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 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01)
본문 : 요일 1:1-4
제목 : 완전한 사귐, 충만한 기쁨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영광스러운 일이고, 너무나 감격스러운 일이고, 너무나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이론은 분명히 그런데 실지로 교회에 오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영광스럽게 그렇게 감격스럽게 그렇게 기쁘게 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날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 기쁜 일 보다는 염려되고 힘들고 걱정되고 슬픈 일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기쁨은 잠시잠깐이요 그 나머지의 시간은 별로 기쁨이 없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예기치 못한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불이 나기도 하고, 도둑을 맞기도 하고, 시작한 일이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억울하게 오해를 받기도 하고, 미움을 받기도 하고, 욕을 먹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고....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중요하고 기쁜 일도 없는데 교회에 오기가 싫어지고 교회에 오기가 힘이 들고 교회에 와서 주님을 일을 하는 것이 부담이 되고 그래서 최소한의 의무만 어쩔 수 없이 감당하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하는 것이 현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다행스럽게 우리 교회는 그래도 아직은 성도들이 교회에도 잘 오고 교회에 오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우리가 특별히 신앙이 깊어서가 아니라 특별히 세상에 즐거운 일이 없어서 그럴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돈이 많아서 여기저기 여행도 다닐 만하고 만나서 즐겁게 놀 친구가 많고 좋은 모임 좋은 파티 좋은 행사가 있다면 우리도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엄청난 신분을 가지고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인데도 이렇게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살까요
왜 우리가 교회에 오는 것이 짐이 되고 기쁨이 되지 못할까요

오늘 본문 3,4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사귐이 없기 때문에 충만한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요한 일서의 기록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완전한 사귐은 충만한 기쁨이 됩니다.
본문 3절 말씀에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4절 말씀에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했습니다.

요한이 복음을 우리에게 전하는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사귐을 가지게 하고 성도와 성도 사이에 올바른 사귐을 가지게 함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우리 성도가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면 참된 기쁨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신앙생활이라는 말을 사귐이라는 말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은 올바른 사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사귐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겠지만 쉽게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와 우리 성도간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사는가 즉, 어떤 사귐을 가지고 사는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 간에 어떤 관계 즉 어떤 사귐을 가지고 사는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잘못된 사귐 때문에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를 바르게 배우지 못해서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무서워 하고 멀리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을 오히려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그저 교회에만 계시고 세상은 나 혼자 내 맘대로 살게 해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어설프게 믿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랑을 하면 그 사랑하는 사람을 늘 만나고 싶어하고 늘 함께 있고 싶어합니다.
그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일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모르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오지도 않고 하나님의 일도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요한은 복음을 바르게 이해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이해하기를 위해서 이 서신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강해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좀 더 바르게 이해하고 그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소중함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기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알기만 하면 그 하나님과의 교제를 마다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알고 하나님과 바른 사귐을 갖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되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와의 사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는 우리 서로에게 특별한 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도 사이의 특별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과 같이 알기 때문에 바르게 사귀지를 못합니다.

성도와 성도의 사이는 예수님의 피로 맺은 형제들입니다.
서로를 미워하고 질투하기 시기할 대상이 아니라 서로 하나가 되고 서로 협력을 하고 서로 위로를 하고 서로 사랑할 대상입니다.
그런데도 성도들과의 사이를 세상 사람들과의 사이로 오해를 하기 때문에 서로 깊이 사귐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사회복지학을 공부면서 인간관계의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상담학이나 심리학들을 많이 배웁니다.
교회에서 무조건 서로 사랑을 하라고 가르치는데 늘 그렇게 말해도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을 강조해도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가진 사랑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있다고 합니다.
그 상처를 치유해 주고 바른 인간관을 가지게 해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을 받거나 학대를 받은 사람은 그 상처 때문에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어떤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사귀려고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억눌림을 당하거나 억울함을 당한 사람은 늘 자신이 억울하게 당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원망하고 불평을 합니다.

아무리 진심으로 대해도 가까이 오지 않고 아무리 진리를 말해도 믿지 않고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거부하는 사람은 그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교회의 목사님들이 복음을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런 심리학을 배우고 치료하는 것을 배워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발견하게 하고 치유를 해서 바른 인생관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 바른 간계로 바른 사귐을 가지게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와 성도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육신의 부모보다도 더 소중한 관계가 목사와 성도와의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는 육신의 삶에 대한 지도자이지만 교회의 목사는 영원한 운명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성도들은 담임목사를 존경하며 섬기면서 삽니다.
담임목사와의 좋은 관계를 가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좋은 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은 담임목사의 설교를 듣지 않게 되기 때문에 영적으로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목사를 인간적으로 좋아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도 보통 사람이고 여러분 보다 더 못한 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좋은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을 하는 것은 영의 양식인 설교를 잘 들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목사를 미워하면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겠습니까

어떤 가정의 아이들을 보면 목사의 설교를 잘 듣지 않거나 목사를 무시하는 경향을 가진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를 보면 가정의 부모들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 목사에게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목사를 바르게 보지 않고 목사와의 바른 사귐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도 그것을 본받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무조건 교회만 오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신앙은 형식적인 신앙이 되기 쉽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은 신앙의 참된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에 있어서 성도들과의 사귐에 있어서 목사와의 사귐에 있어서 어떤 문제점은 없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사귐이 바르게 될 때 신앙의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올 한해동안 요한 일서를 공부하시면서 바른 사귐을 가지시고 충만한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2.바른 사귐의 회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요한 일서는 이렇게 우리에게 참된 사귐이 필요하다고 전제를 하고 그것을 위해서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그것을 배워 갈 것입니다.
그 내용의 핵심적인 것들을 오늘 미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
신앙생활을 하면서 즉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면서 우리가 믿고 섬기는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모르고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마 가짜로 오신 것처럼 보이게 했을 것이라는 "가현설"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일 4:2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런 가현론자들이나 영지주의자들이나 여러 이단들이 그 시대에 이미 교회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을 했습니다.
사도들은 그런 이단론자들에게서 성도들의 신앙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 애를 많이 썼던 것을 봅니다.

오늘날은 더 많은 이단자들과 이단 사상들이 교회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다는 것보다는 어떻게 믿는가가 더 심각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에 다니는가 안 다니는가 보다 어떤 교회에 다니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 제가 몸담고 있는 목회자 훈련원에서 임원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몇 가지 결의를 했는데 명칭을 경인 목회자 훈련원에서 개혁주의 목회자 훈련원으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경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지역성을 가지고 있어서 지역성을 탈피해서 전국적인 모임으로 바꾸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개혁주의 신학사상을 바탕으로 훈련원이 움직여야 한다는 데 그 뜻이 있습니다.
오늘날 개혁주의를 지향하는 신학교나 교단이나 교회나 성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가 사수해야 할 사명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개혁주의란 여러 가지로 설명이 되지만 쉽게 말씀 드리면 신구약 성경 66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 성경 말씀에 입각하여 하나님을 중심으로 교회중심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개혁주의에 입각한 올바른 신학과 올바른 신앙과 올바른 삶과 올바른 목회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올바른 신학이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잘 모르면 그 신앙이 위험합니다.
잘 모르고 무조건 믿는 신앙은 그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 올바른 신학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나름대로 바르게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엉터리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엉터리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가 제일 신앙생활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더 높은 차원의 지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바른 사귐을 바른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2)성도간의 올바른 관계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섬기는 것이고 그와 병행되는 것은 성도와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성도와 올바른 사귐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20-21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우리가 그 사랑이신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성도들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그가 믿는 하나님을 잘 모르거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믿음이 좋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형제를 흉보고 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자기 부모 자기 자녀를 흉보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누워서 침 뱉는 것이요 같은 망신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부교역자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교회 일 때문에 부목사나 전도사를 쓰기는 쓰는데 어리석은 부교역자들은 성도들에게 담임목사 흉을 본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더 잘난 척 하고 담임목사를 나쁜 사람으로 매도하는 부교역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어리석은 부교역자들 주변에는 똑 같은 불평분자들이 모여듭니다.
그런 사람들을 잘 타일러서 올바른 신앙을 가지게 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불평불만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목사와 성도 사이를 이간시키고 성도와 성도 사이를 이간시키는 불평분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함께 흉을 보면서 함께 불만을 토로하면서 신앙은 점점 식어 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성도와 성도와의 사이는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무조건 사랑하고 이해하고 함께 힘을 모으고 사탄과 공동으로 대적하여 이 험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 한몸 된 형제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요한일서 2:3-4절에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이신칭의의 교리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의로운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입니다.
문제는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인지 가짜인지를 어떻게 아느냐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에서는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고 믿음을 가진 자는 그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노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의 삶이 완전한 순종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서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을 하면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몰라서 그렇기도 하고 노력을 해도 연약해서 넘어지는 일은 있지만 계속해서 더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 믿음이 있는 사람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기쁨이 없습니까
불평과 원망과 짜증이 나고 힘이 드십니까
금년부터 시작되는 요한일서의 강해설교를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들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를 바르게 해 주시고 하나님과 바른 사귐을 가지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성도들과 바른 관계를 맺고 바를 사귐을 가지고 살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이렇게 바른 신앙생활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것이며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되실 것입니다.

"완전한 사귐 충만한 기쁨"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고 이 한해를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