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9.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36)

  본문 : 딤후 4:18

  제목 :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요즘은 신문이나 방송의 뉴스를 보면 사람마다 자기는 참 잘났고 남들은 다 악한 사람이라고 서로 공격하는 일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이런 정치인들이 서로 편을 가르고 싸우고 하는 것을 보면서 참 안타까운 마음을 가집니다.

 

 서로 힘을 모으고 뜻을 모아서 백성들이 잘살고 나라가 잘되게 했으면 좋겠는데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사람은 다 같아서 자기 권력을 위해서 당파싸움으로 일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 악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말세지말을 당하면 일어날 것이라고 했던 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는지 얼마나 교만한지 모릅니다. 문제는 자신이 그런 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착한 사람이고 바르게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좋은 말 몇 마디하고 좋은 일 좀 하면서 착한 사람으로 위장하고 살지만 그 마음속을 들어가 보면 악하고 추합니다. 하도 주변에 악한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나는 좀 선하다고 착각하지만 여전히 나도 악한 사람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시작은 내가 선한 사람이 아니라 악한 사람임을 깨닫고 내가 의롭게 살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선하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지난주에 이어서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이라는 말과 연결됩니다 오늘 본문은 과거에 그렇게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장래에도 함께하시면서 힘을 주실 것임을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라고 하신 말씀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본문 말씀에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이라고 하면서 그 힘을 주신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7절에는 그 이유를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자의 입과 같은 반대자들의 핍박에도 견딜 수 있게 해주셨다고 했습니다.

 

 17절의 말씀이 과형으로 쓰고 있고 18절의 말씀은 미래형으로 쓰고 있습니다. 과거에 내 곁에 서서 힘을 주신 하나님께서 미래에도 그렇게 힘을 주실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미래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힘을 주심으로 주어질 일 첫 번째는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어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악한 세력이 바울이 가는 길을 방해하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고 힘을 주심으로 능히 이길 수 있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악한 일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며 바울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는 일에 믿음을 지키는 일에 방해 공작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악행은 복음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이 우리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인데 악한 세력은 그것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거짓말하고 속이고 남의 것을 훔치고 미워하고 싸우는 이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을 어기는 일들을 악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것도 참 악한 일입니다.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마음속에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악한 일들은 있게 마련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거짓말 한번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 살면서 남 한번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인지라 어쩌다가 그런 잘못들은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정말 악한 것은 그런 윤리적인 잘못이 아니라 복음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복음전파를 방해하고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것을 방해하고 복음을 변질시켜서 엉뚱한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 가장 흉악한 것입니다.

 

 이런 악은 교회의 밖에서 또는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베드로 전후서 강해 설교를 들었습니다만 베드로전서는 외부로부터 오는 핍박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고 베드로후서는 교회 내부에 들어온 핍박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강하게 틀어막으려고 합니다. 복음 전파자들을 핍박하고 잡아다가 옥에 가두고 죽이기까지 하면서 복음전파를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외부의 핍박이 강할수록 더 믿음을 굳게 하고 그런 방해세력과 끝까지 싸워서 이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면서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연약한 그들이 강력한 힘을 가진 사탄의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강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럴수록 교회는 더 부흥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악한 사탄의 세력은 작전을 바꾸어서 교회 안에다가 복음 방해자들을 침투시켰습니다. 이단이나 거짓 선생들을 침투시켜서 다른 복음을 전하게 하고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변질시킵니다.

 

  윤리나 도덕을 중요한 교리처럼 가르쳐서 복음을 떠나게 만듭니다. 신비한 기적이나 이적이 일어나는 것처럼 속여서 기독교를 저급한 신비주의의 종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으로 가려는 성도들을 속여서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살게 만들어서 천국의 소망을 버리게 만듭니다.

 

 참 엉뚱한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서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라고 하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부인하고 성경의 기록이 오류가 많은 엉터리라고 말합니다. 자기들의 알량한 지식으로 그 작은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바른 복음을 전하며 바른 믿음을 가지게 하는 참된 교회가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고지식하니 고리타분하니 하면서 비웃지만 십자가의 복음 천국 복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약속이요 은혜이기 때문에 그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믿음을 지킬 힘을 주십니다.

 

  또 하나의 악은 내 안에 들어있는 타락한 마음입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 디모데후서 3장의 말세에 나타날 악한 것들이 우리 안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로 시작되는 온갖 죄악들이 우리의 마음에도 다 있다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죄악들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죄악들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없으면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교만하게 자신은 깨끗한 사람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교만한 마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거절하고 자기 스스로 그 알량한 선행으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위장하고 위선자로 세상을 살게 만듭니다.

 

 이런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바른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믿지 않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나의 구주로 믿지 않고 도덕적인 선생 정도로 믿고 착하게 살다간 사람 정도로 믿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도록 이런저런 악한 세력이 방해 공작을 합니다. 세상의 핍박 교회 안에 들어온 이단이나 거짓 선생 심지어 내 속에 있는 교만하고 타락한 습성이 우리가 믿음을 가지는 데 방해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렇게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에게 믿음을 지킬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늘 기억하면서 의지하면서 믿음을 지키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본문 말씀에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그의 천국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는 주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의 천국은 하나님의 소유인 천국, 하늘나라,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나 하나님이라는 말을 될 수 있는 대로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죄악 된 인간이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나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하나님 나라를 하늘나라 즉 천국으로 불렀습니다. 주님 나라, 하나님 나라, 하늘나라, 천국은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을 위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인 천국을 만드시고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믿음으로 사는 삶을 끝낸 사람들이 거기에 와서 영원토록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이렇게 힘들지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은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 나라는 의로운 사람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평가 기준으로 의로운 사람이 들어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만왕의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면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꼭 틀린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살면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부이고 임시적인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갈 천국이 하나님 나라이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새롭게 시작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그것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길이며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 나라를 믿지 않거나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좋아합니다. 이 세상에서 바르게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삶은 완전하거나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젊어서는 그럭저럭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해도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선하게 산 사람이나 악하게 산 사람이나 똑같이 늙고 병들어서 죽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진짜 구원은 이 죽음을 맞이한 불쌍한 인생을 다시 살려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관심사는 우리가 이 죄악 된 세상을 떠나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너무 평안한 삶을 살면 세상에 취해서 천국에 오는 길을 잃어버릴까 봐 때로는 견딜만한 고난도 주셔서 그런 고난을 통하여 천국을 소망하면서 천국으로 가는 믿음을 잃지 않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서셔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것은 이 세상을 살 때 우리의 믿음을 빼앗아가려는 악한 세력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진 자들을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고 하나님의 은혜의 최고봉이며 최고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나 목적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감사, 찬송, 존경, 경외, 사랑, 순종, 헌신, 예배,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고 성도답게 이 세상을 사는 것도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아무렇게나 사는 것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우주 만물의 주인이심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는다면 그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사람들은 참 염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것을 누리고 살면서 그 은혜에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 뭔가 좀 자기에게 불이익을 당하면 원망하기는 참 잘합니다. 인생이 좀 잘 풀릴 때는 감사할 줄 모르다가 뭔가 좀 잘 안되면 불평하는 것은 잘합니다.

 

 부모님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잘해준 것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잘못해준 것만 가지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모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인생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아는 것이 관계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형벌을 받으신 것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구원을 세상의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고 그 믿음을 지키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베풀어주신 사랑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예수님 이름만 들어도 감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그 은혜를 영원토록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은 이 교회가 예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의 일이 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이 최고로 소중한 일인 줄 알고 충성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요즘 코로나 19의 영향도 있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봅니다. 이런 어려움을 보면서 인생을 다시 생각하고 목회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좀 평안하게 살았기 때문에 마음을 좀 놓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 목회를 시작하면서 품었던 그 마음이 좀 약해진 것 같습니다.

 

 목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된 내일모레 죽을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면서 엉엉 울었던 그 마음이 식었습니다. 전도사 시절에 불쌍히 여기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설교하면서 울었던 그 마음이 식었습니다. 이곳 구월동에 오면서 하나님 상처받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보내주시면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라고 기도했던 그 마음도 없어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스바냐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3:12)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은 떠나가시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너희 곁에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가난한 사람은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말하기도 하지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신앙적으로 연약한 자들을 말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당연한 일인데 이런 소중한 일을 소홀하게 여겼습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위로하는 척하고 기도하는 척하면서 넘겼습니다.

 

 제가 얼마나 목회를 더 할지 얼마나 더 이 세상에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남은 생애는 이런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살피면서 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비록 연약합니다. 사탄의 세력에 대항하여 믿음을 지킬 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탄이 교회 밖에서 교회 안에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강하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서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기 때문에 능히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 능력으로 이 세상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살 수 있으며 영원한 천국에도 능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 세세무궁토록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긴 가난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도와주면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