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13.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 07)

  본문 : 막 1:35-39

  제목 :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35.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장 중점적으로 하신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가장 핵심적인 일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일입니다. 그 일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주로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때때로 기도하신 일과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신 일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마가복음 1장에서 그 세 가지 중점적인 일을 행하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29절에서 45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인데 그 세 가지 중요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9절 이하에는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 장모의 병을 고쳐주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2절 이하에는 각종 병이 든 사람을 고치시고 많은 귀신을 쫓아낸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40절 이하에는 한 나병 환자를 고쳐주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중간에 기록된 말씀인데 귀신을 쫓아낸 일도 기록하고 있지만 기도하신 일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전도하는 일 즉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피해서 다른 마을로 가시면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온 것은 전도하기 위함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일이나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들이 다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함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라고 하신 말씀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본문 35절에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사실 예수님도 성부 하나님과 똑같은 영광과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도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기도하셨고 하나님 나라에서도 기도하신다고 했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기도에 대해서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저 기도하셨다고만 기록한 곳도 있고 구체적으로 무슨 말씀으로 기도하셨다는 것을 기록한 곳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기도가 잘못된 기도인지 지적도 하셨고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것도 가르쳐주셨습니다.

 

 특별히 요한복음 17장에는 전장이 다 예수님의 기도문을 기록해놓고 있습니다. 이 기도문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주로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늘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이 악에 빠지지 않고 구별되기를 위해서 기도하셨고 그들이 믿음을 가지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이 계시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같이 살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도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그 고통스러운 고난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도 하셨지만 그것은 자신의 생각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14:36)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이고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위한 기도이기도 하지만 자기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내세웠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이기적인 기도이고 잘못된 기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핵심은 피하고 부분적인 것들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새벽에 기도하셨기 때문에 새벽기도가 응답이 빠르고 좋은 기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새벽 시간이 기도하기에 좋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낮에는 너무 바쁘셨고 할 일이 많으셨기 때문에 한적한 시간에 기도하셨고 그 시간이 응답을 잘 받는 시간은 아닙니다. 틈만 나면 아무 때나 기도하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임을 강조하면서 무슨 기도를 해야 응답하시는지는 교회가 말해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욕심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에는 응답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을 결정하면서 나름대로 기도 많이 해서 받은 응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그것이 응답이 아니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한 결정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반대되는 결정을 하면서도 기도의 응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결정이 아니라 자기의 결정을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기도는 나의 요구사항이 관철되도록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영원한 천국이 기도의 목적이어야 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더 강하게 해달라는 목적이어야 합니다.

 

 나보다는 하나님의 교회와 다른 사람을 위한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평안함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일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본문 36-37절 말씀에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벽에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실 때 시몬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님 계신 곳을 찾아와서 말합니다. “예수님 지금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빨리 가서 그들을 만나 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만나러 가시지 않고 다른 마을로 떠나셨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는 목적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고 그들의 뜻이 예수님의 뜻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들의 병을 고쳐주셨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예수님께 그런 혜택을 받기 위해서 몰려왔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병원이나 의약품이 오늘날처럼 많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병이 들면 어디 가서 진찰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병명도 모른 채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병명을 안다고 해도 고칠 수 있는 의술이나 의약품이 없었기 때문에 그 병으로 인해 죽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런 시절에 예수님께서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어떤 병이나 다 고침을 받는다는 소식은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쁜 소식이요 복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환자나 그 가족들이 예수님께 와서 고침을 받으려고 애를 썼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더러운 귀신은 지금의 귀신과 다르게 몹시 나쁜 귀신이었습니다. 사람에게 들어와서 그 사람을 병들게 하고 정신 나간 짓을 하게 하고 자기 몸을 상하게도 하고 다른 사람을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의 가족들이 예수님께서 귀신을 간단하게 말씀 한마디로 쫓아내신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했을 것이고 그 예수님을 만나려고 애를 썼을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귀신이 더 나쁜 귀신입니다. 오늘날의 귀신은 소리소문없이 들어와서 영안을 가리고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고 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어서 지옥으로 끌고 가는 매우 나쁜 귀신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귀신이기 때문에 피해를 본다거나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귀신과 상관없는 사람처럼 살다가 자신도 모르게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왜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더 하시지 않고 그들을 외면하고 떠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예 큰 교회당을 하나 짓고 거기서 전국에 있는 병든 자 귀신 들린 자들을 다 불러 모으고 다 고쳐주셨으면 세상에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인기가 올라갈 것이고 예수님께서 전하는 복음도 더 잘 들었을 것입니다.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이 고맙다고 인사도 하고 돈도 많이 가져올 것인데 그 좋은 일을 왜 안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진행하시는 일을 타락한 인간의 마음으로 제한적인 지식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방식으로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탄이나 그 졸개인 귀신들을 다 몰아내고 병든 자들을 다 고쳐주시고 다시는 병들거나 귀신이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해주셔서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평안한 세상을 만들어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사탄이나 귀신도 이제 곧 영원한 지옥으로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탄을 따르는 타락한 인간들도 다 사탄이 가는 지옥으로 끌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그들 중에 섞여 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런 기적을 체험하지 않아도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께서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되어 구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택함을 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은 그런 기적을 체험한다고 해도 복음을 듣지 않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귀신만 쫓아내면 되고 병 고침만 받으면 그만입니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이 세상에서나 평안하게 잘 살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런 방법을 통해서 전도하시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11:20-23)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많이 행하신 곳이 고라신, 벳세다, 그리고 가버나움인데 그렇게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도 정작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지도 않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도 않더라는 것입니다.

 

 병들고 늙고 죽어감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인 줄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돌아와야 합니다. 죄인에게 구원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데 병 고침을 받고 나서는 오히려 자신들이 대단한 줄 알고 세상에서 더 잘살아보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로 오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 특별한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푸셨지만 그들이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는 못하기 때문에 기적을 행하기보다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 열심을 내셨습니다.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본문 38-39절 말씀에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병 고침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피하여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온 갈릴리로 다니시면서 여러 회당에서 전도도 하셨고 전도를 위해서 귀신도 쫓아내셨습니다.

 

 “전도하리니에서 전도라는 단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도와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전도한다고 하면 사람들에게 교회를 소개하고 교회로 이끌고 오는 것을 전도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의 전도는 그런 의미보다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래서 같은 병행 구절로 보이는 누가복음 4장에서는 본문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4:43)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전도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공적으로 제일 먼저 말씀하셨던 그 말씀을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전파하시는 것을 전도라는 말로 썼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1:14-15)라고 하신 말씀을 계속해서 전파하셨고 그것을 전도라는 말로 쓰고 있습니다.

 

 그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의 제목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 복음이 시작되었고 예수님은 그 복음을 계속 전파하셨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제일 큰 임무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복지사업도 하고 교육사업도 하고 별별 일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 사업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업을 살펴보면 복음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고 그 사업 자체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복지를 통해서 어려운 사람 가난한 사람이 잘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참 좋은 일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다가 보면 그 일 자체가 참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잘 살게 해주는 것이 참 좋은 일이지만 잘못하면 복음과는 반대되는 일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한 인간은 이마에 땀을 흘려서 일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고 그 어려움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복지가 잘못하면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이 되게 하고 무책임한 삶을 살게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에게 그 어려움을 통해서 주는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가로막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기도해서 복을 받아 이 세상에서 잘살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쳐주어서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일은 참 좋은 일이지만 그 자체가 교회가 하는 일의 목적은 아닙니다. 그런 일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여 자신이 죄인 줄 알게 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하는 일이 교회가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가 그런 목적의식을 잃었습니다. 복지사업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 복음과 반대되는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교육을 하면서 복음에 대한 교육은 하지 않고 복음과 반대되는 것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성경을 공부한다고 하면서 성경의 핵심인 복음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를 한다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과 거리가 먼 것을 선포합니다.

 

 제가 목회를 마무리하면서 인간인지라 가끔은 목회의 결과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마음이 서글플 때도 있습니다. 이 정도 열심이면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야 할 것인데 그렇지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사명,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무료 급식소 운영, 지역아동센터, 청소년 공부방, 예배학교, 목회자 훈련원, 중국이나 여러 나라 선교와 현지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신학교 강의 등 작은 교회가 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했습니다.

 

 특별히 그 모든 일의 목적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일이었고 제가 교회의 설교나 외부 설교나 강의를 통하여 기회만 있으면 복음을 전했습니다. 열매는 하나님께서 맺는 것이고 우리는 복음의 씨를 뿌리고 잘 자라게 하는 일에만 열중하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예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외롭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사탄의 방해 공작도 심하고 사람들도 따르기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교회가 해야 할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할 황금 같은 3년의 세월을 복음을 전하기 위한 더 많은 활동을 하지 못하고 그냥 보내야 하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시고 협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중점적으로 하신 일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도 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시고 중점적으로 하신 일은 복음을 선포하시는 일이었고 이 일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신 일도 이 일을 위한 기도가 중심이었습니다. 기적을 행하신 일도 이 일을 위하신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중점적으로 하신 이 복음 전파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핵심적인 일로 행하여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이나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도 이 복음을 위한 일이어야 합니다.

 

 이 복음을 믿고 따르는 일에 더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하는 일에 더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위해서 더 충성스럽게 일하시기 바랍니다.