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4. 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55)
본문 : 요일 4:19
제목 :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홀로된 아버지가 아들집에 얹혀살았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안보이셔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아버지 방을 다시 가보니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한 장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아들이 그 편지를 뜯어보니 이렇게 적혀있더라는 것입니다.
“4번아 잘 있거라 7번은 간다.”

“4번아 잘 있거라 7번은 간다.” 
아들이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이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사연인 즉 그 집 식구들이 늘 서로 사랑하는 순서를 매겼는데
1번은 당연히 그 집의 며느리가 1번입니다.
요즘 여자들 권세가 대단합니다. 
집 주인이 남편이 아니라 아내가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2번은 손녀 딸 
요즘 아이들은 왕자님이고 공주님입니다.
옛날에는 아동학대니 뭐니 해서 말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아이들 권력이 너무나 강해졌습니다.

3번은 아들의 장모님
요즘 딸 없는 사람 서러워서 못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장인 장모는 대접을 받지만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별 볼일이 없어졌습니다..

4번은 아들
옛날에는 참 좋았는데 요즘 가장 신세가 참 처량하게 되었습니다.
밖에 가서는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몸부림을 치고 집에 들어 와서도 빨래나 설거지 안도와 주면 간 큰 남자라고 걱정들을 합니다.

5번은 강아지
목욕시켜주고 병원 데리고 가고 사람에게 그만큼 잘해 주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을 것인데 어찌 개 새끼한테 그렇게 잘해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6번은 파출부 아줌마
파출부 아줌마도 할아버지 보다 권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파출부 아줌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집안 청소상태가 달라지고 음식 맛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본인 아들 집에 얹혀사는 아버지가 7번입니다.
이조시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노인들이 천국이요 죽은 자들의 천국이라고 했습니다.
어른들을 하나님처럼 대접을 하고 죽어서도 거나하게 제사상을 차려서 조상의 은덕에 감사를 드리는 나라가 우리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노인들이 푸대접을 받는 그런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누가 웃으려고 만들어 낸 이야기이겠지만 늙어가는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서 듣기에 씁쓸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먼저 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수차례에 걸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니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하니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심으로 우리도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을 어떻게 하는지를 시범을 보여 주심으로 우리가 그렇게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먼저“로 번역된 헬라어는 프로토스(πρωτοs)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단순히 “먼저“라고 번역하기에는 원래의 뜻에 좀 약한 번역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프로토스라는 말은 프로(προ)라는 말의 최상급이라고 했습니다.
프로라는 말의 뜻은 전에, 먼저, 앞서서, 무엇보다도, 특히……. 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런 말들의 최상급이 프로토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을 “제일 높고, 제일 좋고, 제일 첫 번째로, 제일 중요하게, 으뜸으로 최고로……. 이런 말로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 어쩔 수 없이 그냥 사랑하는 체하는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사랑하는 7번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 시켜먹는 재미로 사랑하는 체 하는 6번(파출부)의 사랑도 아닙니다.
재롱부리고 꼬리치는 재미 때문에 사랑하는 5번(강아지)의 사랑도 아니고
돈 벌어다 주는 것 때문에 사랑하는 4번(남편)의 사랑도 아닙니다.
최고의 사랑 1번의 사랑 그 사랑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말로다 표현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평생 배우고 또 배우고 깨닫고 또 깨달아도 그 사랑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다만 그 사랑의 아주 작은 일부만 우리가 알고 사는 것입니다.

그 높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다 말씀드릴 수 없지만 오늘은 먼저 사랑하신 그 사랑의 의미만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처음부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먼저라는 말을 우선 그 말의 뜻대로 처음부터라는 말로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즉 처음부터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1)우리 인간은 처음 창조함을 받을 때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들을 창조하실 때 우리 인간들은 특별하게 창조하셨습니다.
다른 만물들은 말씀으로 창조를 하셨지만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직접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특별히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들을 다 나름대로 멋있게 아주 유용하게 잘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만물들 중에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어떤 것에도 하나님의 모양이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오직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만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특별히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기 전에 이미 우리 인간을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특별히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아메바와 같은 아주 저급한 생물에서 진화되어서 이런 모습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모르고 자연의 법칙도 모르고 과학의 기초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다른 짐승들과 우리 인간은 너무나 큰 아주 확실하고 뚜렷한 차이가 있어서 짐승이 변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정말로 웃기는 일일 뿐입니다.

어떤 교육학자가 사람과 제일 비슷한 원숭이를 태어날 때부터 인간과 똑같이 먹이고 재우고 교육을 시켰다고 합니다.
꽤 비슷하게 행동을 하는데 한 가지 따라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같은 조건에 교육을 받은 아이는 잘못을 했을 때 지적을 하면 얼굴이 빨개지고 울음을 터트리는데 원숭이는 빨개질 얼굴도 없고 조금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교육학자가 깨달은 것은 아 인간에게는 짐승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도덕이고 양심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우리 인간의 마음이 가지고 있는 죄를 깨닫고 죄송스러워하는 양심이나 감정에서부터 짐승들이 가질 수 없는 여러 가지 속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그저 짐승과 같고 별 볼일이 없는 존재로 지음을 받아 우연히 이 세상을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늘 삶이 우울해지고 목적도 없이 보람된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아무렇게나 살다가 비참하게 죽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보편적으로 통 털어서 아 짐승들보다 특별하다라고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에 의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 139편 13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삶에 늘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칭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장부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139:17,18)

다윗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이렇게 특별히 지으셨습니다.
우리를 이 땅에 사람으로 신묘막측하게 만드셔서 태어나게 해주셨습니다.
신묘막측 (神妙莫測)이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고 오묘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 얼마나 신비하게 되어있는지를 몰라서 그렇지 참으로 위대한 걸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2)우리 인간은 처음부터 특별한 권세를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특별하게 지으시고 처음부터 특별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우주만물의 주인이 되어서 이 우주만물을 다스리고 사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17-28)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특별히 사랑하심으로 이 우주만물을 모두 우리에게 주셨고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살고 있으니까 우리가 받은 권세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모르고 삽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만일 소나 말이나 쥐새끼나 바퀴벌레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인간이 얼마나 부러운 존재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바퀴벌레가 인간들이 지독한 약을 놓아서 자기들을 몰살시킨다고 해도 인간들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항의하는 것 보았습니까?
쥐새끼들이 쥐약 놓는다고 데모하는 것 보았습니까?
소를 키워서 잡아먹어도 말을 키워서 실컷 일을 시켜도 그들은 인간들이 하는 대로 묵묵히 그저 따라할 뿐입니다.
참 불쌍한 소생이요 말생이요 쥐생이요 바퀴벌레의 생입니다.
참 억울하지만 그들이 받은 것이 그것이니까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얼마나 큰 권한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만일 여러분의 뺨을 누가 한 대 때리면 큰일 납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누가 기분 나쁜 말을 하거나 명예를 손상시키면 큰일이 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특별한 권세를 부여하신 특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3)우리 인간에게 처음부터 특별히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10계명을 비롯한 많은 계명들과 규칙들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억압하려고 이런 엄격한 계명들을 주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명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참으로 행복하게 살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16-17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교훈의 말씀들은 우리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 우리로 의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우리로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케 하기 위해서 기록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도덕적인가 하는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교육학자들이 얼마나 머리가 좋은가를 나타내는 IQ 보다는 얼마나 도덕적이고 얼마나 감성적인가를 나타내는 EQ를 높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공부를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머리가 좋아져서 공부를 잘 할까 하다가 잘 살펴보니까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IQ가 높아서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행복해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는 좀 나빠서 공부를 좀 잘 못해도 인간관계를 잘 하는 사람 즉 EQ가 높은 사람들이 더 성공을 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살더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영국의 신문에 “천재소녀 가출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대대적으로 보도된 사건이 있습니다.
유세프라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생후 14개월 만에 알파벳을 깨치고 3살 때 영어로 읽고 쓰는 능력을 갖춘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습니다.
13살의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명문 옥스퍼드대에 입학하며 `천재`로 불리던 아주 특출한 소녀였습니다.
그런 아이가 가출을 하고 집에 들어가지 않고 사창가에서 몸을 파는 여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머리는 좋았지만 인간다움이 그에게 없었습니다.
가정에서 강제적으로 공부만 시켰지 인생의 사는 의미와 방법을 가르쳐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좋아서 성공을 하는 케이스는 20%에 불과하고 80%는 인간관계가 좋아서 성공을 하더라는 연구 보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실을 이미 아시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여러 가지 도덕적인 계명들을 만들어 주시고 지키게 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성공을 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면 출세할 것이라고 믿고 공부, 공부 하지만 아이들이 참으로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는 성경말씀을 배우고 성경말씀의 정신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 가장 큰 공부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처음부터 사랑을 하셔서 해 주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처음부터 사랑해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일방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먼저 베풀어 주신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먼저 사랑해주셨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일방적으로 먼저 사랑을 해 주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말하는 사랑은 쌍방적인 사랑입니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고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이 있어야 하는 그런 쌍방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은혜라는 말로 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하시지도 않으시고 그냥 먼저 일방적으로 조건 없이 값없이 은혜로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이간이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을 한다고 해도 그 대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내거나 그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존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랑을 거저 받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대부분 우리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좀 더 열심히 하면 믿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성경을 좀 더 읽으면 훨씬 더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금식도 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전도도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더 나를 사랑하실 텐데 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기도하고 성경 읽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헌금하는 일 참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의 행동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행동을 하기 이전에 먼저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도 사랑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먼저 일방적으로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미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하나님께 지은 죄들 때문에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베푸시는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떤 추한 일을 하였는가와 관계가 없이 먼저 일방적으로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서 우리가 여기 이 거룩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3.최고로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먼저 한 사랑이란 우리에게 최고의 좋은 것으로 사랑하신다는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습에서 너무나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고 영원한 멸망 길에서 건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이 최고의 선물입니다.

또 우리가 앞으로 받게 될 부활과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하고 나무나 귀하고 너무나 가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베푸는 사랑은 기거에 대해서 비교할 수도 없는 너무나 초라한 것들에 불과합니다.
알량한 말 한마디 알량한 봉사 알량한 섬김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사랑함으로 나누어 주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늘나라 영원한 행복 완전한 승리 이런 너무나 귀하고 값진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최고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최고의 사랑의 선물을 알지 못하고 아주 작은 부스러기에 마음을 두고 삽니다.
이 땅에서의 성공이나 부자가 되는 일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부스러기 사라일 뿐입니다.
물론 꿩 먹고 알 먹고 라는 말처럼 최고의 선물도 받고 부스러기의 사랑도 받으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스러기 사랑 받지 못했다고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하지 못하고 원망을 한다면 그것은 참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행동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꼭 기필코 해야 할 가장 소중한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서로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왜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특별히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조건도 대가도 바라시지 않으시고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에 감사하며 감격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을 닮아가려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는 서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