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64)
본문 : 요일 5:11-12
제목 :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생명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생명체는 모두 수명이라는 것이 있어서 살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 살다가 죽는 하루살이에서, 2-3주 사는 잠자리, 그리고 10-20년 사는 개나 고양이가 있고 사람은 그래도 100여년을 삽니다.

왜 이렇게 살다가 죽을까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법은 없을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 분야에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 저것 고쳐서 사람들의 평균연령이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100여 년 전에는 평균수명이 50년 이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80세 이상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있으면 120까지는 살지 않겠냐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천년만년 살지 못하고 죽어 가는가는 것일까요
최근에 과학자들이 사람 속에 있는 세포에서 설계도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냥 우리가 아무렇게나 태어나서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태어나면서 우리 몸에 설계도롤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 설계도에 그려진 대로 이런 모습으로 생겨지고 이만큼 커져서 정해진 시간만큼 살다가 죽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설계도를 분석해 보면 지금 이 설계도를 바꾸지 않는 한 120년 이상은 살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설계도를 어떻게 바꿀 수 없을까 열심히 연구들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언젠가는 설계도를 조작해서 수백 년 수천 년 살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오래 살고 싶으신 분들은 기대를 하시고 열심히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음식도 잘 조절 하시고 마음도 편히 가지시고 건강하게 살도록 노력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포 속에 있는 설계도를 조작하는 기술을 가졌다고 해도 환경이 문제입니다. 공해나 음식 같은 유해환경 때문에 설계도대로 다 못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오래 살려고 열심히 노력을 해서 살을 빼고 건강한 몸매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만 교통사고로 죽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코미디언이 다이어트를 열심히 해서 날씬한 몸매를 만들었는데 그만 목욕탕에서 목욕하다가 세상을 떠난 일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법칙을 사람이 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수명이 120년이다 라고 정해 놓으셨다면 우리는 그 범위 내에서 노력하여서 그 주어진 시간을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생명체들이 이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불복할 수가 없습니다.
이 명령에 불복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부자도 죽고 권력을 가진 자도 죽습니다.
똑똑한 자도 죽고 미련한 사람도 죽습니다.

이렇게 죽어서 없어지고 마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면 참으로 불쌍한 것이 우리 인생일 것입니다.
너무나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마는 인생이라면 참으로 서글픈 인생입니다.

이 세상을 가장 화려하게 산 사람이 있습니다.
솔로몬 왕입니다.
권세로 따지면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부로 따지면 그 화려함이 그가 살았던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금으로 만든 방패가 수백 개나 있었고 그가 마시는 그릇은 다 금 그릇만 사용을 했습니다.
그는 후비를 700인이나 두었고 빈장이 300명이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1천명이나 두었다는 것입니다.
지혜롭기는 누가 무엇을 물어도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아주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화려한 인생을 산 솔로몬이 이렇게 말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라고 했습니다.(전1:2-3)
이런 유한한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이런 헛되고 헛된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참으로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1.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에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은 영생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함으로 인해서 그 생명이 단축이 되었고 영생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빼앗기고 영원한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도 모르고 죽어가는 불쌍한 인생들에게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그 영생을 회복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고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 영원한 나라가 있으며 그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기 위한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13절 말씀에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도요한이 이 요한일서의 모든 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셨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0:31절에도 사도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에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영생이나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으로 그 공덕으로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이 믿음에 이렇게 귀한 선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이 믿음을 귀하게 여기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는 증거는 성경에 여러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제일 큰 증거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승천하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로 인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신 것은 우리가 가서 살아야 할 나라가 이 세상 말고 도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부활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은, 다시 말하면 영생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제자들은 그들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자 밥이 되어도 불에 태워 죽임을 받아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 세상의 삶이 우리의 모든 것이라면 누가 이 세상의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까?
이 세상의 삶을 마감한다고 해도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초대교회 성도들이나 그 이후의 수많은 성도들이 목숨을 빼앗기면서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런 믿음이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영생의 소망이 없이 이 세상에만 소망을 두고 산다면 신앙생활이 참 힘이 듭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해도 어려움은 당합니다.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열심히 기도를 하고 열심히 충성을 다해도 세상이 우리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행스럽게 우리나라 같은 좋은 나라에 태어나서 그렇지 저 미얀마나 중국에서 태어낫다면 지진이나 천재지변을 당해서 비참하게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지진이 나고 해일이 몰려오고 태풍이 몰아치면 아무리 신앙인이라고 해도 죽습니다.
교통사고가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에게만 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도 장로님도 권사님도 사고로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불치의 병에 걸리는 사람도 못된 사람만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다 암이나 불치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에게는 비교적 그런 병들이 발생할 확률은 적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많은 신앙인들이 병마로 고통을 당하면서 삽니다.

누가 돈 벌기를 싫어하고 성공하기를 싫어하고 아무렇게나 천덕꾸러기로 살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험난한 인생길을 피해가지 못하고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자신이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역시 우리 속에는 죄가 있고 욕심이 있고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고 지독한 이기심이 있습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이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지 않고 이 세상만을 위해서 산다면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면 잘 할수록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취미생활정도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손해 볼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의 삶은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것처럼 어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9)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 세상의 삶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비참한 삶을 살고 짧은 삶을 산다고 해도 그것으로 우리의 모든 것이 마감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나라, 아름다운 나라, 완전한 나라, 하나님께서 공의와 사랑으로 평화로 다스리시는 나라가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의 삶으로 마감이 되기 때문에 쾌락을 추구하면서 한시라도 즐겁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조급하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더 여유롭게 더 평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남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자기를 희생할 줄도 알고, 포기할 줄도 알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우리 성도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고 누리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2.이 생명이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습니다.
본문 11절 말씀에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는데 그 영생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성부하나님께서 성자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5:26)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전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영원토록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안에만 이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예수님께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5:39-40)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의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라고 했습니다. 
이 수가성의 여인은 만족을 주지 못할 이 세상의 것에 대해서 말할 때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세상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물은 아무리 마셔도 목이 마른 것처럼 이 세상의 일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영원히 목이 마르지 않는 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해결해 주는 완전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을 바라고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이 예수님께서 영원한 하늘나라를 말씀하시자 모두들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6:68)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 세상의 행복에 대해서 말합니다.
영생을 말하는 교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대형교회는 세상의 축복에 대해서 말하면서 영원한 천국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유명한 목사님이 이 요한 일서를 강해설교를 해서 제가 그 설교집을 읽고 많이 참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목사님도 역시 대형교회 목사님이라서 그런지 영생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그냥 넘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부러 이런 본문을 찾아서 설교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뚜렷한 영생에 대핸 말씀을 설교하면서도 영생에 대해서 그냥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 잘하는 말솜씨로 그 탁월한 실력 그 유명한 인기로 한마디만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아멘 할 텐데 그 한마디로 많은 사람들이 영생이 있음을 알게 될 텐데 그 말하기가 그렇게 부끄러운 것인지 그 말하기가 아까운 것인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 모아놓고 예수님 팔아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이렇게 중요한 말을 왜 하지 않는지 사람들이 떠나는 것이 무서워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 안에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받는 것이 가장 소중한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아들을 믿는 자들은 이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본문 12절 말씀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란 아들 즉 예수님을 모시는 사람이라고 해석을 하고 더 쉽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에서는 “아들을 모신 사람은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지 않는 사람은 생명이 없습니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쉬운 성경에서는 “누구든지 아들을 믿는 사람은 이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있다는 말이나 예수님을 모신다는 말이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 결국은 같은 의미의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는데 그 영원한 생명을 아들 되시는 예수님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예수님을 모실 때, 즉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은 성경에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5)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6: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이 길 이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참으로 허무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영원한 생명이 우리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그 예수님을 모심으로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 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그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