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5.2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73)
본문 : 엡 4:22-24
제목 : 새 사람을 입으라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는 말씀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사탄의 유혹과 우리 속에서 한 없이 꿈틀거리는 욕심으로 인해서 죽고 멸망하고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심령으로 새롭게 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먼저 우리의 의식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우리가 계획하는 것 우리가 추구하는 마음이 본질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24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새 사람을 입는 것 즉, 하나님을 따라 새 사람을 입는다는 뜻이 무엇인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입는다는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하나님을 따라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가 입어야 할 새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다는 말을 직역하면 "하나님을 따라서 창조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 속에 하나님을 닮은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그 좋은 형상들이 다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받는 특권들도 다 상실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사실은 새로운 사람이 아니라 맨 처음 창조되었던 그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것이 당연했던 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자신의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신을 선택해서 그 신을 섬김으로서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려고 하는 종교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건강이나 부나 마음의 평안 등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종교의 하나로 하나님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인간 본분의 바른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일개 티끌과 같은 존재도 없는 우리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람으로 창조하시기 전에 우리가 살 좋은 환경이 이 우주를 미리 만드시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어서 의인으로 만들어 주신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게 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범죄한 몸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도 없고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없기 때문에 그런 자격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어서 병이 나았다라고 자랑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어서 부자가 되었다고 자랑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난다면 그 믿음은 별 의미가 없는 믿음일 뿐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잘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그것으로 끝이 난다면 그 구원은 거짓이거나 부끄러운 것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고 의인이 된 사람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본래 인간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본래 인간의 자리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새 사람을 입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또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들을 다 받아 누리는 것이 당연했던 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를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집을 나갔던 아들이 돌아오자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를 잡고 신발을 시기고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워 주고 잔치를 벌렸습니다.

사람들은 이 비유에서 그 감격스러운 장면만 늘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늘 그런 감격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집에 있던 큰 아들도 그 모습을 보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런 큰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눅15:31)라고 했습니다.

없어졌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아버지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래서 잔치를 벌리고 선물이나 받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늘 함께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이 나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고 아버지가 가진 유산만 노리는 불효자들이 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은 없으면서 유산이 탐이 나기 때문에 가끔 명절이나 생신 때나 뭐 좀 싸 들고 와서 부모님을 사랑하는 척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내에도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으면서 진실된 마음으로 섬기거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축복이나 받아 보고 유업이나 받아 보려고 교회에 드나드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야비한 마음을 버리는 것이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인생의 본분인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 늘 바르게 서서 당연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살면 하나님께 있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수많은 축복들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것이 됩니다.

인간 그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 본연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2.의
본문 말씀에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라고 했습니다. 
"의 와 거룩함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재창조함을 받는 새사람의 윤리적 덕목이며 자질이다"라고 했습니다.
새 사람을 입기 위하여 우리가 가져야 할 중요한 요소가 의와 거룩함이라는 것입니다.

"의"는 죄와 악의 반대 개념으로 바른 것, 옳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삶에 있어서 죄악을 행하면 살지 말고 늘 옳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범죄하지 않고 악을 행하지 않고 올바르게 사는 것이야 누구나가 다 바라는 것이고 그렇게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다 나름대로 이 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불교에서 이 의라는 것은 살생을 금하고 욕심을 버리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자비를 베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 바른 삶을 위한 스님들의 노력은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서 오랜 세월동안 수도를 하면서 고행을 하면서 그들이 쌓는 공덕들은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참 대단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성철스님을 잘 아시지요
눕지 않고 자지 않는 수행(장좌불와 수행)을 팔 년 동안 행하고
성전암에 철망을 두르고 십 년 동안 한번도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의 의를 위한 생활은 우리가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들의 기도생활 그들의 금식 금욕의 생활 그들이 엄격한 신앙생활을 우리가 발벗고도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의로운 삶을 향한 노력을 우리는 도저히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아주 철두철미하게 율법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고 제물을 바치고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의 의로운 삶을 우리는 살지 못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5:20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불교도들보다 더 의로워야 합니다.
우리는 이슬람교도들보다 더 의로워야 합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보다 더 의로워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갈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람들 보다 더 고행을 많이 하고 더 종교적인 열심을 내고 더 법을 잘 지켜서 의롭게 살 자신이 있습니까
아니면 구제나 남을 도와주는 선행이라도 많이 해서 의로운 사람이 될 자신이 있습니까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면 이제 끝입니다. 
어차피 천국에 못 갈 바엔 내일부터 세상에 나가서 실컷 사기나 치고 돈이나 많이 벌어서 흥청망청 놀아 보자고요

지금부터 설교를 잘 들으세요 여기까지만 듣고 내일부터 교회 떠날 사람 있으면 큰일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의는 그런 의가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 노력을 해서 우리 스스로 이루는 그런 의를 목표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 "의"하면 아주 몸에 두드러기가 나도록 얼른 빠르게 생각이 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주시는 "전가된 의", 혹은 "수여된 의"입니다.
우리의 의는 우리가 어떤 일을 바르게 함으로 우리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1-24절에 너무나 명백하게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의 기준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그 기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고행을 하고 선행을 하고 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백날 그렇게 해 보아도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불교계의 거물급 스님 성철 스님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오랜 수행을 하고 참 존경 받는 스님에게 제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 한 말씀만 여쭈겠습니다. 일천 삼백 만 불자가 있는데 그 불자들에게 한 말씀만." 
"한 말씀만? 내 말에 속지 마라. "내 말 말이여. 내 말한테 속지 말어. 나는 늘 거짓말만 하니까." 
내 말에 속지 마라"는 말을 던져 주고는 영영 우리 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는 82년을 이 세상에 살면서 59년 동안 중으로 수행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런 멋있는(?) 시 한편을 남기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인생은 누구나 다 자기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면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이치를 다 깨달은 것 같고 엄청나게 의로운 사람으로 산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 속에 있는 죄악은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님들에게 자주 이런 말씀을 합니다.
이세상에서 남들보다 좀 선하게, 좀 착하게, 좀 바르게, 좀 좋은 일도 하면서 사는 것 가지고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의롭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속에 있는 엄청난 죄악을 감추고 위장하고 사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위장하고 위선으로 살 바에는 차라리 죄를 지어보라는 것입니다.
코가 비뚤어지도록 한잔 걸쳐 보고 성질 있는 대로 부려서 남에게 피해를 주고 경찰에 잡혀 가서라도 아 나 자신이 참 형편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서 자신의 형편없는 모습 그대로를 내어 놓고 엉엉 우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의인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진리의 거룩함
우리가 새 사람을 입는 길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룩함은 원래 우리 하나님께 쓰는 용어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근본적으로 구별이 되신 창조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는 모든 우상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일 뿐입니다.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비슷하시거나 약간의 차이가 나는 그런 구별이 아니십니다.
피조물들이 감히 우러러 볼 수 없는 거룩함이 우리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용되는 기구들을 거룩한 물건, 성물이라고 합니다.
그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를 거룩한 무리 성도라고 합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그런 차별 의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똑 같은 두 눈 가지고 똑 같은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 함께 산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과 내가 다른 것이 없는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을 하시고 불러 따로 구별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때가 가장 불행하게 느껴지십니까
예수님도 안 믿는 사람이 부자로 호화롭게 사는 것을 보면 상대적으로 우리는 초라함을 느끼고 부러운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 정도 가지고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할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영원한 생명을 받은 자요 영원한 천국에서 살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거룩함은 진리의 거룩함이라고 했습니다.
진리는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이 세상의 인간들이 연구한 모든 법칙은 변합니다 완전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연구한 철학이나 어떤 법칙에 의해서 우리가 거룩하다고 하면 그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금방 변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뭘 어떻게 해 가지고 돈 많이 벌었다고 해도 여러분 따라 하지 마십시오 늘 언제나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늘 바뀌고 환경도 바뀌고 사람마다 적용되는 것도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가막힌 법칙을 발견했다고 해도 너무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법칙은 금방 바뀌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제가 서울대학교 모 교수가 연구한 비타민C 법칙에 많은 공감을 가지고 비타민C를 열심히 먹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또 연구를 해 보니까 열심히 먹어도 별 볼일 없다고 합니다. 누구 말이 옳은지 가릴 수가 있어야지요

그러나 불변의 법칙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 말씀의 핵심이 되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이 되는 것이 진리입니다. 
마24:35절에 예수님께서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에 의해서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따라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던 그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자동을 받게 되는 그 자리에 늘 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그 의를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무리로 구별해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변함이 없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에 따라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