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7. 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79)
본문 : 엡 4:31-32
제목 : 진정한 용서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만화영화를 보시면 뒤에는 악당들이 좇아오고 주인공은 막 쫓겨 가는데 앞에 큰 낭떠러지가 나타나고 그 밑에는 협곡이 있고 반대편에 또 그런 낭떠러지가 있는데 그 낭떠러지와 낭떠러지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뛰어넘는 장면을 보셨을 것입니다.
좇아오던 악당들은 주인공처럼 뛰어넘으려고 하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그 깊은 협곡에 빠져서 죽습니다. 

어떤 분이 우리 인생을 그 협곡을 뛰어넘으려는 사람들에 비유를 했습니다.
만화나 영화에서는 의로운 주인공이 그 낭떠러지와 낭떠러지 사이에 있는 협곡을 뛰어넘어서 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아무리 작은 협곡이라도 그 넓이가 수십 메다가 넘기 때문에 아무도 뛰어넘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어차피 넘지 않으면 죽으니까 사람들은 다 일단 뛰어 본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2m를 뛰었고 어떤 사람은 좀 노력을 해서 4m를 뛰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엄청난 노력을 통하여 그 배가 넘는 8m를 뛰었습니다.
운동경기라면 조금 밖에 못 뛴 사람보다 노력해서 제일 많이 뛴 사람은 상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에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조금 뛴 사람이나 많이 뛴 사람이나 그 협곡에 빠져서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뛰어가지고는 그 협곡을 넘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협곡의 넓이는 어떤 인간이라도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에 노력을 한 사람이나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이나 협곡에 빠져서 죽기는 매 일반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를 빗대어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죄 문제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인간 스스로는 그 죽음의 협곡을 그 멸망의 협곡을 뛰어넘어서 영원한 천국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뛰어넘으려고 하지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고 죄의 용서를 받는 방법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아예 포기하고 살아갑니다.
노력을 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성인군자가 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적당히 죄를 지으면서 어쩔 수 없이 죽음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고 그 협곡을 스스로 뛰어넘으려고 연습을 하고 훈련을 하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선한 일들을 하려고 애를 쓰면서 조금이나마 더 뛰어 보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 노력은 참으로 가상하지만 그러나 그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별 노력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산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그 협곡을 건너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진정한 용서를 받는 그 길을 알고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들으시면서 혹시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까 봐 미리 이렇게 길게 사설을 늘어놓았습니다.
우리가 악을 버리고 진정한 용서를 하며 살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 선한 사람이 되려고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 사람으로서 진정한 용서를 이미 받은 사람으로서 이런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악의와 함께 버릴 것
본문 31절 말씀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라고 했습니다. 

'버리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깨끗이 쓸어버리다', '제거되게 내버려 두라'는 의미로 더 이상 모든 악독과 관계를 갖지 말아야 함을 시사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아예 생각도 하지 말고 깨끗하게 쓸어버리고 제거해 버리라는 엄한 명령인 것입니다. 
진정한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이런 악한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 이런 악한 마음이 자리잡고 행세하는 한 용서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참된 용서를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지만 인간의 몸을 입으셨어도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에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예수님처럼 완전한 인간이 되어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지은 죄를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나에게 지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있는 이런 악한 것들은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수 없듯이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용서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1)모든 악독을 버리고 
우리 주변에 보면 아주 악질적으로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독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이 처음부터 엄마 배속에서부터 그렇게 지독하고 악독한 사람으로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아예 작정을 하고 태교를 그렇게 했으면 몰라도 다 선한 아이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 동안 죄악된 환경들이 그렇게 악하고 독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일전에 군부대에서 한 병사가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난사해서 같은 동료군인들을 10여명이나 살상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어찌 그렇게 악해질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같이 한솥밥을 먹고 같이 잠자고 같이 나라를 지키던 전우를 큰 이유도 없이 그렇게 무자비하게 죽이고도 태연히 근무를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조금도 반성을 하는 기색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라고 여러 가지 타당한 이유들을 조사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그럴듯한 동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그의 마음이 악독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드라마나 영화나 게임들을 통해서 악독이 그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악독한 것들을 보여 주면 안됩니다.
어른들이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쉽게 때리고 죽이고 하는 것은 영화든지 드라마든지 게임이든지 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 주인공은 잘 안 죽지만 졸병들은 아주 쉽게 죽고 죽입니다.
영화는 그렇게 해야 재미있지만 인생은 모든 생명이 다 중요합니다.

운동을 시켜도 격투기 같은 운동은 웬만하면 시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축구나 배구나 농구같은 운동들을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너나없이 다 태권도장을 보내서 싸움박질 하는 것을 배우고 있으니 참 걱정이 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격투기 운동을 하는 이이들은 쉽게 남을 때립니다.
그리고 그 강한 만큼 악해지고 독해집니다.

조금이라도 우리를 더 악하고 더 독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노함과 분냄을 버리고 
노함과 분냄은 성질을 낸다는 점에 있어서 같은 말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는 말입니다. 
'노함'은 걷잡을 수 없이 분노가 타올라서 감정이 폭발하여서 급하게 성질을 부리는 것입니다.
'분냄'은 악독한 적개심이 마음에 자리잡아서 지속적이고 습관적으로 성질을 부리는 것을 말합니다.
노함은 순간적으로 감정을 참지못해서 폭발하는 것이고 분냄은 악한 마음으로 언제나 신경질적으로 성질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렇거나 저렇거나 성질을 부리고 화를 내는 것은 아주 좋지 않은 버릇입니다.
쉽게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리는 것 때문에 우리가 실수를 많이 합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은 평생을 긴장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 못된 성질들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3)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버리고 
본문에서 떠든다는 것은 단순히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자제하지 못해서 소리를 지르며 떠드는 것을 말합니다.
훼방하는 것은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욕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이 성질을 내기 위해서나 남을 비방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한 말을 하고 남에게 유익이 되는 말을 하고 칭찬하고 감사하는 그런 언어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왕 말을 하면서 그 말에다가 축복을 담고 은혜를 담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악한 것들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모든 잘못된 습관들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든지 선하게 살고 착하게 살고 모든 사람을 온순하게 대하고 남에게 은혜가 되는 유익한 말을 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2.서로 용서하라
본문 32절 말씀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속에 있는 악한 것들을 버려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런 선한 마음들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장에 24절 이하에 보면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다가 갈 데가 마땅하지 않아서 나온 그 집에 들어가 보니 그 집이 깨끗하게 소제되고 수리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귀신이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까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악한 마음을 깨끗한 마음으로 바꾸었다고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고친 상태 그대로 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선한 것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서로 인자하게 하며 
인자(仁慈)하다는 말은 어질다, 너그럽다, 친절하다라는 말입니다.
친절한 사람 어질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만나면 짜증을 부리고, 만나면 성질만 내고, 만나면 험담이나 하고 욕이나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 만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만나면 가슴이 따뜻함을 느끼고 만나면 행복해지는 그런 사람이 되어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인자하심은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시편을 읽다가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인자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고 인생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그런 엄청난 분이 무섭기만 하고 군림하기만 하는 그런 신이 아니시라 우리 피조물인 인생들에게 너무나 너그러우시고 친절하신 분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 인자하심에 우리는 늘 감사를 드리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본받아 마음이 어질고 따뜻하고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 인자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불쌍히 여기며
진정한 용서는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것은 뜨거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동정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불쌍히 여김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은 인류를 구원시키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였습니다.
불쌍히 여김이 없는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구원을 받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쌍히 여김이 없이는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부모님이 없는 고아가 제일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서 혼자 사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선천적이거나 혹은 후천적으로 몸이 불편한 불구자로 사는 사람이 참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불쌍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 비추어서 생각을 해 보면 그 마음에 악독이 있는 사람이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세상을 너무나 힘들게 살아서 악해지고 독해진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쉽게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리는 사람도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잘 참고 넘어가는데 성질이 급한 사람은 그 순간을 참지 못합니다.
잘 참았으면 쉽게 넘어갈 일을 참지 못하는 급한 성질 때문에 작은 일을 큰 일로 만들고 주변의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입만 벌리면 남을 비웃고 헐뜯고 욕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사실 불쌍한 사람입니다.
말 한마디에 천량 빚을 갚는다고 했는데 그 쉬운 말 한마디 잘 할 줄 몰라서 말 한마디 잘못해가지고 다른 사람과 평생 원수가 되고 못된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사실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까지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못된 사람 악한 사람 쉽게 화를 내는 사람 남을 헐뜯는 이런 사람들까지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용서하라
우리가 서로를 용서하는 정신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심을 따라서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눈으로 서로를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흉악한 죄를 지어서 최고의 흉악한 사형을 당하는 강도까지도 말 한마디에 용서를 받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내 자신이 남을 정죄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의 흉악한 죄가 명백히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 서 보면 그 십자가를 통하여 내가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십자가 앞에 서 있기보다는 율법 앞에 서 있습니다.
그 율법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한 사람도 율법 앞에 서있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십자가 앞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 앞에 서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