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22.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20)

  본문 : 막 6:1-6

  제목 :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1.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하나님께서 의의 기준을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정하셨습니다. 인간이 선을 행하고 바르게 살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성공하고 그런 것을 의의 기준으로 삼으신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의의 기준으로 정하셨습니다.

 

 믿는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우면서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도 사실은 참 어렵습니다. 믿음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정말로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믿음에다가 그 의의 기준을 두셨습니다.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인간이 정말로 노력하여 믿을만한 사람이 되려고 해도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한 믿을만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일에 믿을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의의 기준을 두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도 믿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믿는 믿음을 가질 때 그 사람을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주십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무나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자신의 힘으로 믿을 수 없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고 창세 전에 선택을 받은 사람만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위대하고 진실한 고백이 소중하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합니다.

 

 5장에서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죄로 인한 질병에서 죽음에서 구원을 받고 칭찬받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6장에 들어와서는 믿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예수님이 똑같은 것을 가르치시고 똑같이 이적을 체험하거나 보게 하셨는데 어떤 사람은 믿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배척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을 배척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가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생각해보는 귀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본문 1~2절에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곳에서 가르치시다가 자기 고향인 나사렛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이었지만 어린 시절에 사신 곳이 나사렛이었습니다.

 

 고향에 오셔서도 회당에 가셔서 가르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이나 들에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기도 하셨지만 안식일이 되면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 가셔서 가르치셨습니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싫어했지만 회당장들은 예수님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모셔다가 가르침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 가르침이 참으로 신기하고 행하시는 이적들이 놀라웠기 때문에 예수님을 강단에 세우고 말씀을 들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도 역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회당 밖에서 무리를 가르치실 때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비유로 가르치셨지만, 회당 안에는 성경을 배우는 곳이고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구약성경을 읽고 그 의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회당에서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같은 사건을 기록한 누가복음에서는 그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에 기록된 말씀을 읽으시고 그 뜻이 무엇인가를 설명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는 그날 읽으신 구약성경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4:18-19)라고 했습니다(61:1~2절 인용).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메시야가 오시면 이런 일을 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인용하시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하셨는데 그 의미는 지금 이 말을 듣고 있는 여러분에게 이 말씀이 나타나신 것이며 이 말씀을 하고 있는 예수님 자신이 메시야가 되심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이라는 가난하고 천히 여김을 받는 동네에서 사셨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 되어서 그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면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가셔서 자신이 하나님임을 내세워서 존경도 받고 대접도 받으시려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서 가난한 자 병든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셔서 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 편에 선다는 것은 힘없는 약자 편에 선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목회도 부자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하면 품위 있게 권세를 누리면서 살 수 있습니다.

 

 저희 젊었을 때만 해도 아파트 붐이 일었고 사람들은 다 큰 아파트 단지에서 사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목회 성공해서 잘살아보려고 하는 목회자들도 아파트 단지에서 교회를 세우려고 했고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아파트 단지에 가서 아주 크게 부흥한 교회들도 많이 있습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죄로 인해서 죽음의 포로가 되고 성경을 보는 눈이 멀어진 사람들을 죄에서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해주기 위한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이 놀랐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말씀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알고 보면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통하여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알고 보면 너무나 놀랍고 엄청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놀랍게 여기면서도 믿지는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누가 예수님을 안 믿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의 것에 너무 정신이 팔려있어서 사탄의 거짓말에 너무나 세뇌되어 있어서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느냐고 하면서 믿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배척한지라

 

 본문 3~4절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의 초라한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하고 아무리 기적 같은 일을 행하여도 믿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같이 놀던 친구를 하나님으로 메시야로 믿는다는 것은 참 어려웠을 것입니다.

 

 똑같은 일인데도 어떤 사람은 그 일을 긍정적으로 보고 어떤 사람은 부정적으로 봅니다. 예수님의 과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보는데 예수님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봅니다.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보통 누구의 아들이라고 할 때 아버지의 이름을 써서 요셉의 아들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출생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마리아는 처녀 때 결혼하기 전에 예수님을 잉태했습니다. 죄인인 인간의 피를 받지 않고 의로운 사람으로 태어나시기 위해서 성령님의 특별하신 방법으로 잉태시키셨습니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믿음으로 보는 사람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죄가 없으신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그것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시는 증거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어머니가 불륜을 저질러서 태어난 천한 사람이라고 비웃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태어난 사람이 무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가 되겠냐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동생들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남동생도 있었고 여동생도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다른 동생들은 인간의 씨로 태어났기 때문에 친형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육신으로는 요셉의 아들로 살았기 때문에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형제자매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이전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같은 가정에서 형제자매로 살았던 사람이 갑자기 하나님이시며 메시야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이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중에 야고보와 유다는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신약성경 야고보서와 유다서를 기록한 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이 이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에 불과하다. 여기 부모님도 있고 형제자매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믿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과거에 선지자들이 자기 고향이나 친척과 자기 집에서는 존경을 받거나 인정을 받지 못했음을 상기시키면서 예수님도 그와 같이 고향에 와서 고향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목회자들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목회자가 가정이나 고향 사람이나 친구들에게서 인정을 잘 받지 못합니다. 어린 시절의 모습이나 목회자가 되기 이전의 좋지 않은 모습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목사가 된 후에도 인간의 연약한 모습 때문에 그가 전하는 복음이 가치를 잃을 때도 있습니다. 큰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나 돈이나 권력이 많고 잘난 목사가 설교를 하면 많은 사람이 '아멘'을 하는데 그렇지 못한 초라한 목사가 복음을 전하면 별로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겸손하게 검소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은혜받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그들이 그런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배척한 정도가 아니라 그 마을 밖 벼랑까지 끌고 가서 던져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본문 5~6절에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설교를 듣고 똑같이 이적을 체험했는데 어떤 사람은 그로 인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되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려고 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똑같은 일을 가지고 왜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다 같은 유대인이고 다 같이 하나님을 믿고 다 같은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이고 다 같은 시대에서 사는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 현저하게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되는 것일까요?

 

 자기 생각이 너무 강해서 그렇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는데 자기가 하는 것은 늘 옳고 남이 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인 면이나 과학의 발전이나 예술 분야나 많은 부분에서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같은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 아주 큰 골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좌와 우로, 동과 서로, 가난한 자와 부자로, 사용자와 노동자로, 젊은 사람과 늙은 사람으로, 남자나 여자로 서로 편 가르기를 하고 서로 대적을 하게 만듭니다. 일부 욕심 많은 정치인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갈라치기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거기에 놀아나서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듣고 배운 것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진정으로 나라가 서로 잘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양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남들의 생각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서로의 의견에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신앙문제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배웠느냐에 따라서 누구의 설교를 들었느냐에 따라서 믿음의 색깔도 매우 다릅니다.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정말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부정적인 생각들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믿음만큼은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사소한 일 때문에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후회가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믿지 못함을 이상히 여기시고 아주 소극적으로 최소한의 일만 하셨습니다. 아무 권능도 행하지 않으시고 소수의 병자만 고치시고 여러 마을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기만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소극적일 때 하나님의 역사도 소극적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더 가까이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베푸실 텐데 그저 마지 못해서 교회나 왔다 가면 그냥 최소한의 은혜만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소극적인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믿음이 된다고 하면 그 불행은 말할 수 없을 것이고 그 후회는 엄청날 것이며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비극에 도달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우리가 가진 믿음이 위대하다는 것을 많이 가르쳐서 잘 알고 믿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진실한 고백이 어디까지인가? 어디까지가 진실한 고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는 많이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교회에 다니기만 해도 진실한 믿음의 고백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교회의 일에 충성하고 헌신해야 그 믿음이 진실한 믿음일까? 세상에서도 세상 사람들과 다른 거룩한 삶을 살아야 진실한 믿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자주 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그 역사하심을 따라 내 마음이 정말로 그렇게 동의하면 진실한 믿음입니다. 문제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내 마음이 진정 그렇게 고백하는데 그것이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믿음 믿음하고 살았는데 그것이 위선이거나 가짜였다면 다시 고쳐서 할 수 없는 것이 그것이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것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그 믿음이 정금 같이 나와야 하는데 가짜로 나온다면 영원토록 후회해야 할 일이 그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똑같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으면서도 또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목격했으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배척했습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속고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아서 예수님의 말씀까지도 부정적으로 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믿음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이 주님 앞에 섰을 때 정금 같은 믿음으로 인정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