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21.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추수감사주일)

  본문 : 살전 5:18 

  제목 :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어떤 사람은 늘 감사하면서 삽니다. 하나님께도 늘 감사드리고 사람들에게도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감사보다 원망이나 불평이 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도 감사보다 불만이 많고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원망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그 중간에서 좋은 일이 있으면 감사하고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때에 따라서 감사하기도 하고 원망이나 불평도 하면서 삽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즉 모든 일에 모든 환경에 감사하며 살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일에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비록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감사하면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은 구약성경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제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중에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출 34:22)라고 하셨습니다. 한해 농사를 첫 수확 할 때를 맥추절 혹은 초실절이라고 하고 가을에 곡식을 거들 때를 열매를 거두어 창고에 저장하는 수장절이라고 해서 지키라고 했습니다. 현대교회에서 이 맥추절(혹은 초실절)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키고 수장절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이것은 단순히 농사를 지어서 추수하게 하심에 대한 감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에 애굽 땅에서 종노릇 하다가 거기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 와서 자유로운 몸으로 살게 되었음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의 몸이 되었고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에서 나의 땅에서 나 자신이 먹고살 농사를 지었다는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이렇게 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감사도 단순히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게 된 것에 대한 감사가 아닙니다. 그런 감사를 통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통해서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된 것에 대해서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영원한 천국을 약속하시고 그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게 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오늘 본문 말씀에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어떤 일을 만나든지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1) 믿음 생활 잘하는 사람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서신입니다. 사도바울이 2차전도 여행 때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많은 사람이 바울의 전도를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어서 세운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의 반대와 핍박에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떠나온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의 핍박에 성도들이 과연 끝까지 견디면서 신앙생활 잘할 수 있을까가 늘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그곳에 보내서 사정을 알아보라고 했는데 아주 기쁜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 환난에도 불구하고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 서신을 써서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고 감사하면서 그들이 잘 알지 못한 몇 가지 교훈들을 아울러서 써서 보낸 것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그 서신서에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믿음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믿음에 따른 신앙생활도 참 잘했던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살전1:2-4)

 

  1장에서 3장은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복음을 믿고 믿음을 지킨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역사가 있었고 사랑의 수고도 있었고 소망의 인내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제일 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고 말로만이 아닌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는 믿음으로 행한 일들을 말합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삶에 실천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냥 교회에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수고하고 헌신하면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란 역시 말로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하면서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무엇인 줄 알고 고생스럽지만 그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소망의 인내라는 말도 그들이 가진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힘들고 어려워도 인내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을 기다리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실천하고 사는 것은 우리에게도 큰 감사가 됩니다. 아무나 이렇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역사나 소망의 인내나 사랑의 수고가 없이 말로만 이론적으로만 알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이런 실천을 하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고 했습니다. 앞서 인용한 1장 2절 말씀에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살전1:4)라고 했습니다.

 

  그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며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백성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사랑을 받아서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교회에 와서 특별히 일을 많이 하고 신앙생활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나만 이런 고생을 하느냐고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믿음을 위해서 고난 당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지난주에 고난을 주제로 디모데후서 1장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복음은 고난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따라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다 같이 고난이 따라온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많은 고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복음을 반대하고 믿는 자를 핍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의 17장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데살로니가에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대하고 시기하여서 불량자들을 동원해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로마당국에 고발하고 붙잡아가서 재판을 받게 했습니다.

 

  그런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고난마저도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훈련시키시고 더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특별히 예수님의 재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매장의 끝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각장의 끝마다 그리스도의 강림(재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1:10), “그가 강림하실 때”(2:19),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3:13),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4: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5:23)라고 반복하면서 그리스도의 강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4장 끝부분에는 그 재림을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4:16-18)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은 더 많은 고난을 당하고 더 많은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힘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확연히 차이가 날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장으로 오시는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기뻐 뛰며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던 사람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며 살던 사람들은 예수님께 외면을 당하게 될 것이며 예수님도 그들을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실을 미리 알고 사는 우리들은 그날을 생각하면서 지금부터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원망하고 불평하던 사람들은 그날에 후회가 막심할 것입니다.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형편이든지 감사하고 사는 것은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에 모든 형편에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너희를 향하신”이라는 말은 “여러분을 위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등의 뜻으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감사하면서 살라고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 감사하면서 살라고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것도 그 혜택을 받고 사는 인간들에게 감사를 받기 위함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 최소한의 의무인 감사하는 일조차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세상에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좀 불편할 때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참 몰염치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 이 세상에 살면서 엄청난 것들을 다 누리며 살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악한 인간 중에서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그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그것도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그 구원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잘 모릅니다. 그냥 그렇겠거니 하면서 감격하거나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안다면 그 은혜에 평생 감사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주신 것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하라고 하신 것은 감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감사하는 삶이 우리에게 참 유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유익 우리의 기쁨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이런 것들은 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하라고 많이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괜한 잔소리를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려먹으려고 이런저런 것을 시키신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려먹을 만큼 이기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로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고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는 분이시지 우리를 괴롭히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감사하라는 것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그 감사하는 삶이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삶이 우리의 정신건강이나 육신의 건강에도 좋은 것이고 인간관계에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핵심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것을 자꾸 찾다가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감사하다가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꾸자꾸 더 깊어집니다. 감사하다가 보면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건해집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감사할 것을 찾다가 보면 사람의 진심도 알게 되고 사랑하는 마음도 생기게 됩니다. 감사하다가 보면 좋은 관계가 되고 더 친밀한 관계가 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멀어지고 믿음도 약해집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보면 인간관계도 더 멀어지고 혼자 남게 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보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소중한 감사가 없어지고 맙니다.

 

  유대인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만일 다리 하나가 부러졌다면, 두 다리가 모두 부러지지 않은 것을 하늘에 감사하라. 만일 두 다리가 부러졌다면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라. 만일 목이 부러졌다면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최악이 아님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걸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이 감사의 유익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것입니다.

  본문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 안에서 모든 유익한 것을 주십니다.

 

  우리의 감사도 예수님 안에서 할 때 예수님의 은혜를 통하여 할 때 참된 유익이 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의 감사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그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감사하는 것이 참된 감사요 유익이 되는 감사입니다.

 

  우리는 우리 육신의 생명을 잃는다고 할지라도 믿음이 있다는 것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부활로 영생으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것이 성도의 기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감사가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것이지만 우리의 삶에도 많은 유익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