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8.29.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35)
   본문 : 엡 2:20
   제목 : 믿음의 터와 기초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오늘날 이 세계의 지식을 리드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오늘날 이 세계의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라고 하는 질문에 유대인이 그들이다 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들을 합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들이 1900만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세계인구 66억 전체와 비교해서 노벨상을 30% 이상을 받았다고 하니까 대단히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유대인들이 미국에 900만 정도가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2억 6천 전체 미국인들이 가진 부를 절반정도를 그들이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세계 66억의 사람들이 채 2000만 명도 안 되는 유대인들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전쟁을 하자고 하면 해야 되고 그들이 안되게 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 사람들도 그들 못지않다고 합니다.
  교육열로 따지면 우리 나라가 더하면 더 했지 그들보다 못하지는 않습니다.

  정신력으로 따지면 우리가 더 낫다고 합니다.
  올림픽 경기 보면 사람들이 응원하기를 야 정신력으로 해라 라고 합니다.
  실력은 부족하고 힘은 모자라지만 정신력 만큼은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어떤 사람이 조사를 했는데 
  미국이라는 나라는 현금을 주고 집을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대부분 은행빚을 얻어서 집을 사는데 미국 사람들은 평생동안 그 빚을 갚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12년 정도면 그 빚을 갚는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은 얼마나 걸릴까요 5년이면 갚아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대단한 정신력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사람은 그렇게 열심인 교육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강한 정신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 그럴듯한 노벨상 하나 못 따고(평화상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경제가 이렇게 바닥을 헤매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책도 쓰고 요즘 상담학을 가르치고 있는 정태기 교수 이야기를 여러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분의 주장에 의하면 유대인들과 우리 나라 사람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가정에서의 교육문제라고 주장을 합니다.

  유대인들은 아주 오랫동안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이 되어 있어서 그 가정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근본이 있고 반석같이 든든한 가정에서 큰 그릇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가정에는 근본이 사라졌습니다.
  부부간에는 맨날 싸움이나 해서 언제 가정이 깨어질지도 모르는 위기감 속에서 살고 있고
  인간답게 바르게 살아야 된다는 근본정신이 없고 그 때 그 때 잔머리 굴려서 대강 적당히 살아가는 것을 배우면서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남을 사랑하고 남을 배려하고 큰일을 하려고 하는  그런 근본정신이 사라지고 아주 작은 그릇 그것도 금이 가고 깨어진 그릇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의 주장에 의하면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공부해라 바르게 해라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바른 신앙을 가지고 든든하고 버텨 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바른 신앙을 가지고 그 신앙을 실천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도와주면서 사는 모습을 보여 주면 아이는 바르게 큰 그릇으로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만 생각하고 대강 적당히 남을 속이면서 신앙도 형식적인 신앙으로 교회에만 하나님이 계시고 가정에 오면 하나님이 안 계시는 사람처럼 사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가슴이 넓고 그릇이 큰 사람으로 자라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기초가 튼튼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근본이 있는 삶을 사는 그런 가정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큰 그릇으로 성장을 하여서 교회를 빛내고 하나님 나라를 빛내고 세상을 빛내는 훌륭한 인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의 기반 기초 근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그 근본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그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고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 성도들을 또 다른 모습으로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한 나라에 비유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한 나라라면 우리는 그 나라의 정식 시민권을 가진 백성이 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정을 비유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한 가정이라면 우리는 그 가정의 권속이요 그 주인되는 아버지의 아들이 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20절부터는 우리를 한 건물에 비유해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치 한 건물이 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의 건물로 우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 말씀은 그 건물의 터와 기초 석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터는 사도들이요 선지자이며
  우리의 기초 돌은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의 신앙의 근본 기초가 이렇게 든든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1.선지자들의 터
  우리가 건물이라면 우리가 세워진 터는 선지자들이 그 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선지자들은 직접적으로 신약시대의 선지자 즉 사도들과 동일 인물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구약시대의 선지자도 포함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뿌리는 구약시대로 거슬러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어제오늘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을 오랜 세월동안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 진행을 하셨습니다.
  그 일에 쓰임을 받은 사람이 많은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선지자들입니다.

  선지자란 예언하는 자, 말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신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은 이사야나 예레미아 같이 구약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일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이사야서부터 말라기까지 17권을 선지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선지서를 기록하지 않은 사람 중에도 선지자가 많이 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께서 율법을 모세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하여 주셨기 때문에 선지자로 부릅니다.

  예수님도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 즉 그리스도라고 할 때 왕과 제사장 그리고 이 선지자 직분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전해 주셨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선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시대 마다 선지자들을 세우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선지자로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그 선지자 사역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지식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날마다 새로운 지식들을 연구하여 발표하고 그 지식을 통해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들은 돌아서면 세월이 지나고 나면 우리 스스로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데 비료나 농약 제초제 등을 만들어서 얼마나 좋아했습니까
  그러나 얼마 지나지도 않은 지금 그런 비료 농약 제초제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 치명적인 병인 암을 유발하고 사람의 몸 속에 있는 정자의 수를 감소시켜 앞으로 젊은 사람들이 임신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식은 참된 인생의 의미이며 참된 인생의 미래이며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진 이 신앙은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동안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신 참지식 산지식을 기초로 세워진 것입니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고 수 천년을 전해 내려온 것이요 인간의 지식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제 오늘 연구하여 발표하는 인간의 지식으로 비교를 하고 판단을 하고 비평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2.사도들의 터
  우리가 가진 이 신앙은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란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과 함께 있던 제자들을 말하며 대표적으로 열두 제자와 바울이 있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공적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 사도신경은 이 사도들의 신앙을 기초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사도들은 직접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들을 목격했던 사람들이고 그 사실들을 역시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남겨 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선지자들이라고도 합니다.

  그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직접 목격을 하였고 그 공생애와 십자가에 죽으심 부활 승천하심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목격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믿는 이 신앙은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그들이 목격한 대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과 함께 하늘나라로 승천을 하셨다고 한다면 우리가 믿는 이 신앙은 너무나 고귀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 주님과 같이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너무나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고 목숨을 담보로 하기도 했습니다.
  사도들은 모두가 다 이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순교로 생을 마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목격한 것들이 너무나 생생한 사실이고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두 사람이 자기가 믿는 신념을 모든 사람들이 믿게 하기 위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목숨을 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제자들이 수많은 증인들이 기꺼이 아니 어떻게 하면 순교를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목숨을 걸고 비참한 죽음을 당하면서도 그들이 목격한 바를 증언하기 위해서 꿋꿋하게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복음은 어떤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만든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어떤 종교가 사이비 종교인가를 알아보는데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교주나 지도자들이 이익의 도구로 삼고 있는가 자기의 명예를 위해서 자신을 신격화 하고 있지는 않는가를 알아보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소수의 교회가 타락을 해서 종교를 이용해서 치부를 하고 자신들의 이익의 도구로 삼고 있지만 원래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자기를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이 이 진리를 알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 우리 기독교의 근본정신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 귀한 신앙을 주기 위해서 자기의 삶을 희생하면서도 비참하게 죽어가면서도 증인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 희생정신이 그 진리에 대한 충성이 오늘 우리가 이 신앙을 갖게 하는 비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건물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될 것은 기초를 든든하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아무리 튼튼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할지라도 기초가 부실하면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이 신앙을 건물에 비유한다면 그 터가 너무나 단단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준비되었으며 사도들의 순교적인 증언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이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신앙도 이 든든한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외식이나 가식이 없이 마음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가질 때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의 삶이 복된 삶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모퉁이 돌이 되신 그리스도
  본문 말씀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모퉁이 돌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건물의 기초가 되는 기초석이라는 의미입니다.
  과거의 성전 건물은 돌을 깎아다가 돌과 돌을 연결시켜 쌓아서 건물을 완성했습니다.
  그런 돌로 만든 건물의 제일 먼저 시작을 하는 기초 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표현 그대로 모퉁입니다.
  모퉁이 돌은 이쪽 벽과 저쪽 벽을 연결해 주는 돌이라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합해서 예수님께서 모퉁이 돌이 되셨다는 것은 건물의 시작이요 벽과 벽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셨다는 뜻입니다.

  이 모퉁이 돌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28:16)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도 이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해서 자신이 그 돌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지시만 하시고 말씀만하시고 어떤 틀만 만들어 주신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고 우리와 함께 그 구원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희생의 제물이 되셨고 예수님 자신이 부활하셔서 우리가 부활하는 시범을 보여 주셨고 예수님 자신이 하늘나라로 승천하시면서 우리가 돌아갈 하늘나라가 있음을 몸소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한 몸을 이루시고 몸소 그 기초가 되시고 몸소 우리 서로를 연경하는 축이 되어 주시고 우리와 함께 같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나는 가만이 있을 테니까 너희들 알아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같이 먼저 중요한 일을 해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신앙은 근본이 없이 여기저기서 아무렇게나 생긴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터가 든든하고 기초가 확실한 너무나 튼튼한 것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터로 하고 세워진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초석이 되어주신 신앙입니다.

  마치 반석 위에 세워진 건물이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홍수가 나거나 어떤 풍파가 오더라도 흔들림이 없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그렇게 든든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고 조금도 요동하거나 흔들림이 없는 반석같은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