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5.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70)
본문 : 엡 4:20-21
제목 : 그러나 오직 너희는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이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차이는 단순히 종교의 차이가 아닙니다.
어느 신을 섬기는가, 어떤 종류의 선을 행하는가, 어떤 종류의 행복을 추구하는가 하는 정도의 차이가 아닙니다.

그 차이가 너무나 커서 대강 서로 섞이거나 왔다갔다 하거나 여기 있어도 그만 저기 있어도 그만인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주 분명하고 너무나 확실하고 엄격한 구분이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참된 신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고
비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오히려 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헛된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인생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헛된 우상들을 신이라고 섬기는 사람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차이가 있는 사람을 같은 종교인이다 뭐다 해서 같은 사람으로 취급을 하는 것은 참 멍청한 짓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천하를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이 있고 비그리스도인들은 그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루살이의 생명과 그래도 7-80년을 사는 인생의 생명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누더기를 입고 다리 밑에서 거지로 사는 사람과 화려한 궁궐에서 호화스럽게 사는 왕처럼 사는 사람의 삶의 질은 엄청난 차이가 있듯이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그 길이와 질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차이가 있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삶은 같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신분의 차이만 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이나, 삶의 원리나, 삶의 목적에 있어서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과 교회 밖에 있는 비그리스도인들을 살펴보면 별로 차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그저 주일날 교회에 온다는 차이 밖에 별로 다르지 않는 삶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자부심보다는 오히려 부끄럽고 챙피하게 생각을 하고 혹시나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사고를 대비해서 보험에 드는 것처럼 억지로 마지못해서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은혜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새 생명으로 거듭난 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상 사람들처럼 허망한 삶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너희들은 그런 어리석은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오늘 본문말씀의 핵심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러나 오직 너희는"이라고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오직 너희는"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그러나"가 들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비그리스도인들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지만 그러나 오직 너희는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비그리스도인들은 총명이 어두워져서 무지한 가운데서 마음이 굳어져서 허망하게 살고 감각이 없는 자가 되어서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더러운 것을 행하지만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고 배운 사람들이고 예수님 안에만 있는 진리를 배운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몰랐으면,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몰랐으면, 우리도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이지만 그리스도를 알고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아는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그리스도인이 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을 하시면서 그리스도인이 된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인 답게 살려고 다짐을 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우리는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들입니다.
본문 20절 말씀에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앞 절의 말씀 즉 17절에서 19절까지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그리스도인인 이방인은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한다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마음이 허망하여 하나님도 모르고, 삶의 목적도 없고, 방향도 없고, 소망도 없이 허무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처럼 배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배운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배운 그런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1)이 세상 사람들은 허망한 것을 배워서 어쩔 수 없이 그 배운 대로 허망
한 것을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사회 단체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가르침들은 우리를 허망한 데로 인도할 뿐이더라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많이 배워서 박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판검사가 되고 유명한 예술가가 되고 인기있는 연예인이 되고 돈을 많이 벌어 재벌이 된다고 해도 그 삶의 끝들은 다 허망할 뿐이더라는 것입니다.

흐르는 세월 앞에서 늙어 가는 육신 앞에서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그런 허망한 교육을 평생 받으면서 살고 있는 것이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배운 교훈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믿고 바라는 것은 그 실상이 없는 허망한 것이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그 실상이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영원한 나라가 실제로 존재하는 천국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많이 배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에게서 영원한 천국을 배운 사람은 참된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천국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학교를 많이 다니고 박사학위를 많이 받았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참된 교육은 하나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 할머니들 옛날에 태어나서 여자가 무슨 공부냐고 해서 학교도 못 다니고 공부를 못했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은 많은 것은 못 배워도 꼭 필요한 것은 배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게 꼭 필요한 필수과목인 천국 복음에 대해서 배웠기 때문에 잡다한 지식, 필요없는 지식, 허망하게 끝나는 지식 많이 배운 사람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이 세상 사람들은 총명이 어두워진 사람들에게 바르지 못한 지식들을 
배웠습니다.
성경말씀에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눈이 밝아서 잘 볼 줄 아는 사람에게 배워도 잘 배울까 말까 할 것인데 자기도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남을 어떻게 바른 길로 인도를 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식은 눈먼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런 지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신 지식은 참된 지식입니다.
세상에서 앞도 뒤도 분간할 줄 모르는 총명이 어두워진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알량하게 배운 지식을 가지고 자기가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3)이 세상 사람들은 죄에 대한 감각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죄의 심각성도 모르고 범죄한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도 모르고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배운 지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잘못된 지식은 오히려 우리를 죄 가운데 빠지게 하고 죄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범죄자로서 평생을 살게 만드는 잘못된 지식일 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배운 지식은 참된 지식입니다.
우리를 허망한 것이 아닌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해 주는 지식입니다.
밝은 빛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참된 지식을 우리가 배우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2.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배운 사람들입니다. 
21절 말씀에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라고 했습니다.
20절에 그리스도에게서 배웠다고 하는 말씀이나 21절의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배웠다는 말씀에는 별 차이가 없는 비슷한 말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마도 그리스도에게서 배운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반복해서 더 확실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진리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과 연결되는 모든 말씀이 진리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과 연결되지 않은 말씀들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라고 해도 예수님과 관계가 없게 해석을 한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모든 성경의 주제는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모든 역사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핵심적인 역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 세계 역사의 중심 핵인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 성경책입니다.
그러므로 그 성경책의 중심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뚝 서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모든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직접 전하면 그 설교는 순도 100%의 바른 설교입니다,
물론 구약의 인물들이나 역사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예수님을 전하는 설교도 좋은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말씀이든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과 반대방향으로 해석을 하고 설교를 한다면 그것은 옳은 설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승천 하신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의 설교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도 부활한다는 것이 설교의 핵심이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사도들이 백성에게 그런 말을 할 때에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그것을 엄청 싫어했습니다.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라고 했습니다.

그런 핍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나 사도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힘차게 전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라고 하면서 자신있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예수님 자신을 통하지 않는 어떤 구원도 없다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알게 된 그 하나님에 관한 말씀이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르치신 핵심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이며 그 하나님 나라는 어떤 사람들의 것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나라에 관한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분이 지신 십자가가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분이 부활하신 것이 사실이고 그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며 그 부활을 통하여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통해서만 참된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의 나라도 알고 그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도 알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진리이고 우리가 그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 안에 진리 즉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십자가와 반대되는 율법을 전하는 목사들이 더러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해석을 하지만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 그대로 설교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관찰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눈을 우리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 벌을 받지 않으려면 하루 하루를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설교했다고 누가 그 설교 잘못됐다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할 때 이 설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과하지 않고 하는 설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설교를 하면 안됩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보면 다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늘 불쌍히 여기시는 눈으로 긍휼히 여기시는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행여 잘못될까 봐 행여 사탄의 유혹에 넘어갈까 봐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고계십니다.
쓰러지면 일으켜 주시고 잘 못하면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늘 사랑으로 감싸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늘 바리새인들처럼 정죄하고 고소합니다.
왜 당신들은 안식일을 범하느냐 왜 금식도 하지 않고 왜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도 하지 않느냐 ...
사사건건 시비를 하고 수십 년 전의 일까지 파내서 정죄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진리를 알고 믿는 사람들은 모든 일에 관대하고 모든 일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그 부족함까지도 사랑할 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의 축복이나 이 세상의 기적적인 은사들이나 이 세상의 행복들에 대하여 그렇게 흥분하거나 그것들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이미 십자가를 통하여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이 은혜들을 사모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새 생명을 이미 받았다는 것과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토록 복락을 누린다는 이 사실만 가지고도 너무 감격해 하고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3.예수 그리스도를 배워서 안 사람들은 달라야 합니다.
본문 21절에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배우고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배우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믿는 그 자체가 엄청난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영생을 얻은 사람이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예수님의 말씀을 늘 들으며 배우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하여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알고 그 예수님 안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진리의 핵심 복음의 핵심을 날마다 듣고 배우고 있습니다.
이것 자체가 우리에게 큰 축복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미 우리에게 영생이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는 보장을 받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다짐을 할 것은
이런 엄청난 축복을 받은 우리는 좀 달라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비록 저들과 함께 섞여서 살고 있지만 삶의 목적이나 가치관이나 방법은 달라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르게 배운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듣고 배우고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배운 사람들입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영생을 받았고 최후의 심판대에 서지 않는 특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