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60)
본문 : 요일 5:4-5
제목 : 세상을 이기는 힘은 믿음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크게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로 구별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하나님 나라가 있고 그와 반대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사탄을 숭배하며 사탄이 만들어놓은 온갖 죄악들을 행하면서 사는 사탄의 나라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도 섬기지 않지만 사탄도 섬기지 않기 때문에 나는 중립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은 무조건 다 사탄에게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은 중립지대가 없는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 이 두 가지로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두 나라는 서로 화합을 하거나 타협을 하여 적당히 공존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두 나라이기 때문에 서로 싸우면서 살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 즉 사탄의 나라와 싸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상에 있는 교회를 전투하는 교회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조심해야 할 것은 사탄의 나라를 정확하게 구별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라고 할 때 이 세상의 모든 것 육신적인 모든 것을 우리가 싸워야 할 사탄의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이나 과학이나 문화나 예술이나 등산이나 스포츠나 오락이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싸워야 한다고 하면 이런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교회에서만 생활하고 영적인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좋은 것들입니다. 
자연세계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너무나 좋은 것들입니다.
과학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창조의 질서를 발견하여 우리의 삶에 응용하는 것입니다.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의 세계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시기 위해서 이미 그 원리를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이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악한 것으로 분류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이런 것들이 원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목적대로 쓰이지 못하고 사탄의 역사에 의해서 잘못 사용 되어질 때 우리의 적이 될 뿐입니다.

자연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영광을 받을 때 그것은 사탄이 됩니다.
태양을 신이라고 섬기거나 이상한 바위를 신성시할 때 그것은 죄가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모든 자연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것들입니다. 

과학을 통하여 인간의 기술을 하나님 보다 낫다고 여기거나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자연의 법칙을 바꿔버리면 그것은 악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을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세계가 너무나 오묘함을 밝히고 하나님의 능력에 영광을 돌리며 우리의 삶에 잘 활용한다면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음악을 가지고 사탄을 찬양한다거나 도덕적으로 퇴폐한 일에 사용을 한다면 그것은 악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음악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의 삶에 기쁨을 누리게 한다면 그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노래를 불러서 인간이 재미있고 행복하게 된다면 그것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받아서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사는 것이 제일 큰 목표라고 할지라도 매사 모든 일에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을 통하여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면서 사는 것도 좋은 일들입니다.

세상에 있는 악한 것들을 정확하게 분별하여 그들과 싸우면서 사는 것이 우리 성도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우리가 그런 악한 세상과 싸울 때 승리할 수 있는 무기가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싸워야 승리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깁니다.
본문 4절 말씀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참 강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거부하고 사탄의 세력과 하나가 되어 있는 이 세상은 너무나 강합니다.
그런데도 그 악하고 강한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생명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에 거듭난 우리 성도는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강할지라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하나 우리에게 힘이 되는 것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가 세상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이 우주 만물이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임을 믿고
지금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경말씀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침서로 주심을 믿고
그 말씀대로 그 약속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믿음”이라는 말 속에는 더 깊고 오묘한 진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라고 할 때 그 말이 강조하는 강조점은 “행함으로”라는 말과 반대되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한다고 할 때 우리 스스로의 행동으로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가 아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나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 성도들은 세상과 싸우는 방법을 자신의 힘으로 싸워 이겨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수도원의 생활이었습니다.
수도원적인 생활은 분명히 세상과 싸우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방법은 수도자들이 암굴이나 산위에 올라가 세상과 전혀 격리된 채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인간의 의지력을 최상으로 올리면서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견디고 이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규율을 만들어 놓고 그 규율들을 엄격이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의 악은 너무 강하게 때문에 철저히 세상에서 나와서 격리된 채 사는 길만이 세상을 이기는 것이라고 저들은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기기 위해 집, 직업, 가족, 소명 들을 버리고 수도원으로 들어가거나 암굴이나 산 속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주로 그들은 세상의 생각을 하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기도와 말씀 속에 묵상을 많이 하였습니다.
한 주간에 두 번 이상 금식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이상 많은 금식을 하였습니다. 
사순절과 같은 특별한 절기에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육신을 철저히 부인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금욕주의적인 수도원 생활의 문제가 있다면 모든 성도들이 다 이런 생활을 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몇 몇 그럴만한 여건이 주어진 사람들만이 그래도 가질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었습니다. 

이 금욕주의는 이에 철저하게 자신을 드린 사람들에게 성자 칭호를 주고 그들은 구원을 이루고도 남음이 있는 공로를 쌓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의 공로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결국 다시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가 아닌 인간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 방향으로 나가게 하였습니다. 
심지어 이들이 죽은 후에는 이들에게 기도하면서 그들의 공로를 비는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게 하였습니다.

수도원 운동의 큰 실수는 세상이라는 것이 성도의 밖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에도 엄청난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 데 있습니다. 

그리고 수도원 운동은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결국 이행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다 산 속에 올라가 있으면 누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썩어져 가는 세상 속에서 누가 소금이 되겠습니까? 
어둠에 잠긴 세상에 누가 빛이 되어 주겠습니까?
누가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겠습니까?

오늘날도 “믿음생활” 하면 얼른 이 수도원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을 거부하고 단절하고 떠나서 저 깊은 산속에서 수도를 하면서 사는 것이 믿음생활의 최고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도원이나 기도원이 아니라도 늘 기도하고 금식하고 고행이나 선행을 하면서 사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사명을 망각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과 싸우지 않고 세상을 피하여 도망가는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 나아가서 그들과 싸울 때 우리를 승리자가 되게 해 주시는 귀한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그 말씀을 가지고 나아갈 때 그 말씀이 능력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 성도들이 그 말씀을 가지고 산 속으로 들어가 버리거나 세상에 나아가면서 이 말씀을 두고 간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그저 시험을 보기 위한 하나님께 관한 지식을 쌓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을 했지 실지 전투에서 사용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려고 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세상을 살면서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적당히 타협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수학을 싫어합니다.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더하기 빼기나 곱하기 나누기는 우리가 흔히 쓰는 것이니까 재미있었는데 그런데 방정식과 부등식 이런 것이 나오고 미분과 적분 이런 것이 나오니까 실생활에 쓸모도 없어 보이는 것들이 복잡하기만 해서 그만 흥미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필요한 중요한 것인 줄 알았다면 더 열심히 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경말씀에 흥미를 잃는 것도 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성경말씀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있어야 할 필요한 말씀인줄 알았다면 성경을 더 많이 일고 열심히 공부도 했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서 여러 가지 후회가 되는 일들이 많음을 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성경말씀을 삶에 실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알고 그 말씀대로만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앞에 놓고 믿음으로 공부를 하고, 믿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믿음으로 사업을 하고, 믿음으로 모든 일들을 해 나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많은 세월들 속에 그 많은 시간들이 있었는데 성경말씀을 읽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작은 성경책 하나 가지고 늘 그 성경말씀을 일고 묵상하고 실천하면서 살았으면 하는 후회가 막심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한번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성경말씀을 늘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면서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목표가 무엇인지 분야가 어떤 것인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관계가 없이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이 하나님의 말씀은 즉 우리가 가진 믿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세상을 이깁니다.
본문 5절 말씀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싸워서 이겨야 되는데 그 힘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가 하니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믿는 믿음이 이 세상을 이기게 해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니냐. 라는 것을 따져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 그 속에 함유된 뜻을 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과 그렇지 않고 예수님께서 단순히 사람 중에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을 때의 그 믿음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낳게 하셨다 
죽은 사람을 살리셨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다 하는데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이런 능력들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 기적이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라고 강조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기 보다는 예수님께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의심 없이 믿는 사람이라면 그까짓 일들을 행하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말씀으로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신데 그깟 병자 고치고 살리는 것은 이야기 거리도 못되는 것입니다.
마치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을 자랑하면서 아 우리 아이가 말을 할 줄 알아요. 우리 아이가 한글을 알아요. 라고 자랑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도덕적인 가르치심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신 일에 억울한 사람들의 편에 서 주시는 일에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다면 그런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면서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다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다. 라고 할 때 그것을 믿는 믿음이 세상을 이긴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지은 죄로 인하여 영원한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지만 우리는 그 죄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지 못하는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선을 행하고 고행을 하고 덕을 쌓아서 의로운 사람이 되어 보려고 몸부림을 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단번에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신 칭의”의 진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이런 말씀들에 대해서는 로마서와 에베소서 강해설교를 통하여 귀가 따갑도록 들으셔서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이 진리를 알고 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의인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을 넉넉히 이기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거기에서 흘리신 보혈이 우리를 죄인에서 의인으로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멸망의 자리에서 영생의 나라로 옮기게 했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은 이악하고 강한 세상과의 싸움에서 능히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에 대해서 많이 들어서 이미 알고 있고 또 6절에서 12절에 이를 계속해서 설명을 하기 때문에 오늘은 더 설명을 하지 않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 즉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세상을 이기게 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번에 고향엘 다녀왔습니다.
순교하신 목사님 기념사업을 위해서 다녀왔습니다.
살아계신 분들을 통해서 저희 집안에 복음을 가지고 오셔서 온 집안에 예수님을 믿게 하신 저희 할아버지와 순교하신 동생 할아버지 목사님에 대한 증언들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저희 할아버지가 노래를 좋아하셨다는 것과 오늘날의 지휘자처럼 찬송을 앞에서 지도하시면서 부르셨다는 것과 그리고 그 중에서 늘 즐겨 부르시던 찬송이 오늘 우리가 가진 찬송가 475장 “ 이 세상은 요란하나”라는 찬송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은 요란하나/ 내 마음은 늘 편하다/ 구주의 뜻 준행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그 암울한 일제 강점기를 살면서 구주되신 예수님을 알고 그 뜻을 따라 삶으로 평안함을 누리면서 사신 모습으로 보게 됩니다. 

“이 세상은 늘 변하고/ 험악한 일 참 많으나/ 주 은혜만 생각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도참 쉽게 변하고 사람들의 마음도 잘 변하고 험악한 일들도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이기면서 승리하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 못 볼 때에/ 신령한 눈 곧 밝히사/ 저 천성문 보게 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남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저 천국을 알고, 보고, 믿고, 살아가는 우리가 참으로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육신의 복락보다는 신령한 복이 참 좋습니다.
우리의 맘과 우리의 뜻을 다 합하여 저 천국을 향하여 나가는 삶이 참으로 행복한 삶이며 이 세상을 이길 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자신의 본분을 잊고 사탄과 하나가 되어 악한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악한 세상과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이악하고 강한 세상과 싸워서 이기는 길은 믿음으로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는 믿음만이 이 세상을 이길 강한 힘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강한 용사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