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27.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 09)

  본문 : 막 2:14-17

  제목 :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14.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5.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16.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제목을 가진 마가복음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고 구원을 얻게 한다는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 유대인이나 예수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로마 황제 네로에게 로마 도시에 불을 지른 방화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붙잡혀 가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정말로 엄청난 것이었지만 그럴수록 반대자들에 의해서 많은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반대했고 유대인들이 거짓 선생을 교회에 침투시켜서 복음을 변질시켰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막강한 힘을 가졌던 로마당국에 의해서 그것도 네로황제의 지시로 핍박을 받게 되자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하게 되자 로마 감옥에 갇혀있던 사도 바울이 급하게 마가를 부르고 바울이 전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기록하여 핍박받는 기독교인들에게 알려주어서 믿음을 더 굳건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마가는 마가복음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시는가를 여러 각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 시대만큼은 아니지만 믿음을 가지고 살기에 매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핍박은 아니지만 우리의 욕심과 세상의 여러 가지 유혹과 우리를 보는 차가운 시선들 때문에 믿음이 흔들립니다. 이럴 때 우리도 마가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예수님이 정말로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시는지를 확인해보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리였던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을 소개하면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시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하는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면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본문 14절에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로 부름을 받은 레위는 알패오라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과 세관에 앉아 있는 사람 즉 세리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알패오라는 사람은 나중에 부름 받은 야고보 사도의 아버지 이름이기도 하는데 레위의 아버지 알패오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세리라는 직책은 당시 국경에서 수출입하는 물건에 세금을 부과하고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세리 자체는 중요한 일을 하는 관리였지만 부정을 하는 세리들이 많아서 모든 사람이 세리라고 하면 나쁜 사람이며 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레위라는 이름은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후에 마태라는 이름으로 바뀝니다. 성경에는 신분이나 직분이 바뀐 후에 이름을 바꾸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원래 아름은 아브람이었고 야곱도 후에 아스라엘로 바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대표적으로 베드로는 원래 시몬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원래 사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신 경우도 있고 자신이 스스로 바꾸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레위도 부르심을 받은 후에는 마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한 사람으로 마태복음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취급하는 세리의 직책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관료로서 다른 제자들보다 성경이나 세상 학문에 다양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를 복음서의 기록자로 선택하신 것 같습니다.

 

 그의 이름이 레위인 것으로 보아서 레위 지파의 후손인 것으로 보입니다. 구약시대의 레위 지파는 특별히 하나님의 일에 부르심을 받아서 성전에서 하나님의 일에 수종 드는 특별한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특별한 후손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그와 정반대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보다는 세상을 가까이하였습니다. 세상의 재물에 욕심이 많아서 세상 사람들이 욕을 하는데도 세리가 되어서 돈을 버는 일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당시의 세리는 몸을 파는 창기들과 같은 천한 사람으로 죄인으로 낙인을 받았습니다. 레위인의 후손으로서 차마 해서는 안 될 일을 그것도 공개적으로 하면서도 돈벌이에 급급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음에도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몰라서 그렇게도 살지만, 알면서도 그런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구제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관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이라는 분의 소식은 잘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귀신도 쫓아내고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도 간단하게 고쳐주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갑자기 뜻밖에 자기가 있는 세관으로 오셨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길이겠지 했는데 그 예수님이 자기를 보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부르심을 들은 레위는 따지고 생각할 것도 없이 선뜻 따라나섰다고 했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따져보면 버리고 따라갈 수 없는 자리였습니다. 얼마나 좋은 자리인데요. 장사하는 사람들이 와서 뇌물도 주면서 굽신거립니다. 세금도 많이 매겨서 착취하여 부자가 되는 자리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하든지 말든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만한 자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좋은 자리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버릴 만큼 예수님의 부르심은 아주 강한 부르심이었습니다.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부르심이셨고 그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엄청난 부르심이었습니.

 

 그런 자리에 세상 사람들이 다 죄인이라고 비웃는 세리인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불러주셨다는 것은 정말로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 부르심을 받은 그는 예수님을 만나서 본연의 위치로 돌아왔고 레위 지파가 하는 일보다 엄청나게 귀한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의 맨 첫 위치에 자리 잡은 마태복음을 기록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도 불러주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예수님을 따라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인간을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본문 15-16절에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레위가 세리의 관직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하여서 잔치를 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같은 사람을 불러주신 것에 대한 감사일 수도 있고 또 그 자리에 세리들이 많이 왔다는 것으로 볼 때 세리들과 이별하는 이별 파티일 수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 세리들만 많이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많이 왔는데 죄인들이 많이 왔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라고 했습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왜냐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같이 엄청난 분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부자들이나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나 잘난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그와 반대로 관리 중에서도 죄인으로 분류되는 세리들이나 다른 죄인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원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도 서기관들이 와 있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앞에서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고치실 때도 어떤 서기관들이 와서 예수님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뭔가를 잘못하면 바로 비판하고 빌미를 잡아서 제거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을 때 서기관들이 바로 비판을 했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 죄를 사하실 수 있는데 사람이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고 비난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서기관들도 아마 그때 그 사람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만 가지신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어찌 그런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라고 하면 적어도 자기들 같은 서기관들이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제사장들과 식사를 해야지 제일 천한 죄인들과 식사를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아무나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신분에 맞는 사람들하고 식사를 했지 천한 사람과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이방인들과도 식사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은 거룩한 백성이고 이방인은 짐승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을 포함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기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일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라고 하는 분이 자기들을 만나지 않고 보잘것없는 사람들 죄인들을 만나는 것을 보면서 기분이 나빴을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 예수님이 정말로 하나님이시고 메시야이신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진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몰라봤다면 그 죄가 엄청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가 아니시기를 바랐고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면 부정적인 면만 자꾸 보게 됩니다. 중풍 병자를 고치신 것을 보면서도 야 대단하다. 정말로 하나님이신 것은 아닌가 하고 살펴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긍정적인 면은 보지 않고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만 평가했습니다.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하나님이신가를 생각해보아야 하는데 그런 말 하는 것을 가지고 시비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보면 예수님은 참 대단한 분이시다. 하나님이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다니 참 사랑의 하나님이시구나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냥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비난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설교를 하면서 1대지와 2대지에서 비교되는 두 가지의 시선을 대지의 주제로 뽑았습니다. 첫 번째 대지는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라고 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시선입니다. 예수님께서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는 시선을 소개했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레위를 보시면서 겉으로 드러난 부정적인 모습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욕심이 많은 죄인이라는 것을 보았지만 예수님은 그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속 사람을 보신 것입니다.

 

 그 긍정적인 것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복음서를 기록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이미 그를 선택하신 택한 백성임을 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죄악 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 있는 착한 마음을 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대지에는 서기관들이 가진 부정적인 시선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라는 것은 서기관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부정하려는 마음으로 죄인을 구하러 오신 예수님의 행동을 오히려 비난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도 이런 긍정적인 시선과 부정적인 시선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은 죄인이 아니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절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교회 다니는 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너무나 좋고 복음이 너무나 좋고 믿음이 너무나 위대하고 교회가 너무나 좋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회복시켜 주신 것이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사할 일이 됩니다.

 

 부정적인 시선으로 교회를 보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 별로 훌륭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부족한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서 비난합니다. 아이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꼴이 왜 저 모양이냐?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왜 저렇게 못사는 사람이 많고 못난 사람들이 많으냐고 비웃습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교회에 가면 머리가 하얗고 얼굴만 보아도 인자한 사람이 목사로 장로로 있고 성도들도 예의도 바르고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잘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가 진짜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입니다. 부족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진짜 교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복음을 더 잘 믿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진짜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더 잘 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초대받은 잔치처럼 죄인들과 세리들이 많이 있는 곳 그곳이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본문 17절에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서기관이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와 함께 식사하는 것을 비난하자 예수님께서 그 비난을 들으시고 말씀을 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라고 예를 들어 말씀하시면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습니다. 만약에 이 세상 사람들이 의인이라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다 의인이 아니더라도 아주 소수의 사람이라도 의로운 사람이 있었으면 그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 성을 심판하실 때 의인 오십 명만 있으면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50명에서 5명이 부족한 45명의 의인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묻습니다. 나중에는 1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는데 한 사람도 없어서 결국은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에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0-12)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다고 했는데 자신이 의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좀 착하다고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의로운 사람에게 상 주시려고 오셨다면 환영하겠지만 죄에서 구원해주시겠다고 하면 별로 감동을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의인을 싫어하셔서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신분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어차피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나아오시기만 하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해주십니다. 자신이 더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은혜는 더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의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죄인을 구하러 오신 주님께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나와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죄인의 신분에서 의인의 신분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