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8.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31)
   본문 : 엡 2:17-18
   제목 : 평안 그리고 평안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2:17-18)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불면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성인 3명 중 한 명은 잠이 들기 힘들고, 잠이 들어도 잠든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호소하는데 이를 통상적으로 불면증이라고 합니다. 

  이 불면증은 육신적인 질병으로 인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마음에 평안을 이루지 못하고 우울해 하거나, 불안한 마음을 가지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등과 같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1)고독을 느낄 때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깜깜한 밤에 홀로 누워서 이 세상에 나 하나 밖에 없구나 하는 외로움을 느낄 때 그 고독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결국은 혼자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주변에 친구들이 많이 있고 이웃도 있고 가족도 있고 부부도 있지만 결국은 나 혼자 떠나거나 나 혼자 남게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외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결국 나 혼자 태어나 나 홀로 살아가다가 나 혼자 떠나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고 생각이 될 때 고독하게 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2)남들과의 비교의식에서 오는 열등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못산다 못산다 하지만 옛날에 비하면 정승판서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보통 가정에서 기본으로 냉장고 세탁기 전화 그리고 텔레비전은 갖추고 살고 있습니다.
  자다가 말고 일어나서 일일이 연탄을 갈아 넣지 않아도 자동으로 방이 따뜻해지는 보일러 시설도 다 갖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보다 더 잘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텔레비전도 흑백텔레비전에서 칼라텔레비전 평면텔레비전 그러더니 벽걸이텔레비전에다가 최신형으로 고화질 디지털텔레비전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 보다 더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있어서 기분이 나쁘고 나보다 돈이 많아서 더 큰 집에 더 좋은 차에 떵떵거리면서 사는 것을 보면 잠이 안 옵니다.

  다 똑같았으면 좋으련만 나보다 더 똑똑하고 더 잘나고 나보다 예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기분이 나쁘고 그 비교의식이 심하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3)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하여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나이가 많아서 늙어지면 어떻게 살 까 누가 내 생활비를 대어 주며 누가 병든 나를 간호해 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또 내가 없는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죽은 다음에 나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들이 사람들을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잠을 잘 주무십니까
  그렇다면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거나 너무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거나 믿음이 좋은 사람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오늘 저는 외로움을 느끼거나 비교의식 때문에 그리고 장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이런 불면증에 시달리시는 분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평안 그리고 평안"이라는 제목으로 드리는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1.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본문 17절에 "또 오셔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일반 종교들은 다 스스로 신을 찾아갔지만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신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을 종교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신을 찾아서 스스로 나선 것입니다.
  스스로 연구하고 노력하고 갈구하다가 어떤 것을 만나서 그것을 신으로 자신들이 지정을 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석가를, 공자를, 태양을, 달을, 호랑이를 소를 자신들을 지켜 주는 신으로 정하고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셔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알려 주시고 믿고 따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서 살게 되었고 세월이 많이 흘러 그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살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빼어 버리면 뭔가 허전하고 뭔가 불합리하고 맞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 우주 만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면 도대체 그 이치가 맞지를 낳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우리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을 부인하면 우리의 정체성이 애매모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고독하게 된 진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찾아와 주셔서 내가 이 세상을 창조하고 너희를 지은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성경을 계시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심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해 더 자세히 나타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를 찾아와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 받게 하시고 우리가 죄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율법을 제거해 주시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 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찾아와 주신 것은 온 우주로 오신 것이라면 성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에게 오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한 분 하나님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 각 사람에게 오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를 지정하시고 내 속에 들어 오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오셔서"라고 하신 것은 넓은 의미에서 이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오심 성자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여 오심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임하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혼자 있는 것 같지만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동행을 하시면서 때를 따라 지혜도 주시고 나아갈 바도 알게 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즐거움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고독한 존재가 아니다 온 천하 만민들이 와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2.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든 사람이 평안을 누립니다.
  본문 17절에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먼데 있는 자는 구원과 거리가 먼 이방인을 말씀하는 것이고 가까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 다 동일하게 하나님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특별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이방인 전도자였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방인들도 유대인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2장 11절부터 계속해서 그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外人)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12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13절) 
  "둘로 하나를 만드사"(14절)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15절)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16절)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18절)
  그리고 17절에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서 제가 수차 강조했지만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모두가 십자가 앞에서 동일하게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의 눈으로 보면 구원을 받기에 거리가 가까운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구원을 받기에 거리가 먼 것 같이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 사람을 보면 정말 구원은 따놓은 당상이야 
  저렇게 바르게 살고 좋은 일 많이 하는 사람이 천당 못 가면 누가 가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아이고 저런 사람도 천국에 가려고 교회에 다니나 지 꼬락서니를 알아야지 뻔뻔스럽네 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나 먼데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나 다 십자가 앞에 서면 동일하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다 절에 다니던 사람이었고 다 귀신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원을 받을 만한 예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로 차별을 받고 삽니다.
  돈이 없다고 차별을 받고 권력이 없어서 차별을 당하고 못생겨서 못나서 여러 가지 차별을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고 억울해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인 것은 구원을 받는 이 제일 소중한 일에는 없다고 못났다고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없어서 못나서 더 힘있게 십자가를 붙들게 되기 때문에 더 확실하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여러 번을 강조해서 우리 이방인들도 동일하게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열등감을 버리고 자신있게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방인의 구원을 강조한 것은 이방인들에게 자신감을 가지라는 이야기이지 결코 유대인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모두다 십자가 앞에서 승리자가 되고 구원을 받을 자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설교하면서 가난한 사람 못난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다가 보니까 부자나 잘난 사람들이 이 설교를 들으면 좀 섭섭해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도 우리가 십자가 앞에서 은혜를 받아 구원을 받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해서 못났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지 부자나 잘난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십자가 앞에 서면 십자가를 붙들면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이나 좋은 일은커녕 나쁜 일만 많이 한 사람이나 누구나 다 승리자가 되고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인들이 가만히 보니까 불행해지고 오래 살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미인이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보통 미인들이 그 미를 가지고 좋은 일을 하기보다는 나쁜 일에 그 아름다움을 쓰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도 잘난 사람이나 똑똑한 사람이 그 잘남과 똑똑함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일에 좋은 일에 그 재능을 사용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남 때문에 그 알량한 지식 때문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구원을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 가는 것 보다 어렵다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 부자가 되지 말고 가난하게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열심히 노력을 하고 열심히 일을 해서 정정당당하게 부자가 되셔야 합니다.
  다만 그 부를 바르게 사용을 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선한 일을 위해서 물질을 바르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그 없어지고 말 재산 때문에 신앙을 팔거나 십자가를 붙들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윈윈(win,win)전략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당신도 승리자가 되고 나도 승리자가 되는 전략을 말합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모두가 다 승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도 부자도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다 같이 승리자가 되며 그래서 참된 평화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하기 위해서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부족합니다 구원을 받기에 너무나 못난 사람입니다 라고 말은 하지만 그러나 속으로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못났다고 차별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가난하다고 차별을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나를 차별하지 않고 받아 주신다 차별하지 않고 사랑해 주신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나 나름대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비록 비교해서 남보다 조금 뒤질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라는 위대한 신분 앞에 그런 차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해서 남들이 나보다 나은 것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동일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이 평화를 마음껏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3.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본문18절 말씀에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아니고는 아무나 교회로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억지로 구경 삼아서 한 두 번 오시는 분도 혹 있겠지만 그러나 정말로 마음의 감동을 받아서 교회에 오시는 분들은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난 주 광고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지금도 이 세상에는 교회에 나올 수 없는 환경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터키에서 어떤 사람이 전도를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주민들이 알고 집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그런 환경에 속해 있다면 과연 목숨을 걸고 죽으면 죽으리다 하고 교회에 나올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잘 됐다 안 그래도 교회에 나가기 싫은데 핑계 삼아 잘 됐다 하고 박수를 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교회에 나올 수 있는 환경과 형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좋은 환경 속에서도 오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렇게 오늘도 우리의 발걸음이 교회에 머물러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교회에 있다는 것이 왜 축복인가 하는 것은 물론 지금도 하나님께 나아와서 말씀을 듣고 위로를 받는 것도 큰 축복이지만 이 교회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가는 천국의 관문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다 끝이 나고 우리의 육신이 쇠하여 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나라 완전한 나라로 데리고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도 나를 떠나고 가족도 나를 외면하고 내 몸뚱아리도 나를 배반하여 자기 기능을 다 못하고 나를 괴롭힐 때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잊지 않으시고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은 고독 불안 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오셔서 나와 동행하시기 때문에 고독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면 모두에게 공평하게 은혜가 임하기 때문에 나의 부족함 때문에 열등감을 가지거나 다른 사람을 질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장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승리자가 되게 하시고 평화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 평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 평화의 전달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