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31.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종합 5)

  본문 : 딤전 5:1-4

  제목 : 성도의 대인관계.

 

 

 “1.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2.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3.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4.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하버드대학 의과대학 정신과 로버트 월딩어 교수는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하는지 알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1938년부터 75년간 남성 724명의 인생을 추적해서 연구한 결과 행복은 부나 성공, 명예, 혹은 열심히 노력하는 데 있지 않았고 바로 좋은 관계가 인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의 조건으로 인간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꼽았습니다. 가장 행복한 삶을 산 사람들은 그들이 의지할 가족과 친구와 공동체가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도 이런 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 관계로 말씀하시고 예수님과 우리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말씀하시고 친구 관계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교회에 모여서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좋은 관계로 살고 있습니다.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지침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성도들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것이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어렵고 힘들어지는 것은 이런 관계가 바르게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자꾸 멀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얼마나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잘 알지 못해서입니다. 알기는 하지만 실감 나게 느껴지지 못해서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도 신앙생활이 힘들어집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주안에서 한 형제자매로 살고 있는데 그런 관계를 바르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 생활이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나서 항상 성도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성도들과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를 알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우는 것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5장과 6장의 말씀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 4장까지 하나님 사랑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씀하시고 5장에서 6장은 이웃사랑 즉 이웃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은 성도의 대인관계입니다. 성도인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람들과의 관계 특별히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다양한 사람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먼저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5장에도 교회 안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늙은이와 젊은이,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 자녀가 있는 과부와 자녀가 없는 과부, 다스리는 장로와 가르치는 사람 즉 목회자, 악을 행하여 죄를 범한 사람과 선을 행한 사람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당시의 교회에는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 그것도 서로 원수같이 지내야 하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있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유대인과 이방인, 주인과 종, 부자와 가난한 사람, 천한 신분을 가진 사람과 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형제자매로 부르며 교회 안에 같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남자는 여자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개나 돼지 정도로 여겼습니다. 당시의 주인에게 종은 그저 일하는 기구에 불과했습니다. 부자나 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은 가난한 자나 천한 신분을 가진 사람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형제자매로 인정하고 함께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눈에 보이는 이런 신분의 차이는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는 많이 있습니다. 태어난 곳이나 살아온 환경을 따라서 사람마다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등감 때문에 자신 없는 삶을 살고 어떤 사람은 너무 자신만만하여 교만하게 삽니다. 어떤 사람은 성격이 급하여 참을성이 없고 어떤 사람은 너무 성격이 너무 느려서 일을 빠르게 처리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욕심이 지나쳐서 남의 것까지도 빼앗으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욕심이 너무 없어서 자기 것도 지키지 못하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예의가 바르고 어떤 사람은 예의가 바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강하고 악하고 어떤 사람은 선하고 나약합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좋아서 뭐든지 잘 알고 어떤 사람은 좀 미련하여 잘 깨닫지 못합니다.

 

 이런 이야기 하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아주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약점이나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같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지만 좋아하는 것이나 신앙 생활하는 방법들이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지만 스스로의 체험이 부족해서 비교적 뜨겁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은혜를 깨닫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해서 가끔은 흔들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뜨겁게 신앙 생활합니다.

 

 믿음 생활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소중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찬송을 소중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설교를 소중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바르게 사는 것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심지어 성경을 해석하는 신학도 다르고 교리도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무엇을 믿는지도 다르고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생각하는 복음도 다릅니다. 교회 안에 거짓 선생도 들어와 있고 알곡이 아닌 가라지도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이런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성도들 간의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모두가 나 같지 않다는 생각만 가져도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비진리를 이야기하는 거짓 선생이나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지 않는 가라지들을 이해하고 따라서는 안 되겠지만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원리

 

 5장에서 이런 다양한 사람들과 어떻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인가는 자세하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몇 말씀들을 통하여 그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꾸짖지 말고 권하라

 본문 1절에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라고 했습니다.

 

 꾸짖지 말라는 말은 날카로운 말을 하지 말며, 화를 내지 말며, 거칠게 비난하지 말며, 사납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교육을 하되 꾸짖지 말고 이해를 하기 쉽게 부드럽게 잘 가르쳐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꾸짖지 말고 권하라는 대상이 나이가 많은 늙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회를 하다가 보면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꾸짖어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사람을 교육할 때 꾸짖지 말고 권하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가르치기가 어려운 사람은 자신이 뭔가를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가르치면 잘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뭘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어르신들은 수십 년씩 교회 다닌 사람인데 더 이상 무엇을 배울 것이 있겠느냐고 설교에 별로 관심이 없으신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 신앙을 가지신 분 중에는 잘못된 교리를 배우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 목사님들이 교리를 잘 배우지 못하고 설교하신 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에게서 배운 사람들은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잘못 알고 교회에 다니는 어르신들을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평생 교회에 다니셨는데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꾸짖어서라도 바르게 가르쳐야 하고 거칠게 비난해서라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고 권하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께 하듯이 권하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께 하듯 권하라는 것은 잘 알아들으시도록 설명해 드리라는 뜻입니다. 자식이 아버지께 공손하게 말씀드리는 것처럼 잘 설명해 드리라는 것입니다.

 

 꾸짖지 말고 권하라는 말은 노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해야 할 원리입니다. 잘못을 보고 꾸짖는 일은 쉬운 일입니다. 잘못하는 일은 누구나 잘 볼 수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꾸짖을 일은 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꾸지람을 참 많이 듣고 살았습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나 동네 어른들이나 교회의 선생님들까지 꾸짖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왜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사람은 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잘 되게 하려는 좋은 마음을 가지고 권면하는 사람은 잘 없었습니다.

 

 무조건 꾸짖지 말고 자상하게 잘못된 일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친절하게 바른길로 인도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좀 더 잘 깨닫고 성숙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2) 존대하라, 존경하라

 본문 3절에는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라고 했습니다. 517절 말씀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존대하라는 말과 존경하라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그 가치를 알아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귀하게 여기는 것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에 맞는 보상을 하라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과부를 존대하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이 지금은 남편이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라서 별 가치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그녀 또한 한 인간이고 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보잘것없은 사람처럼 보이는 과부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는 귀한 신분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사람도 먹고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는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목회자들에게는 더욱 존경할 자로 알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의 보통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 된 가치를 인정하고 귀하게 여겨야 하지만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배나 존경하고 더욱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나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 않는 사람을 존경한다면 다스리거나 가르치는 사람은 나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 사람입니다.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하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주는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 있는 과부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보다 못하게 보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도 한 인간이며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졌음을 인정해주는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그런 일이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나도 남에게 귀하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도 매우 유익한 일입니다. 이런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요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나를 바른길로 인도하고 가르쳐주는 교회의 어른들을 존경하는 것도 나에게 참 유익한 일입니다. 그런 존경심이 없으면 그들이 지도하고 가르치는 귀한 말씀이 귀에 들리지도 않고 가슴에 와닿지 않습니다.

 

3) 돌보라, 도와주라

 8절 말씀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16절 말씀에는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가 짐 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돌보는 것이나 도와주는 것도 같은 뜻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 자신만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친족 특별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믿음을 배반한 사람이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불신자보다 더 악한 사람은 없겠지만 이렇게 가족을 돌보는 일을 반드시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가족의 한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기도 하고 남편의 아내가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자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부모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 따라 형제가 되기도 하고 자매로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자기에게 가족으로서의 맡은바 의무를 다하고 내가 돌봐주어야 할 때 반드시 돌봐주라는 것입니다.

 

 참 과부 즉 도와줄 가족이 없는 사람은 교회의 성도들이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참 과부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는 고아도 있고 혼자 힘으로 살 수 없는 환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고 도와주는 것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비록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잘되도록 도와주는 일은 인간관계에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인간관계를 나쁘게 하는 것입니다. 잘되게 도와주고 잘 되었을 때 내 일처럼 기뻐해 주는 것이 인간관계의 소중한 일입니다.

 

 

좋은 인간관계에는 보상이 따릅니다.

 

 본문 24-25절에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악하게 산 사람이나 선하게 산 사람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느낄 것입니다. 요즘은 선하게 사는 사람보다 악하게 사는 사람이 더 잘 살기 때문에 선하게 사는 것이 손해 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하게 산 사람이나 악하게 산 사람에게 반드시 그 행한 대로 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악하게 산 사람은 그 죄가 밝히 드러나서 심판에 나아가고 선행도 밝히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배운 대로 최후의 심판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가와 믿지 않는가에 대한 심판입니다. 선행은 이 세상에서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선을 행한 사람은 그 선행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선은 선을 행함으로 사탄이 우리에게 역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믿음을 잃지 않고 살도록 해주십니다.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것이 최고의 복이라고 했는데 선행은 우리가 하나님 가까이 있게 해주는 무기입니다.

 

 선행은 사람들에게도 존경받게 하는 좋은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람도 친구가 되게 하고 하는 일도 잘 되게 해줍니다. 우리가 느낄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가 우리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최고로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차피 세월 따라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죽어갑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좀 더 행복하게 살고 좀 더 보람있게 살게 해주는 것이 선행이고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임을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69-10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성도들이 가져야 할 대인관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꾸짖지 말고 권하고, 존대하고 존경하고, 돌보고 도와주는 것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원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을 행하여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사는 것은 보상이 있는 좋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도록 믿음을 유지하는 일에 선행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