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2. 1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기타1)
본문 : 빌 4:11-13
제목 :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은 우리 성도들이 참 좋아하는 말이고 많이 인용해서 쓰는 말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열등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해 줌으로서 자신감을 가지고 살게 하는데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이 말을 바르게 이해를 하고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이 말씀이 주는 의미는 사실 그보다 더 힘이 있는 말씀인데 그 내용은 잘 모르고 밖으로 드러나는 뜻만 알고 사용을 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힘을 주는 구호처럼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고 외치면서 단순하게만 사용을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의 뜻을 바르게 이해를 하시고 모든 성도님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사도 바울처럼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사도바울은 지금 이렇게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그가 처한 형편을 보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이고 아직 미결수로 재판을 받기 전이지만 아마도 사형선고를 받아서 곧 죽게 될 그런 처지에 놓인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거나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정도이고 지키는 간수들에게 복음을 전할 정도 밖에 안 되는 그런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당당하게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했다면 이렇게 자유의 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더 당당하게 이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시대에 살면서
이렇게 자유로운 세상에 살면서
이렇게 잘 먹고 잘 살면서
아직도 우는 소리나 하고, 자신없어 하고, 아무 일도 못한다고 하고 불평하고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참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1.자족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본문 11절 말씀에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자신있게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족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자족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우타르게스(αυταρχηs)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본 절에만 사용된 말입니다.
이 말의 원래 쓰던 용도는 철학자들이 주로 쓰던 윤리적인 용어였다고 합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형편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서 초조해 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서 그 가운데서도 만족하기를 추구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지금 자기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로마 감옥의 벽은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 나올 수 없는 너무나 높은 벽이었습니다.
체념하고 원망이나 하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형편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스스로 만족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이 처한 형편이 사람이 생각하기는 참 불쌍한 처지에 놓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허락을 하신 참 좋은 형편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그가 놓인 처지에 스스로 만족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어려움에 처하면 하나님께서 왜 나만 가지고 이러시는지 모르겠다고 원망을 합니다.
왜 나는 이렇게 좋지 않은 부모를 만나게 하고 왜 나에게는 착하고 훌륭한 자녀를 주지 않고 왜 나는 이렇게 좋은 남편 좋은 아내를 주시지 않고 왜 나만 이렇게 고생 고생하면서 먹고살게 하시는가라고 원망을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좋은 환경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좋지 않은 환경들에 대해서만 원망을 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게 되는지를 잘 모릅니다.
누구든지 생각하기를 내가 제일 돈도 많고 권세도 많고 얼굴도 잘생기고 뭐든지 제일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제일은 아니더라도 평균적인 삶만 살아도 좋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이니 밑바닥 인생만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처한 이 형편이 어떠하든지 우리에게 주어진 최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우리보다 나은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참 불행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밥 한 그릇도 마음대로 못 먹어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건강을 부러워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평생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고 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만족을 해야 합니다.

바울이 지금 그런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자족하는 것은 그가 이미 받은 축복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잠깐의 수고가 끝이 나면 가서 영원토록 살게 될 영원한 나라를 그는 미리 가보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삶이 엄청 고통스럽게 끝이 난다고 해도 억울해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저와 여러분도 그 천국에 미리 가 보았더라면 이렇게 작은 불행에 원망하며 불평하면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작은 행복들을 부러워하면서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천국의 소망이 없이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천국의 소망이 없기 때문에 세상의 일에 대해서 너무나 집착을 하고 세상의 일이 잘 못 되었을 때 고통스러워하고 원망을 하고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미리 예비하신 영원한 나라를 믿음이 눈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면 만족함이 없었네 우리 하나님 그분을 보면 나는 만족하겠네..."라는 노래를 잘 아실 것입니다.
사람을 보면 세상을 보면 만족하지 못합니다.
우리 주님 그 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나라를 보면서 자족하기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2.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본문 12절 말씀에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고 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말할 수 있게 되려면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비결을 배웠노라"(메뮈에마이, μημυημαι)라는 말도 신약성경에서 본 절에만 쓰인 독특한 언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비밀을 전수받다"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바울은 이 세상의 삶에 있어서 그 삶이 풍부하거나 비천하거나 배가 부르거나 배가 고프거나 어떤 형편에 처하거나 만족하면서 살 수 있는 일체의 비밀을 전수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별별 일들이 다 일어납니다.
어떤 날은 좋은 일만 일어나고 어떤 날은 무엇을 해도 빌빌 꼬이고 조금 잘 사는가 싶으면 뭣이 또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날은 방긋방긋 웃으면서 나타나고 어느 날은 죽을 상이 되어서 나타나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처럼 일체의 비결을 배운 사람은 언제나 만족하면서 언제나 행복해 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비결은 간단합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마음껏 좋아하십시오
그 좋은 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 기쁨을 나누십시오
좋은 일이 있는데도 나중에 불행해질 것을 생각하면서 기뻐하지 낳는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가 좋은 일이 있으면 좋지 않은 일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좋은 일에 너무 기뻐하다가 좋지 않는 일을 만나면 슬퍼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좋아하기가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좋은 일 후에 꼭 좋지 않은 일이 순서대로 온다는 법은 없습니다.
좋은 일에 기뻐하고 감사하면 더 좋은 일이 오기도 합니다.
그러니 좋은 일이 있으면 기뻐하시고 감사하십시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불행한 일을 만나거든 그 불행에 대해서 슬퍼하고 원망하지 말고 그 때는 이 불행한 일을 통하여 오게 될 즐거움을 미리 생각하고 기뻐하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삶 속에 가끔은 어쩔 수 없는 고통스러운 일도 허락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들을 잘 살펴보면 우리에게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연단시키시는 도구로 사용을 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불행이 닥치면 그 불행을 통하여 주시는 복을 볼 줄 모르고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그 복받을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맙니다.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고통스러운 일이 오거든 불행한 일이 닥치거든 아 찬스다 내가 한 단계 상승할 수 있는 진급시험이다 라고 생각하시고 기쁘게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해결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비교적 큰일을 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같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고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몸이 불구자로 태어났든지 집안이 엄청나게 가난했든지 사고를 당했든지 죽을병에 걸렸었든지 남들이 가지지 않은 고통을 가졌던 사람들이 그 고통을 통하여 오히려 더 큰 일들을 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행한 것은 그들이 처한 처지가 아니라 그 처지를 축복의 통로로 보지 못하고 비관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넣어 둔 비밀을 전수 받으시기 바랍니다.
어려움을 통하여 큰 복을 주시는 그 비밀을 다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삶이 어려울수록 불행할수록 더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여러분의 고통을 축복으로 바꾸는 능력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내게 능력 주시는 자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3절 말씀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직접적인 원인은 내게 능력을 주시는 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내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할 수 있다"에 무게를 두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에 대해서는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신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흔히 능력이라고 하면 기적적인 능력들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해서 기적적으로 병을 고치고 기적적으로 부자가 되고 하는 일을 능력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해 나가시기 위해서 많은 기적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성경에는 그 수많은 기적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적적인 능력은 많은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한 시대에 특별한 사건에 특별한 사람에게만 이런 기적적인 능력이 동원되기 때문에 그것도 일생에 한두 번이나 아예 한번도 허락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우리가 맨날 그런 기적적인 능력만 바라보면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 속에 이미 주어진 능력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들을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많은 능력들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 육신을 바라보시면 우리의 육체 속에 얼마나 강한 힘이 있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자연 속에도 얼마나 위대한 능력들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그 원리를 이용하여서 희한한 기계들을 만들어서 편리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 보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신 능력이 많이 있습니다. 

1)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바르게 살고 싶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바르게 살지 못합니다.
나름대로 사는 법칙들을 만들어서 잘 산다고 하지만 그것이 옳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잘 살아도 죄인으로 살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인 성경이 있습니다.
이 성경말씀 속에는 우리 인생이 가야할 바른 길이 있습니다.
지혜롭게 사는 법도 있습니다.
성공하는 비결도 있습니다.
행복해지는 비결도 있습니다.
승리하는 비결도 있습니다.
모든 중요한 원리들이 이 성경에 다 들어 있습니다.

2)매 주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성경을 읽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직접 사람의 언어를 통해서 알기 쉽게 하나님의 뜻을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설교는 여러 성도들에게 특별히 그 때 그 때마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요즘 방송을 통해서 여러 설교들을 듣고 큰 교회에 가서 훌륭한 목사님이 하는 설교를 재미있게 듣습니다.
그러나 설교는 아무에게나 듣는 것이 아닙니다.
재미있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그것이 설교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함께 설교를 들을 때 그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는 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만큼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교회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들려줄 말씀을 준비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담임목사는 여러분을 너무나 잘 압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필요한 말씀으로 준비를 할 수가 있습니다.
작은 교회에 다니시는 여러분은 그런 특별한 은혜를 받았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특별한 능력입니다.

3)십자가의 복음이 능력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로마서 1: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고 했습니다.

교회라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강조하지 않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능력의 복음을 매일 매일 듣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능력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도 힘있게 일하지 못하고 열심을 내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이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를 모르고서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이 십자가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나의 흉악한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그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단번에 우리의 신분이 의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히 영생할 천국 백성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어찌 주님의 일을 게을리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능력을 받은 사람은 핑계를 대지 않습니다.
피곤하다 힘들다 하지 않습니다
세상 일 때문에 주님의 일을 기피하지 않습니다.

4)죽어도 다시 삽니다.
오히려 죽으면 신비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바울이 지금 죽음을 앞둔 사형수이면서도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것은 죽어도 다시 산다는 확신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면 죽음 앞에서 큰소리를 칠 수가 없습니다.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서 그저 살려만 달라고 애원을 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그가 복음의 비밀을 알았고 천국을 알았고 영생을 알았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당당한 것이 복음이 전파되는데 귀하게 쓰임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이미 받은 능력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능력들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이렇게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으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힘찬 고백을 했습니다.
그가 배운 자족하는 법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특별한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능력들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외치시기 바랍니다.
그 능력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