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5.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34)

  본문 : 딤후 4:14-16

  제목 :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4.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저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단톡방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가 얼마나 거짓에 막말을 많이 하고 살았으면 입을 마스크로 틀어막고 살라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서로 다투고 시기하고 미워했으면 거리를 두고 살라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손으로 나쁜 짓을 많이 했으면 어딜 가나 손 씻고 소독하라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열 올리고 살았기에 가는 곳마다 체온을 체크하고 살라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비밀스럽게 다녔으면 가는 곳마다 연락처를 적으라 하시겠습니까! 반성하며 잘 살겠습니다. 노여움 거두시고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세상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한번 웃자고 올린 글이라고 합니다. 그냥 농담 삼아 웃고 넘기기에는 뼈가 있는 농담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성도라고 하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세상 사람들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이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설교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바르게 살기운동본부가 된 것처럼 교회가 좋은 일 하기 운동본부가 된 것처럼 그런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정직하게 바르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도바울도 복음을 전하면서 중간중간 바르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운 디모데후서 31절에서 5절에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목적은 이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더 깊은 뜻은 이런 잘못 때문에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도 이런 것 때문에 믿음을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사람들에게서 돌아서라고 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코로나 19가 사람들이 악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교회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성도들이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해서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들이 얼마나 복음을 전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를 했기에 설교하는 목사의 입을 틀어막으셨겠습니까?

 

 성도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가식적으로 했기에 얼마나 이기적으로 기도했기에 찬양하고 기도하는 성도들의 입을 틀어막으셨겠습니까? 얼마나 가라지와 같은 가짜 교인들이 교회에 출입했기에 교회의 문을 틀어막으셨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라는 사람이 바울에게 해를 많이 입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알렉산더에게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라고 했습니다.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가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예수님께서 재판장으로 다시 오시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 최후의 심판대 앞에 나와서 그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 성도들은 우리가 행한 대로가 아닌 믿음을 지킨 대가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하는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본문 14절에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알렉산더라는 이름이 당시에는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도 본문의 알렉산더를 포함해 5명의 알렉산더가 등장합니다. 이 사람들 모두가 동일 인물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신학자에 따라서 한두 사람은 동일 인물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본문에서 그 이름 앞에 구리 세공업자라는 직업을 붙인 것은 다른 네 사람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리 세공업자는 옛날 성경 개역 한글에서는 구리 장색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구리를 가지고 이런저런 물건을 만들어서 영업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요즘은 모든 물건을 기계로 자동으로 만들기 때문에 손으로 세공하는 기술자는 별로 인기도 없고 돈도 많이 벌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꽤 좋은 기술이고 돈도 잘 버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리 장색은 단순히 기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구리로 신상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요즘도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같은 훌륭한 인물은 곳곳에 구리로 만든 동상을 세우고 사람들에게 그들의 업적을 알립니다.

 

 사도행전 19장에는 그와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등장합니다. ‘데메드리오라고 하는 은장색이 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은으로 당시 유명했던 아데미 신상의 모형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판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신상의 모형을 지니고 다니면 복도 받고 어려운 일도 당하지 않는다고 선전해서 많은 사람이 이 은으로 된 신상 모형을 사서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 은신상 모형으로 자신은 물론 그것을 만드는 직공들 그것을 파는 상인들이 다 돈을 많이 벌고 호황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하면서 참 신이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 한다고 외치고 다닙니다.

 

 에베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아시아에 다니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에베소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모든 사람이 신상을 버리니까 장사가 안되고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데메드리오가 신상을 만드는 사람이나 판매하는 사람들을 다 모아서 소동을 일으킵니다. 요즘 같으면 시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업을 망하게 하고 아데미 신을 모독하는 사도바울은 물러가라고 외칩니다.

 

 구리 장색 알렉산더에 대해서는 이런 자세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다니니까 자신의 영업에 방해가 됩니다.

 

 바울이 나타나기 전에는 장사도 잘하고 돈도 잘 벌어서 잘 살았는데 복음 때문에 자신의 사업이 망하게 될 것 같으니까 사사건건 사도바울이 전도하는 데 방해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람이 디모데전서 1장에 나오는 알랙산더와 동일 인물이라면 예수님을 믿다가 믿음을 버리고 떠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착한 양심을 버리고 살았기 때문에 신성모독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사탄에게 내주었다고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면 알렉산더가 예수님을 믿었으면서도 돈 때문에 구리 장색이라는 직업을 버리지 못하고 우상을 만들어 팔면서 이익을 챙겼기 때문에 바르게 믿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고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더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너무나 많은 방해를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행한 행위대로 벌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보복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복음을 버리고 떠난 사람은 자연히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알렉산더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이 벌을 받는데 이 세상에서 행한 죄악대로 다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행위대로 심판한다면 모든 사람이 다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행한 행위를 가지고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한 행위가 아닌 믿음의 행위를 통해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믿음을 버리는 순간 세상 사람들처럼 죄인이 되어서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알렉산더라는 사람은 자기 앞에 온 엄청난 복을 걷어찬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고 지옥의 형벌을 받습니다.

 

 알렉산더는 그런 많은 불행한 사람 중에서 아주 특별히 복음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복을 스스로 차버린 불행한 사람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큰 복을 차버렸을까요? 눈앞에 보이는 세상의 재물 세상의 성공 세상의 부귀영화 때문에 정말로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영원한 생명을 버린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믿음을 버린 것이 인생의 가장 후회스러운 일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세상 말로 하면 천운을 만나서 이 엄청난 복음을 듣게 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손에 들어있는 것이라 그렇게 귀한 것인 줄 모릅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 아직 실감하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은 이 귀한 것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착한 일을 하거나 보람된 일을 하거나 남들이 볼 때 칭찬을 받을만하고 존경을 받을만한 일을 하는 것은 사실 별거 아닙니다. 그런 것을 통해서 얻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별 볼 일 없는 것 때문에 인생의 소중한 믿음을 잃는다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잠깐의 행복을 위해서 영원한 행복을 버리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믿음을 간직하고 믿음을 따라 사는 것처럼 소중한 일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본문 15절에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알렉산더가 사도바울에게만 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 디모데에게도 해를 끼칠 것이고 모든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가 우리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라는 말에서 우리 말우리가 전한 기쁜 소식혹은 우리가 가르치는 말로도 번역됩니다. 사도바울이 전하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이나 그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가르침을 몹시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알렉산더와 같이 복음을 몹시 반대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몹시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사람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는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흰 눈처럼 깨끗하게 해주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곳입니다. 깨끗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비록 깨끗하지 못하더라도 깨끗하다고 인정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만 하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주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교만해져서 이런 복음을 기뻐하지 않고 거절합니다. 공짜로 주는 것은 싫고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인데 스스로 노력해서 멋있는 삶을 살고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도 좀 있고 공부도 꽤 했고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도 많이 받는데 내가 왜 죄인들처럼 그렇게 구차하게 구원을 구걸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은혜의 복음을 전해봤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살아라, 이 세상에서 좋은 일 많이 해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라, 어려운 사람도 도와주고 선하게 살면 복 받는다는 이런 설교가 저들의 마음에 더 감동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복음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피해를 봅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이 믿음으로 착각하고 사니까 많은 목회자가 그것을 복음이라고 선포하니까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잘못된 복음으로 빠져듭니다.

 

 그런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이 말씀을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이 십자가의 복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며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본문 16절에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처음 변명할 때처음 재판관 앞에 끌려나갔을 때, 법정에 처음 나타났을 때, 처음 답변할 때라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의 말년은 재판받다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발도 많이 당하고 여러 번 끌려가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백부장이나 천부장에게, 대제사장에게, 로마 총독에게 유다 왕에게 로마 황제에게까지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런 재판과정에서 바울을 변호하거나 바울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변호인도 없이 늘 혼자서 억울한 재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가 법을 어기고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구약성경에 예언한 그 메시야가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알려주는데 그것을 오히려 고발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25장에는 총독 베스도가 유대 왕 아그립바에게 바울의 소송 사건을 보고하는데 그 죄목을 이렇게 말합니다.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25:18-19)라고 했습니다.

 

 죄인들을 의롭게 해주기 위해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런 좋은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고발하여 법정에 세우고 재판을 받게 했는데 아무도 바울 편에 서주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세상 법을 무서워하면서도 하나님의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사도바울은 참 어리석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좋은 학교에서 율법을 정통적으로 배웠고 유대인의 지도자로 장래가 촉망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유대인의 지도자로 존경도 받고 행복한 삶을 살면 좋았을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어쩌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복음을 알게 되고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 줄 알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귀한 복음을 혼자만 알아서는 안 되고 혼자서만 구원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동족에게 이방인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평생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살았으면 사람들에게 존경이나 받고 큰 교회나 세워서 누리고 살았으면 될 텐데 평생을 세계만방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고 또 말년은 이렇게 재판을 받으면서 감옥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누구 한 사람 그의 편이 되어주지도 않았고 그를 변호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혼자 쓸쓸히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후일 역사가들에 의하면 그 로마 감옥에서 순교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남들처럼 세상에서 잘살아보지도 못하고 늘 고생만 하면서 살기도 합니다. 또 세상 사람들처럼 이렇게 하루하루 늙어가고 죽음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리석어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지혜롭기 때문에 이 인생이 끝난 후의 일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기꺼이 이런 고난도 마다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의의 면류관 영생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기 때문에 조금은 힘들어도 믿음을 가지고 삽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해도 이 믿음을 지키고 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라는 사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 때문에 그렇게 좋은 복음을 믿는 믿음을 버린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그가 믿음을 버린 그 행위대로 갚아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성공 부귀영화를 좋아하는 알렉산더와 같이 세상을 위해서 믿음을 버린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주의하라는 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이 세상의 눈으로 보면 불행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믿음으로 사는 삶은 최고의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이 눈에 보이는 세상을 따라 산다고 해도 끝까지 이 믿음의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볼 수 없지만 확실하게 있는 영원한 천국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면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