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4. 8. 광성교회 부활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절기1)
본문 : 베드로전서 1:3-4
제목 : 우리도 부활합니다. 

먹을 것을 가지고 걱정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걱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걱정거리가 많은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이라는 사람이 인생의 고민거리를 일곱 가지로 분류를 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일곱 가지의 걱정거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가난해 질까 봐 걱정을 하는 경제적인 문제의 걱정이고,
둘째는 실패할까 봐 불안 해 하는 걱정이요, 
셋째는 질병, 건강에 대한 불안이 있고,
넷째는 사랑이 깨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 있고, 
다섯째는 노쇠에 대한 불안이 있고, 
여섯째는 자기가 누리는 자유를 잃어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 
마지막에 죽을까 하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일 쉬운 걱정이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걱정이고 제일 어려운 걱정이 결국은 죽음에 대한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먹고 살 것에 대한 걱정은 조금만 노력을 하면 해결이 되고 누가 조금만 도와주어도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문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요 다른 사람이 도와준다고 해서 해결이 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 걱정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그래도 희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질병이나 늙어 가는 것이나 죽음에 대한 걱정은 점점 더 절망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늙고 병들고 죽는 절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 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도 거듭나게 해 주셔서 산 소망이 있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썩지 않고 더럽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기업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죽음의 걱정에서 벗어나 산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기독교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여 완전한 세상에서 영원토록 영생복락을 누린다는 엄청난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잘 믿지를 못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좋겠고 안되면 안 되는 대로 산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 부활절을 맞이해서 이 부활의 신앙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확신이 있다고 해서 부활을 하고 확신이 없다고 해서 부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은 다 부활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왕 신앙생활을 할 것이면 신앙생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 놀라운 사실을 알고 믿고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너무나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자연의 계시로 보여 준 부활의 증거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방법으로 자연계시를 이용한다고 했습니다.
이 자연세계에 나타난 모습들을 보면서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는 방법입니다.

부활을 생각할 때도 하나님께서 자연 속에 부활의 징조들을 남겨 두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부활한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라 라고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원리를 자연세계를 통해 보여 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봄이 되니까 여기저기서 새 싹들이 돋아나고 마른 나무에 새 잎이 나고 벗꽃이나 목련같은 꽃은 잎도 나오기 전에 예쁜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꽃이 지고 잎이 진다고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니까 다시 꽃이 피고 다시 잎이 나고 다시 새싹이 돋아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을 보면서 아 인생도 한번 가면 끝이 아니라 다시 피어나는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곤충들의 한살이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런 모습으로 태어나서 살다가 죽지만 곤충은 그 일생을 통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면서 삽니다.
매미나 나비같은 곤충은 처음에는 알로 태어나서 애벌레가 되어서 땅에서 살다가 번데기가 되었다가 성충으로 모습이 변해져서 하늘을 날면서 사는 것입니다.
번데기가 될 때 이 곤충의 모습은 한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아니하고 고치 같은 것의 속에 가만히 들어 있어서 마치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죽은 것 같은 그 번데기가 나비로 매미로 변해서 하늘을 날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곤충이나 식물보다도 우월한 우리 인생들은 더 나은 방법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원칙이 있는 것을 봅니다.
죽은 것 같은 나무들이 다시 꽃을 피우고 잎을 내는 것은 그 속에 생명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뿌리가 말라 죽었거나 나무에서 잘려져 나가서 이미 마른 나무에는 새싹도 꽃도 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싹이 돋는 것은 생명이 있는 한 알의 씨가 썩어져서 죽을 때 그 양분을 먹고 씨앗이 새싹으로 움이 트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하는데 있어서도 이런 원리가 적용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있기 때문에 그 죽음을 근거로 하여 새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속에 생명의 씨가 있는 사람만 즉 영혼이 살아 있는 사람만 부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생각할 것은 자연의 이치에서 다시 나는 것들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나무들이 계절 따라 잎이 피고 꽃이 피는 것이 반복이 된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시들고 죽고 마는 것입니다.
매미나 나비가 번데기에서 성충이 되어 하늘을 난다고 하지만 얼마 살지 못하고 다시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연의 현상들이 부활의 어떤 근거는 되지만 우리가 부활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부활은 이런 불완전에서 완전으로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완전한 곳 완전한 모습으로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입니다.

2.특별계시(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
부활에 대해서 성경은 너무나 확실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오다가 가다가 던진 한마디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성경의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부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너무나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의 신앙은 고사하고 기독교 신앙전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 부활이 사실이냐에 대해 우리는 분명한 증거를 가져야 합니다.

나아가 내가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 사실로 고백하고 믿고 있느냐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부활을 사실로 믿지 아니하면 그분과 나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바울, 요한, 마태, 누가, 야고보, 마가 등 많은 제자들이 한결같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2)예수님이 친히 살아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살아나셨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단 한 시간도 아닌 무려 40일 동안, 그리고 단 한 사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 앞에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음을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3)무덤이 비어 있었던 것이 증거합니다.
마 27:57-66을 보면 주님의 시체를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 바위 속에 판 무덤에 장사했고, 또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을 인봉하고 파수병들이 굳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권능으로 살아나사 거기로부터 나오셨기에 무덤은 비고 만 것입니다.

4)원수들의 거짓말이 증거합니다(마 28:11-15).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왔던 여자들이 가고 난 후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에게 고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서로 의논한 후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고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고 거짓보고를 하게했습니다.

5)많은 성도들에게 일시에 보이신 사실이 증거합니다(고전 15:6).
부활하신 예수님은 같은 시간에 500여명의 성도들 앞에 보이셨습니다.
그 성도들 중 바울이 부활장이 있는 고린도전서를 기록하고 있는 지금도 절반이나 살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이 거짓말이라면 금방 탄로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 사실을 증거해 줄 성도가 지금도 절반이나 살아 있다고 증거하고 있으니 부활은 진정 사실인 것입니다.

6)천사들이 증거했습니다(마 28:5-6).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신 곳을 보라."라고 했습니다.

7)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산 사람들이 증거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사람들의 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을 목격하고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삶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담대한 삶에서 부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전에 제자들은 고난과 핍박 앞에 너무나도 나약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 이후의 제자들의 삶은 완전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죽기를 무서워 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모두 한결같이 비참한 모습으로 순교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자신들도 부활한다는 신앙으로 기꺼이 죽음의 길로 갔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에서 부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5-36절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부모 앞에서 자식이 사자 밥이 되기도 하고 남편 앞에서 아내가 사자 밥이 되기도 하는 비참함 속에서도 그들에게는 부활의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도 비굴해지지 않고 떳떳하게 담대하게 사자 밥이 되기를 자청했다는 것입니다. 

3.우리도 부활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확실성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이 끝이 아니라 부활하여 또 다른 세상을 산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자연의 질서 속에 부활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증거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실제로 부활하게 하시고 그 부활을 많은 사람들이 목격하도록 해 주시고 우리 인생에게도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문제는 그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부활하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그것이 우리같은 사람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그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산 소망이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부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신비한 몸으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죽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그 신비한 몸으로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1)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연의 법칙에서 살펴보았듯이 죽었다가 다시 살기 위해서는 그 안에 살아 있는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생명의 씨를 가지지 못하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한번 죽으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미 새 생명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 죽어도 다시 부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죽음의 공포에서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부활이란 단순히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이 죽은 사람이 다시 그 몸으로 사는 것이라면 그 역시 다시 죽고 말 것이니까 한번 더 사는 것이 좋은 것이기는 하겠지만 또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기 때문에 산 소망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하여 다시 가지게 될 몸은 이렇게 또 죽어야 하고 또 썩어야 하는 그런 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활이란 다시는 병들지도 늙지도 죽지도 썩지도 않는 완전한 몸을 입고 다시 사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3)영원한 하늘나라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받을 기업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가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영원토록 산다면 그렇게 즐겁지 만은 않을 것입니다.
이런 환경의 공해들 때문에 불완전한 자연의 환경 때문에 걱정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게 될 영원한 나라는 우리가 사상도 할 수 없는 완벽한 나라 길은 황금으로 집은 보석으로 문은 열두 진주로 만들어 놓은 곳이요 너무 밝아 이세상의 이런 빛들이 필요없는 너무나 아름답고 완전한 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 세상의 시시한 근심거리들이나 해결하려고 이렇게 모인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영원한 생명 죽음이 없는 곳 근심걱정이 도무지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여기 이렇게 모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산 소망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이 날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의 날인지를 다시 한번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껏 기뻐하시고 축하하시고 감사하시면서 이 기쁨을 누리며 사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