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 2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04)
본문 : 요일 1:3
제목 : 완전한 사귐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어떤 조류학자가 산에서 독수리 알을 하나 가져다가 닭장 속에 넣고 그 알이 부화되는 모습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독수리 새끼는 병아리들과 함께 부화를 했고 병아리 틈에서 병아리 흉내를 내면서 살았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독수리의 몸은 병아리들 보다 커졌고 날개도 튼튼하게 되었습니다.
조류학자는 독수리를 하늘로 날려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날 생각을 하지 않고 다시 땅에 내려와 걷더라는 것입니다.
병아리와 닭에서 떠나 있으면 날 수 있을까 생각을 해서 산꼭대기로 가서 날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하늘을 날 생각을 하지 않고 땅에 내려와서 걸어다녔습니다.

그런데 마침 어미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을 빙빙 돌며 날고 있었습니다.
조류학자는 애써서 새끼 독수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장성한 새끼 독수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서서히 큰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누구와 함께 있으면서 누구에게 보고 배우는가에 따라서 그 삶의 방식이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누구와 사귀고 누구와 친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방법이나 행동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어려서 보고 듣고 배웠던 우리의 삶의 방식은 우리가 살아가는 평생을 그 울타리 안에서 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좋은 집안에서 좋은 부모님 밑에서 좋은 환경을 선택해서 살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환경 그 범위 내에서 사랑하고 행동하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지 않으면 내 자신이 그런 범위 내에 묶여 사는 인생인줄도 모르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과거를 살펴보면서 내 자신이 어떤 울타리에 갇혀서 사는지를 발견해 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것들을 고칠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과 사귐을 갖는 것입니다.
새로운 모델을 정하고 그들과 참된 교제를 가지면서 변화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병아리가 아니라 독수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수리가 병아리하고 살다가 보니까 병아리처럼 살게 되듯이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다가 보니까 성도의 삶이 아닌 불신자들처럼 멸망당할 사람처럼 이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바로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처럼 살아야 되는지를 바르게 알고 보고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른 사귐을 통해 독수리처럼 하늘을 치솟아 오르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사귐이란 무엇인가
요한일서의 주요 주제가 "사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주로 쓰는 말은 섬김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단순히 섬김만이 아니라 "사귐"이라는 것을 요한일서에서 강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와 비교할 수도 없는 높은 곳에 계시는 차원이 다르신 너무나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일방적으로 섬기며 복종하며 살 수 밖에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복종하고 섬기라고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사귀고 서로 교제를 나누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귐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κοινωνια)라고 하고 영어로는 fellowship으로 번역을 하는 말입니다.
그 뜻은 친교, 교제, 합동, 참여라는 뜻을 가졌고 공동 소유나, 협동, 서로 나눔의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런 언어의 뜻만으로는 사귐이라는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본문의 사귐은 친교나 교제나 나눔의 의미 그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요한이 말씀하고 있는 사귐이라는 단어를 조금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에서 비슷하게 쓰고 있는 말씀들을 몇 구절 찾아보는 것이 이 사귐이라는 단어를 쉽게 이해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1)주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남을 섬기는 모범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이 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완강하게 거부하면서 자기는 절대로 발을 씻게 내어 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감히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자기 발을 씻게 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을 하시기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13:8)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그들의 죄를 씻어 주시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시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가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짐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 하면 주인과 종 관계보다 더 못한 관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고 잘 못하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는 그런 관계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 우리의 상처를 치료해 주시는 분 우리를 귀한 신분으로 인정을 해 주시는 분으로 우리와의 관계를 다시 맺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짐으로 우리는 이제 종이 아닌 친구로의 대접을 받게 되었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을 갖게 된 것입니다.

2)주님과 한 몸이 되는 것
주님과 우리 성도와의 관계를 가장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대목은 포도나무의 비유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우리 성도는 포도나무의 나무와 가지와의 관계와 같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그 나무에 완전하게 붙어 있을 때 포도나무가 가지고 있는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모든 영양분을 공급받게 되는 것이고 가지로서의 본분 즉 과실을 맺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실나무의 목적이 열매를 맺는 것이라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는 목적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 영원한 생명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꼭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주님 안에 있는 것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안에 계시고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계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 안에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하나님과 사귐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즉 예수님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맺으신 새 언약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그 보혈의 공로를 통하여 주시는 죄 사함을 받고 의인이 되는 그 은혜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주시는 영원한 생명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귄다는 것은 단순히 남녀간에 이성간에 교제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아주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처럼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혜택들을 모든 약속들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2.누구와 사귈 것인가
서론에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사람이 누구와 사귀느냐 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누구와 사귐을 갖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집안들을 보면 형님이 어떤 직업을 갖느냐에 따라서 동생들의 직업도 많이 좌우되는 것을 봅니다.
형이 식당을 하면 형제들이나 친척들이 식당을 많이 합니다.
형님이 공무원이 되면 동생들도 공무원이 되고 교육자 집안은 교사들이 많이 나옵니다.
보고 듣고 하는 것을 많이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다른 미신들과 헛된 신들과 사귀지 않고 이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우리 하나님과 사귐을 갖게 된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여러분 주위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이루며 살게 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사귐을 가지고 살게 하기 위해서 우리 주변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일 미리 배치해 두셨습니다.

부모님이든지 친척이든지 친구이든지 우리의 마음을 교회로 끌고 오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 두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고 살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주변에 절에 다니거나 미신을 섬기거나 이단 사상에 젖어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우리도 그 길을 갈 수 있는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 사촌 중에 한 사람은 장가를 갔는데 그 장모님이 이단교회의 열성분자였습니다.
그래서 평생 거기를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와 그의 자녀들까지 다 이단교회에서 자기들이 이단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사귐을 갖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는 일에는 소홀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관계를 유지하고 더 깊이 사귐을 갖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과 사귀느냐에 따라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질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하고 건선건성 사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러분 주변에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전도하기 위해서 사귐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믿음도 없으면서 그런 사람 따라다니면 그 알량한 믿음마저 빼앗기기 쉬우니까 조심을 해야 합니다.

저는 성도들이 불신자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그들처럼 세상을 즐기는 것이 참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탄은 그 친한 불신친구를 통해서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정이나 의리나 이런 것을 따지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보다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이 더 멋있습니다.
죄악된 인간의 눈에는 그런 세상의 못과 재미가 좋아 보이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마무리 친하게 지내고 의리를 지키고 여러분을 많이 도와준다고 해도 비록 부모형제라고 해도 신앙을 가지지 않은 불신자라면 조심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모를 공경해도 주안에서라는 단서를 달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라고 해도 더 열심히 있고 바른 신앙을 가진 성도들과 사귀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과 사귀면 그렇게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은 따라 하기 힘들지만 나쁜 것은 금새 옮아 버립니다.

목사와의 관계가 여러분에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상을 가진 목사를 만났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목사가 바른 목사라는 법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바른 삶 진리를 따라가는 삶을 습성상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쳐서라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을 할 때 그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역사상으로 볼 때 진리는 많은 사람들의 편에 있지 않았습니다.
늘 소수의 무리들만 바른 길 참된 길을 가고 있었음을 봅니다.

가끔 저를 아는 사람들이 왜 목사님의 교회에 사람들이 몰려오지 않습니까 그렇게 바르게 하려고 하고 십자가의 복음 천국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부흥이 안됩니까라고 은근이 비고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때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예 제가 그릇이 작아서 그런 게지요... 그런 말을 하고 나면 참 부끄럽습니다.
허우대는 멀쩡해가지고 맨날 큰소리는 치고 살면서 늘 사기나 치는 것 같고 거짓말이나 하는 것 같고 예수님 팔아서 잘 먹고 잘사는 사꾸라 목사 같은 사람들 보다 못한 목사로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잘하지는 못하지만 바르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른 신학 바른 신앙을 가지고 바른 삶을 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동안 목회를 하면서 잘 못 생각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도님들을 잘 대해주고 물질적인 혜택이나 주고 도와주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목사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목사가 여러분에게 해 주어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바른 신앙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바른 진리의 말씀 바른 사상 바른 삶의 원리들을 여러분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목사가 가져야 할 가장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도님들은 저에게 다른 것을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인간적으로 흠이나 부족함이 없이 잘 대해 주리라는 것을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가진 바른 신앙 바른 신학 바른 사상 이것을 나누어 받는 것이 가장 소중한 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일을 위해서 더 노력을 하는 것이 목사의 사명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와 깊이 사귀고 싶습니까
이 우주만물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바른 신앙을 가지고 주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성도들과 깊은 교제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바른 신학을 가지고 바른 신앙을 가르치며 바른 삶의 원리를 가르치는 목회자와 친하시기를 바랍니다. 


3.어떻게 사귈 것인가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기심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기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대하면 처음에야 그것을 모르니까 교제를 나누겠지만 시간이 자니면 알게 되기 때문에 참된 사귐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지나치게 욕심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 욕심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욕심을 채움에 있어서 지나치게 내 욕심만 채우려는 사람은 바른 사귐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복지선교를 하면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봅니다.
복지란 철저하게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봉사정신이 있어야 하는데 남을 위해서 산다는 복지사의 세계까지 남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야 자기를 위한 욕심이 있는 것은 그렇게 나무랄 것은 못 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귐에 있어서는 그런 욕심 그런 이기심이 없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이타적인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늘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잘 되게 해 주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먼저 생각해 줄줄 아는 그런 정신이 기초가 된 사귐이 참된 사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하심이 철저하게 우리를 위하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도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은 아무 상관이 없으십니다.
그냥 외면해 버리시면 그만이고 멸망시켜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사귐을 갖고자 하는 것은 철저하게 우리를 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고 우리가 귀한 신분을 갖게 되고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고 우리가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게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와 사귐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귐을 가질 때도 그런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은혜 그 사랑의 정신이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의 사귐도 바른 사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할 때나 성도들을 대할 때 이런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하시기를 바랍니다.
참된 사귐은 형식적인 것 가식적인 것을 버리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진정으로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정성을 다해 섬기고 진심으로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는 이 예배시간을 소홀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가지면 우리의 성품이 하나님을 닮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과 바른 신앙을 가진 성도들과의 진정한 사귐을 통해서 여러분의 삶이 주님이 가진 아름다운 성품으로 바뀌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완전한 사귐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과 바른 사귐을 가지고 바른 삶을 사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그 사귐은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고 명심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