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4. 29.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16)
본문 : 요일 2:7-8
제목 : 옛 계명과 새 계명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완전한 사귐 충만한 기쁨"이라는 주제로 요한일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단순히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귀면서 동행하면서 하나님 안에 있는 온갖 좋은 것들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 일서는 그 하나님과 사귐에 있어서 방해되는 요소들을 하나 하나 열거하고 그것을 제거하게 함으로 우리가 하나님과의 참된 사귐을 가짐으로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함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요한 일서는 우리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어느 정도로 하고 있는가를 테스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저 수박 겉핧기식으로 외형적인 것만 알고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속에 있는 진리를 알고 좀 더 깊이있는 신앙을 가지고 사는지 더 나아가서 정말로 그 진리를 우리 삶에 적용시키면서 사는 것인지를 테스트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정도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이 진정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닮아 가고 있는지를 테스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배우게 될 옛 계명과 새 계명의 교훈은 우리가 깊이 되새기면서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어두움 가운데서 살고 있는가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귀한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옛 계명이나 새 계명은 다 같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을 이룸에 있어서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옛 계명은 그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악하게 만들었지만 새 계명은 그 사랑을 온전히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어보시고 여러분이 아직도 옛 계명을 지키면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새 계명을 지키면서 살고 있는지를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옛 계명
본문 7절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지금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새 계명은 우리가 예전부터 많이 듣고 잘 알고 있던 옛 계명과 같은 목적을 가진 동일한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말하는 옛 계명이란 구약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10계명을 비롯한 여러 가지 계명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대표적인 계명인 십계명을 두 가지로 요약을 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계명을 지킨다고 지켰는데 계명의 목적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가 되는 방향으로 계명을 잘못 이해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데 사용을 했습니다.

1)자기의 의를 나타내기 위해서 계명을 지켰습니다.
계명을 주신 제일 큰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계명을 지킨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계명을 지키기보다는 자기의 의를 나타내고 자기가 잘난 척 하기 위해서 계명을 지켰습니다.

사실 우리가 주일을 지키고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의를 나타내지는 못합니다.
그것들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만에 하나 천에 하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일천번제를 드리고 주일날 한번도 빠지지 않고 엄청난 시간을 드려서 기도하고 성경 읽고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금식을 하는 것을 자랑하고 구제를 하는 것을 자랑하고 기도를 하는 것을 큰 거리에서 함으로 자랑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도 교회 내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좀 오래 다니고 남보다 계명을 좀 더 잘 지키고 일을 좀 더 많이 한다고 하면서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직도 옛 계명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계명을 많이 지킨다고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는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2)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계명을 사용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또 하나의 목적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웃 사랑을 목적으로 계명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계명을 내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운동권이나 사회주의에 가까운 사상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우리 나라의 법이 부자들의 재산을 지켜 주는 악법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법은 남의 재산을 훔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면 절도죄로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부자와 그의 재산을 조금 훔친 도둑 중 누가 더 큰 죄인이냐라고 할 때 사실은 그 재신의 일부를 훔친 사람이 도둑이 아니라 그 가난한 사람이 가져야 할 재산을 미리 다 가지고 있는 부자가 더 큰 도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잘 먹고살도록 골고루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부자들이 머리를 써서 그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가져야 할 재물들을 혼자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합법적으로 재산을 모았든지 노력을 해서 모았던지 남이 쓰지 못하게 혼자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도둑입니다.

그렇게 보면 작은 도둑은 내 것을 도로 찾아오는 것일 뿐 도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법은 이미 많은 것을 훔쳐 가지고 있는 부자를 정죄하여 나누어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재산을 지켜 주는데 사용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두 번째 부분인 이웃 사랑부분을 보면 모두가 다 이웃의 것을 탐내서 빼앗으려고 하지말고 보호해 주라는 것입니다.

이웃의 가정을 보호해 주어서 그 아내를 넘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웃의 재물을 탐내어 빼앗지 말고 잘 살게 해 주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말하지 말고 명예를 지켜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법을 교묘히 이용을 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 우리 옛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말았든지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께 떼를 쓰고 기도하여 내 욕심을 채우려고만 하는 것입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 네가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그 사람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어떤 계명을 말씀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 청년이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제가 지켰습니다. 제가 아직 무엇이 부족합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만일 네가 완전해지고자 한다면 가서 네 재산을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 청년은 이 말을 듣고 슬픔에 잠겨 돌아갔습니다. 그는 굉장한 부자였기 때문입니다.(마 19:16-22 참조)

이 부자 청년은 모든 계명을 다 지킨 줄로 생각을 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는 일을 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재물을 모으고 남을 위해서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아직 옛 계명 속에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3)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위해서 계명을 사용했습니다.
계명의 목적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함이라고 했는데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위해서 계명을 사용했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계명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남을 죄인으로 몰고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계명은 내 자신에게 엄격하게 적용을 시키는 것입니다.
계명으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면 안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가지고 이웃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기분 나쁘게 만들고 남을 좌절시키고 상처를 주는 사람은 새 계명이 아닌 옛 계명을 지키는데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2.새 계명
본문 8절 말씀에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말이 새 계명이지 옛 계명과 다른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굳이 새 계명이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계명을 지킨다고 하는 것이 그 계명의 원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고 오히려 원래 목적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으나 이제는 바른 방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옛 계명이나 새 계명은 원래 목적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인데 옛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 원래 목적을 따르지 못했으나 이제 새 계명을 지키게 된 사람들은 원래의 그 목적대로 계명을 실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에는 이 세상이 영적으로 암흑과 같은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말씀을 읽고 실천을 하면서도 그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의 생각들을 이제 다 버리고 빛 가운데서 행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암흑과 같이 어두운 세상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명을 잘 못 이해하고 바르게 지키지 못했지만 이제는 예수님께서 다 밝히 가르쳐 주셨고 또 몸소 시범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이제 그대로 우리도 바르게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후를 크게 나누어서 구별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전의 시대는 어두움의 시대요 많은 사람들이 엉터리로 신앙생활을 했던 시대요 은혜나 자비가 없는 차가운 세상이었습니다.
율법에 의해서 정죄를 받고 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후는 엄청나게 달라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율법을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세상이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서 충만한 기쁨을 누리면서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옛 계명 즉 율법시대 속에서 구약시대의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것입니다.

1)다른 사람의 의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게 해 주셨습니다.
정죄를 하고 교육을 하고 훈련을 시키고 어떻게 하든지 바로 잡아서 우리를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용서, 무조건의 은혜, 무한한 자비,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의인이라는 신분을 이미 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새 계명은 그런 것입니다.
그 계명을 가지고 자를 재고 정죄하거나 흉을 보거나 야단을 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덮어 주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을 당신은 의로운 사람이요 라고 알려 주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좌절하는 사람을 당신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나는 정말 못났다고 하는 사람을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요 정말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아무도 날 이해해 주지 않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비난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당신을 특별히 사랑하고 당신이 하는 작은 일까지도 기억하시고 알아주신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의를 나타내 주는 사람이 새 계명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의로운 사람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말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우리의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강도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지금 우리의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그 사람이 바로 이웃이라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주변에 여러분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은 없습니까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이 새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여러분의 아내이고 남편입니다.
그 사람이 여러분의 부모님이시고 그 사람이 여러분의 자녀들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참된 사랑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정 가운데 이 사랑이 실천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가까운 데서부터 먼데까지로 여러분의 사랑이 퍼져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항상 살피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3)다른 사람을 칭찬하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새 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르게 사랑하는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은 칭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칭찬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너무나 놀랍고 지극히 큰 은혜입니다.
우리 하나님 같으신 분이 이 세상에서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서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지 칭찬하기 위해서 그 사람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못된 것 못난 것 잘못하는 것 찾아서 혼내려고 하지말고 좋은 것 잘 하는 것 찾아내서 칭찬하려고 애를 써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너무나 옛 계명에 젖어 있어서 이런 새 계명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엄청나게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이 이 일입니다.

옛 계명은 잘못을 찾아내서 그 잣대로 재어보고 정죄를 하는 것이지만
새 계명은 잘 한 것을 찾아내서 무조건 칭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여러분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남의 잘못을 가려내는 데 선수인가
아니면 내가 남의 좋은점을 찾아내어서 칭찬하는 데 선수인가 한번 스스로 점검으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아직도 남의 잘못을 가리는 일을 좋아하고 있다면 담대하게 고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옛 계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어두운 가운데서 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주님 안에 새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성경의 옛 계명과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새 계명은 원래 그 목적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사람들은 어두움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같은 계명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고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일에 사용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말씀해 주시고 몸소 그 참된 사랑을 실천하심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그 새 계명을 행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의롭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서로를 칭찬해 주는데 최선을 다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