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2. 1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기타2)
본문 : 요 16:31-33
제목 :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1-33)

"강건해집시다, 강하게 삽시다"라고 새해를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 데 벌써 이 한 해가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해동안 좀 강해지셨습니까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강한 용사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서 설교하면서 "믿음의 방패"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드렸습니다. 
믿음처럼 중요한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도 이 믿음에 의해서이고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는 하나님의 의의 기준도 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사람은 영육간에 강한 사람이 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모든 일에 연약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서로간에 믿음만 있다면 그 가정은 강건한 가정이 됩니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만 된다면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믿지 못해서 이 세상살이가 참 어렵게 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교회에 다니면서도 강건하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시기를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을 갖게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들을 듣고 믿음을 고백하는 제자들에게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그 믿음은 참 연약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말씀을 많이 듣고도 
그렇게 많은 기적들을 행하시는 것을 직접 보고도
그 믿음이 참 연약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베드로같은 제자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말씀을 많이 읽고도 그렇게 설교를 많이 듣고도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서도
그렇게 신앙고백을 수없이 하고서도
그렇게 교회를 오랫동안 다니고도
조금만 어려움을 당하면, 조금만 불이익을 당하면 언제 믿었느냐는 식으로 마음이 바뀌는 것을 봅니다.

영육간에 강건해지기 위해서 다시 한번 이 믿음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아주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더욱 강건해지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우리도 혼자가 아님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32절 말씀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 편이 되어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하나같이 다 도망을 가 버렸고 예수님을 반대하고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만 가득했습니다.

그런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고독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강하게 일을 진행해 나가신 것은 사실 예수님께서 혼자가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계실 때 하나님의 신인 성령님께서 항상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계셨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시지 않으시고 흔들림도 없이 사명을 잘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 때 혼자가 된 것 같은 외로움을 느낄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내 곁을 다 떠나가고 나만 홀로 사는 것 같은 고독을 느낄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진리의 길을 갈 때 외롭습니다.
사람들은 진리의 길을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르게 살려고 할수록 외롭게 됩니다.
사람들은 바르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는 길은 외롭습니다
그 길은 좁고 험해서 사람들이 잘 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군중심리라는 것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을 좋아합니다.
거기에 진리가 있건 없건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그것이 좋은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단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거기에 자꾸 모여드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께서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일인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말씀하실 때 즉 십자가를 말씀하실 때 예수님 곁에는 다 떠나가고 열두 제자들만 남아 있었던 것을 봅니다.

진리의 길은 외로운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늘 좁은 길이라서 찾는 이가 적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의로운 삶을 사는 길은 참 외롭고 힘든 길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외로운 길을 갈 때 꼭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은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그 성령님께서 항상 동행해 주시면서 늘 우리를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변호해 주신다고 해도 그 말을 잘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말로만 믿지 말고 형식적으로만 믿지 말고 정말로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 어려서부터 참 외롭게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할머니가 어디 가시고 안 계시면 큰방에 혼자서 잠을 잤습니다.
어린 아이가 혼자 잠을 자는 것처럼 외로운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른이 되어서도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합니다.
여럿이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함께 무엇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께서 시골집에다가 작은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교회에 많은 전도사님들이 다녀가셨습니다.
그런데 한 분도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때 내 안에 이렇게 좋으신 성령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면 정말 힘있게 자신 있게 살았을 것인데 안타깝습니다.

성령님의 내주동거하심을 정말로 믿는 성도가 강한 용사입니다.
그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우리는 강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내가 혼자가 아님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2.평안을 누리게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33절 말씀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고통이 사라진 것을 평안이라고 합니다.
전쟁이나 미움이나 갈등이 없는 세상을 평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고통도 사라지고 미움과 다툼도 사라지고 시기도 질투도 사라지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안을 누리게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그 평안은 그런 평안이 아닙니다.
바로 뒤따라 나오는 구절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한 평안이 아닌 환난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안은 그런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뢰하고 신뢰하는 데서 오는 평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참된 평안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해도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주안에 있을 때 그 평안을 누린다고 했습니다.
주님 안에 있음으로 우리는 어떤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안에 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주님의 말씀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것을 말씀하신 이유가 우리가 평안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신 말씀 안에 우리가 있으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해도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신 말씀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본문 앞에 나와 있는 중요한 말씀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1)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심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조금도 변함이 없이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그 모진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참고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흘리셨습니다.

2)천국을 예비하심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나라를 예비하러 가시고 예비하시고 나서 다시 오셔서 그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신다는 말씀입니다. 

3)성령님을 보내 주심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라고 했습니다.
앞서 말씀을 드린 대로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영원토록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시고 계십니다.
머지않아서 우리를 데려가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성령님을 우리게 보내 주셔서 내주 동거하게 해 주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인도하시고 천국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이런 주님의 약속을 믿으시면 이 세상에서 어떤 환난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토라지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주님을 따르게 될 것이며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시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이 참된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을 지켜 주기를 바랍니다.


3.최후의 승리를 믿어야 합니다.
33절 말씀에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볼 때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세상에 지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활하심으로 승천하심으로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승리를 하셨음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산다고 해도 결국은 승리하고 만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한 우리는 꼭 승리하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최후의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담대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담대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가 자신을 믿는 것을 자신감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고 문제를 푸는 데 자신감도 어느 정도는 필요합니다. 
자신이 먼저 포기해 버리면 병도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신감만으로 안 되는 일이 더 많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신앙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환난을 담대하게 대 
처하느냐로 드러납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담대하게 대처하는 것이고 신앙이 없는 사람은 작은 일도 견디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다니엘 6장을 보면,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 
했다는 구실을 죄로 만들어 사자 굴에 집어넣었습니다. 
평소 다니엘이 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데 앙심을 품은 정적들이 음모를 꾸며 다니엘을 처치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에 하던 그대로 하루 세 번씩 창문을 열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죽게 될 줄 알면서도 기도를 했다는 것은 그의 신앙이 얼마나 담대한가를 한마디로 설명해 줍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나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참 담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사자의 먹이가 되는 환난 속에서도 불에 태워지는 화형을 당하고 입에 담지 못할 고통으로 죽어가면서도 담대하게 살다가 갔습니다.

그들의 삶을 보면 우리는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너무나도 작은 어려움에 속이 상하고 포기하고 불평하고 사는 우리의 모습일 얼마나 추한지 모르겠습니다.

담대하다는 히브리어 가운데 하자크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본 어근의 뜻은 "달라붙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역동사로 변하면 "묶는다", "강하게 하다"라는 뜻이 됩니다. 

누가 담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달라붙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달라붙고 자신을 하나님께 묶어 버리면 
담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12절을 보면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담대한 신앙은 담대한 행동의 동력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담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환난 당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최후의 승리도 보장되어 
있으므로 환난 앞에서도 도리어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최후의 승리가 보장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 물으심에 예라고 확실히 대답을 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는 한 주님의 약속 안에 있는 한 우리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라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