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2. 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05)
본문 : 요일 1:4
제목 : 충만한 기쁨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플로이드 맥클랑이라는 사람이 쓴 "하나님과 친밀한 삶"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많이 있는 일이라서 혹시 내 이야기 아닌가 하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이야기의 출처를 밝힙니다.)

어떤 여인이 결혼을 했는데 아주 못된 남편을 만났다고 합니다.
성격이 난폭하고 잔소리가 심해서 같이 살기가 쉽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은 거의 술에 취해서 살면서 아내에게 함부로 대했고 억지를 부리고 자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손찌검도 예사로 했습니다.

자기의 요구가 무엇인지 확실히 하기 위해서 남편은 요구사항을 쪽지에다가 잔뜩 적어 주었습니다.
청소를 해라, 식사는 이렇게 만들어라, 이런저런 심부름을 해라... 등이었습니다.

그런 요구를 다 들어 주면 그래도 또 불만거리를 만들고 트집을 잡아서 요구사항을 더 만들어 냅니다.
기뻐야 할 결혼 생활이 하루 하루가 지옥과 같은 삶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남편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만나서 죽게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죽은 것이 잘됐다라고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이 여인에게는 참 잘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남편이나 아내에게 부모님에게 자식에게 잘 해주세요 잘 못하다가 죽으면 눈물도 안 흘려 주고 자알 죽었다라고 기뻐하면 얼마나 서글픈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다시 재혼을 했는데 이 남자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편이었습니다.
얼마나 잘 해 주는지 지옥같은 생활에서 천국같은 생활로 바뀌어서 나날이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상처도 다 치유가 되었고 살맛나는 신나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집안 청소를 하다가 책갈피 속에서 쪽지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펴서 보니까 옛날 남편이 자기에게 요구한 요구사항이 적힌 쪽지였습니다.
집안을 청소해라 식사를 준비해라 세탁을 해라... 이런 요구사항이 적힌 쪽지였습니다.
문득 잊어버렸던 옛 생각이 나서 전 남편에 대한 나쁜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데 진정을 하고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그 요구사항이 사실 별 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그런 요구사항보다 더 많은 일들을 지금 남편을 위해서 이미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다만 다른 것은 과거의 남편은 누가 원인을 제공했는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미워하는 마음으로 억지로 그런 일들을 했기 때문에 지옥같은 삶이었고 지금의 남편은 누가 원인을 제공했는지는 모르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 많은 일을 하면서도 자원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오히려 기쁘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그 차이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 이야기 속의 전 남편과 같은 분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무가 잔뜩 적힌 쪽지를 내밀면서 "자 이것을 다 해 놓아라 이 일 다 잘해놓지 않으면 혼날 줄 알아라"라고 요구하시는 분으로 오해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요한일서의 기록만 보아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요구사항이 참 많습니다.
죄를 짓지 말아라(2:1), 계명을 지켜라(2: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2:15),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라(2:28)...
심지어 이런 말씀까지 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지 말아라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을 하는 자와 같고 살인을 하는 자는 영생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3:15)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고 살인자는 지옥 간다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받았다고 해서 이 세상의 삶의 조건들은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놀고먹습니까 기도해서 공돈을 얻어서 그냥 잘 삽니까
과거에나 현재나 달아지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정직하게 살려고 하니까 좋은 일 하면서 살려고 하니까 힘은 더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에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말씀을 하고 계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하며 살아야 하는 것들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를 위해서 하신 지혜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이 사실을 바로 이해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깨닫고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사귐을 갖게 된다면 새로운 남편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사는 그 여인처럼 여러분의 삶이 기쁘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본문 말씀에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했습니다.
요한 일서에는 하나님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님에 대한 것을 더 많이 알고 더 잘 알면 알수록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모든 지식들은 인간을 향한 지식들입니다.
인간이 무엇인지 어떤 환경이 필요한 것인지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인지 인간간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모든 지식이 인간을 중심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질서를 알지 못하고 인간의 참된 행복을 논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연구해도 해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여러분들이 개혁주의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개혁주의라는 말은 여러 각도로 설명이 되는 말이지만 가장 핵심적은 것은 모든 일들을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을 운행하고 계신지에 관심을 가지고 알려고 하고 그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개혁주의의 기본입니다.

예를 들어 요셉의 이야기를 할 때 요셉이 어떻게 행동을 했는가에 중점을 두고 접근을 하면 인본주의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이야기를 할 때도 요셉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는가에 중심을 두고 접근을 하면 개혁주의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중심이 아닌 하나님중심의 생각이 개혁주의이며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을 먼저 알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요한 일서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기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확실하게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내가 나의 죄로 형벌을 받아 죽어야 하는데 멸망을 당해야 하는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나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는 것은 사랑의 최고의 표현일 것이고 최고의 선물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큰 것은 감동을 하지 못합니다.
믿어지지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잘 이해하지도 믿지도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해서 사랑의 하나님을 회초리를 들고 무섭게 혼을 내시는 하나님으로 오해를 합니다.

가끔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왜 우리 하나님을 저렇게 엉터리로 설명을 할까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다라고 할 때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어주신 하나님만을 가지고 사랑이시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큰일에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작은 일에까지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대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령 우리가 주일성수를 잘 못하고 헌금생활을 잘 못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실까요
엄한 벌로 대하실까요 사랑으로 대하실까요
사랑으로 대하십니다.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보시면 우리가 실수하고 잘못하는 모든 일들까지도 이해하시고 사랑으로 대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이해를 해주십니다.
사람들은 집사가 돼 가지고 주일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고 흉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눈으로 이해를 하시고 용서를 해 주시고 사랑으로 대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 나는 안다 나는 이해한다 그 연약함까지도 나는 사랑한다.... 

우리가 헌금생활 할 때 때로는 충분하게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욕심 때문에 걱정 때문에 십일조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미워하지 않으시고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께 바치는 그 모습 자체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충성스럽지 못할 때도 선한 일을 많이 하지 못할 때도 훌륭한 일을 많이 하지 못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이해를 해 주시고 사랑으로 대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여러분을 볼 때도 안스럽고 이해를 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는데 하나님은 더 사랑스러운 눈으로 여러분을 알고 이해하고 사랑으로 대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금하라, 주일을 지키라, 선을 행하라 라고 하시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기 위해서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에게 참된 기쁨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면서 사는 것이 완전한 기쁨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을 깊이 사귈수록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좋으신 하나님과 깊이 사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그 좋으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사람들과의 사귐에서 많은 상처들을 받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틈만 있으면 거짓말을 하고 틈만 있으면 남을 속이려고 하고 친한척하고 돈이나 빌려 가고 사기나 당하게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좀 잘해줄 때만 좋아하고 조금 어려워지거나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아서서 흉을 보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을 한 사람 사귀려면 정성이 참 많이 드는데 그렇게 어렵게 사람을 사귀어 놓으면 좋은 관계로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차라리 사귀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던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사람을 잘 사귀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때는 친구도 많이 사귀고 이 사람 저 사람과 어울리지만 나이가 좀 들면 서로 눈치보고 경계하느라고 진심으로 사람을 사귀지 못합니다.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차라리 사람을 사귀는 것 보다 이렇게 짐승을 키우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개와 같은 애완동물은 사람이 정성을 쏟는 그 이상으로 늘 주인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변을 잘 살펴보면 참 좋은 사람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이야기를 해도 편하고 칭찬도 잘 해주고 용기도 북돋우어 주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의 사귐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도우면서 서로 의지하면서 서로 나누면서 살 때 행복한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마음이 통하고 진정으로 서로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과 많은 사귐을 가지는 것이 기쁨이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힘이 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되시고 용기가 되시고 소망이 되십니다.

그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사귀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하나님 같이 거룩하신 분을 우리가 사귀고 싶어도 사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으시면 감히 우리가 하나님께 하나님 저와 사귀실래요라고 말을 할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그 하나님께서 먼저 손을 내미시고 우리와 사귐을 갖기를 원하셨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그 하나님께 손만 내밀면 되니까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성경은 여러 각도로 우리에게 교훈을 주지만 그 중요한 교훈 중 하나가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먼저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어떤 인간이며 얼마나 못됐는지도 알게 해주십니다.
아무 잘못도 없으신 하나님께서 아무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너무나 귀하고 너무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야비하고 보잘 것 없고 힘도 없고 나쁜 짓만 골라잡아서 하는 우리에게 배반하고 대항하고 죄를 지어서 멸망을 당해야만 하는 불쌍한 우리들에게 사귀어 보자고 손을 내미시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연애편지 같은 글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호세아서를 보시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음탕한 여인 고멜과 결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고멜이라는 여인은 시집을 와서 아이를 낳고도 또 집을 나가 음탕한 삶을 삽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다시 그 여인을 몸값을 내주고 사 와서 살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탕자의 비유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려고 하시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유산을 다 미리 받아 가지고 집을 나가서 허랑방탕하다가 거지가 되어서 돌아오는 그 아들을 반갑게 맞아 주시고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주시는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귀한 하나님의 사랑 앞에 어서 손을 내미시고 그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은 여러분을 참된 기쁨의 세계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3.하나님의 말씀은 지켜 행할수록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사람들은 누구의 간섭을 받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시키면 오히려 더 안하고 하던 일도 그만 둡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기를 싫어하는 이유 중에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지킬 것을 강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면 하나님과 깊이 사귀면 내가 하고싶은 대로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에게 강제로 무엇을 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가 기쁨을 가지고 행복하게 이 세상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가장 좋은 길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 우리가 기도생활을 하는 것 심지어 남을 위해서 선을 행하고 교회에 헌금을 드리는 일까지도 사실 알고 보면 다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마련하신 특별한 것들입니다.

억지로 강제로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소유와 우리의 자유를 빼앗기 위해서 이것 저것 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면 우리가 행복해지고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질 수 있게 되는 아주 귀한 것들입니다.

성경의 모든 율법들의 핵심은 사랑의 실천을 위함이라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나 사랑을 받는 사람이 행복해 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세상을 미움으로 시기로 다툼으로 이기심으로 살면 어떻게 살든 간에 불행해집니다.
돈이 많아도 출세를 해도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도 사랑이 없으면 불행해집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어떤 삶을 살든 간에 행복해집니다.
돈이 없어도 가진 것이 없어도 훌륭한 일을 하지 못해도 행복해지고 기쁨이 충만해 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워하십니까
하나님을 더 많이 아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하나님과 더 깊이 사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가질수록 기쁨이 충만해진다는 사실을 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수록 우리의 삶은 더 윤택해지고 힘이 있어지고 더 행복해지고 기쁨이 더 충만해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