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2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47)
   본문 : 엡 3:16
   제목 : 속사람의 강건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지난 시간에 14-15절의 말씀을 통하여 기도의 이유와, 기도의 대상, 그리고 기도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사람이 되었고 또 하나님의 권속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기도의 대상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심으로 그 아버지께 기도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자세는 무릎을 꿇고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 앞에 겸손한 자세로 기도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오늘부터는 그 기도의 내용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내용을 말씀 드리기 전에 먼저 기도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하나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할 때 기도란 단순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고만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 이렇게 해 주세요 하나님 우리에게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 기도의 전부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는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중언부언하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기도에는 단순히 말씀을 드리는 것 그 외에 또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바울이 기도하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내용의 핵심은 우리의 속 사람이 강건해지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단순히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만 생각을 한다면 다른 수식어들은 필요 없이 그냥 '하나님 우리들의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해 주옵소서' 라고 만 기도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기도하지 않고 뭐라고 했습니까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라고 했습니다.
  또 '성령으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기도가 단순히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만 끝이 나는 것이라면 구태여 영광의 풍성을 따라 해 주세요 성령님의 능력으로 해 주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드리면 오히려 하나님을 무시하고 내 생각대로 해 달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불경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이 기도에다가 이런 말들을 넣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께 말씀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 외에 어떤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도란 단순히 하나님께 말씀만 드리고 나는 열중쉬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그 일을 내가 잘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 저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니까 나는 여기서 놀고 있을 테니까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처리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함에 있어서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고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라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의지나 노력이나 믿음과 상관이 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행하시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 특별한 기도에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기적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이나 특별한 하나님의 뜻을 진행시키기 위한 특별한 기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보편적으로 드리는 기도는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행동이 있어야 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렇게 기도할 때 그 응답이 자연적으로 응답이 되도록 해 두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삶의 법칙 속에 우리가 올바른 목표를 세우고 믿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드리면서 행동에 옮기면 그 일이 원하는 바대로 되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몸이 아프거나 약해지면 약을 먹습니다.
  그런데 그 약 자체가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약을 먹을 때 우리의 몸이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자극을 받아서 힘을 잃었던 기능이 그 기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 반응을 함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이 70%이상을 차지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저희 형제 중에 한의사가 한 사람 있어서 가끔 몸이 약한 우리 성도님들을 모시고 가서 치료도 받고 약도 지어먹게 합니다.
  그 중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있어서 좀 부탁을 합니다.
  약 좀 싸게 해 줘 공짜로 좀 주면 안될까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면 이런 말을 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병원이라고 꼭 이익만을 추구하지는 않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에게 공짜로 혹은 싸게 보약을 지어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약 효과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약을 공짜로 받거나 싸게 산 사람은 그 약에 대한 신뢰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이고 공짜로 준 것 뭐 좋은 재료 썼겠나 저 중국에서 가져온 것 그 중에서도 싸구려 몇 개 넣어서 지었겠지라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을 먹는 것도 성의가 없이 건너 뛰기도 하고 끝까지 잘 안 먹고 내버리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약을 비싸게 지어서 가지고 간 사람은 물론 비싼 약에는 비싸고 좋은 재료가 들었겠지만 먼저 그 약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을 먹을 때도 아주 정성스럽게 시간을 꼭 맞추고 먹지 말라는 음식도 절대 안 먹으면서 약을 잘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벌써 70%는 병이 낫고 몸이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도 그와 같은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믿음없이 약을 먹는 것처럼 믿음 없이 기도를 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토대로 의지를 가지고 실천을 하려는 그런 마음이 없이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그렇게 실천을 하면서 기도를 드리면 이미 70% 이상이 자동으로 응답이 되어지도록 해 두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지금 그런 특별한 기도의 요소를 염두에 두고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그 내용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옵시며
  먼저 속 사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4:16절에 보면 "우리의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은(속 사람) 날로 새롭도다"라고 했습니다.
  겉 사람이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이 육신이라면 속 사람은 영혼이다라고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날마다 늙어 가고 병들어 가고 죽어 가지만 우리의 속 사람 즉 영혼은 날마다 더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이 말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속 사람은 인간의 영혼, 마음, 이성과 의지가 활동하는 인격을 가리킨다."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영혼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포함한 것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속 사람의 강건이란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살아가는 마음의 세계까지 강건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 세속적인 사람은 외형으로 나타나는 겉모습에 관심을 가집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부분만 신경을 씁니다.
  넓은 평수의 집에 관심을 가지지만 그 안에 사는 가족간의 사랑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좋은 옷 비싼 명품 장신구에 관심을 가지지만 자신의 인격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화장을 하고 위장을 하고 변장을 하고 온갖 방법으로 외모를 아름답게 하지만 그 속에 있는 마음의 아름다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그래도 좀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속 사람을 위해서 신경을 씁니다.
  교양서적들을 많이 읽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필요한 지식들을 많이 습득하고 속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겉 사람 즉 육신은 아직 그대로이지만 그 속에 있는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지음을 받은 새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속 사람의 강건은 그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새 생명이 강건한 것을 말합니다.
  속 사람의 강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 영혼의 강건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 이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강건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육신의 강건함을 위해서 육신의 삶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돈을 벌고 출세를 하고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해서 이기고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신앙생활 잘하고 하나님 잘 섬기고 영혼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천국에서 살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삶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내면의 세계가 우리의 인격이 세상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도록 아름답게 가꾸는 일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우리의 속 사람의 강건함을 위해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한다고 성경에 기록한 이유는 우리가 그것이 속 사람의 강건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렇게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2.성령으로 말미암아
  바울이 우리 속 사람의 강건을 위해 기도하면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기를 바라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의 속 사람의 강건은 우리 속에 내주 동거하시면서 우리에게 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되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흔히 성령님의 능력이라고 하면 어떤 기적적인 힘을 말하는 것으로만 생각을 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능력은 기적적이기도 하고 초자연적이기도 하고 우리가 능히 이해할 수 없는 힘으로 역사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보통의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기적적인 능력보다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최대한 바른 길로 가게 해 주심으로 능력있는 삶을 살게 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적인 것만 성령님의 역사로 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기독교가 아주 이상한 무속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대신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성령님께서 오셔서 하시는 사역에 대해서 가장 강조한 것이 성령님이 오시면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 약속에 따라 제자들이 성령님을 받고 그 말씀을 기억하고 기록하여 우리에게 남겨 주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그 성경말씀을 읽을 때 그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는 역할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고 따름으로 구원을 받고 천국 백성이 되게하는 일을 성령님께서 담당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 사람이 강건해지는 것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즉 말씀을 말미암아 그 말씀 속에 있는 진리를 앎으로 말미암아 강건해 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속 사람이 강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이렇게 알고 따라가고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하면 저렇게 알고 따라가는 지조가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강건함은 반드시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로 인하여 강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속 사람이 너무 강건해서 고집불통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잇습니다.
  이 사람의 고집불통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자기 스스로의 생각만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속 사람이 약하지 않고 강건하여서 그 고집이 황소 같지만 이 사람은 속 사람이 강건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신념이 강해서 조금도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한번 마음먹은 일이면 끝장을 볼 때까지 밀고 나갑니다.
  그러나 그 신념은 때로는 비성경적인 것 진리가 아닌 것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서 이 복음의 진리가 아닌 것들에 대해서는 좀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리가 아닌 것 즉 특별한 날이나 절기를 지키는 것이나 술이나 음식을 먹는 일과 같은 복음의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넓은 마음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을 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들에 대해서는 신념을 가지고 끝까지 자기 주장들을 합니다.
  예배 시간에 박수를 치면 안되고 세상 악기를 연주해서는 안되고 복음성가를 불러서는 안되고 하는 이런 비본질적인 문제는 아주 강하게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만 꼭 우리가 신념을 가지고 강하게 싸워야 할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렇게나 생각을 하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누구든지 믿음 외에 다른 행함을 강조하면  아니오라고 소리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천국보다 이 세상에 관심을 갖게하는 설교를 하면 강단에서 끌어내릴 그런 강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속 사람의 강건함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우리의 속 사람의 강건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또 하나의 조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속 사람의 강건은 "영광의 풍성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광이란 말은 하나님 속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말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 하나님 나라에는 너무나 좋은 것들 가장 귀한 것들이 풍성하게 쌓여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 사람이 그 사실을 앎으로 강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아이들이 자기 집 자랑을 하면서 우리 집에는 뭐가 있다 뭐가 있다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우리 집에는 금 송아지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금 덩어리가 가장 좋은 것인데 그 금이 송아지만큼 크다고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집이 부자라는 것을 그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천국을 보고와서 그 영광스러움을 그 풍성함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해서 하늘나라는 아예 황금으로 길을 포장하고 집들은 진주와 보석으로 지었더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나라에는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영광이 헤아릴 수 없는 풍성함으로 넘치고 있습니다.
  너무나 좋은 것이 너무나 많이 있어서 서로 가지려고 싸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눈에 보이는 육신의 삶은 작은 것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며 싸워서 빼앗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나 좋은 것이 너무나 많이 있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누어도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없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이런 넉넉함을 알면 우리 속 사람이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만족을 누릴 수 있고 강건하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풍부함으로 강건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란 단순히 하나님께 아뢰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는 바를 믿고 실천에 옮기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노력을 함께 하는 것이 기도의 바른 자세입니다.

  여러분의 속 사람이 강건해지시기를 바라면
  그것을 위해서 그렇게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강건함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강건함이어야 하고 하나님나라의 영광의 풍성함으로 인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그 풍성한 은혜를 받아서
  우리의 속 사람이 강건하여 흔들림이나 변함이 없이 영원한 천국까지 이르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