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8.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30)

  본문 : 딤후 4:6-8

  제목 : 믿음을 지켰으니.
 

 

  “6.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오늘 본문 말씀도 지난주 말씀과 같이 왜냐하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말씀에는 자신이 왜 복음을 전파를 강조하는가 하면 세상의 끝이 되면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을 듣지 않고 쓸데없는 헛된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복음전파를 강조하는 이유를 나도 세상을 떠날 시간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항상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떠나야 하고 바울 자신에게도 그 떠날 시간이 다 됐기 때문에 떠나기 전에 가장 중요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서글픈 것은 서로 만나서 정을 나누고 살던 사람이 헤어지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도 있기 때문에 아쉬운 이별도 하면서 삽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헤어지는 것은 또 금방 만나면 되고 때로는 그리움을 가지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기약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위대한 줄 알고 진실하게 고백하고 살았다면 천국에서 다 다시 만날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거나 다시 오시기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다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나면 그때 다시 만나기 전에는 만날 기회가 없습니다. 전화도 편지도 인터넷도 연결이 되지 않는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그때 다시 만날 때는 예수님을 믿어라, 믿음이 제일 소중하다, 이런 말을 할 기회가 없습니다. 이미 그런 기회는 다 지나가고 난 다음이고 이제는 거기에 따라서 영생의 면류관을 받는가 영원한 형벌을 받는가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에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사람들이 잘 듣든지 외면하고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좋은 것을 주고도 욕을 먹게 되겠지만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고 이 복음이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남기는 유언처럼 간곡하게 부탁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잘 새겨들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본문 6절에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라고 했습니다.

 

1)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이 글을 쓰는 곳은 로마의 감옥에서였습니다. 몇 년 전에는 투옥되었다가 다시 석방되어서 복음을 전하러 다녔지만, 상황이 더 악해져서 다시 붙잡혀 왔고 이제는 순교를 당해야 하는 시점임을 자신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동안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베드로처럼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치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이 세상을 더 살고 싶어 했으면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아직 복음을 더 많이 전해야 하는데 조금만 더 살면 안 되겠습니까? 죽어야 한다고 해도 고통스러운 순교가 아닌 자연사로 잠자다가 깨어나지 않고 고통 없이 주님 나라로 가면 안 되겠습니까? 이런 기도라도 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평소 이 세상을 떠나서 주님이 계신 하나님 나라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자신은 이 세상에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고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유익한 일이기 때문에 세상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1:23-24)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일을 마치고 하나님 나라로 오라고 하시는 것은 자신에게는 참 유익한 일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 세상의 삶에 연연하지 않고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 나라로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자신의 뒤를 이어 이 복음을 전할 디모데에게 신신당부를 합니다. 사람들이 세상의 헛된 것을 따르고 세상의 욕심을 채우려고 복음을 떠난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고 계속해서 끝까지 이 복음을 전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성경 말씀의 핵심이고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임을 알고 교회의 강단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지 말고 꼭 이 복음만 전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2)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이 왔다고 하면서 잠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라고 한 것처럼 희생과 헌신의 삶이었음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전제는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 마지막으로 포도주를 제물 위에 붓는 것을 말합니다.(29:40-41, 15:5) 바울 자신의 삶이 전제에 쓰이는 포도주처럼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다 바쳐진 삶임을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이제 곧 당하게 될 순교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소중한 일을 했지만, 마지막까지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치는 삶을 살았음을 전제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희생과 헌신과 순교는 오직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통해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전적으로 희생하고 헌신하면서 마지막으로 순교를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이 소중한 것이고 복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상의 것이며 은혜의 선물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자기 이익을 챙기고 자기의 명예를 높이고 자기 세력을 확장해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없기를 바라면서 모범을 보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순교자들이 많습니다. 기념관도 많고 책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왜 순교를 했는가에 관해서는 잘 말하지 않습니다. 순교자의 행적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이 순교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의 위대함은 잘 말하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바울이 지금 자신을 전제와 같이 부어졌다고 하는 것은 복음의 위대함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이 예수님께 받아서 전한 이 복음이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에 이 복음을 위해서 전제와 같이 부어진다고 해도 조금도 후회함이 없는 자랑스러운 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지켰으니

 

  본문 7절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옴을 생각하면서 자기의 삶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선한 싸움을 다 싸웠고, 달려갈 길을 다 마쳤고, 그런 가운데서 중요한 것은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다 싸운 것이, 달려갈 길을 달려간 것이 다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시사하는 말씀입니다. 최선을 다해 싸우고 최선을 다해 달린 목적이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함이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싸움이란 전쟁에 나가서 적군과 싸우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운동경기장에서 경기하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전쟁터에 나가서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나 운동경기에 나아가서 경기에 임하는 것이나 당시에는 다 목숨을 걸고 임했습니다. 당시 운동경기는 요즘처럼 신사적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죽이는 경기가 많았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삶이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긴박한 상황이라야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냥 대강 살아도 생사와는 관계없고 먹고사는 일에 지장이 없다면 대강 적당히 살게 됩니다.

 

  과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지런하게 일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으니까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힘들고 어려워도 최선을 다하여 땀 흘려 일해야만 했습니다.

 

  사도바울의 싸움은 영원한 생명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목숨을 걸고 전투하듯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영원한 생명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에서 그 선한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처럼 최선을 다했을까요? 그 선한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세상에 선한 일이 참 많기 때문입니다.

 

  그 선한 일은 믿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선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 세상의 성공이나 이 세상에서 바른 삶을 살고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는 일보다 믿음이 소중합니다. 특별히 이 세상을 다 살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세상의 일은 다 헛된 일이며 믿음을 지키는 일이 최선의 일임을 알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전쟁터에서 전투하는 것처럼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한 것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너무나 소중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육신의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가진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그가 매를 맞고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고 잡혀가고 감옥에 갇히고 순교까지 각오하는 이 모든 일이 다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먼저 자신이 믿는 믿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 믿는 믿음이 너무나 확실한 것이고 너무나 소중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관한 확신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 바울 자신이 받는 것이 시시한 것이었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있으나 마나 한 것을 가지고 받으나 마나 한 것을 가지고 그렇게까지 고난을 당하면서까지 이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을 지켰다는 말은 믿음이 변질되지 않도록 지켰음을 말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믿음이라는 말에는 중요한 핵심 교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에는 변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변질되면 엉뚱한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그리스도교 즉 기독교가 시작된 후에 수많은 사람이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을 변질시키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으면서도 믿음보다는 율법을 행함에 여전히 강조점을 두려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이단들은 믿음이 아닌 영적인 깨달음이나 다른 것을 통하여 구원받는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타락한 중세교회의 로마 가톨릭은 인간의 공로를 통하여 구원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도 기독교의 믿음이 세상 종교와 혼합이 되어서 이상한 믿음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기복주의 신앙, 무속신앙, 저급한 신비주의, 유대교와 유교 사상에서 온 도덕주의, 인간중심의 인본주의 사상들이 믿음을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바른 교훈, 복음에서 나오는 교리,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이 진리를 따르는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특별히 말세를 맞이해서 바른 교훈을 듣기 싫어하고 세상의 헛된 것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 가운데서 바른 믿음을 지키는 일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교회에 다니다 보면 세상의 복을 받기도 하고 기적도 체험하고 보람된 일도 하면서 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 칭찬받고 존경받는 삶을 사는 것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 때문에 우리가 가져야 할 바른 교훈에서 나온 바른 믿음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신앙의 근본은 없어지고 부스러기만 좋아하다가 결국은 구원에 꼭 필요한 참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복음만 강조해서 전합니다. 부스러기 축복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이 믿음을 통한 구원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해도 이 믿음을 통한 구원을 얻는 것이 소중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16:26)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 때도 세상의 재물보다 목숨이 더 소중한 것이며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은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바른 믿음을 빼앗아가거나 변질시키기 위해 사탄이나, 사탄의 사주를 받는 이단이나 거짓 선생들이 우리를 수시로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는 것은 마라톤 선수가 전 구간을 완주했다는 뜻입니다. 제일 먼 길을 오랫동안 달려야 하는 마라톤 코스처럼 우리 인생도 먼 길을 오랫동안 달려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잠깐 동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평생 동안 죽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니까 때로는 포기하고 싶도록 지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라톤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단거리 경주라면 힘껏 달려서 마치면 되겠지만 장거리 코스라 힘을 안배하기도 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너무 급하게 너무 힘껏 하는 사람은 중간에 지쳐서 포기할 수도 있으니까 조절을 잘해야 합니다.

 

  마라톤 경주처럼 뛰기는 하지만 다행히 등수를 가리지는 않습니다. 코스를 완주하면 됩니다. 등수에 들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끝까지 완주하는 일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완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영생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달리면서 조심해야 할 것은 코스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해진 코스를 따라서 달려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습니다. 상급을 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런 욕심 때문에 경기의 규칙을 어겨서는 안 됩니다.

 

  코스를 벗어나지 않고 규칙을 지킨다는 것은 그동안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계속해서 강조해온 바른 교훈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에서 나온 교훈, 성경을 옳게 분별해서 얻은 교훈에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제일 큰 관심을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은 바른 교훈 즉 이 바른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이 이 길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출세를 하지 못하고 돈을 벌지 못해서 가난한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이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루하루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날이 하루하루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삶을 다 살고 난 후에 우리의 삶이 무엇을 위한 삶이었는지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믿음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달렸는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헌신했는지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에게 주어지는 의의 면류관 영생의 면류관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잊지 말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변질되지 않은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