뜻을 가진 교회상을 기록해 놓은 주보는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주보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저가 목표로 하는 목회의 방침이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여러분들이 이 하나님께 대한 높은 차원의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아느냐에 다라서 그 신앙이 천차만별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말할 때 우리 교회는 이런 저런 것들이 좋다 특별히 우리 목사님이 너무나 훌륭하다 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신앙은 너무나 위험합니다 사람을 보면 실망을 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우리기 믿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바르게 알고 믿고 따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임을 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1.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오늘 본문 말씀에 바울은 그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그리고 "영광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에서 의식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표현을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영광의 아버지"이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1)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우리는 신학적으로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도 하나님이시오 성자 예수님도 하나님이시오 성령님도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분 하나님이 영광과 권능과 본질이 동등한 하나로 존재하신다는 신비한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삼위로 나타나 있는 하나님에 대해서 혼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기도할 때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님도 하나님이시니까 아무에게나 기도해도 어떻겠느냐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기도할 때 예수님 감사합니다 라고 시작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날 대신 직접 죽어주신 너무나 큰 은혜를 주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이 더 쉽고 친근하게 생각이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우리 속에 가까이 내주 동거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니까 성령님께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은 각 사역이 다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는 반드시 성부 하나님께 기도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며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아가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날 대신 지신 그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성부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2)영광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나는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광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아버지라고 할 때 우선 하나님께서 어떻게 영광스러우신 분이신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영광이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는 우리 인간의 언어로 표현을 할 수 없는 너무나 찬란한 영광입니다.

  그 거룩하고 찬란한 영광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우리들에게도 그 영광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4-5)

  그리고 22절에는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고 그런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시며
  예수님은 하나님께 받은 그 영광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예수님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영광의 아버지이시면 우리 성도도 영광의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2.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란 단어에 대하여 어떤 학자들은 진리나 사물을 판단하는 사람의 이해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인간의 정신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것을 받아 들이고 이해하게 하는 것은 성령님이므로 성령님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계시의 말씀을 알도록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1)성령님의 지혜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그 시대상으로 보나 교회의 환경으로 보나 간구할 것이 많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가 풍성하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는 인간이 살아가는 근본적인 지식입니다. 
  인간의 본분인 하나님을 알고 섬길 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수도없이 많이 알아서 박사가 되는 것 보다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인생의 참된 목적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혜를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2)성령님께서 계시를 잘 알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이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또 그 계시의 말씀을 읽는 자들에게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을 때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셔서 그 말씀의 진리를 바르게 알도록 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는다는 것은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성경 말씀을 잘 이해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잘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지혜의 성령님도 계시의 성령님도 결국은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이 제일 큰 목적입니다.

  성도들은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받은 지혜와 계시에 의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어떤 증명에 의한 지식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바빙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누가 기독자에게 묻기를, '너는 왜 믿느냐?'라고 하면 기독자는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또 묻기를, '어떻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게 되는가?'하면 그는 다시 대답하기를,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그렇게  믿도록 역사하여 주시기 때문이다'라고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육에 속한 우리들이 전혀 분별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였지만 성령이 오시게 되면 영적인 사람이 되어 영이신 하나님을 깨닫고 발견하고 알아 믿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기 전에는 의심만이 있었고, 
  성령님이 오시기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지 않았으며, 
  성령님이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알지도 못했고 믿으려 하지 않았던 사람이 
  성령님이 오시자 믿음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시인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 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으로만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 지역 국회의원인 이 모 국회의원을 잘 압니다.
  그가 과거에 어디서 태어났고 어떤 학교를 다녔고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를 잘 압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그 사람을 잘 아는 것은 압니다.

  그저 외형적인 것만 알 뿐이지 속 마음도 모르고 서로 잘 만나지도 않고 교제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아는 것은 안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아는 앎에 있어서도 그저 단순한 지식만으로 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더 깊이 알고 더 깊이 교제하고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 때 그것을 아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은 외형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깊은 관계를 맺고 더 깊이 의지하면서 삶 속에서 경험하고 같은 뜻을 품고 같은 방향으로 함께 동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삶에 제일 우선적으로 생각할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바르게 알고 더 깊이 알고 더 차원 높은 지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역사하심으로 지혜를 주시고 계시를 알게 해 주셔서 하나님을 더욱 잘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단순히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아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강하게 역사하셔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성하게 해 주실 것을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