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9.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33)

  본문 : 딤후 4:9-13

  제목 :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2.

 

 

 “9.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서른여덟 젊은 나이, 사랑스러운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사남매, 일본대 법대와 평양신학교 졸업장, 이제 막 임직받은 목사라는 직분과 그를 기다리는 교회의 성도들, 그토록 갈망해 왔던 조국의 광복, 그 모든 것들을 기꺼이 내던져 버리고 총총히 가야만 했던 양용근 목사님의 그 마음이 무엇이었을까? 가정은 물론 사회적 지위나 하고 싶었던 일들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며 목숨까지 기꺼이 버리셨던 그분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양용근 목사님의 생애와 순교사를 기록한 책 예수 나를 오라 하네의 서문입니다. 양용근 목사님이 순교하시기 전날 밤에 부른 찬송이 예수 나를 오라 하네였고 그분의 생애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가는 삶이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도 이 세상을 살 때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설교 말씀을 통하여 살아가는 환경을 통하여 어떤 사건들을 통하여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 부르심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탄의 종이고 그 부르심을 듣고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제일 중요한 부르심은 구원의 자리로 부르는 부르심입니다. 우리를 불러서 교회에 오게 하시고 설교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진리를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해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게 하기 위한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어느 날 갑자기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이미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부르심은 사명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우리에게 이미 주신 재능을 따라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로 어떤 사람은 장로나 권사나 집사로 교사로 찬양팀으로 부르셨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일이 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 일은 크고 작음이 없습니다. 귀하고 천한 일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지난주부터 살펴본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바울이 그의 참 아들이라고 한 디모데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라고 했는데 오늘도 그 말씀이 설교 제목입니다.

 

 지난주에는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고 주로 사도바울을 떠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을 배반하고 떠난 사람도 있었고 복음 사역을 위해서 부득불 떠나는 사람도 있었고 사도바울이 보낸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울을 버리고 믿음을 버리고 떠난 사람을 생각하면 참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더 큰 일을 하기 위해서 떠나고 보낸 사람도 혹시 사탄의 유혹에 빠지거나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에 이 귀한 믿음을 변질시키거나 버리지 않을까 해서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오늘은 멀리 떠나 있는 동역자를 부르는 모습을 살펴볼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그가 필요하여 불렀지만 이 부르심 역시 예수님의 부르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전파를 위하여 사도바울을 통하여 그들을 부르시는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르심은 오늘날 우리를 부르시는 부르심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명자로 부르신 자들이 그 사명을 소홀히 하고 있거나 아니면 더 잘하게 하기 위한 부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예수님께서 나를 복음을 위해서 일하라고 부르셨는데 그 부르심을 소홀히 여기고 사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살펴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본문 11절에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다 사도바울을 떠났지만 유일하게 누가만 바울 곁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누가는 사도바울의 사역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다 보내도 누가만은 곁에 붙잡고 있었습니다.

 

 누가도 사도바울 못지않게 복음전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특별히 그가 사도바울과 뜻을 같이하고 동역함으로써 엄청난 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사도바울과 누가는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우선 그들이 태어난 고향이 비슷합니다. 같은 나라는 아니지만 아시아 지방에서 바로 이웃에 있는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누가는 수리아 안디옥 출신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터키 방향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수리아 지방이 나오는데 그 북부에 안디옥이 있고 이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사울이 선교사로 세워서 파송하게 됩니다.

 

 수리아 안디옥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길리기아 지방이 나오는데 길리기아의 다소가 사도바울의 고향입니다. 같은 도시는 아니지만 250킬로쯤에 있는 가까운 도시였습니다.

 

 두 사람이 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는 점에 비슷합니다. 누가는 의사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의사는 머리가 좋고 공부를 많이 해야 하지만 그때도 상당한 지식을 쌓아야 의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당시에 가장 유명한 율법 학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정통적으로 구약성경과 율법을 공부한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 관한 한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한 최고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관계로 두 사람이 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고 사도바울은 신약성경의 절반인 13~14권의 서신서를 기록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중요한 책이었고 사도행전은 성령님의 행적 즉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복음이 세계만방에 전파되는 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로마서를 비롯한 바울서신은 구약성경과 예수님의 행하심이 무엇 때문인지를 잘 정리한 교리 서신입니다. 바울서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경을 보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없습니다.

 

 누가는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던 예수님의 행적을 잘 아는 사람이었고 사도바울은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잘 아는 사람으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왜 그런 말씀을 하시고 왜 그런 일들을 행하셨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지식을 통해서 성경을 기록하였고 그것도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이 두 사람을 통하여 기록했습니다. 누가의 예수님의 행하심에 대한 지식과 사도바울의 구약성경에 관한 해박한 지식 그리고 그가 천국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 복음의 교리를 잘 설명한 서신서를 기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경의 기록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사도바울이 목숨을 걸고 전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보다 그 복음이 무엇인지를 잘 기록하여 우리에게 남겨준 일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하시려고 성경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왜 인간이 구원을 받아야 하는 죄인이 되었는지, 그 죄에서 구원은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는지를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3:16)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성경 기자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영감을 주셔서 사람이 썼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유기적 영감”, “완전 축자 영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도바울이나 누가의 삶은 성경을 기록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삶이었습니다. 그들의 지식과 그들의 경험과 그들이 체험한 기적의 역사가 다 성경을 기록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복음을 기록한 대표주자인 누가와 사도바울이 끝까지 함께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 그들을 통하여 복음의 진리를 알게 된 우리에게는 매우 소중한 일이었습니다.

 

 누가가 하는 일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하는 일은 정말로 보잘것없는 작은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작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는 이 일이 사도바울이나 누가가 한 일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느냐 하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서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오늘날 여기 모여서 예배드리는 이 일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시고 구원받은 백성들이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양하는 이 일을 위해서 그들이 그렇게 수고했고 예수님께서 특별히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런 소중한 일을 작은 일이라고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예배와 예배를 위한 헌신이 복음 전도의 목적이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를 데리고 오라

 

 본문 11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마가는 유대인으로 예루살렘에서 부유한 레위 가정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 기도했던 마가 다락방의 주인이었습니다. 사도바울과 함께 안디옥에서 선교사로 세움을 받은 바나바라는 사람이 마가의 외삼촌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외삼촌 바나바에게 신앙을 배워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베드로 사도를 만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에 더 큰 확신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베드로의 제자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가는 부잣집 아들로 곱게 자라서 마음이 연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실수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혀 가실 때 몸에 두르고 있던 겉옷을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또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사로 세움을 받고 1차 전도 여행을 갔을 때 마가도 동행했는데 여행 중에 어려움을 만나자 마가는 도중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서 후에 다시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여행을 떠날 때 바나바는 조카인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했지만 사도바울은 지난번에 같이 갔다가 돌아간 것을 가지고 같이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바나바와 바울이 심히 다투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고 바울은 실라라는 사람과 함께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의 머릿속에는 마가가 마음이 약해서 믿을 수 없고 같이 일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마가를 지금 데리고 오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나약하다고 싫어하던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했을까요? 마가의 무엇이 사도바울의 일에 유익하다는 것일까요? 본문에는 그런 것들을 기록하지 않아서 잘 알 수는 없습니다. 그냥 한번 짐작해 보는 것입니다.

 

 마가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마가복음의 기록자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각각 기록했습니다. 이 사복음서는 비슷한 내용이지만 각 사람이 보는 특별한 각도가 있고 특별한 목적이 있습니다.

 

 복음서나 서신서들이 기록순서대로 나열된 것이 아니라 분류별로 복음서와 역사서 그리고 서신서 중에도 바울서신 베드로 서신 요한 서신을 따로 구별해서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 신약성경이 기록된 것이 주후 50년에서 10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신학자마다 좀 다르기는 하지만 주후 65년에서 70년 그사이에 기록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디모데 후서에서 사도바울이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한때가 주후 66년경으로 봅니다. 그러면 66년에 마가가 이미 마가복음을 기록하고 왔는지 와서 기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마가가 로마에 있는 바울에게 온 후에 마가복음을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의 로마는 기독교인들이 엄청난 박해를 받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주후 64년에 로마는 엄청나게 큰 화재가 일어나서 도시의 거의 절반이 다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화재는 당시 네로황제가 자기 궁전을 화려하게 짓고 싶은 곳에 일부러 불을 질렀는데 화재가 너무 커지자 그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렸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기독교인이 억울하게 붙잡혀 가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숨어서 신앙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믿음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정말로 그리스도가 되시는 분일까? 예수님이 누구이시기에 우리가 이렇게 죽임을 당하면서까지 그분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안 사도바울은 급히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합니다. 마가가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지만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자세히 배워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가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자세하게 기록해서 흔들리는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필요를 느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줄 때 바울이 전한 복음이 확실한 진리이고 그 믿음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쓴 책이 마가가 기록한 복음서인 마가복음입니다.

 

 마가가 비록 나약하고 중간에 도망을 가기도 하고 그래서 바나바와의 사이가 멀어지게 했지만 마가가 알고 있는 그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해서 어려움을 당하는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확신을 가지게 해주는 일이 그 무엇보다 유익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에게 유익하고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유익하고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유익한 일입니다.

 

 

겉옷과 책을 가지고 오라

 

 본문 13절에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라고 했습니다.

 

 곧 순교를 당할 것을 알면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겉옷이나 가죽 종이에 쓴 책을 가져오라고 부탁합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겉옷을 준비해서 그래도 좀 덜 춥게 하려고 겉옷을 가져오라고 했고 또 죽기 전에 가죽에 쓴 두루마리 성경을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어서 가져오라고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바울답지 않은 부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겉옷은 꽤 무거운 것이기 때문에 먼 길을 가지고 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냥 시중에서 하나 사든지 도와주는 사람에게서 얻든지 하면 될 것인데 굳이 멀리 있는 것을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여기서 겉옷으로 번역된 단어는 책 넣는 상자’, ‘서류 가방으로도 번역이 되는 단어입니다. 칼빈은 이 단어를 꼭 그렇게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책 넣는 상자나 서류 가방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요한 서류가 들어있는 가방이라고 한다면 꼭 가져오라고 부탁할 만하다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순간에 단순히 추위를 이기기 위한 겉옷을 가져오라고 하기보다는 확인해야 할 중요한 서류를 가져오라고 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책은 구약성경을 말하는 것이고 가죽 종이에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죽으로 만든 종이에 성경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말합니다. 사도바울의 머릿속에는 이미 구약성경이 다 들어있었지만 죽기 전에 한 번 더 그 귀한 말씀들을 읽어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저는 겉옷 즉 서류 가방을 가지고 오고 두루마리 성경을 가지고 오라고 하는 것은 마가의 마가복음 기록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확실한 것임을 마가에게 확인시키고 예수님의 행적을 복음을 중심으로 기록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오늘 좀 복잡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을 교훈은 간단합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힘들게 복음을 전한 다음 마지막으로 성경 말씀을 확인하고 성경의 기록을 소중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이나 예수님의 행하심의 목적이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성경에 기록하여 당시에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또 장차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고자 함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고 그 성경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로마 시대처럼 고난을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을 가지고 살기에 너무 어려운 시대이고 바른 믿음을 가지기에 너무 힘든 세상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경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고 성경 말씀을 바르게 해석해서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성경의 중요한 부분을 기록한 사람을 한자리에 모으고 있습니다. 누가 마가 그리고 사도바울이 기록한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데 중요한 핵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말씀의 핵심인 복음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고 하신 말씀을 늘 마음에 간직하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