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6. 2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78)
본문 : 엡 4:30
제목 :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사람은 원래 영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기 때문에 그 마음에 늘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옛날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살았습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섬김은 없어졌지만 저마다 나름대로 신을 정하고 신을 섬기면서 영적인 삶을 살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영적인 삶의 태도를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한 근대에 와서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현실의 세계를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비과학적인 영성에는 관심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이런 물질문명이 사람의 마음을 충족시켜주지 못함을 깨닫고 다시 이 영성을 중요시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미래학자들은 대체로 21세기가 영성의 시대가 될 것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들이 이런 과학문명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 탐구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깊은 산속에서 수염을 길게 기르고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인간의 모든 것을 깨달은 것처럼 이야기하더라도 별로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상한 몸짓을 하면서 깊은 사색에 잠겨서 마치 도사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별로 놀라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다 우리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남겨 놓은 영성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영성이 하나님을 찾아서 바르게 가야 하는데 인간들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엉뚱한 것으로 빠져 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그럴 듯 해도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진리를 알지 못해서 잘못된 영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 기독교 내에서도 영성훈련이라는 것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마치 그 영성이 새로운 하나님을 찾는 것처럼 하거나 또 불교인들이 수도를 하는 것처럼 많은 고행과 깊은 묵상에 빠져야만 되는 것처럼 한다면 큰 잘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 잘 압니다.
그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우리를 어떤 길로 인도하려고 하시는지는 성경말씀에 다 기록을 해서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령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의 마음에 오셔서 내주 동거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성훈련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다짐을 하는 것이 영성훈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런 영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신앙인의 영성이라는 것은 이미 우리 속에 와 계시는 그 성령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속에 와 계시는 성령님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 물질에만 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 안에 오셔서 내주 동거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잘 들을 줄 아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성령님을 근심하시게 하지 말라
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마음에는 이미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을 전제하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와 계시는 성령 하나님을 근심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시작은 성령님의 강림하심으로 시작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고 그 약속대로 오순절 날에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서 각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시기 시작한 날을 우리는 성령강림주일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성령님께서 하나님께서 택하심을 받은 백성들을 찾아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해 주시고 천국까지 인도해 주십니다.
그 성령님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참으로 큰 문제입니다.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 음성을 듣고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무시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성경이 말씀하는 성령님과의 좋지 못한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으면 이런 상황 가운데 처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성령님을 거스리는 사람들
사도행전 7:51절 말씀을 보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거스린다"는 말을 헬라어로 안티핍토(ωντιπιπτω)라는 말을 씁니다. 
이 말의 뜻은 “반대하다”, “거역하다”, “저항하다” 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기는 듣지만 순종하지 않고 반대하고 거역하고 오히려 저항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늘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고 회개를 외치던 많은 선지자들의 말에 불순종하고 오히려 잡아서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에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로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가운데 유대인들은 오히려 성령님의 역사를 거부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반대하고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심지어 성령 충만한 사역자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려고 했습니다. 
스데반이 바로 이런 상황을 성령을 거스린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을 거역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반대하고 거역하고 저항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32절에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거스리고 거역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도 알지 못하고 진리도 알지 못하고 이 좋은 복음의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죽음의 길로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다행히도 그 성령님을 받아서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그 뜻을 따르며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2)성령님을 훼방하는(모독하는) 사람들
마가복음 3:29절 말씀에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훼방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블라습헤메오(βλασφηεω)라는 동사를 썼습니다.
이 말은 모독한다 조롱한다 훼방한다라는 뜻으로 번역을 하는 말입니다. 
우리 나라말에서 훼방이란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잘 못되도록 방해하는 것을 훼방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이 들려서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쳐 주셔서 그가 말하며 보게 되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으로 고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주변에 둘러서 있던 바리새인들이 극구 사탄의 힘으로 고쳤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모독하는 죄란 성령의 역사를 사탄의 역사로 폄하하고 조롱하여 결국 성령을 모독한 죄를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구원에 관한 모든 일들은 우리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고 의인이 되게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고 천국 백성이 되게 하는 이 모든 일들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이 일을 방해하는 것은 결코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성령훼방죄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이 성령님의 역사가 아닌 사람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성령훼방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 선을 행함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말하는 이런 모든 것들이 결코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성령훼방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성령님을 소멸하는 사람들
데살로니가전서 5:19절 말씀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라고 했습니다.
여기 "소멸하다"라는 말은 "불을 끄다"라는 말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불로 비유할 때가 많습니다
그 성령님의 불을 꺼 버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때 고린도 교회에서는 성령님의 역사를 무절제하게 사용하여 광신적 태도가 만연했기 때문에 오히려 절제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오히려 성령님의 활동을 제한하거나 배격하는 일을 하였기 때문에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소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지나친 나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인해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때에 나의 이성과 감정이 그것을 제한하거나 무시할 때가 있는데 그것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늘 성령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대로 살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 성령님을 소멸하는 것에 대해서 이런 예화를 했습니다.
한 청년이 대학에 들어가서 한 여학생을 가슴 깊이 짝사랑하게 됐답니다.
그런데 주일 아침에 느닷없이 이 여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답니다.
“오늘 야외로 놀러 가려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순간적으로 너무 바라던 일이어서 가겠다고 하고 약속을 했답니다. 
약속 장소로 가는 동안 계속해서 마음속에서 한 음성이 들려 왔답니다.
“오늘은 주일이야! 가면 안 돼.” 바로 성령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을 듣고 괴로워하면서도 야유회를 다녀왔답니다. 돌아와서 너무 괴로워서 울면서 다짐을 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한 달쯤 지나서 그 여학생이 주말마다 하는 학원에 함께 다니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여학생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생각없이 그렇게 하자고 동의를 했답니다. 
또 마음속에서 음성이 들려 왔답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취소해라”
그러나 이 청년은 애써서 이 음성을 외면했답니다. 
그런 음성이 들릴 때면 다른 생각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려 했답니다. 

주일에 교회가지 않고 학원으로 야외로 다니기 시작하면서 계속 그 음성 때문에 시달렸는데 한 달 지나고 두 달 지나면서 점점 그 음성이 희미해지더니 언제인가 부터는 아예 그 음성조차 들리지 않더랍니다.

성령님께서는 때때로 우리 마음속에 어떤 음성을 들려주실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큰 감동을 주시고, 때로는 큰 결단을 촉구하시고, 때로는 크게 책망하시기도 합니다. 그 때 그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를 거부하고 그 역사하심을 거부하는 행위가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주님을 떠나 살게 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성령님을 근심케 하는 사람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근심케 하다"는 "슬프게 하다" "마음에 고통을 느끼다"라는 뜻의 말입니다.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가 바르게 살지 못할 때 우리가 진리 따라 살지 않을 때 슬퍼하시고 고통스러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에베소서 4장에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일들을 여러 가지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이 일들을 우리가 행하지 않을 때 성령님께서 슬퍼하시며 마음 아파하신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옛 사람을 버리지 못하고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성령님은 근심하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성령님께서 슬퍼하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26절을 말씀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하셨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고 연약해서 넘어지고 쓰러질 때 성령은 우리 안에서 크게 탄식하신다는 것입니다.

5)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
우리가 앞으로 배우게 될 에베소서 5:18절 말씀에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에 대해서 나중에 자세히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드린 이런 잘못된 것들 즉 성령님을 거스리지 않고 성령님을 훼방하지 않고 성령님을 소멸하지 않고 성령님을 근심시키지 않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령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면서 따르며 살고 성령님을 영화롭게 하고 성령님이 불같이 역사하시도록 하며 성령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을 거스리지 말고 성령님을 훼방하지 말고 성령님을 소멸하지 말고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말고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2.성령님 안에서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음을 알라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구속함을 받는 그 날까지 인을 치시면서 우리와 동행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속의 날"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죄인을 심판하시고 우리를 부활의 몸으로 변하게 하시어서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실 그 날을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것임을 믿고 기다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구속의 날까지라는 말씀은 구속의 날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속의 그 날이 올 때까지 매일 매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적인 삶을 살 때거나 아니면 실패하여 낙망적인 삶을 살 때이거나 언제나 변함이 없이 항상 우리와 함께 동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즐거워할 때 함께 즐거워해 주시고 우리가 힘이 들 때 능력을 주시고 어려움을 당할 때 지혜를 주시면서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신앙을 지키면서 살게 해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인치심"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소유주이심을 나타내는 보증의 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일시적으로 범죄한다고 해도 떠나 버리지 않으시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까지, 약속하신 기업을 주시는 날까지 확실한 보증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주님을 배반하는 삶을 살기도 하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 어쩔 수 없는 죄를 짓기도 하지만 성령님은 한번도 한시도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보증인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을 범했을 때 그냥 떠나가 버리시는 성령님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잘못을 했을 때 근심을 하실 필요가 없으실 것입니다.
잘못하면 가 버리시고 얄미우면 가 버리시는 분이시라면 근심을 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우리의 보증이 되셔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행할 때 고통스러워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점을 악용해서 바르게 살지 않으려고 합니다.
매를 들고 잘못하면 엄청난 벌을 내리고 쫓아내 버린다면 쩔쩔매면서 잘하지만 사랑으로 잘 대해주면 제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조금만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고 매를 드신다면 우리는 꼼짝 못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많이 참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바르게 살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해 주시는 그 은혜를 알고 바르게 사는 것이 얼마나 현명한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속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님을 근심하지 않게 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기쁘시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오셔서 함께 동행해 주시고 계십니다.
구속의 그 날까지 우리의 보증인이 되셔서 힘을 주시고 도와주시고 위로를 해 주십니다.
그 성령님을 근심시키지 마시고 오히려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